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권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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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나의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폭주한 마력이 제멋대로 날뛰며 그 색을 변모하고 있었다.
이따금 일어나는 헌터의 마력 폭주.
증폭되다시피 하는 마력 덕분에 순간적으로 강력한 힘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나, 그 후유증이 큰 데다 원한다고 사용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마력 폭주였다.
하지만 주안나의 폭주는 무언가 조금 달랐다.
끼륵, 끼르륵.
울어대는 마력들은 분명 폭주한 것처럼 색도, 그 형태도 제멋대로 바꾸어가며 너울처럼 일렁이고 있었으나.
“하아.”
주안나는 마치 폭주한 마력을 제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력을 일부러 폭주시키고, 그 힘을 제어한다.
그 말은 곧 원한다면.
‘평소보다 두 배, 세 배, 그 이상.’
힘을 끌어내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블랙 메두사 퀸에게로 다가가는 주안나의 마력이 계속해서 증폭되고 있었다.
“아가씨….”
그런 주안나를 보며 안인회는 입술을 짓씹었다.
이성의 기둥 중 하나라 불리는 자신이 주안나를 지지하는 것은 단순히 주안나가 주형태의 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저씨.’
어린 시절부터 보았던 그 순수했던 모습.
그리고 언제나 달고 다녔던 짙은 어둠에 집어 삼켜졌던 주안나.
‘아가씨.’
안인회는 언젠가 그 어둠 속에서 주안나를 구해주고 싶었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주안나의 어둠은 더욱 짙어졌고, 주안나는 그렇게 변해가다 스스로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그런 주안나가 어느 순간 변했던 계기.
그 계기가 사라졌을 때, 자신이 주안나의 받침목이 되어주겠다 다짐했었다.
하지만 짙게 드리운 그림자는 자신만으로 지울 수 없는 것이었기에, 그저 언젠가 주안나가 어둠에서 벗어나길 기다렸건만.
“이제야….”
이제야 그 어둠을 걷어낸 듯한 후련한 얼굴이었다.
타박, 타박.
블랙 메두사를 향해 다가온 두 개의 발걸음.
블랙 메두사를 중심으로 양옆에 선 두 여자가 동시에 손을 내뻗었다.
차르륵.
주안나의 맨손에 존재치 않았던 검은색의 창이 솟아나 있었다.
폭주한 마력으로 만들어진 일렁이는 창.
타캉.
윤하민의 손에는 두 개의 빛 방울이 생성되어 그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둘에게서 느껴지는 거대한 마력은 방금 전과 같은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걸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떠오르는 한 가지 단어는.
‘각성.’
그것이었다.
“져 줄 생각은 없어. 숙모가 보고 계시니까.”
“저도 그럴 생각이에요.”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둘.
끼에에에엑-!
그 사이에서 블랙 메두사 퀸이 발악하듯 비명을 내질렀다.
타앗!
먼저 움직인 것은 주안나.
콰직!
지금껏 블랙 메두사 퀸에게 제대로 상처조차 입히지 못했던 주안나의 창이 메두사의 어깨를 그대로 뚫고 통과해 나왔다.
끼에에에엑!
비명을 내지르며 제 머리칼을 길게 뽑아내는 메두사.
화륵!
그때 윤하민에게서 튀어나온 빛과 함께 메두사의 머리칼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 * *
백두와 이성, 총력전이라는 이름으로 서로가 서로를 노리던 두 길드.
결코, 뒤섞일 수 없을 듯, 함께 몬스터를 사냥하면서도 거리가 있던 것이 바로 그 두 길드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
“…….”
두 길드의 헌터들은 같은 얼굴로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쿠르르르!
떨어 울리는 마력이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소음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얽히고설켜 있는 세 인형.
콰앙!
그들이 만들어낸 폭발은 파괴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뒤섞여 있지만 뒤섞이지 않은 세 가지의 색채.
“……!”
그 색이 가진 힘을 헌터들은 여실히 깨닫고 있었다.
콰앙!
메두사, 메두사를 사냥하는 주안나와 윤하민.
각자의 방식으로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그들.
하지만 역시나.
“윽…!”
중간중간 윤하민은 휘청거리며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유영아의 정령을 이끌어내 각성에 가까운 진화를 한 윤하민.
그녀의 힘은 확실히 퍼스트 라인, 아니 그 이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만한 힘이 있다 해도, 그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하아…. 하아….”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강력한 힘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윤하민.
그리고.
“퉷!”
주안나의 사정 또한 다를 바 없었다.
폭주한 마력을 제어하는 듯싶었지만, 싸움이 지속되자 점점 마력의 제어가 어려워지고 있었다.
거기 더해 메두사와 함께 육체로 뒤섞이는 주안나의 온몸에는 잔 상처와 함께 핏줄기가 생겨나고 있었다.
마력 폭주로 시엘급의 힘을 얻은 주안나, 당연하게도 그 재생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했으나 메두사의 독이 서린 공격은 주안나의 재생조차 막아내고 있었다.
콰앙!
그에 반해 메두사의 공격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정교해지고 있었다.
꿀꺽.
기세와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
헌터들은 숨을 죽인 채 사냥을 관망할 수밖에 없었다.
“공대장님.”
지금이라도 함께 싸워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하려는 헌터.
“가만히 있게.”
안인회는 고개를 저어 헌터를 제지했다.
“이 싸움에 우리가 끼어들 방법은 없네.”
전장의 중심부.
아니 새로운 전장이 되어버린 장소.
