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183화 (183/284)
  • 제8권 8화

    183

    헤르메스.

    정말이지 오랜만에 보는 자였다.

    프랑스에서 생츄어리와 다투었을 때, 할아버지와 함께 나타났던 자.

    ‘지구에 있던 누군가의 몸에 들어간 거니 일부러 그런 건가?’

    일부러 아름다움의 기준을 좇아 몸을 차지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잘생긴 미남자.

    그렇다고 조각같은 아폴론과 비슷하게 생겼다기보다는 악동 같이 생겼다는 말이 어울리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런 헤르메스는.

    “많이 달라졌군요.”

    정말 많은 것이 바뀌어있었다.

    얼굴이나 행색,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꿈틀.

    그의 내면에서 잠자는 힘.

    과거 그를 처음 보았을 때는 주먹만 했던 기운이 지금은 머리통만 해져 있었다.

    “워낙 대단하신 분과 함께 다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제는 완연한 공대를 하며 가디언의 왕으로서 대하는 헤르메스.

    “매일같이 죽음 속을 헤집고 다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강해진 그가 고개를 숙이며 손을 내뻗었다.

    휘익.

    보이지 않던 지팡이가 나타나는 순간.

    턱.

    그가 한쪽 무릎을 아폴론만큼이나 우아하게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다시금 가디언의 왕께 인사드립니다.”

    그의 안에서 커진 기운이 꿈틀이며 이정기의 눈에 형상화한다.

    그리고 그렇게 커져 흘러나온 기운은.

    “또한, 이 헤르메스, 왕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화아아악!

    그대로 이정기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쿵!

    심장의 고동 소리가 크게 한 번 울렸다.

    동공이 확장되고, 억눌러두었던 감각이 다시금 고개를 든다.

    헤르메스의 충성 맹세로 넥타가 크게 반응하는 것이었다.

    “후우.”

    작게 숨을 내쉬며 호흡을 정리한 이정기.

    헤르메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작게 웃으며 고개를 돌려 유시아를 보았다.

    “이거 진짜…, 적응 안 되네.”

    그곳엔 붉어진 얼굴의 유시아가 서 있었다.

    무언가 분노한 것처럼 시뻘게진 얼굴.

    결국.

    휘익!

    유시아가 그대로 주먹을 내뻗어 헤르메스의 면상을 노렸다.

    타앗!

    손에 잡힌 유시아의 주먹.

    “대체 이 감정은 뭐야?”

    헤르메스에 대한 이야기는 미리 들었지만, 유시아는 헤르메스를 보자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리우면서도 차오르는 분노.

    “아르테미스. 육체의 주인이 당황스러워하니까. 그만둬.”

    헤르메스의 목소리에 잡힌 유시아의 주먹이 부들거렸다.

    “너무 당황하지 마. 네 안에 잠들어 있는 아르테미스가 그저 반응하는 것뿐이니까.”

    가디언들은 완벽하게 몸을 빼앗기기도, 아니면 서로가 공존하기도, 또 인간의 영혼이 완전히 장악하기도 한다 했다.

    유시아는 세 번째 경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헤르메스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숨 막히는 침묵.

    “…….”

    이정기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 세 번째 손님이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에는….’

    아폴론이 예언을 통해 부탁한 이 일.

    이 일을 위해 아르테미스와 헤르메스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마지막 또 한 명.

    “대체 이게 뭔….”

    당황해 눈을 굴리는 남자.

    작은 키는 드워프를 연상시키고 있지만, 얼굴이 못생겼다고 생각되는 드워프들과 달리 그래도 꽤나 미남상이었다.

    ‘마동철을 데려가십시오.’

    마동철.

    “오랜만입니다.”

    그가 도착했다.

    * * *

    ‘새로운 가디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디언은 헤카테만큼이나 중요한 존재입니다.’

    아폴론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마침내 찾아내었다고 한 존재였다.

    어쩌면 헤카테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존재.

    ‘그리고 그에겐 육체가 필요합니다.’

    넥타의 형태로 부서져 버려 아무런 가치가 없는 지금, 가디언에게 육체가 필요하다.

    가디언이고, 티탄이고 아무의 육체에나 들어간 줄 알았지만.

    ‘적합도가 필요합니다.’

    힘에는 그에 걸맞은 육체와 정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적합도.

    헤르메스나 아폴론이 미남형의 인간을 찾아 빼앗은 것이 아니라 적합한 육체이기에 가질 수 있었다는 것.

    유시아 또한 아폴론이 예언을 통해 그녀를 살리기 위해 아르테미스의 넥타를 주었다고 하나, 그 또한 적합한 육체이기에 가능했다는 것이었다.

    차이는 또 있었다.

    ‘빼앗고 싶으면 빼앗는다.’

    그것이 티탄의 방식.

    적합도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육체를 빼앗아 장악하고 그 힘을 일깨운다.

    하지만 가디언은 달랐다.

    ‘육체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상호 간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것.

    만일 허락 없이 들어선다면.

    ‘넥타는 힘만을 빼앗기고 영혼을 깨우지 못할 겁니다.’

    그런 자가 있었다.

    ‘유시아.’

    아폴론에 의해 억지로 넥타를 받아낸 그녀, 그렇기에 아르테미스의 영혼은 잠자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깨어난 상태이지만 굳이 외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도.

    유시아의 허락이 떨어져야만 가능한 일.

    ‘헤르메스도, 아폴론도.’

    결국, 그 육체의 허락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같다.

    잠자는 넥타에게 새로운 육체가 필요하다.

