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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171화 (171/284)

제7권 21화

171

눈부시게 찬란한 빛.

그건 이 지긋지긋한 던전과 사냥 속에서 내리쬐는 한 줄기 햇살같은 빛이었다.

“아아아….”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탄성이 이곳저곳에서 동시에 들려왔다.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따스함이 빛이 가진 효용의 전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에 불과했다.

“석화가…!”

딱딱하게 굳어가던 몸.

메두사의 석화는 어떻게든 해결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블랙 메두사의 석화는 답이 없어 천천히 굳어가는 것을 느끼며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헌터들의 모습이었다.

“석화가 풀리고 있어…!”

헌데 그 석화가 천천히 해소되고 있었다.

굳어가던 몸이 유연해지고, 움직이지 못했던 헌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쏴아아아!

지금 내리쬐고 있는 이 빛 때문이었다.

자유로워진 헌터들, 그들의 눈이 한 곳을 향해갔다.

“……!”

가장 빛에 집중되고 있는 존재.

블랙 메두사 퀸이 있는 곳을 향한 시선.

-끼….

블랙 메두사의 입이 쩌억 갈라지며, 아름다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괴물과도 같은 형체를 하고 있었다.

-끼에에에엑!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내지르며 머리를 싸매고 있는 블랙 메두사 퀸.

헌터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곳을 향해 이동했다.

가장 중요한 것.

‘누구냐.’

이 빛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누구냐는 것이었다.

이정기?

아마조네의 최고 전사?

혹은 또 다른 어떠한 존재?

그리고 그들이 빛을 만들어낸 주인공을 보았을 때.

“……!”

놀란 헌터들의 입 또한 메두사와 다를 바 없이 벌어져 있었다.

“윤하민…?”

빛을 만들어낸 존재는 다름 아닌 백두의 대전사가 되어 주안나와 아마조네의 후계 경쟁을 하는 윤하민이었으니까.

이성의 헌터이기에, 백두의 헌터이기에, 윤문산 당 대표의 딸인 윤하민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많았다.

어릴 때부터 아름다운 외모, 남부러울 것 없는 집안, 거기다 길드까지.

윤하민이 헌터라는 사실까지도.

하지만 그녀의 실력 또한 모두가 알고 있었다.

‘C급.’

기껏해야 C급.

대전사로 선택된 것이 의외였고, 또 대전사로 선택되어 성장하는 실력 또한 의외였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상식을 벗어난 일이었다.

“이게 무슨….”

최고라 불리는 이성의 헌터들, 그것도 그들 중에서 선별된 공격대원들이다.

그들이 지금 윤하민이 비추는 빛이 장비나 이정기의 도움으로 발현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윤하민이 가진 본연의 능력, 그리고 지금껏 보았던 어떤 것과도 이질적인 힘.

그러면서도….

“익숙한 느낌이 들어….”

익숙하다.

무얼까.

그때.

주륵.

주안나의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안나가 지금 느끼는 따스함은 다른 헌터들과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주안나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은, 따스함이 아닌.

‘그리움.’

그토록 바라던 감정이었으니까.

“아아아.”

탄성처럼 흘러나오는 주안나의 신음.

“숙모님….”

유영아의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 * *

쏴아아.

전장에 내리쬐는 한 줄기의 햇살.

한 줄기라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강렬한 빛이었다.

“…….”

이정기는 그 모습을 보며 다른 헌터들보다 더욱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주안나의 얼굴과 비슷한 모습.

따스함보다 그리움에 사무친 얼굴이었다.

동시에 이정기는 다른 헌터들이 그렇듯, 햇살을 비추고 있는 윤하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그녀가 해낼 줄 알았다.

이정기가 그녀에게서 본 가능성, 그녀를 대전사로 만들며 성장시켰던 이유.

그것은 그녀가 윤문산의 딸이기에, 이성을 가지는데 필요한 존재이기에, 그녀에게 헌터로서의 남다른 재능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을 기대하며, 그 가능성을 보았던 것 때문이었다.

윤하민조차 모르는, 아무도 몰라주었던 그녀의 가능성.

“정령….”

그녀는 정령에 대한 특별한 친화력이 있는 존재였다.

헌터들 사이에서도 극소수만이 존재하는 특별한 존재들.

헌터라고 명칭되지만, 사실상은 조금 더 다른 존재인 그들.

윤하민은 그들 중 하나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키웠다.

그리고 남몰래.

‘어머니.’

자신에게 깃들어 있던 어머니의 정령을 주었다.

정령에 대한 친화력이 전무하다시피 한 자신이기에 보고 싶어도, 남아있어도 볼 수 없던 존재였던 어머니.

윤하민은.

스윽.

그런 어머니의 정령을 불러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맑은 두 눈이, 의지로 타오르는 두 눈동자가.

‘잘했죠?’

선하게 웃고 있었다.

‘그래. 잘했어.’

이정기의 눈이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쏴아아!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할 수 있어.”

어머니의 정령을 불러낸 윤하민,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을 거다.

‘어머니의 정령이 가진 힘.’

얼마나 대단하고 경이로운 힘을 다룰 수 있게 되었는지 말이다.

생전에도 최고의 헌터 중 하나로 칭송받던 요정왕 유영아.

그런 그녀는 올림포스에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녀가 죽기 전까지 보냈던 세월은 그녀를 더욱 굳건히 만들었고, 그녀를 한 단계 더 위로 갈 수 있게 해주었다.

