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권 11화
186
쿠르르르릉!
천둥 소리가 울려퍼졌다.
순식간에 팔을 잃은 타이탄들이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였다.
투두둑.
소리 사이로 떨어지는 핏빛 우박들.
“…….”
마동철도 유시아도, 무엇보다 헤르메스는 입마저 벌린 채 그 광경을 보고만 있었다.
“타이탄이….”
타이탄이다.
티탄들의 병졸이자, 티탄들의 사생아.
‘영락한 티탄이자 가디언.’
티탄만큼이나 가디언들의 오랜 숙적이며, 골칫덩어리들.
말로는 유희거리라 했지만 녀석들의 손에 가디언들이 몇 번이나 위험에 처했었던가.
그런 것이 바로 타이탄이었다.
헌데.
“겁먹었어…?”
쿠오오오오오!
타이탄들의 비명, 그건 고통만 내지르는 것이 아니었다.
‘공포.’
잃어버린 본능 속 숨겨진 감정을 일깨워 소리치고 있는 것.
설마.
“노린 것입니까?”
한 마리뿐일 때는 본능에 지배당해 이지가 존재치 않는 몬스터일뿐 인 타이탄.
하지만 그 수가 늘어나면 녀석들은 공명하며 그 자그마한 두뇌를 일치시킨다.
당연하게 본능을 조금은 억제하며 사고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다수의 타이탄이 가지는 까다로운 점이자, 피해야 하는 이유였건만.
“네.”
이정기는 오히려 그것을 약점처럼 다루었다.
“녀석들이 모이면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생각이 있다면….”
쿠쿠쿠쿠쿵!
지축을 울리는 발소리들.
“못 이기는 상대에게 덤비는 어리석은 만용은 부리지 않죠.”
“……!”
“녀석들이 귀찮은 이유는 광전사처럼 끝없이 달려드는 그 폭력성에 있습니다. 그 커다란 덩치를 단박에 난도질하기도 쉽지 않고, 빠른 재생력이 어지간히 귀찮은 게 아니죠.”
“구, 귀찮다는….”
“그러니 겁에 질리게 하면 됩니다.”
겁에 질린 타이탄들이 등을 돌려 움직이기 시작한 소리였다.
“다수가 아닌 소수로 만들고, 사냥꾼이 아닌….”
이정기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사냥감으로 만들면 그만입니다.”
파앙!
허공을 격하는 이정기의 주먹.
순간 마력과 넥타가 큰 충격을 받은 듯 한 번 크게 휘청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
와류가 탄생했다.
몰아치는 소용돌이.
“타이탄….”
모든 것을 찢어발기며, 그 어떤 것을 분쇄하는 타이탄의 주먹.
이건이 본디의 볼텍스를 변형시켜 만든 그것.
“볼텍스.”
쿠콰콰콰콰콰콰쾅!
일직선 위의 모든 것이 갈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 땅에서 나고, 이 땅에서 자랐습니다.”
지치지도 않은 듯 고저 없는 이정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살기 위해선 녀석들을 처리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요.”
올림포스의 최상위 포식자였던 타이탄.
하지만 훗날 그 포식자의 서열은 바뀌었다.
맨 꼭대기.
그곳에 이건과 이정기가 있었다.
* * *
‘아직 이르다. 욘석아.’
부모님에 대해 처음 이야기를 들었던 무렵, 할아버지가 놀이라 부르는 것이 놀이가 아닌 것을 깨달았을 무렵이었다.
부모님이 타이탄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에 이정기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 했다.
‘아직은 안 돼.’
놀이가 아닌 훈련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한 이정기.
이제 올림포스의 많은 몬스터들이 이정기를 피해 다니기 시작했으니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할 수 있어요. 할아버지.’
‘욘석아.’
그리고 그것이 이정기가 이건에게 한 첫 반항이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안전지대를 찾기 위해 자리를 비웠을 때.
‘할아버지. 실망시켜서 죄송해요.’
이정기는 홀로 타이탄들을 사냥하기 위해 안전지대를 벗어났다.
