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177화 (177/284)

제8권 2화

177

“조심해, 네 싸움은 이제부터니까.”

자신의 싸움이 이제부터라는 경고.

“방심하지마.”

그러니 절대 방심하지 말라는 경고.

피식.

그것이 뜻하는 바는 역시 하나였다.

“내가 밑으로 들어가는데 질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게 좋아.”

참 재밌는 여자 아니,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할머니의 이성 저택에서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자신에게 무척이나 적대적이었다.

할머니가 말한 이건의 손자라는 사실조차 믿지 않을 정도로 의심과 분노에 찌들어 있는 것이 그녀였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이성이 무언가 잘못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던 이정기.

“무, 무슨 표정이야?”

하지만 이것이 그녀의 본 모습이었다.

이성이란 독에 중독되어 잃어버렸던 본모습.

조금은 유치하지만, 솔직한 그런 모습.

이것이.

‘내가 되돌리고 싶은 이성.’

내가 속하고 싶은 둥지였다.

김윤태, 그리고 주안나.

둘은 자신이 원하는 둥지에 들어왔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나.

‘주형태, 주인배, 주병훈.’

남은 이들.

그들이 과연 자신이 원하는 둥지의 모습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게 그런 인내심이 남아있을까?’

김윤태, 주안나에게 기회를 준 것은 그들이 선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선에 걸쳐 있었기에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남은 셋이 선을 넘는다면.

‘나는 그때도 할머니를 위해 그들을 품을 수 있을까?’

솔직히.

‘힘들지도.’

꾹꾹 참아왔던 것이 안에 그대로 남아있는 지금, 여기까지가 최선일 수도 있었다.

복잡한 고민은 접어둔다.

이미 산재한 문제들.

‘티탄, 가디언, 올림포스, 이성….’

지금 할아버지는 이 순간에도 홀로 많은 것을 짊어지느라 함께 있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기야.’

어머니가 해주었던 말.

‘하데스를 찾거라, 그가 네 아버지의 영혼을 가지고 있어.’

정령으로서 올림포스에서 살아가던 어머니인 만큼 알고 계신 것이 많은 듯했다.

그 이야기를 전부 하고 싶다지만 지금 당장은 윤하민의 안에 잠들어 힘을 회복하고 있으셨다.

“윤하민을 잘 부탁한다.”

윤하민이 아마조네에서 정령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만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

“벌써부터 챙기긴.”

“……?”

“걱정 마. 잡아먹으래도 안 그럴 거니까.”

“뭔가 오해가….”

이정기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 주안나의 표정이 변했다.

조금은 진지하고, 까탈스러운 원래의 얼굴.

“윤하민에게 깃든 건 나한테도 소중한 것이니까.”

어머니, 유영아를 말하는 것.

이정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을 내뻗었다.

잠시 뒤.

꽈악.

맞잡은 두 손.

“내가 뭘 먼저 해야 할 지는 하나 확실해졌어.”

이정기의 말에 주안나가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했다.

“여기 남아있겠다며?”

그렇다면 최대한 그녀가 안전하게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또.

‘반응을 좀 보자.’

몇 가지 반응을 볼 수 있도록 조치할 생각이었다.

정확히는.

‘주형태.’

그가 편히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 * *

던전 밖.

웅성웅성.

수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절대 크지 않아 귀찮은 파리 떼가 웅웅거리는 소리처럼 작게 들려올 뿐이었다.

가지각색의 사람들.

하지만 그들의 얼굴과 행색으로 그들이 각기 다른 소속의 사람들임을 알 수 있었다.

손에 한가득 카메라와 노트북, 메모지와 같은 것들을 들고 있는 자들은 기자들이었으며 그들을 관리하듯 서 함부로 앞에 나서지 못하게 하는 이들은 협회의 헌터들이었다.

“…….”

또한, 그들을 노려보며 당장이라도 무슨 일을 벌어질 듯 사나운 기세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가슴에 별을 단 채 있었다.

두 개의 별.

‘이성.’

그들은 당장이라도 전쟁을 치를 듯 사나운 눈매로 어딘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두 군데, 하나는 일렁이는 던전의 입구.

