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권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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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이이이.
굉음과 함께 이명이 들려오는 귓가.
시야는 온통 새하얀 빛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급히 지팡이를 움직이는 헤르메스와 마동철을 챙기려는 유시아.
화아아아아아아악!
그들을 향해 거대한 파동이 덮쳐왔다.
지반이 빗자루에 쓸려나가듯 부서져 흩날리고, 구름은 한 점 볼 수 없는 상황.
헤르메스가 지팡이로 포탈을 만들어 파동을 흘려내지 않았다면 일행들은 그대로 파동에 휩쓸려 어떤 모습이 되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일행들의 숨소리조차 파동에 휩쓸려 들리지 않는 상황.
“……!”
서서히 세상을 가득 메웠던 빛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전투 중에 결코 눈을 비벼선 안 되기에,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시야를 되찾고 있는 일행들.
마침내 그런 일행들의 눈에 비춘 광경은.
“……!”
끝이었다.
성경 속 다윗과 골리앗의 모습이 꼭 저러했을까.
아니, 단언컨대 이것이 그 모습보다도 더 웅장할 것이라 상상되었다.
개미와 같은 크기의 인간.
그리고 그 인간을 노려보고 있는 하늘에 머리가 닿는 거인.
그런 거인의 가슴팍에.
-크허어어어엉!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타탓!
꺼져버린 가슴의 동그란 원 바깥으로 불꽃이 타닥이고 있었다.
파지짓!
그 깊은 구멍 속에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티탄의 강맹한 재생력은 이미 모두가 보아서 알고 있건만.
“…….”
회복조차 안 되고 있는 상황.
수많은 전투 경험이 있는 일행들이기에.
“끝….”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끝이야.”
이정기, 그가 저 말도 안 되는 거인을 쓰러트리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모모스의 힘을 일행들 또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에, 이정기의 실력과 강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불안해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정기는 정말로 해낸 것.
“정기야!”
유시아가 다급히 이정기를 향해 소리쳤다.
빠르게 식어가는 모모스의 기운처럼 이정기의 기운 또한 빠르게 쇠락하고 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완전히 돌아온 시야 속, 궁수의 시력으로 보인 이정기의 얼굴은 파리하게 창백해진 얼굴로 겨우 서 있는 듯 보였다.
당장이라도 쓰러지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상황.
“아직….”
그런 이정기가 일행을 향해 작은 목소리를 내었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
일행들이 다급히 모모스를 올려다보았다.
분명 뚫려 있던 가슴, 제대로 재생조차 되지 않고 있던 구멍에.
-제기랄! 제기랄! 죽여버릴 테다! 전부 갈아 마셔버릴 테다!
모모스의 불평과 함께 조금씩 회복이 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에 반해.
“젠장 할! 전부 내 탓이야!”
이정기만큼이나 창백해진 안색의 마동철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제기랄….”
서 있던 이정기.
빠각! 빠가각!
그의 사자갑주에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파슷, 파스슷.
곧이어 먼지로 화하기 시작한 사자갑주.
이정기의 힘은 모모스를 끝장내기에 충분했다.
다만 부족했던 것은 마동철이 제작한 장비가 그러한 이정기의 힘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했다는 것.
“우리도 그저 구경하러 온 것만은 아니야.”
유시아가 각오했다는 듯 나서며 말했다.
그보다 먼저 앞서 나가는 헤르메스.
“이제는….”
그들이 기운을 일으키며 말했다.
“저희가 끝내겠습니다.”
이정기가 이 정도로 해주었으면 되었다.
모모스에게선 아직도 엄청난 힘이 느껴지지만, 헤르메스와 유시아 또한 가디언의 힘을 이은 이들이었다.
우웅.
유시아가 활에 잰 화살에 코팅을 시작했다.
* * *
파앙! 파앙!
달빛을 머금은 화살이 모모스와 부딪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타이탄을 꿰뚫는 데는 성공했던 유시아의 화살이지만, 모모스의 두꺼운 거죽을 꿰뚫기는 아직 무리가 있는 듯했다.
