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권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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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나가 계승한 여왕의 힘.
그건 아마조네의 최고 전사들이 가지게 된 것과 비슷한 힘이었다.
어떤 특수한 힘과 공명하여 그 힘을 이끌어낸 힘.
바로.
‘선조.’
라예르가 죽음에 이르게 되었던 원인이 되었던 힘인 선조의 힘이었다.
하지만 주안나가 사용할 수 있는 선조의 힘은 특별하면서도 제한된 것이었다.
선조 중에서도 특별한 자.
‘여왕.’
여왕들의 힘을 끌어낼 수 있는 것.
그것은 이미 주안나가 폭주를 통해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능력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로 인해 주안나가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권능.
‘선조와의 공명.’
여왕이 말하길.
“선조 강림.”
선조를 강림시켜 그 힘의 일부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전체를 사용하는 것.
또한, 선조의 힘뿐만 아니라 선조의 정신과 영혼마저 불러내 그 경험과 전투 능력을 사용하는 권능이었다.
사용할 수 있었지만, 사용하지 않았던 힘.
주안나는 지금 선조 강림을 사용했다.
대신, 그 대상이 자신이 아닌.
“오랜만이야. 안나야.”
윤하민에게.
“숙모님.”
어떻게?
선조는 아마조네의 정신을 이어받은 존재만이 될 수 있는 영적인 것이었고, 윤하민은 아마조네도 유영아도 선조가 아니다.
당연히 아마조네들에겐 이건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여왕의 후계에게만 전해지는 지식이 있었다.
선조만큼이나 아주 특별한 존재.
‘정령.’
자연의 힘이 오랜 시간 뭉치고 뭉쳐, 그곳에 이지가 깃들어 탄생했다고 알려진 정령.
특수한 술법으로 정신과 힘을 뭉쳐 이미 존재하는 이지를 박아넣은 존재 선조.
그 둘은.
‘무척이나 비슷하다.’
아니 똑같다.
선조 강림.
그 본래의 이름은.
“정령 강림.”
정령이었으니까.
선조와 정령은 본디 같은 것.
아마조네의 선조들이 술법에 묶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연으로 돌아가 정령이 된다.
즉, 선조가 깃든 것에 선조를 강림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주안나였기에.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참을게요.”
윤하민에게 선조 강림을 시전해 유영아를 불러낼 수 있던 것이었다.
“지금은….”
타오르는 듯한 주안나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여 블랙 메두사를 노려보았다.
꿀렁! 꿀렁!
어느새 더 증폭된 검은 기운이 기분 나쁘게 꿀렁대며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블랙 메두사.
“저걸 쓰러트려야 해요.”
올림포스로 원정 나가기 전 퍼스트 라인의 랭커, 그중에서도 텐을 바라보는 실력자였다.
하지만 지금 주안나는 시엘급의 힘을 지닌 존재.
유영아가 과거와 같다면 그녀의 존재만으로 전황이 뒤집히는 것은 어려울 수 있었다.
씨익.
그러나 주안나는 유영아가 윤하민에게 깃든 순간 이미 승리를 직감하고 있었다.
유영아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순수하고도 강렬했다.
육체라는 허물을 벗어 던지고, 정령으로 화해 새로 태어난 유영아는.
“그동안 많이 힘든 길을 걸었구나. 안나야.”
정령들 중에서도 가히 최고봉.
“이제는 조금 기대도 좋단다.”
정령왕의 힘을 지닌 존재였다.
* * *
라예르와 최고 전사들이 메두사를 조종하기 위해 열쇠를 통해 메두사의 봉인을 풀었다.
그러나 라예르는 죽었고, 열쇠는.
파스슷.
정당한 절차를 지키지 않은 채 소유자가 사망해 부서져 버렸다.
그 결과.
꿀러어엉!
메두사의 봉인이 완전히 풀려버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메두사의 폭주가 시작되었다.
짙은 검은색의 운무.
쒜엑. 쒜엑.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뱀의 울음소리.
키히힛.
그 어둠 속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쏴아아.
밝은 태양이 빛을 비추듯, 어둠을 몰아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중앙.
촤악! 촤악!
쉼 없이 창을 내찌르고 있는 주안나와.
싸아아.
빛을 뿜어내고 있는 윤하민, 아니 윤하민의 육체를 차지한 유영아가 있었다.
강림 후 꽤 시간이 지난 지금.
쒜엑!
사방에서 쉴 새 없이 몰려드는 뱀들의 공격에 주안나와 유영아는 쉴 틈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얼굴에 패배의 기색 따윈 보이지 않았다.
‘이제….’
유영아.
“충분한 것 같구나.”
그녀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그녀는 그녀의 육체가 아닌 윤하민의 육체에 깃든 상황이었다.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한 윤하민이라 하지만, 아직 그 육체의 힘은 형편없었고 막대한 힘을 다루기에도 무리였다.
유영아가 제힘을 온전히 이끌어냈다간 윤하민의 몸에 부담이 가는 것이 사실.
유영아는 그런 점을 생각해 지금껏, 방어에 치중하며 윤하민의 육체를 조정했다.
‘정령력.’
정령 그 자체가 된 유영아이기에 가능한 일.
그리고 지금 준비가 끝났다.
“안나야. 비켜서.”
유영아의 목소리에 주안나가 빠르게 창을 찌르며, 몸을 내뺐다.