세 존재의 마력이 뒤섞인 그곳엔, 마력들의 충돌로 마력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어중간한 존재라면 다가가는 것만으로 갈가리 찢겨버릴 듯 파괴적인 마력장.
거기다.
파스슷.
외부의 마력은 간섭조차 못 하게, 서포트 계열의 스킬마저 중화시키고 있었다.
안인회의 말마따나 도울 방법이 전혀 없다.
‘만일 도울 수 있다 해도.’
도와서는 안 된다.
주안나와 윤하민의 눈빛을 보라.
화악.
저 타오르는 눈동자들은 강력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진짜 싸움.
‘왕좌의 시험.’
아마조네의 여왕 자리를 건 두 여자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된 것이었다.
* * *
“제기랄. 더럽게 단단하네.”
창이 튕겨져 나오자 주안나가 뒤로 물러서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자신이 마력 폭주로 강해졌듯.
고오오.
메두사 또한 시간이 지나며 그 마력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다만 그 방법이 자신과는 다르다.
‘폭주가 아니야.’
폭주한 마력을 사용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
그건.
“본래 힘을 되찾고 있는 건가…?”
가지고 있던 원래의 힘을 되찾듯 자연스럽게 발휘되는 힘이었다.
문제는 메두사의 변화가 단순히 마력의 양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
메두사가 내지르던 비명이 멈추었다.
그와 함께 메두사의 공격 패턴이 바뀌었고, 틈이 더 이상 보이질 않았다.
그 외형과 달리 이성을 잃고 날뛰던 괴물과도 같았던 모습.
하지만 이제는.
“젠장.”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마치 이지가 있는 듯, 생각을 하는 듯한 모습.
‘위험해.’
저 괴물 같은 힘에 이성마저 가지고 있다면?
끔찍한 결과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지금 자신이 최대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을 사용하는데.
쏴아아.
정령의 힘이 메두사를 약화시키고 있다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이대로 완전히 이지를 찾는다면.’
그 결과는 참혹함만이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꽈악.
입술을 짓씹은 주안나.
숙모님께 보여주고 싶었지만 인정해야 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혼자선 할 수 없어.’
저건 정말로 고대의 괴물이다.
지금의 자신은 물론, 앞으로도 감히 쓰러트리기 겁이 날 정도.
그렇다면.
“하아…. 하아….”
저기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보이는 존재.
까그그그극! 파앗!
주안나는 메두사의 공격을 흘려내곤 윤하민의 곁으로 다가갔다.
“윤하민.”
“하아….”
“진정해. 호흡 조절하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힘을 사용한 반동에 힘겨워하는 그녀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주안나.
“이대로는 실패야. 더 시간이 지났다간.”
입술을 깨물고 할 말을 전한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다 위험해.”
“……그럼?”
“서로 돕자.”
“……!”
주안나의 말에 윤하민이 두 눈을 치켜떴다.
주안나가 윤하민을 알 듯, 윤하민도 주안나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았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그 거대한 자존감으로 모든 이를 내려다보는 이.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거나, 도움을 받지 않는 이.
아까 자신을 보며 이상한 눈빛과 말을 했다지만.
“뭔 그딴 얼굴을 해? 그럴 정신이 있으면 호흡이나 마저 정리해.”
주안나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할 거야? 말 거야?”
주안나의 질문에 윤하민은.
스윽.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안다.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위험만이 기다릴 뿐이다.
“좋아.”
“어떻게 도우면 될까요.”
피식.
주안나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네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하지만 도우라고….”
“네 힘. 그 속에 무언가 이질감이 있을 거야.”
윤하민은 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또 어떤 것이 그녀를 돕는지 모른다.
그런 이의 도움은 제대로 효율을 뽑아낼 수 없다.
그렇다면 그 힘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네 몸을 맡겨.”
“네?”
그 힘에 익숙하고, 그 힘을 가장 잘 다루는 이에게 맡기면 된다.
“뭘 그렇게 놀라? 할 거냐고 말거냐고.”
알 수 없는 말, 하지만 윤하민은 이미 마음을 먹었다.
다시금 윤하민의 고개가 끄덕여지던 그 순간.
쒜엑!
주안나의 창이 윤하민의 가슴팍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당황하여 놀란 윤하민이 몸을 비틀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주안나의 공격은 쾌속했으며, 윤하민은 이미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다.
무엇보다.
“……!”
마치 무언가가 속박하듯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결국.
콱!
주안나의 창이 윤하민의 가슴을 꿰뚫었다.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것처럼 커져버린 윤하민의 눈동자.
그 눈동자에 주안나의 웃음기 어린 얼굴이 서려 있었다.
“내가 널 죽일 거라고 생각한 거야?”
천천히 떨어지는 윤하민의 고개.
거기 보이는 것은 분명 자신의 가슴을 관통한 주안나의 창이지만.
“숙모 앞에서 그따위 짓을 할 수는 없지.”
윤하민은 그 어떤 고통도 느낄 수 없었다.
그 대신.
쿠웅!
심장이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잠 좀 자라고.”
흐릿하게 들려오는 주안나의 목소리.
“그리고….”
주안나가 다시금 웃으며 윤하민을 보고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방금까지 놀라 경직되어 있던 윤하민의 얼굴에 평온하게 바뀌어져 있었다.
“오랜만이야. 안나야.”
뒤바뀐 목소리가 주안나의 귓가에 울렸다.
이것이.
‘여왕의 힘.’
주안나가 먼저 계승한 여왕의 힘의 일부.
지금 윤하민의 육체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유영아였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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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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