제8권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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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탄의 주먹 안에 갇힌 것과 같은 압박이 헤르메스의 사방에서 헤르메스를 옥죄어 오고 있었다.
‘중력.’
최명희의 중력이 그 힘을 키워 헤르메스를 압박하는 것이었다.
헤르메스뿐만이 아니었다.
‘아르테미스!’
유시아, 마동철.
그리고.
“……!”
왕.
-죽여라! 쥬노!
중력에 압박당하는 이정기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
모모스와 싸우면서도 느끼지 않았던 고통을 느끼는 듯 힘겨워 보이는 표정.
헤르메스는 전투 중임을 알면서도 질끈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안 돼. 내 잘못이야.’
자신 때문이다.
왕의 괴로움은 온전히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
조금 더 확인하고, 조금 더 완벽을 도모했어야 했는데 자신이 그러지 못해 최명희가 티탄들에게 세뇌당한 것이었다.
그 대가는 너무 컸다.
쥬노의 넥타를 티탄에게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게 된 상황.
그러나 무엇보다 큰 것은.
‘최명희.’
그녀가 왕인 이정기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올림포스에서 외로이 자란 이정기.
그가 대화할 수 있는 존재라곤 이건과 쥬피터밖에 없었다.
또한, 이정기는 올림포스에서 소중한 가족인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었다.
극단적인 환경은 인간에게 어떠한 집착을 만들기 쉽다.
올림포스의 극단적인 환경은.
‘왕에게 가족에 대한 집착을 만들었다.’
그것이 헤르메스와 아폴론이 생각하는 이정기의 약점이었다.
이성이라는 이름, 성혈들에 집착하는 모습.
쓸어버릴 힘이 충분하고 언제든 원한다면 갖을 수 있겠지만 굳이 어려운 길로 돌아가려는 이정기의 모습.
가족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면 한없이 관대한 그 모습이 걱정스러웠었다.
헌데 그중에서도 가장 이정기가 집착하는 존재.
‘최명희.’
그녀를 티탄에게 빼앗긴 것이었다.
“설마….”
헤르메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자신이 최명희에게 벌어질 일을 알고 움직일 수 있었던 까닭은.
‘아폴론.’
아폴론이 경고했기 때문.
‘아폴론이 배신하진 않았다.’
그것은 확신할 수 있으나.
‘만일 아폴론이 이 상황을 노린 거라면?’
아폴론의 올림포스에 대한 애정은 진심이다.
또한, 아폴론이 지금의 왕, 이정기를 얼마나 중요한 존재로 생각하는지 헤르메스는 알고 있었다.
자신들 가디언의 나머지들은 지금의 왕을 어쩔 수 없는 대체품으로 인정하고 있다지만 아폴론은 과거 셀 수 없는 세월 전부터 기다려온 존재가 바로 이정기였다.
이정기가 이건을 생각하듯, 아폴론에게 이정기는 그러한 존재였다.
하지만 아폴론이 이 상황을 노린 것이라면?
현재의 왕 이정기에게 유일한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
‘그 존재를 제거하고 극복하게 하기 위함이라면….?’
일부러 최명희를 티탄에게 넘겼을 가정마저도 할 수 있었다.
무엇이 되었든.
“끄으으윽.”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아폴론의 어두운 속내가 있다 한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자신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비록 헤르메스에게 이정기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왕의 대체품이라고 하지만.
그 이후, 이건과의 시간 속에서, 이정기를 다시 만난 것으로.
‘내가 인정한 왕.’
헤르메스는 진심으로 이정기를 인정했다.
그런 왕에게 이런 힘겨운 일을 안겨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책임을 져야 한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넥타를 피워내 중력을 몰아내는 헤르메스가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자신이 벌인 일은 자신이 해결한다.
“제가 쥬노를 돌려놓겠습니다.”
그것이.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해내야 한다.’
잠드는 것이 아닌 영면.
그 대가가 진정한 죽음일지라도.
* * *
넥타에 대한 이해가 가장 깊고, 그 힘을 가장 완벽히 쓸 수 있는 존재.
모모스와의 전투로 힘이 고갈된 이정기를 제외하면 헤르메스뿐이었다.
아니, 이정기가 멀쩡한 상황이었다고 해도 넥타에 대한 이해나 사용만큼은 헤르메스가 앞서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수천 년을 다루었던 힘, 날 때부터 타고났던 힘.
인간이 손을 움직이듯, 가디언은 태어날 때부터 넥타를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
‘할 수 있다.’
그 힘을 이용하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도 해낼 수 있었다.
넥타를 이용하면 기적과도 같은 힘인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
기적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
-쥬노!
결코, 풀 수 없을 것 같은 티탄의 세뇌도 그 대가만 충분하다면 풀어낼 수 있으리라.
쿵.
헤르메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닥에 지팡이를 짚었다.
구구구구.
사방에서 중력의 압박이 몰려오고 있지만 헤르메스는 똑바로 서 있었다.
“왕이시여.”
이정기를 향한 목소리.
저벅.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최명희.
“허락해 주십시오.”
“……?”
헤르메스는 이정기를 향해 허락을 구했다.
“제가 이 일을 해결지을 수 있게….”
번뜩이는 헤르메스의 눈.
“가디언의 힘을 허락해 주십시오.”
가디언의 힘을 허락해달라.
티탄 모모스가 본래의 힘을 되찾았듯.
‘나 또한.’
그 본래의 힘을 되찾겠다.
아직 완벽하지 않은 환경과 육체.
그리고.
‘왕.’
하지만 지금도 무리해서라면 그것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그 대가가 없지는 않았다.
왕에게도 타격이 있겠지만.