그리고 그 순간.
“타올라라.”
유영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앗.
처음에는 작은 불씨.
그리고.
화르르르르르륵!
거대한 불꽃이 검은 어둠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쒜엑! 쒜에엑!
뱀들이 놀란 듯 발버둥을 쳤지만, 녀석들은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파스슷!
그대로 재가 되어 사라졌다.
주안나의 공격 속에서도 끊임없이 재생하며 독니를 들이밀던 어둠의 뱀들.
파스슷!
그것들이 전부 유영아의 불꽃에 타오르는 것은 찰나의 시간이 만들어낸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아직.’
주안나는 유영아를 보며 생각했다.
준비가 끝난 유영아, 그녀의 힘은 겨우 이 정도가 아니다.
더욱더!
소름이 끼칠 만큼 많은 것이 남아 있었다.
꾸르르륵.
뱀들은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하나로 모여 그 덩치를 부풀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검은 구체, 그리고 그 속에서.
파앗!
사자 대가리만 한 뱀의 머리통이 유영아와 주안나를 향해 짓쳐들어왔다.
“숙모님!”
생각보다 강력한 기습에 주안나가 급히 유영아를 쳐다보았지만.
‘걱정 마.’
유영아의 눈은 주안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듯싶었다.
쿵.
공간이 울리는 소음과 함께.
화르르륵!
타오르는 불꽃의 거인이 나타나 주먹을 내뻗고 있었다.
거대한 뱀과 불꽃 거인의 주먹.
파아아아앗!
승리자는 불꽃의 거인이었다.
단숨에 뱀의 대가리를 분쇄하고, 어둠마저 불태워버린 거인.
그 뒤에.
“…….”
메두사가 서 있었다.
아름다운 얼굴, 육감적인 몸매.
뱀들이 기어다니 듯 만들어진 옷감과 부유한 듯 떠 있는 발.
순간 주안나조차 그녀가 적이 아닌 신비로운 여인이라 생각이 드는 순간.
“안쓰럽구나.”
유영아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까.”
유영아의 목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숙모님…?”
유영아의 눈은 진심으로 저 흉악한 메두사를 보며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주안나가 볼 수 없는 무언가가 보이는 듯한 유영아.
쒜엑.
마침내 메두사의 입이 열리며 뱀과 같은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크윽!”
듣는 것만으로 고통스러운 목소리.
그러나 유영아는 아직도 메두사를 바라본 채 슬픈 눈망울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걱정 마시길.”
유영아가 메두사를 향해 한 발자국을 내디디며 말했다.
화륵!
그런 그녀의 옆으로 불꽃의 거인이.
“당신의 염원은….”
쩌저저정!
그 옆에는 얼음으로 이루어진 듯한 거인이 나타났다.
“꼭….”
휘이이잉.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나타난 것은 바람 그 자체를 형상화한 듯한 커다란 새가.
쿠쿠쿠쿠쿠.
땅이 솟구치며 작은 소년이 나타나 사방에서 메두사를 보고 있었다.
“제 아들이 이루어줄 겁니다.”
그리고 한순간.
콰아아앙!
그것들이 한데 뒤섞여 세상을 밝힐 빛을 토해냈다.
* * *
정신을 잃은 주안나.
“푹 쉬어도 돼.”
유영아는 그녀를 안아 든 채, 웃음 짓고 있었다.
스윽.
주안나를 천천히 내려놓자, 살랑이는 바람이 주안나의 육체를 땅에 닿지 않게 띄워주고 있었다.
유영아는 그대로 걸어가 운석이라도 충돌한 듯한 거대한 구덩이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곳에.
“…….”
말없이 서 있는 메두사가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 느낌.
유영아가 메두사를 보며 느꼈던 먹먹함과 안타까움.
그것은 동질감이었다.
“당신도….”
유영아의 목소리에 힘없이 고개를 드는 메두사.
“나와 같군요.”
그녀와 자신은 같은 슬픔을 공유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죠?”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는 슬픔.
“……!”
“그 오랜 세월, 정인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천천히 더욱 천천히.
유영아는 메두사에게로 다가갔다.
“이제 괜찮아요. 조금 더 기다릴 수 있겠어요?”
유영아의 말에.
스윽.
꿈쩍 않을 것 같던 메두사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시금 미소 짓는 유영아.
“조금만…, 더 쉬세요.”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파스슷.
메두사의 육체가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검은 색깔의 먼지, 하지만 그것은 곧 푸른빛을 띠며 유영아의 손.
아니 윤하민의 손으로 흡수되어가기 시작했다.
꽈악.
유영아가 메두사의 잔해를 손에 쥐었을 때.
파슷.
뒤에서 작은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면 얼마든지 내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일부러 방해하지 않고자 배려해준 따스함이 깃든 행위.
유영아는 더욱더 밝은, 이제껏 보여주지 않은 미소를 지은 채 뒤돌아섰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유영아는 이미 한참 전부터 정령이 되어 있었다.
죽었던 그 순간에서 깨어났을 때부터 정령으로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전번에도….’
잘 억누르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그때와 달리 목소리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때와 달리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빌렸다고 하지만 윤하민의 육체가 있는 지금.
주륵.
더 이상 유영아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아들.”
그곳에 서 있는 남자.
“어머니.”
이정기와 유영아가 서로 마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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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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