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175화 (175/284)

제7권 25화

175

“차대 여왕은 주안나다.”

아마조네의 여왕 히폴리테의 선언이 끝이 났다.

와아아아아!

새로운 여왕이 결정되었다는 이야기에 환호하는 아마조네의 전사들.

그리고 그 옆에서 담담히 함께 박수를 치고 있는 윤하민까지.

그러나.

“…….”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주안나는 멍한 얼굴로 히폴리테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분명 자신은 원래 아마조네의 내정된 후계자였다.

자신이 이 자리에 서는 것은 타당하며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마지막 시험, 왕좌의 시험을 떠올려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었다.

‘나는….’

자신만만했던 자신의 힘.

그러나 그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왕좌의 시험에서 블랙 메두사 퀸을 사냥하는 것, 분명 활약한 것은 맞지만 그 결과가 마뜩잖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윤하민이 자신보다 뛰어났느냐??

그것도 아니다.

빠득.

그 뒤에 있는 이정기.

녀석이 문제였다.

‘완패.’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결과.

이정기는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왕좌에 어울리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왕좌의 시험을 치르는 당사자가 이정기가 아닌 윤하민이라고 하지만 윤하민은 이정기의 대전사다.

윤하민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옳다.

빠득.

그러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이래야 한다.

자신이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자리와 힘일지라도.

“저는 왕위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자격이 안 되었다면, 그 힘이 부족하다면 받아선 안 되는 것이 맞았다.

무엇보다.

‘나는 누군가를 이끌 수 없다.’

이번에 처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성의 2 공격대, 백호 현성호와 호걸들.

그들은 겨우 한 번 패했다는 이유로 이정기에게 붙어 자신을 배신했다.

물론 그들을 욕할 생각이 아니었다.

그저.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닌 것.’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또한, 메두사의 둥지에서 메두사를 사냥하며 치렀던 원정.

자신과 안인회 둘의 힘으로 메두사를 압살했고, 뛰어난 경험의 이성 공격대가 차분하게 메두사를 사냥했다.

결과적으로 큰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내 실력이 아니다.’

자신의 지휘가 대단해 얻어낸 결과가 아니다.

이미 완성되어 있다고 평가받는 이성의 공격대와 뛰어난 지휘관인 안인회의 실력 덕분이었다.

이대로 왕위를 받을 수는 없다.

“동정심 때문이라면….”

그저 자신이 불쌍하다고 주는 왕위라면 거절하는 것이 옳다.

욕심 때문에 왕위를 받는다면 그동안 자신이 역겨워하며 벗어나고자 하는 삶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동정심?”

히폴리테의 목소리, 주안나의 눈에 들어온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 있었다.

“내게 그런 것이 있더냐.”

“…….”

히폴리테의 후계자가 되어 겪었던 히폴리테.

과연 히폴리테의 말이 무엇인지 주안나는 알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아마조네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여왕, 그녀의 속은 이미 세월의 풍파 속에 흩어져 먼지가 되어 있었다.

그런 히폴리테가 동정심에 자신에게 아마조네를 맡긴다?

“너의 그런 면 때문이다.”

이어지는 히폴리테의 목소리.

“너는 이번 원정을 통해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았다.”

“……!”

“또한 스스로의 잘못과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히폴리테의 미소가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

“아마조네의 왕위는 단순히 강한 전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파앗!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대한 힘이 주안나를 스쳐 지나가 아마조네 전체에 퍼져나가는 듯 했다.

“아마조네를 이끄는 합당한 전사에게 주어지는 자리다.”

“……!”

“힘은.”

그리고 퍼져나갔던 힘이 다시금 한데 모여 히폴리테의 손에 고여 있었다.

그건 어찌 보면 왕관 같기도, 어찌 보면 가시로 엮인 관 같기도 한 모습이었다.

또한, 어찌 보면 가시로 엮인 허리띠 같기도 했다.

저것이다.

저것이 바로 아마조네의 왕좌를 상징하는 징표였다.

“여왕이 되면 자연스레 주어지는 것이다.”