평상시와 같이 쉬이 사냥할 수 있었던 몬스터들.
위험한 녀석들은 조금씩 피해가며 나아가던 때.
‘어….’
마침내 타이탄을 조우할 수 있었다.
멀찌감치서 보았고, 이따금 할아버지가 사냥하는 모습은 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날.
‘어…!’
처음으로 이정기는 겁에 질렸었다.
‘아직 이르다. 욘석아.’
할아버지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아직 이르다.
그 말이 맞았다.
그 커다랗고 두려운 거인은 정말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의 몬스터가 아니었다.
부우웅.
아직도 그날 자신의 머리통을 향해 떨어지는 타이탄의 주먹을 잊지 못한다.
콰앙!
그날 할아버지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죽었을 것이다.
‘욘석아.’
타이탄의 시체를 짓밟은 할아버지가 붉게 물든 눈으로 자신을 향해 목소리를 내었었다.
그날의 할아버지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너마저 저 개 같은 새끼들한테 잃으라는 거냐?’
‘할아버지….’
처음이었다.
그런 표정의 할아버지는, 그런 감정의 할아버지는.
‘그래. 좋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자신을 다그치지 않았다.
‘녀석들을 사냥할 수 있게 해주마.’
대단하다고 언제나 생각했던 할아버지.
그러나 그날의 할아버지는 무서운 눈매만큼이나 각인처럼 뇌리에 박혀있었다.
‘천천히 하려 했건만, 힘들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겠느냐?’
할아버지의 물음에.
‘네.’
그렇게 답했었다.
그날부터였다.
놀이가 진짜 놀이가 아니게 된 것이, 할아버지가 정식으로 훈련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날부터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쥬피터 할아버지를 만날 무렵 즈음.
쿵!
마침내, 정말로 타이탄을 쓰러트릴 수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더 빨랐구나.’
지옥이라 불리우는 올림포스, 그곳에서도 최상위 포식자 타이탄.
‘하지만 그건….’
이정기는 생각보다도 훨씬 더 빨리 목적을 달성했으나, 할아버지는 말해주었다.
툭! 투투툭!
육편이 비가 되어 내리는 속에서.
“올림포스의 척박한 생태에서 먹을 것은 쉬이 구할 수 없었습니다.”
이정기가 입을 열었다.
“그럴 겁니다. 전쟁 후 올림포스는 황폐화되어 더 이상 무엇도 생존할 수 없는 땅이었으니까요.”
“인간은 살기 위해선 먹어야 합니다. 그렇게 배웠습니다.”
담담한 이정기의 목소리.
“먹을 것이 없어 몬스터를 먹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선 그러실 수밖에 없었죠.”
“뭐…!”
마동철이 놀라 눈을 치켜떴다.
몬스터를 식자재로 사용하려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지나친 독성과 부작용들 탓에 아무리 연구해도 방법이 없었던 일이었다.
“할아버지의 피를 어머니의 모유 대신 먹었고, 몬스터의 젖을 물처럼 마셔야 했습니다.”
“맙소사.”
“그러던 중 제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타탕!
이정기의 사자갑주가 모습을 감추었다.
평상복의 이정기, 그의 드러난 팔에.
까드득!
비늘이 돋기 시작했다.
“제가 먹은 몬스터의 능력을 쓸 수 있더군요.”
“대체 무슨….”
“넥타 때문이로군요.”
놀라는 마동철, 유시아와 달리 헤르메스는 담담했다.
“가디언들에게도 가능한 일입니다. 몬스터들의 탄생 또한 저희에게서 기인한 것이기에 원한다면 몬스터들의 능력을 일부 사용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끄덕.
이미 쥬피터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비밀이었다.
“이미 왕께선 자격을 갖추고 있던 것이었군요. 그렇기에 쥬피터께서도 당신을 선택하신 것이고.”
그러나.
“타이탄의 고기를 먹었습니다.”
“……!”