그리고 또 다른 한 무리의 헌터들이었다.

가슴팍에 그려져 있는 우뚝 솟은 산.

형제 길드라고도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이성의 산하 길드나 다를 바 없어진 백두가 바로 그것이었다.

백두와 이성, 기자와 협회.

이들이 모두 모인 이유야 간단했다.

‘길드전.’

이곳에서 벌어졌다는 길드전에 대한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달려온 것.

이성은 네 개의 공격대를.

백두는.

“눈빛에서조차 물러서지 마라.”

일본에서 급히 건너온 김윤태가 다이오 길드의 헌터들을 이끌고 서 있었다.

“저게 그 망나니 김윤태라고?”

“못 들었어? 지금 일본에서 난리잖아.”

“그래?”

“일본에서 공략한 던전만 삼십 개라던데, 그것도 최소 인원만 데리고.”

“뭐?”

망나니 김윤태의 변신.

“자네 기자는 그만두는 게 좋겠어. 이렇게 소식이 어두워서야.”

“그게 내 문젠가? 일본 소식이야 워낙 폐쇄적이라 제대로 믿을 수 있는 정보가 있어야지. 그게 사실이라면 자존심 강한 자들이 꽤나 골머리 썩겠는걸.”

“뭐, 하여튼….”

기자들의 눈이 김윤태에게로 향했다.

헌터인 기자도, 헌터가 아닌 기자도 누구나 알 수 있는 확연한 변화.

그 눈빛과 분위기 자체가 달라진 김윤태는.

“이거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모두에게 새로운 충격이었다.

스윽.

김윤태의 눈이 백두를 훑었다.

‘쯧.’

한심한 녀석들.

정보 통제를 통해 내부 사정이 알려지지 않도록 애를 썼지만, 김윤태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이 중 자신이 급히 데려온 다이오 길드의 헌터들을 제외하고 함께 서 있는 백두는.

‘패잔병.’

그것도 싸움조차 시작하기 전에 꼬랑지를 내밀고 도망친 패잔병들이었다.

이정기가 앞장섰지만 던전에 들어가지 않은 이들.

그리고.

‘내 책임이다.’

김윤태는 그들을 보며 욕할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감히 자신이 그들을 향해 뭐라 할 수 있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저들 중 하나였다.

아니 저들에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구제 불능의 망나니가 자신이었다.

그러니 어찌하랴.

‘이들의 처우는 이정기, 네가 돌아오고 맡기겠다.’

주안나와의 충돌로 시작되었다는 길드전.

그것도 총력전이라고 했다.

꿀꺽.

이성과 백두.

그 힘 차이는 지금 자신의 곁에 서 있는 백두의 길드원들만 보아도 안다.

이미 패배를 직감하고 상이라도 치를 것만 같은 표정.

그들에게 이정기가 멀쩡히 돌아오리란 믿음 따윈 없었다.

이정기의 힘을 보았다던데, 그러고도 저렇다는 건가?

‘아니.’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성이란 두 글자의 이름이 가지는 힘은 이 정도였으니까.

저들과 지금의 자신은 다르다.

저들이 없는 믿음이 자신에겐 있다.

‘이정기.’

녀석은 분명히 돌아온다.

그것도 승리를 품에 안은 채로, 다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그 순간을 대비해.

스윽.

이어질 이성과의 충돌이었다.

예전이라면 자신 또한 감히 이성을 상대할 생각 따윈 못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녀석만 있다면.’

아니, 녀석이 없어도.

쿠웅!

지금은 자신의 힘을 믿고 끝까지 싸울 것이다.

패배? 그런 것은 생각지 않는다.

승리, 그것은 무조건 우리들의 것이다.

이성의 추가된 네 개 공격대.

그리고 비밀리에 전달된 정보를 들으니.

‘현성호가 이정기에게 붙었다.’

거기다 철벽까지 무너트렸다지.

가진바 힘이야 쉽게 수긍이 가면서도 어떻게 사람의 마음까지 빼앗는 것인지.

자신도.

-언제든 신호를 주게.