파앙!
그러나 아무런 충격이 없는 것은 아닌 듯, 모모스의 재생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우웅.
헤르메스 또한 쉬지 않고 지팡이를 움직였다.
칼날과도 같은 바람이 뱀처럼 모모스의 발끝부터 휘감아 베어내고 있었다.
-젠장 할-!
계속해서 고통을 호소하며 소리치는 모모스.
-이제 그만 기어 나와!
유시아는 쉬지 않았지만, 헤르메스의 얼굴은 조금 어두워졌다.
안 그래도 이상함을 느끼던 헤르메스였다.
모모스의 기운을 처음 느꼈을 때 느꼈던 또 다른 기운.
그리고.
‘헤파이스토스.’
분명 모모스가 헤파이스토스의 넥타를 먼저 차지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녀가 금빛의 레이피어를 사용하던 것이 그 증거였고 모모스에게서 은은히 느껴지던 동료의 잔향이 바로 그 증거였다.
하지만.
‘아니야.’
만일 헤파이스토스의 넥타를 가지고 있었다면, 모모스가 저렇게까지 쉬이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헤파이스토스의 넥타가 가진 고유의 권능을, 죽음을 각오한 모모스가 사용했다면 이렇게 무방비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터.
“확실히….”
이제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누군가 있습니다!”
모모스는 혼자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분명 또 다른 동료가 있으며, 그 동료가 헤파이스토스의 넥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모모스는 단지 헤파이스토스의 넥타에서 그녀가 사용할 무구를 하나 뽑아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와!
모모스가 다시 한 번 큰소리로 소리 쳤다.
“서둘러서 모모스를 쓰러트….”
쿵.
유시아도, 마동철도, 헤르메스도.
잠시 한쪽 무릎을 꿇어앉아 호흡을 고르며, 부서져 가던 사자갑주의 파괴를 억제하던 이정기도.
쿵.
모두가 한 번에 멈춰버렸다.
씨익.
저 멀리, 아직도 높게 치솟아 있는 모모스의 입가에 초승달과 같은 웃음이 서리기 시작했다.
-젠장 할 년! 내가 서둘러 오라 했을 텐데!
분명한 명령조로 소리치는 모모스.
그녀의 이어진 목소리에 헤르메스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티탄의 육체들을 찾자마자 오라 했는데 왜 이제야 오는 거야!
“티탄의 육체….!”
아무것도 몰랐다는 얼굴의 헤르메스.
“설마…!”
이곳에 그저 헤파이스토스의 넥타만이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녀석들의 목표는 그게 아니었다.
애시당초, 이정기의 발을 묶어두는 것이 모모스의 목적.
그들의 원 목적은.
“티탄의 육체가 이곳에 있다는 건가!”
티탄들의 육체를 찾는 것에 있는 것이었다.
씨익.
모모스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타르타로스가 우리의 감옥이었다. 올림포스의 붕괴로 우리는 탈출을 감행해야 했지.
“……!”
-육체를 버리고 넥타와 영혼만이 빠져나올 수 있었다. 육체를 찾을 수 없을 줄 알았지만.
씨익.
더욱더 짙어진 웃음.
이제 모모스의 입은 찢어져 귀까지 걸릴 것만 같았다.
-네 놈들, 가디언이 만든 감옥은 상상 이상으로 단단하고 견고하더구나.
“맙소사!”
-올림포스의 붕괴에도 타르타로스는 멀쩡했다. 이곳은 그 타르타로스의 일부와 연결되는 장소….
헤르메스는 이제 모든 상황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육체를 버린 채 힘만이 빠져나왔던 티탄들.
그들이 육체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육체를 찾는다면.
“안 돼!”
그 결과는 눈에 보이는 듯 뻔했다.
올림포스와 타르타로스의 경계인 이곳에서 본래의 힘을 되찾은 모모스.
그녀처럼.
“지구의 티탄들이 제 힘을 되찾을 겁니다!”
지구의 환경을 바꾸기도 전, 티탄들은 본래의 힘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지구의 환경마저 지옥처럼 바뀌는 날에는.
