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권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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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나가 아마조네의 여왕이 되고 며칠 후.
그동안 주안나는 아마조네를 통치하기 위한 것들을 배웠다.
왕위를 물려받는다는 것.
하지만 아마조네는 그렇게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또한, 이미 주안나는 통치에 적합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성의 후계자로서 키워졌기에, 제왕학에 대해 배운 주안나.
지금까지는 그것을 그저 이론처럼 받아들였을 뿐이지만, 실제로 배움을 활용할 수 있는 장소가 생기자 주안나는 온전히 자기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주안나의 중대 발표가 이어졌다.
“최고 전사들의 배신에 대한 처우다.”
라예르와 함께 역모를 꾸몄던 이들.
“최고 전사와 선조의 힘을 박탈하고….”
그들에 대한 처벌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정기만을 노린 것이 아닌 주안나조차 노렸던 그녀들에 대한 처벌은 힘의 박탈.
“앞으로 땅에 묻혀 흙이 될 때까지 아마조네스들과 외부인들의 대련 상대가 되어주어야 할 것이다.”
“……!”
주안나의 결정에 보르예는 물론이거니와 아마조네스들의 눈이 힘껏 커졌다.
역모라는 가장 큰 죄악을 저지른 최고 전사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처벌은.
“가, 감사….”
오히려 용서나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여왕 폐하.”
전사들로 태어난 그들, 그들의 죽음은 명예로운 것이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선조가 되어 영의 행복을 얻고, 후세에 기억될 수 있다.
만일 처형이라도 당했다간, 절대로 선조가 될 수 없기에 최고 전사들은 살아남았음에도 결코 편한 마음이 아니었건만.
“감사할 것 없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니까.”
“아닙니다. 저희에겐…, 최고의 처벌입니다.”
그녀들에게 선조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끄덕.
주안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보르예.
그녀가 먼저 찾아와 이야기해주었기에 주안나가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이다.
“큼.”
불편한 기색의 주안나.
“…….”
그런 주안나를 보며 눈을 치켜뜬 것은 아마조네스들만이 아니었다.
‘아가씨.’
안인회나 백두로 갈아탄 현성호, 안태민 등 주안나의 측근이었던 자들은 모두 뜨거운 무언가를 눈으로 내뱉고 있었다.
원래의 주안나라면 용서란 없었다.
어떠한 이해도 계산도 없이 주안나는 분노만을 표출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변하셨군.’
그런 주안나가 수하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실행한다.
과연 그녀가 왕위를 차지할 자격이 있는 것이었다.
주안나의 말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또한, 비어있는 최고 전사들의 자리를 차지할 시험이 치러질 것이다.”
주안나의 말에 눈을 빛내는 이들.
“한 명의 최고 전사는 이미 내정되어 있다.”
“……?”
후.
숨을 내뱉은 주안나가 얼굴을 펴며 말했다.
“윤하민, 그녀가 새로운 아마조네의 최고 전사이자, 제사장이다.”
* * *
윤하민이 아마조네의 최고 전사가 되었다.
아마조네에 있어 당대는 이례적이다 못해 격변의 시기였다.
여왕도, 최고 전사도 모두 외부인이다.
하지만 여왕이 절대 권력을 가졌다는 것이 허언이 아닌 것처럼, 아마조네스들은 주안나의 결정에 복종했다.
그리고 지금.
“이게 내 대답이야.”
주안나는 이정기를 마주 보며 입술을 짓씹고 있었다.
‘나는.’
주안나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러 갔던 이정기가 들었던 대답.
‘보여줄게. 이제는 그래야 하니까.’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할지, 어떻게 할지 보여준다 했다.
그리고 그녀는 약속을 지켰다.
윤하민을 아마조네의 최고 전사로 삼았다는 것, 어떻게 보면 머리를 써 이정기와 힘겨루기를 하려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이정기의 편에 서 있는 윤하민을 제 밑에 두어 이정기를 좌지우지하려 한다는 생각.
혹은 윤하민이 이 제안을 거절했을 때, 아마조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전쟁을 선포할 수도 있는 힘이 지금의 주안나에겐 있었다.
하지만.
“만족해?”
그런 뜻이 아님을 이정기는 알고 있었다.
‘주안나.’
사실상 그녀는 완전한 항복 선언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의 성격상, 제 사람이 아니라면 밑에 두지 않는 그녀가 윤하민을 곁에 두겠다는 것은 오히려 주안나를 감시하고 명령할 창구를 만들어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피식.
무엇보다 머리를 썼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때문이군.”
유영아의 정령을 가지고 있는 윤하민, 주안나는 그런 그녀를 곁에 두고 싶은 것이었다.
“부정하지 않을게.”
당당한 목소리의 주안나.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니야. 아마조네의 최고 전사이자 제사장, 여기서 제사장은 전대 여왕이 말하길 수천 년간 존재하지 않았던 직위야.”
“그 말은 수천 년 전에는 존재했다는 말이군.”
고개를 끄덕이는 주안나.
“사실상 아마조네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제사장이 존재할 때의 이야기지.”
제사장이라.
“선조는 정령과 비슷해. 그건 이미 느끼고 있겠지?”
물론이었다.
주안나가 윤하민의 몸에 유영아를 강림시켰던 것은 이정기도 생각지 못한 방법이었다.
“지금 정령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방법은 다름 아닌 아마조네에 있어. 지구에 있는 헌터들이 아는 정령술의 방법이야 그 한계가 있음을 너도 알잖아?”
“알고 있어.”
“그러니까.”
주안나가 말했다.