히폴리테의 손에 일렁이는 징표를 보며 주안나는 순간 정신을 잃을 뻔했다.

느껴지는 순수한 힘이 지금껏 보았던 그 어ᄄᅠᆫ 것보다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대는 희생을 배웠으며, 의지의 굳건함을 배웠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았으며, 왕좌의 무게를 알았다.”

히폴리테의 손이 점점 더 주안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래도 왕위를 거절할 셈이냐?”

만일 거절한다면 정말로 주안나의 뜻을 따를 것만 같은 목소리.

꽈악.

주안나는 저도 모르게 손을 꽉 쥐었다.

주륵.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흘러나왔다.

울컥.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으려 주안나의 두 눈이 시뻘게졌다.

지금, 이 감정은 분함 따위가 아니었다.

‘인정.’

자신의 생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인정을 받은 듯한 느낌.

아니 처음이 아닌가.

‘넌 좋은 아이란다.’

두 번째로 받은 인정, 그에 벅차오르는 감정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어린아이의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왕위를….”

주안나가 무릎을 꿇고 히폴리테의 손의 위치와 머리의 위치를 맞추었다.

“받겠습니다.”

그리고 곧, 그녀의 머리 위에 아마조네의 왕좌가 씌워졌다.

와아아아아아아!

* * *

“축하드립니다.”

아마조네의 왕좌에 앉아 축하를 받는 주안나.

그래 봐야 아마조네의 전사들과 이성의 헌터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그토록 원하던 힘을 얻었으니 앞으로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백두로 이적한 현성호.

백두의 헌터들.

“축하해요.”

그리고 윤하민까지.

사실 주안나는 이 모든 것이 얼떨떨했다.

자신이 바라던 왕좌에 앉았다는 것도.

쿵! 쿵! 쿵!

매 순간 심장을 때리는 이 거대한 힘도.

자신을 축하해주는 사람들과 백두의 헌터들까지 자신을 축하하고 있다는 사실이.

“…….”

그저 얼떨떨했다.

하지만 곧 그녀의 머리는 차분해졌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백두의 헌터들의 축하.’

그것이 어떤 이유와 의미인지 알 것 같았으니까.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

아마조네에 있는 모든 전사와 헌터들이 자신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러 오지만 단 한 명 만큼은 아직 코빼기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으니까.

피식.

헛웃음을 내뱉는 주안나.

당연한 일이었다.

“왕은 인사를 받는 것이지 받으러 가는 것이 아니니까.”

스윽.

생각을 마친 주안나가 몸을 일으켰다.

원래라면 분노에 치가 떨리고 폭발하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몸과 마음이 가벼웠다.

“여왕님을 뵙습니다.”

대전을 나서자 자신을 향해 예를 갖추는 아마조네의 최고 전사.

이번 라예르의 역모 속에서 홀로 뜻을 함께하지 않았던 보르예였다.

나머지 최고 전사들은 역모의 죄를 물어 아마조네의 깊은 지하 감옥에 수감되었지만 보르예는 아니었다.

“마음에 없는 소리 하긴.”

주안나는 그런 보르예를 보며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를 진정한 여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아는데 그런 흰소리는 됐어.”

그녀는 역모에 가담하지 않았을지언정, 손잡은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가당치 않은 말씀이십니다.”

보르예의 목소리.

“히폴리테 전대 여왕님의 선택은 존중받아 마땅하며, 모든 전사들은 히폴리테 전대 여왕님의 뜻에 따를 것입니다.”

결국, 여왕이 선택했기 때문에 따른다는 것 아닌가.

“또한.”

하지만 고개를 들어 주안나의 눈을 마주친 보르예의 눈빛은 주안나의 생각과 조금 달랐다.

“전대 여왕님의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제가 여왕님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은 전대 여왕께서 말씀하셨던 부족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눈에 훤히 보이던 것이었나.

“하지만 이번 원정에서 여왕님은 전대 여왕님의 말마따나 부족함을 알았고, 또한 그 많은 부분을 이겨내셨습니다. 그렇기에.”