여러 가지 민감한 사안을 피하고자 모습을 감추고 있는 다이오 길드장 사츠키도.

-준비됐어.

과거 공포와도 같았던 달 사냥꾼의 사슴도.

-포탈 준비 완료.

이정기가 위험할 것이라면 언제든 포탈을 통해 이곳에서 이성을 쓸어버릴 이탈리아의 헌터들까지도 함께였다.

씨익.

자 돌아와라.

그리고 보여줘라.

‘네가….’

최강의 이름을 잇는 자라는 것을.

그리고.

일렁.

던전의 입구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통제받던 상황에 벌어진 일이니 답은 간단했다.

스윽.

역시나 먼저 움직이는 것은 이성.

잘 훈련되고 경험 많은 그들은 지금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안다는 듯 던전의 입구를 틀어막고 진을 치려는 듯 보였다.

“움직인다.”

그리고 뒤늦게 김윤태의 명령이 떨어졌다.

터벅.

나아가는 김윤태.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다이오의 헌터들.

“…….”

아직도 백두는 갈팡질팡하고 있을 뿐이었다.

던전 속으로 따라 들어가지 않은 그들이 이성이 승리했을 때 지금 이곳에서 벌어질 결과가 어떤 것인지 모를 리 없다.

던전에 따라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

퍼억!

그때 둔탁한 타격음이 들려왔다.

“커억! 컥!”

신음을 흘리며 배를 부여잡는 남자.

공대장급은 아니어도 백두에서 간부급에 위치한 헌터였다.

그의 앞에 서서 그를 노려보고 있는 것은 김윤태.

“개 같은 자식들아.”

김윤태는 예전과 같이 길드원들을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 뜻과 분위기는 전과 달랐다.

“나 같은 새끼 따른다고 니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는데….”

부릅뜬 눈.

“지금 니네 길드장이 된 녀석은 다르다.”

김윤태는 씹어뱉듯 말했다.

“믿어라. 그게 내가 너희한테 지은 죗값으로 치르는 충고다. 나를, 백두를 믿지 마라.”

쿵!

바닥에 내리꽂은 도끼.

쿠우우웅!

김윤태의 마력과 공명하듯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정기를 믿어라. 그리고 거기에 모든 걸 걸어라.”

그 결과가 보이지 않느냐.

쿵!

바로 자신.

이성이 움직여 진을 치려던 경로에 돌산이 솟구쳐 그들을 틀어막았다.

쿵!

또 한 번 솟구친 돌산은 이번엔 하나가 아니었다.

쿠쿠쿠쿠쿵!

계속해서 솟구치는 돌산.

그것들은 마치 성벽을 쌓듯, 기자와 협회를 갈라놓았고 이성과 백두를 한데 놓았다.

쿵!

또 한 번, 솟구친 돌산이 이성의 앞과 백두를 가로막았다.

“날 봐라. 제대로 된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었는지. 나에 대해선 니들이 제일 잘 알잖냐.”

망나니.

개자식.

그래 그게 자신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어엿한 헌터가 되고 싶다면.”

스윽.

등을 돌린 김윤태.

그가 다시금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믿어봐라.”

내가 망친 니네들의 인생이 다시 꽃필 수 있을 테니까.

일렁.

던전의 입구가 다시 한 번 일렁이고 있었다.

“김윤태.”

세워진 방벽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

이성의 공대장 중 하나의 목소리였다.

“정신 차리고 일본에서 제법 활약한다는 건 들었지만, 주제를 아는 게 좋을 거다. 지금은 네가 감히 나설 시간이 아니야.”

콰아앙!

그와 함께 김윤태가 세웠던 방벽에 폭발이 일었다.

폭발과 다르게 깔끔히 생겨난 구멍이 폭발을 만들어낸 자의 실력을 가늠케 했다.

김윤태와 이성의 공대장.

서로 마주 선 둘.

“그래도 눈빛은 나아졌군. 어떻게 길드장 대리께서 나오시기 전, 한 번 겨뤄볼 테냐?”

이성의 공대장이 먼저 검을 들며 말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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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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