쿠쿵.
겨우 쌓아 올려 회복해낸 자신의 넥타와 영혼에도 타격은 있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완벽을 되찾았을 때의 결과가 그런 것인 줄을 알기에 허락을 구하지 않았던 것이니까.
그러나 할 수는 있는 일.
“부탁드립니다.”
이정기를 향한 헤르메스의 간곡한 부탁.
저벅.
그때도 최명희는 양 손을 뻗쳐 헤르메스를 압박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
무거운 얼굴의 이정기.
최명희 때문일까.
아니면 헤르메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것이기 때문일까.
무엇이든.
꽈악.
머릿속을 옥죄는 충격이 헤르메스에게 느껴졌다.
이것이다.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
[허락한다.]
왕의 진언이 힘이 되어.
꾸릉!
순식간에 헤르메스를 잠식했다.
터지기 전의 풍선처럼 급작스럽게 부풀어 오른 헤르메스의 넥타가 가시화되어 둥근 구처럼 변해 헤르메스를 가두었다.
쿠쿠쿵!
최명희 또한 헤르메스의 변화를 눈치챈 듯 더 강한 중력으로 압박해 왔지만.
까그그그.
오히려 헤르메스의 변화를 가속화시키는 것밖에는 되지 않았다.
부풀어 올랐던 헤르메스의 넥타가 중력에 찌그러지듯, 점점 그 크기를 줄여갔다.
뒤이어.
파앗!
헤르메스의 넥타는 완전히 줄어들어 헤르메스의 형체와 똑 닮은 크기가 되어 있었다.
[가디언의 힘을 각성합니다.]
헤르메스에게만 들려오는 목소리.
‘오랜만이군. 메티스.’
헤르메스가 웃으며 그 힘을 받아들였다.
‘아니….’
무언가 더 말하려 했지만.
꽈꽝!
헤르메스는 자신을 뒤흔드는 충격에 입을 꽉 다물 수밖에 없었다.
더욱더 강맹해진 최명희의 힘.
파아아앗!
헤르메스는 날개를 펼쳤다.
헤르메스를 옥죄었던 넥타가 사라지고 드러난 헤르메스의 모습.
등 뒤와 머리, 발꿈치에 피어오른 날개.
황금의 갑주.
그것은 어쩌면 사람들의 환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천사.’
그러한 모습임이 분명했다.
‘해내겠습니다.’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
마치 검처럼 변한 뱀의 지팡이를 들고.
파앙!
헤르메스는 공간을 뛰어넘어 최명희의 뒤에 서 있었다.
* * *
꽝!
백발의 여인과.
꽝!
날개있는 천사.
꽈아앙!
그 둘은 마치 신화 속 한 장면처럼 부딪히고 있었다.
서로의 몸과 물건 그 어떤 것도 접촉하지 않지만.
꽈앙!
허공 속에서 부딪혀 그 파장을 퍼트리고 있었다.
한쪽은 헤르메스의 육체를 파괴하기 위해 중력을 몰아붙이고 있었고.
꽈앙.
한쪽은 최명희의 중력장을 부수어내 최명희에게 닿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가디언의 힘을 각성한 헤르메스.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어.”
당연히 최명희를 압도해야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번뜩!
최명희는 넥타를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임에도 이미 그 힘을 완벽에 가깝게 다루고 있었다.
만일.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헤르메스가 이건을 먼저 보지 않았다면 이 승패는 이미 진작 결과가 났을 것이었다.
고대로부터 가디언에 비해 보잘것없던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나약함을 알고 있기에, 넥타를 받았다 한들 그 주체가 인간이 된 듯 한 최명희를 무시했을 것이고.
꽈드드득!
그랬다면 자신은 지금 저 지반의 일부처럼 찌그러져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고.
꽈아앙!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자신도 모르는 잠재력이 숨어 있음을 인정했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디언보다 더 위대할 수 있다.’
자신들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헤르메스는.
꽈아아아아아앙!
처음부터 온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왕의 넥타 레벨이 낮아 아직 완벽한 각성은 아니다.’
지금 자신이 되찾은 힘은 완벽하지도.
‘오래 지속할 수도 없어.’
또 그 사용시간 또한 제한되어 있었다.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파앗!
헤르메스는 최선을 다해 이 상황을 바로잡을 생각이었다.
티탄과의 오랜 전쟁으로 티탄의 방식을 안다.
아이기스를 건넸을진데, 그것을 배제하고 세뇌를 했다면 풀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적다.
하지만 다른 가디언이 아닌 자신이라면.
파앗!
그리고 최명희라면.
‘가능해.’
중력장을 피해 공간을 뛰어넘는 헤르메스.
세 번, 다섯 번, 여섯 번.
공간을 뛰어넘는 헤르메스는 최명희와 거리를 계속 좁히면서도 그 힘의 소모가 막대함을 깨닫고 있었다.
‘기회는….’
파앗!
그리고 공간을 열두 번 뛰어넘었을 때.
“단 한 번!”
헤르메스는 마침내 지팡이가 닿을 거리까지 최명희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회백색으로 탁하게 빛나는 최명희의 눈을 향해.
쒜에에엑!
헤르메스는 있는 힘껏 검으로 변한 지팡이를 찔러넣었다.
헤르메스의 진정한 권능.
-최명희!
영혼의 안내자.
-정신 차려!
자신이 직접 최명희를 세뇌 속에서 끄집어내리라.
쿵.
최명희의 미간과 맞닿은 헤르메스의 지팡이에서 파동이 일어났다.
그 순간.
휘이이이익!
최명희와 헤르메스의 세상이 소용돌이치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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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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