‘패배.’
전쟁은 시작도 전에 패배할 것임이 분명해진 것이었다.
“막아야…!”
-뭘 막는단 말이냐?
모모스의 비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지금 네 놈들의 몸을 옥죄는 힘이 무엇인지 모르겠느냐?
“……?”
-보아라. 네 놈들의 왕이라 하는 녀석의 표정을.
움직이는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헤르메스가 이정기를 쳐다보았다.
아까와 같은 창백한 안색.
하지만 그 결이 다르다.
막대한 힘을 한 번에 소모해 피로함과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것이 아까의 얼굴이라면.
“왜…?”
지금 이정기의 얼굴은 당혹감과 분노로 점칠되어 있는 것이었다.
-소개하지. 네 놈들의 동료이기도 한 여자다.
다시금 돌아가는 시선.
쿵!
온몸을 압박해오는 힘.
-쥬노. 전부 쓸어버려라.
최명희가 저쪽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 * *
성성한 백발, 그러나 윤기 없이 탁한 것이 아닌 날 때부터 그러한 모습인 듯 자연스러웠다.
얼굴은 분명 나이대가 있음을 느낄 수 있지만 그 분위기와 넥타, 황금 산양의 젖이 오히려 그러한 외모를 신비스럽게 비추어 연령대를 쉬이 짐작할 수 없게 만들었다.
또한, 그 당당한 걸음걸이.
어느 누가.
‘노인이라 생각할까.’
그것이 그녀였다.
최명희.
여제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그 이름을 각인시킨 최고의 헌터.
한국에 이건이 없었다면 분명 그녀가 대한민국을 대표할 시엘이 되었을 것이며 올림포스 원정대를 이끌었을 것이라고 평가받는 그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길드이자 기업 중 하나인 이성의 주인이자, 대한민국의 여왕이라고도 불리우는 여자.
그녀가.
저벅.
걸어오고 있었다.
“……!”
헤르메스는 익숙한 압박감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떠오르는 또 한 명.
‘이건.’
마치 그를 보는 것과 같았다.
전에 한 번 그녀를 보았는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쥬노.’
그녀의 힘을 완전히 소화한 듯 엄청난 변화임은 틀림없었다.
꿀꺽.
이렇게까지 그 힘을 소화해낼 줄은 몰랐다.
다만.
‘어떻게 된 거지?’
왜 그녀가 이곳에 있으며, 모모스의 명령을 받느냐는 것이었다.
티탄들이 그녀를 원하며, 그녀에게 쥬노의 넥타를 줄 것임은 이미 예상했었다.
그렇기에.
‘이것을 받으십시오.’
그녀를 찾아갔던 헤르메스였다.
‘티탄들의 세뇌를 막아줄 겁니다.’
티탄들이 그녀에게 힘만을 주지는 않을 터, 당연히 세뇌를 통해 최명희를 조종할 것이라 생각했다.
티탄들의 세뇌에 대해 알고 있는 헤르메스였기에 아폴론의 부탁에 미리 물건을 전달했었건만.
“왜!”
왜 최명희가 세뇌를 당한 듯 저런 모습을 하고 있냐는 것이었다.
-아이기스를 주었더군.
“……!”
들려오는 모모스의 목소리에 헤르메스는 사색이 되었다.
어떻게.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아폴론과 네 놈들의 배신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 같더냐? 아이기스가 있다는 것을 모르면 모를까….
씨익.
또다, 저 지독한 웃음.
-아이기스의 존재를 안다면 그것을 우회할 방법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지.
맙소사.
그렇다는 건.
꽈아아아악!
최명희가 계획에서 어긋나 정말로 티탄들에게 세뇌당했다는 뜻이었다.
온몸을 옥죄어오는 힘.
‘중력.’
그것이 최명희의 고유한 스킬이자 능력.
월등하게 강해진 중력과 최명희의 영역이 헤르메스를 터트릴 듯 압박해오고 있었다.
-죽여라. 쥬노!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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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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