쿵.

다시금 고개를 숙이고 짚었던 무릎을 땅에 찧는다.

“여왕님을 모실 것입니다.”

또다.

또….

‘젠장 할.’

가슴에서 뭔가가 울컥 솟구친다.

이제껏 숨긴 것인지 알지 못했던 감정인지, 그것이 한 번 고개를 드니 계속해서 자신을 괴롭힌다.

추구하던 것을 버리고, 마음을 편히 먹으니 보이는 것들.

이성이란 이름, 성혈이란 이름에 먹혔던 감정을 되찾으니 보이는 것들이었다.

“고….”

무언가 말하려던 주안나가 입을 다물었다.

저벅, 저벅.

작게 울리는 발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마조네의 여왕의 자리에 앉아, 그 힘을 얻은 주안나에게는 전혀 다른 소리로 들렸다.

쿵! 쿵!

거인이 땅을 내 밟는 소리.

마력과 마력, 넥타와 넥타가 공명하며 내는 소음이었다.

전에는 그저 가늠밖에 되지 않았던 실체.

“자리를 비켜줘.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이정기가 가진 힘이 보이자 주안나는 또 감춰뒀던 감정을 깨달았다.

겁.

저건 괴물이었다.

* * *

“왕좌를 차지한 것을 축하한다.”

이정기의 목소리.

“…….”

주안나는 쉬이 입을 열지 않았다.

피식.

그러자 입가를 말아 올리는 이정기.

“비웃는 거야?”

그제야 주안나는 겁을 집어삼키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네가 거저 주는 자리 차지했으니, 네게 충성이라도 맹세할 것이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이것이었다.

히폴리테가 이정기를 인정하고 아마조네를 바치려 했던 것을 주안나는 알고 있었다.

헌데 왕위가 자신에게 왔다니.

‘알아서 밑으로 가라는 건가.’

왕좌를 차지했건만, 꼭대기가 아닌 그 밑의 층이었다.

이정기가 가진 힘의 실체를 느낄 수 있게 되었으니 히폴리테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겠지만.

‘젠장.’

그렇다고 왕좌를 차지하고 바로 다른 이에게 복속되라는 것은 너무한 처사 아닌가.

“충성 따위를 바랄 생각은 없어.”

“…….”

“그렇게 억지로 하는 충성은 충성이 아닌 것을 아니까.”

이정기의 말에 주안나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지금 들으니 저 간단한 말이.

‘왜 나는 여태껏 몰랐을까.’

지금껏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었다.

이성이라는 이름을 부정하고 싶었고, 성혈이란 이름이 싫었다.

하지만 자신은 어느새 그것들에 먹혀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부족함.’

그것을 깨달았다는 말이 새삼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히폴리테가 날 따로 찾아와 말했다.”

“……….”

“예정된 선택을 벗어나 미안하다고, 하지만 아마조네의 운명을 위해서는 이것이 최선인 것 같다고.”

여왕이…, 감정이 메말랐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말인가?

“이제 운명은 네 손에 달렸다더군.”

그제야 주안나의 세상이 달라졌다.

지금껏 얼떨떨하고 납득가지 않던 많은 것들이, 자신이 차지한 자리가 주는 무게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자신의 선택 하나에 많은 것이 오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에 수많은 목숨이,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자들의 목숨이 걸려있다는 것을.

“넌….”

주안나는 이정기에게 의중을 묻고 싶었다.

그러나 여왕된 자로서 그것이 얼마나 멍청하고 어리석은 일인지 깨달았다.

“나는….”

주안나가 입술을 짓씹으며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이것이 주안나가 여왕의 자리에 올라 처음으로 내리는 왕명이자, 아마조네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 될 것이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주 소 | 경기도 하남시 조정대로 35 하우스DL타워 F915-1(9층)

대표전화 | 070-8233-6450

팩 스 | 02-6442-7919

홈페이지 | www.osmedia.kr

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 위 책은 (주)타임비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이므로 발행자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로든 이 전자책과 내용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며 무단 복제/전제하거나 배포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최강의 손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