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권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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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대장장이.’
대장장이라면 당연히 피가 끓어오를 수밖에 없는 그 이름에 역시나 마동철은 달뜬 표정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장인들은 다 똑같나 보군.”
헤르메스의 목소리.
“녀석도 새로운 기술이라던지, 새로운 장인이라던지에 환장하곤 했지. 그게 적이든 아군이든 관계없이 말이야.”
헤르메스는 과거를 추억하듯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천히 지팡이를 들고 앞으로 걸어 나가는 헤르메스.
“그래도 녀석만 찾게 되면….”
타앗.
지팡이를 땅에 찍자 퍼져나가는 파문.
그것이 마력과 넥타와 결합하며 헤르메스에게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편한 옷차림의 헤르메스의 몸에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마치 이정기가 사자갑주를 입을 때처럼.
화악!
헤르메스는 그렇게 넥타와 마력으로 둘러싸인 새로운 형태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뭐, 손상되긴 했지만 이것이 진정한 신들의 무구입니다.”
손상되었다?
‘저게 손상되었다고?’
새롭게 모습을 변화한 헤르메스, 그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맹한 것이었다.
마치 새처럼 어디로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유로운 느낌.
그것이 헤르메스가 가진 진정한 힘이자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헤르메스가 고개를 돌린 채 지팡이를 내뻗고,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녀석만 찾게 된다면 왕께서도 새로운 갑주를 입으실 수 있을 겁니다.”
헤르메스의 변화라면.
“기대되는군요.”
그것이 자신에게도 이어진다면 그것은 꽤나 기대되는 일이었다.
이미 누군가는 충분히 강한 주제에 무엇을 더 바라냐 손가락질할 수도 있지만.
‘목표가 워낙 높아야지.’
이정기가 바라는 것은 겨우 이 정도가 아니었다.
‘나를 보고 괴물이라고?’
괴물의 뜻이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강한 사람을 뜻하는 것이라면.
‘나는 괴물이 아니다.’
진짜 괴물.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따라잡는 것이 자신의 목표,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얼마나 강해져야 할지 모른다.
“할아버지는 얼마나 강해졌나요?”
이정기의 말에 웃고 있던 헤르메스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고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상상하시는 것 그 이상일 겁니다.”
지금 할아버지는 어디 있는 걸까.
“티탄의 왕 중 하나가 깨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
헤르메스의 입에서 나온 처음 듣는 이야기에 이정기가 눈을 치켜떴다.
“그분께선 지금 왕을 상대하러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벌써 거기에 가 있단 말인가?
이정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꿀렁.
헤르메스의 지팡이가 가르키는 방향이 꿀렁이기 시작했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이진석이 마련해준 비밀 아지트, 하지만 뭐 특별한 것 없는 남루한 주택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
세계가 주목, 아니 경악할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번 일에는 헤르메스가 꼭 필요합니다.’
아폴론이 헤르메스를 불렀던 이유.
그건 새로운 가디언을 찾으러 가야 하는 곳이 특별관리 던전이거나 지구의 어딘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가야 할 곳.’
꿀렁.
그리고 그 문을 열 수 있는 자.
‘헤르메스.’
이정기와 그들의 앞으로 문이 열렸다.
쿵! 쿵! 쿵!
뛰기 시작하는 이정기의 심장.
다시 이것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맙소사.”
마동철 또한 이정기와 마찬가지인 심정인 듯했다.
그 또한 어찌 보면 이곳과 깊은 인연이 있다 할 수 있을 테니까.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진 검은 문.
하지만 그 문이 뿜어내는 기운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특정 지을 수 있었다.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아니 세계의 멸망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것.
“올림포스.”
올림포스로 향하는 문이었다.
* * *
휘이잉.
바람이 불어온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느낄 수 있는 바람이 아니었다.
차가우면서도 뜨겁고, 산들바람인 것 같으면서도 돌풍인 것과 같은 형언할 수 없는 바람.
“여기가….”
마동철은 복잡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올림포스….”
그에게 올림포스는 특별한 곳이었다.
한국의 시엘, 이건과 함께 한국의 올림포스 원정팀이 꾸려졌을 때.
‘왜!’
마동철 또한 팀에 소속되고 싶었다.
시간을 기약할 수 없던 원정인 만큼 무구를 수리하고 보급해야 할 대장장이 헌터는 필수적으로 필요했고 마동철은 그것이 자신이라고 생각했었다.
‘네 손을 봐라.’
하지만 블랙 메두사에게 당해 손이 돌처럼 변했었던 마동철.
‘그거라면 골렘을 이용해서라도 하면 됩니다!’
마동철은 스스로의 손재주가 아니더라도 모든 것이 가능하다 설득했지만 이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개소리하지마. 그러다 뒈지면 누구 탓을 하려고?’
‘내가 형님 탓할 거라는 소리요!’
‘그런 게 아니다. 나도 장담할 수 없는 곳, 싸움이야.’
이건의 그런 모습은 마동철도 처음 보았던 것.
‘지켜줄 수 없다. 그리고 이미 지켜야 할 게 많아.’
그렇기에 마동철은 눈물을 지으면서도 올림포스에 갈 수 없었다.
홀로 도망자가 된 것 같았다.
‘겁쟁이가 된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결코 밟아보지 못한 곳이 이곳 올림포스였다.
“후욱! 후욱!”
그러니 이 개 같은 기후나 환경 따윈 마동철에게 자신이 겪었어야 할 일들을 이제야 겪는 것에 불과할 뿐이었다.
“……언니.”
유시아 또한 마찬가지.
달 사냥꾼이었기에 참여조차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원정.
그러나 그 대신 언니인 유영아가 이곳에 갔다.
얼마나 원망했던가.
한마디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라고 얼마나 원망했던가.