이번에는 헤르메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의 고기도 독성과 부작용이 있다지만, 타이탄의 고기는 완전히 다르다.
타이탄의 고기를 먹은 적이 없어도 타이탄이 넥타와 마력 그리고.
‘혼돈.’
타락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를 알았다.
또한, 이정기가 이어 말하려는 것이.
꿈틀.
이정기의 온몸에 핏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타이탄의 능력을….”
“예. 타이탄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헤르메스가 말했다.
“타이탄들은 저희에게서 기인했다지만 몬스터와도, 저희와도 다른 존재입니다.”
타이탄들의 힘의 원천은 넥타와 마력, 그것뿐이 아니다.
인간들이 넥타를 혼용하여 부르는 말.
‘혼돈.’
그것이야말로 진짜 타이탄의 원천이다.
인간은 혼돈을 담지 못한다.
그리고.
“가디언조차….”
혼돈을 담지 못한다.
티탄 또한 마찬가지.
그런데 이정기가 그 힘을 다루는 것이다.
“완벽하진 않습니다. 타이탄의 힘만큼은 아직도 제대로 다루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나저나….”
이어진 이정기의 목소리.
“타이탄들을 쓰러트리는 방법은 넥타와 마력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원천의 힘, 진정한 혼돈 또한 가능한 일이지.
자박, 자박.
이정기가 살점과 핏물로 물든 올림포스의 대지를 밟으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이정기가 다수의 타이탄들을 쓰러트린 이후, 일행들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타이탄은 더 이상 겁내야 할 적이 아니었다.
파앙!
사냥해야 할 몬스터가 되었을 뿐이었다.
“타이탄들은 일반적인 위력으로는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습니다.”
화살을 쏘아대는 유시아를 향해 이정기가 말했다.
“완벽히 넥타를 다루거나….”
신이 아닌 인간.
넥타가 없던 존재가 타이탄을 사냥하는 방법.
“회전력을 담는 것이 가장 큰 효과를 줄 수 있습니다.”
“이미 화살은 회전하고 있는데?”
“그런 말이 아니에요.”
이정기의 목소리는 상냥했다.
“마력을 회전시키고, 넥타를 회전시키라는 거죠.”
“그니까….”
“마력끼리 회전하며 부딪히면 폭발이 일어납니다. 마력이 서로 반발하는 힘을 통해 그 파괴력을 키우는 거죠.”
“마치… 핵폭탄과 같은 원리로군.”
“잘은 모릅니다. 하지만 마동철 장인께서는 잘 아실걸요.”
파아앙!
내질러진 이정기의 주먹이 일직선 위의 모든 것을 꿰뚫었다.
다시금 타이탄 볼텍스가 그 위용을 자랑한 것이었다.
“이게 할아버지의 기술이니까요.”
“볼텍스….”
“그 사람의 기술을 나보고 하라는 거야?”
이정기가 유시아의 목소리에 피식 웃었다.
“가능하지 않은 것은 압니다.”
할아버지의 기술은 특별하다.
자신이 겨우 완벽히 따라할 수 있고.
‘김대정.’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제자라고 말했던 김대정만이 열화된 볼텍스를 흉내낼 수 있을 뿐이었다.
이들에게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
그러나.
“올림포스에는 할아버지만 계셨던 것이 아닙니다.”
“……!”
이정기의 말마따나 올림포스에 들어온 인간은 이건뿐만이 아니었다.
한국팀을 포함해 각국의 시엘들과 그들이 데려온 공략팀들.
그들 또한 타이탄을 상대하는 법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들에게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정기가 손짓으로 유시아에게 다시금 화살을 재라 신호했다.
후우웅.
달빛을 머금은 화살이 장전되었고.
“쏴보세요.”
이정기의 말에 따라 유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활시위를 놓았다.
파아아앙!
전과 같이 날아가는 화살.
하지만 이정기가 손을 내뻗고 호흡을 내뱉자.
콰콰쾅!
처음으로 유시아의 화살이 타이탄을 꿰뚫었다.
“마력장.”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코팅이라는 기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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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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