‘넥타.’

정령의 힘을 다루기에, 헌터로서는 다룰 수 없는 넥타의 씨앗이 새겨져 있던 것.

하지만 그 씨앗이 발아하기도 전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였지만.

‘오히려 그 죽음이 어머니를 더 순수하게 만들어주었어.’

그러니 그녀가 완전히 죽지 않은 채 정령으로 남아 자신을 지켜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거기다 자신이 부여한 넥타마저 하나가 되었으니.

“지금이라면.”

이정기가 윤하민을 보며 말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다.”

끄덕.

윤하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비명을 내지르는 블랙 메두사 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일렁.

그녀의 등 뒤로 여인의 형상이 드러났다 사라졌다.

* * *

빌어먹을 인생.

이성의 후계자 중 하나로 태어났고, 태어나보니 대한민국의 왕족이나 다름없는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

모두가 부러워하고 동경하며 우러러본다.

하지만.

‘그래서 뭐.’

빌어먹을 인생을 부러워 해봐야 무슨 소용일까.

속없이 선망의 눈빛만 보내는 것들.

‘역겨워.’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가 얼마나 힘들지는 관심조차 없으면서.

‘꺼져.’

그저 자신이 가진 것밖에는 보지 못하는 것들이 전부였다.

‘강하지 못하다면 필요 없다.’

아버지란 것은 자신을 그저 무기 중 하나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으며.

‘안나야….’

어머니란 것은 자신을 지옥 속에 내버려 둔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강해져야 해.’

아버지가 원하는 것.

‘강해져야만 해.’

어머니처럼 되지 않기 위해.

‘힘을 가져야 해.’

자연스레 자신은 강해지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니, 아버지란 작자는 자신을 오히려 죽음으로 밀어 넣었다.

다른 가족들?

‘하!’

코웃음이 나온다.

다를 바 없는 인간들.

그나마.

‘그나마….’

주륵.

자신에게 따스한 존재가 한 명 있었다.

언제나 독기로 가득 차 자신이 가진 것만을 바라며 다가오는 이들과 달랐던 사람.

그런 자들에게 상처받은 자신을 향해.

‘힘들지?’

처음으로 진심이 느껴지는 말을 건네주었던 사람.

그리고.

‘오늘은 쉬자. 숙모랑 같이 쇼핑이라도 하는 거야.’

‘하지만 아버지가….’

‘안나야. 걱정 마. 숙모가 알아서 할게.’

힘 또한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날, 자신은 처음으로 자유가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지옥 같던 집안에 한 줄기 볕이 드는 느낌.

더럽게 힘든 훈련이나, 아버지의 강압도 버텨낼 수 있던 힘.

‘차라리.’

저 사람이 내 어머니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자신의 인생은 조금 많이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찾아왔던 행복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올림포스.’

말없이 떠났던 숙모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볕이 사라진 곳에 어둠만이 남았다.

그 어둠은.

‘아아아….’

자신을 집어삼켜 버렸다.

독기는 더욱 강해졌고, 더 이상 사람에게 곁을 주고 싶지 않았다.

또 훌쩍 떠나버릴 것 같기에, 또다시 버려진 기분을 느껴야 할 것 같기에.

그리고.

‘이건의 손자다.’

이건의 손자.

그 말인즉슨.

‘숙모…!’

숙모의 아들이란 뜻이었다.

‘이정기.’

갑작스레 나타난 그 녀석은 자신이 바라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온전한 혈통.

강력한 힘.

그 무엇보다 녀석이 죽도록 미웠던 것은.

주르륵.

녀석이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유영아의 자식이란 사실이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도대체 저 녀석이 자신보다 뭐가 잘나서?

그저 운 좋게 태어난 것이 전부 아니던가?

어느새 남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처럼, 자신 또한 이정기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

증명하고 싶었다.

저 녀석보다 자신이 잘났다고, 숙모의 자식은 너가 아닌 내가 되었어야 한다고.

너 때문에 숙모가 죽은 거라고.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아아…. 아….”

사라졌던 볕이 유영아를 내리쬐고 있었다.

이성과 백두의 헌터들은 볼 수 없었지만, 주안나의 눈에는 또렷이 보였다.

아름답고도 슬프게 웃고 있는,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숙모의 모습이.

그녀의 입이 움직이고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안나야.

그토록 듣고 싶었던, 남몰래 영상을 통해서만 들었던 숙모의 목소리.

-미안해.

그런 숙모가 자신을 향해 사과하고 있었다.

-혼자 둘 생각은 아니었어. 많이 원망스러웠지?

원망스러웠다.

왜 혼자 버려두었느냐고.

그렇게 따져 묻고 싶었지만.

“아니에요…. 아니에요….”

이것이 마지막이 될까 봐 속마음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원망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이 말이 그토록 하고 싶었었다.

파스스.

유영아의 모습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윤하민이 남아있었다.

주안나는 석화가 풀린 팔로 제 얼굴을 스윽 닦아내었다.

“보여드릴게요.”

자신이 그토록 얼마나 노력했는지.

돌아가는 주안나의 시선.

끼에에에엑!

그곳에 블랙 메두사 퀸이 비명을 내지르며 폭주하고 있었다.

타박.

녀석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

파아아아아아앗!

주안나의 사방으로 마력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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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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