그리고.
“이런 곳에서 그 시간들을 버텼던 거구나. 이런 곳에서 너를 낳은 거야.”
유영아는 이곳에서 수년을 쉬지 않고 싸우고 이정기를 낳다 죽었다.
자신이 지켜줄 수 없고, 지켜볼 수도 없는 이곳에서.
아무리 유영아를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지만 그녀가 겪었던 고통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유시아는 어두운 얼굴을 풀 수 없었다.
또 한 명.
“어떻게 된 겁니까?”
이정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헤르메스가 있어야만 갈 수 있는 특별한 곳이라고 하더니, 그곳이 올림포스일 줄은 몰랐다.
특별관리 던전에서 나타나는 던전 게이트를 통해서 올림포스의 조각은 가보았지만.
“여긴… 진짜 올림포스잖습니까?”
이곳은 그런 것들과 다른 진짜였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
오히려 지구보다 익숙하고, 지구보다 편안한 곳.
“녀석 때문입니다.”
“녀석?”
우리가 찾아야 할 신들의 대장장이.
“녀석은 가디언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아폴론이 그렇게 찾으려 하는 이유가 있는 거죠.”
헤르메스가 말했다.
“왕은 아니지만 왕에 필적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가디언. 녀석은….”
헤르메스가 다시금 추억에 잠긴 듯 쓰게 웃었다.
“올림포스의 탄생 그 자체에 관여했습니다.”
“올림포스의 탄생에 관여했다고요?”
“예. 올림포스를 건설하고 이 땅을 만든 것이 녀석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전쟁의 패배로 무너져버린 올림포스지만, 그 깊은 곳에 녀석이 만들어둔 장소만큼은 살아있을 수 있는 거죠.”
올림포스의 건설자.
“또한, 녀석은 티탄들의 감옥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들은 적 있다.
인간들의 침입으로 인해 깨어났고, 이건과 원정대로 인해 부서져 버린 티탄들의 감옥.
“타르타로스.”
“예. 맞습니다.”
헤르메스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타르타로스를 건설한 것도 녀석….”
이어진 것은.
“헤파이스토스.”
찾아야 할 가디언의 이름.
“명심하십시오. 여긴 올림포스이자 타르타로스입니다.”
그리고 경고였다.
“어떤 것이 존재할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저 무척이나 위험하기에 저희가 함께 왔어야 한다는 것 정도.”
이정기가 무거운 눈으로 앞을 바라봤다.
확실히 자신이 나고 자란 올림포스와는 무언가 조금 다른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올림포스입니다.”
이정기가 나아가며 말했다.
올림포스, 누군가에겐 슬픔과 공포, 절망과 경악으로 점칠되어진 공간이라 하지만 이정기에겐 달랐다.
‘고향 땅.’
오히려 지구보다 편한 자신의 놀이터였다.
* * *
‘지하.’
올림포스 심처에 만들어진 특별한 장소라는 이야기처럼, 이정기는 이곳이 올림포스의 지하라는 것을 알았다.
‘쥬피터 할아버지.’
거대한 절벽 사이로 떨어져 쥬피터를 만났던 것처럼, 절벽 사이에 떨어져 새로운 세상이 있던 것처럼 여기도 그런 곳이었다.
그 대신 환경은 극악에 가까운 난이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
뜨거운 열기에 한 숨을 들이킬 때마다 폐가 타는 것 같은 통증이 일고 있었다.
푸웅.
용암이 솟구치고.
쩌저적!
쉴 새 없이 지반이 갈라지는 곳.
“미쳤어. 여긴!”
마동철의 말마따나 미쳤다는 말이 쉽사리 나오는 곳이지만 이정기는 달랐다.
“마력장을 몸에 가볍게 두르세요.”
“뭐?”
“마력장이 열기를 몰아내고, 공기를 정화시켜 줄 겁니다.”
이정기의 말에 어안이 벙벙한 마동철.
스윽.
이정기는 직접 손을 뻗어 마동철의 몸에 얇은 마력장을 형성해주었다.
“미친!”
또 한 번 마동철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이게 가능해?”
말이야 쉽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마력장을 다루는 것은 마동철의 특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헌터들이 사용하는 특별한 무구, 아이템을 제작하는 대장장이 그때의 핵심 기술이 바로 마력장이었으니까.
강철에 마력장을 덧씌우고 내려쳐 강철에 마력을 입히거나, 마력장을 겹겹이 쌓거나 특수 광물을 마력장을 통해 제련하는 것.
그렇기에 마력장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마동철이었지만.
“이 정도로 세밀한 조절이 가능하다고?”
이정기의 실력은 논외였다.
“괜찮으실 때 직접 해보세요. 이런 환경 속에서 제대로 숨 쉬고자 마력장을 다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환경이 괴물을 만들어낸 거였어.”
그래도 유시아는 넥타에 익숙해진 모양인지 곧잘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휘익.
“바람이 이곳이라는군요.”
헤르메스의 안내에 따라 나아가던 그들.
툭.
그러던 헤르메스가 멈춰서 눈을 사납게 떴다.
“…….”
유시아도.
“앞쪽에….”
이정기도 멈춰 섰다.
“적입니다.”
선명하게 느껴지는 분노와 살의.
다행이라면 이런 것을 내뿜는 것은 몬스터뿐이라는 것이었다.
“응? 적이라고?”
의아해하는 마동철.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아무런 적의도, 살의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를 향해 헤르메스가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쿠웅!
그때 뒤흔들리는 땅.
“살의도 적의도, 이미 공기처럼 넓게 퍼져 눈치채기 힘들 테니까.”
“마, 맙소사.”
어두웠던 세상 속에 보이는 붉은 점.
이정기가 그것을 보며 입을 열었다.
“타이탄.”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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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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