    아주 특별한 넥타이기에 적합한 육체가 흔치 않은데 다행히 아폴론의 능력으로 찾아낸 것은.

    “그니까….”

    마동철이었다.

    “내 육체가…, 필요하다…, 이 말이냐?”

    물론 강제는 아니었다.

    “허어. 이 늙은 몸뚱이가 필요하다고?”

    “예. 그리고 황금 산양의 젖 때문에 정정하시잖아요.”

    “그 소리가 아니야!”

    소리치는 마동철.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는데?”

    “원하신다면 힘만을 취할 수 있어요. 물론 그쪽에서도 허락해야겠지만.”

    방법은 있다.

    육체를 가지는 것은 허락이 필요한 일이지만.

    ‘힘을 취하는 것만도 가능합니다.’

    힘만을 취하는 것은 허락이 필요없는 일이었다.

    불가능이지만.

    ‘왕.’

    왕이기에 가능한 일.

    그러나 그 방법은 온전히 모든 힘을 사용할 수 없기에 추천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공존할 수 있는 방법도 있고요.”

    “뭐…? 몸을 수시로 바꾼다거나 하는 거냐?”

    “수시로까진 아니고, 장인님의 허락이 필요하겠죠.”

    나쁘지 않은 제안인 것 같지만.

    “하.”

    나쁠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멀쩡히 잘 살아가던, 그리고 손이 고쳐져 이제야 제대로 생활할 수 있게 된 대장장이.

    그런 자의 몸에 또 다른 존재가 들어와 몸을 공유해야 한다니, 그 누가 허락할까.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이정기 또한 두말할 것 없이 거절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마동철이다.

    자신과의 인연보다 할아버지의 인연으로 그에게 섣불리 제안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받아들일 겁니다.’

    아폴론은 자신하듯 이야기했다.

    예언자의 말.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지.’

    헤르메스가 이곳에 나타난 것으로 떨어진 할아버지의 허락까지.

    “아무리 그래도….”

    “대장장이랍니다.”

    “뭐?”

    “공유하게 될 정신의 주인이 대장장이랍니다.”

    “대장장이?”

    호기심을 갖는 듯하다가.

    “그렇다면 싫다!”

    마동철이 크게 호통을 쳤다.

    “내 기술을 다른 대장장이 놈에게 공유해주어야 한다는 거 아니냐?”

    대장장이의 자부심.

    마동철 그 자체가 되어버린 본질.

    씨익.

    아폴론이 왜 무조건 가능할 것이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저 눈이라면, 저 가슴의 울림이라면.

    “신들의 대장장이랍니다.”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니까.

    “수천, 수만 년. 세월을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 끝없는 전쟁통에 무구를 만들어낸 자라고 합니다.”

    “수, 수천, 수만…? 끝없는 전쟁…?”

    긴 세월 이어져 오는 대장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용성.’

    그것이 그저 꾸미기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냐, 아니면 실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인류의 역사 속 많은 기술들이 전해져 내려왔지만, 그 긴 시간 전쟁만을 위해 무구를 만들어낸 자는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들의 대장장이라면…?”

    이 부분.

    이정기가 헤르메스와 유시아를 향해 눈짓했다.

    그러자 천천히 다가온 헤르메스가 꺼내든 지팡이.

    휘익!

    거기서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

    산들바람과도 같은 얕은 바람.

    저런 것을 만들어내는 무구는 작금의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그 무엇도.

    휘이이이잉!

    저런 것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포, 포탈…?”

    “인간들은 그렇게 부르더군. 편할대로 불러도 좋다.”

    레전드 등급의 무구로도 불가능한 일.

    뒤이어 유시아가 활을 꺼내 들었다.

    우우우웅!

    몰려들기 시작한 마력, 뒤이어 마력을 감싸 안는 넥타.

    그리고.

    위잉.

    만월이 나타났다.

    그저 착시가 아니다, 정말로 달의 기운을 담고 있는 진짜 달이라 부를 수 있는 것.

    “…….”

    가디언의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타고난 대장장이인 마동철이 저들이 사용한 무구와 힘의 가치를 모를 리 없었다.

    오랜 세월 쌓아온 대장술의 지식.

    그 지식과 기술은 헌터의 시대를 맞아 한 번 변모했다.

    지금껏 내려오던 것들의 대부분은 효용 가치를 잃었고, 다시금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야 했다.

    그 선봉장에서 가장 크고 기다란 획을 그은 것이 마동철.

    그러나 지금.

    “마, 맙소사….”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눈에 본 것이었다.

    “이 힘들을 다루는 무구와 증폭시키는 무구들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타앗.

    일어선 이정기.

    까그그극.

    그의 넥타와 공명해 사자갑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동철이 개조했던 무구들이지만 이렇게 완벽해진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인 마동철.

    “아쉬운 말이지만 이 무구들도 제 힘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이었다.

    아폴론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몸을 감싸는 사자갑주는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증명으로.

    파파팟!

    튀어오르는 전류.

    벼락의 힘이.

    파파팟!

    사자갑주를 태워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지금껏 제대로 벼락을 사용할 수 없었던 이유.

    ‘벼락의 힘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어.’

    강해진 자신의 벼락을 더 이상 사자갑주가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신들의 대장장이란 자의 능력이라면 새로이 벼락을 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신들의 대장장이라고….”

    과연 마동철의 얼굴이 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꺾이지 않은 한 줌의 고집.

    “직접 만나보고 결정해도 되겠나…?”

    그의 진심이 느껴지는 말에.

    “물론입니다.”

    이정기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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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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