“숙모께서 제대로 활동할 수 있게, 윤하민을 키워볼게.”
여러 가지 노리는 것이 있다지만, 결국 자신과 한 편에 서겠다는 항복 선언.
“윤하민에게 물어보고 대답해주지. 그래도 윤하민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니까.”
“마음대로 해.”
이야기가 끝난 주안나의 분위기가 점차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약간의 패배감과 피로감에 절어 있던 모습이었다면, 지금 그녀가 내뿜는 것은.
우우웅.
살기에 가까운 투기였다.
“그것과 별개로 너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해야 할 게 있지.”
그녀는 분명 아마조네의 힘을 얻어 이정기의 실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에 겁을 먹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 투기를 내뿜는 것이었다.
아마조네의 여왕이 되었으면서도 고치지 못할 그녀의 성정.
“겪어봐야겠어.”
그녀의 목소리.
“네가 과연 이 모든 것을 이끌 자격이 되는지.”
왕좌를 얻은 그녀에게도 앞으로가 보이는 걸까.
아니면 이성이 그녀가 생각하는 전부일까.
그 무엇이든.
꽈악.
이정기는 주먹을 쥐어 그녀를 상대해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마조네에서 얻은 것이 있는 것은 주안나 뿐만이 아니었다.
자신 또한 마찬가지.
‘전사.’
자신이 무엇이며, 어찌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깨달았던 것.
“좋아. 그럼….”
당장이라도 시작할 듯 제 창을 꺼내든 주안나.
그 뒤로.
스윽.
인기척들이 느껴졌다.
안인회, 안태민, 현성호, 그리고.
“부탁합니다.”
보르예까지.
“저희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그들 또한 이정기와 겨루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이었다.
* * *
“하아…. 하아….”
거친 숨을 토해내며 대자로 드러누운 주안나는 아마조네의 여왕은 물론, 성혈로조차 보이지 않을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만큼은 잔뜩 후련함을 머금고 있었다.
“하!”
거친 숨을 다시 토해낸 주안나.
“진짜 괴물이구나.”
그녀의 얼굴 위로 이정기의 얼굴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정기와의 대련.
아마조네의 여왕이 되어 물려받은 힘을 처음으로 사용했다지만, 전과 완전히 달라진 주안나였다.
헌데.
‘젠장 할.’
이정기를 이길 수 없었다.
이긴다?
아니 제대로 된 상처 하나 낼 수 없었다.
과거 생츄어리와의 길드전에서 보았던 그때의 실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단단한 벽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
마치.
‘할머니.’
최명희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
아니,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먼 기억.
손에 꼽을 정도로 아주 먼 기억.
다섯 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보았던.
‘이건.’
진짜 괴물.
그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었다.
쾅!
또 한 번 폭음과 함께 나가떨어져 구르는 신음이 들려왔다.
“크윽!”
이정기는 자신을 상대하고도 남은 힘으로 다른 이들과 대련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완패다. 또 한 번 인정할 수밖에 없는 완패.
“끄응.”
주안나가 제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대련들이 끝났고, 눈치 있는 자들답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다시 남은 것은 주안나와 이정기 뿐.
“내가….”
주안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보다 한참은 누나야.”
“……?”
“반말이야 할 수 있다지만, 항상 잊지 마. 한두 살 차이가 나는 거 아니니까.”
“뭐….”
조금은 당황한 듯한 이정기의 반응에 주안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이정기에게 투기를 뿜어냈을 때처럼 한순간에 뒤바뀌어 있었다.
“이성을 차지할 생각이지?”
“그래야지.”
망설임 없는 대답.
픽.
주안나는 그럴 것 같았다는 듯 말했다.
“이성에는 관심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랬었지.”
이정기의 입이 열리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복잡한 집안 사정 때문에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겠던데.”
“그렇긴 하지.”
“할머님은 나서실 생각이 없는 듯하니, 내가 나서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이정기의 답이었다.
“내가 이성을 차지하면 집안은 제대로 돌아가겠지.”
압도적인 힘이 왕좌를 차지하고 있으면, 그 밑은 정리된다.
‘똑같아.’
이성이나 아마조네나 같다.
절대 권력, 그것을 차지하기까지의 과정이 힘겨울 뿐이지 차지하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다.
“인정할게. 너는 괴물이야.”
주안나의 목소리.
“하지만 내 아버지, 주형태 길드장도 괴물이지.”
세간에 알려진 주형태의 실력은 확실히 이성의 왕좌를 노리고 차지하기에 충분하다.
퍼스트 라인, 그것도 텐에 들어갈 실력.
하지만.
“주형태의 힘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다른 게 있어.”
“…….”
“혼돈의 힘을 얻었지만, 아버지 아니 주형태에게는 이길 생각이 안 들더군.”
주안나의 얼굴은 진심을 담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였어. 원래는 알려진 대로의 실력이었지만, 무언가 있어. 그리고….”
주안나의 얼굴에 지워졌던 분노가 새겨졌다.
“그게 내 생각에는 주형태가 숨겨둔 자식과 연관이 있는 거 같다.”
정말로 주안나는 경계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나는 당분간 이곳에 있을 생각이야. 1 공격대도, 나도. 이 힘을 제대로 사용하기 전까진 나가지 않을 생각이야.”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마도, 아니 확신해. 아버지는 내가 네 편에 붙었거나 네게 패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복잡한 얼굴.
“분명 날 죽이고 내 힘을 빼앗으려 할 테니까.”
“힘을 빼앗는다고?”
“잘은 몰라.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주안나가 말을 이었다.
“조심해. 네 싸움은 이제부터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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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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