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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170화 (170/284)

제7권 20화

170

파파파파팟!

이정기의 주먹에 날아간 라예르가 땅거죽을 뒤집으며 처박혔다.

“……!”

그 모습을 본 보르예의 눈에 경악이 깃들었다.

선조의 힘을 하나 빌린 것이 아닌 금기시되는 다수의 선조의 힘을 한 몸에 깃들게 한 라예르.

아마조네의 최고 전사들을 한 손으로 부여잡고 씹어먹던 것이 바로 라예르였다.

부르르.

지금 떨리고 있는 자신의 팔이 라예르의 힘이 범주를 넘어섰음을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헌데.

“대체…!”

이정기가 보여준 힘은 그것을 상회하는, 아니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었다.

힘?

그걸 힘이라고 해야 하나?

마력과 신들의 힘인 넥타가 움직이는 것은 보았지만, 보르예가 생각기로 그 정도 힘으로는 저 라예르를 이렇게 만들 수 없었다.

쿠웅.

땅을 박차고 일어서는 라예르.

그녀는 한 층 더 괴물 같은 모습이 되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근육을 꿈틀거리며 이정기를 노려보고 있었다.

파앗!

그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로 라예르가 쾌속같이 짓쳐들어오고 있었다.

그 속도에 제대로 대응하려 급히 창을 드는 보르예.

그 순간.

“……!”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챌 수 있었다.

자신이 아닌 이정기를 향해 가는 라예르.

그리고.

꽈악!

괴물이 되어버린 라예르와 이정기는 양손을 맞잡고 있었다.

이정기에 비해 세 배는 커다래진 라예르의 손이었지만, 사자 갑주의 건틀렛이 송곳을 만들어내 라예르의 손바닥을 꿰뚫어 고정시키고 있었다.

“크르…. 크르르르!”

짐승처럼 울어대는 라예르.

고통에 짖어대며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크르르르!”

라예르가 이정기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라예르의 손을 타고 팔뚝으로 핏줄들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독!’

타고난 사냥꾼이자 최고의 전사인 보르예기에, 지금 라예르에게 일어나는 현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송곳을 타고 흐르는 독이 라예르를 부숴놓는다.

퍽퍽퍽퍽!

라예르의 핏줄들이 모두 터져나가며 녹아나던 순간.

“안… 돼!”

보르예는 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라예르, 살고자 하는 본능으로 그녀가 또 다른 선조의 힘을 깃들인 것.

녹아내리며 터져나가던 그녀의 육체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며.

드드드드.

마침내 이정기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이정기는 확신에 가까운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지만 보르예의 눈에는 그저 이 모든 상황이 아슬하기만 했다.

선조의 힘이 무엇인지, 금기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보르예였기에 라예르의 파멸이 뻔할지언정, 순간적으로 낼 수 있는 힘이 어떤 곳에 닿아있는지 알고 있었다.

‘가디언.’

올림포스가 아마조네에 욕심을 내었을 때.

‘티탄.’

티탄들이 아마조네를 정복하고자 했을 때.

그 모든 상황을 극복해주게 했던 압도적인 힘!

스륵!

이정기에게 아마조네의 운명을 걸었다.

만일 이정기가 위험하다면 자신이 그를 구해야만 한다.

‘나 또한….’

다수의 선조의 힘을 빌려서라도!

그런 각오로 전투에 임하려던 순간.

“아아….”

보르예는 마침내 이정기가 그토록 확신했던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꿈틀.

다시 한 번 그 외형을 변모하기 시작한 이정기의 사자 갑주.

투둑!

이정기의 가슴팍의 흉곽이 돋아났고, 그 밑의 허리춤으로 빛나는 황금의 허리띠가 보이고 있었다.

“여왕께선….”

여왕 히폴리테, 보르예는 여왕에게 최고 전사들의 배신을 전달하지 않았다.

그 오랜 시간, 제 한 몸을 희생하여 아마조네를 떠받치고 죽음마저 각오한 최고의 여왕 히폴리테.

그런 자신의 군주에게 군주가 아끼고 아끼는 최고 전사들이, 군주가 목숨 바쳐 지켜낸 동료들이 배신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이미 알고 계셨구나.”

그 증거가 바로 저것이었다.

히폴리테의 황금 허리띠.

“아마조네의 영광.”

두두두두두두!

이정기를 밀어내던 라예르.

그녀가 다시금 이정기에게 밀리고 있었다.

퍼어엉!

다시 한 번 내질러진 이정기의 주먹에 라예르의 배에 커다란 구멍을 내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 * *

‘아마조네.’

이정기는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아마조네의 힘을 예상키는 했지만, 이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선조의 힘을 이끌어낸 아마조네의 최고 전사들도 무서운 자들이었지만.

‘라예르.’

그녀가 모든 것을 걸고 보여준 그 힘, 다수의 선조를 불러들인 힘은 가히 경악을 금치 못할 수준이었다.

하나의 순수한 넥타가 아닌 다수의 넥타가 조각조각 뒤섞여 만들어진 불순한 넥타.

그 색을 형언할 수 없고, 그 탁함의 정도를 재단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고오오.

그렇게 만들어진 혼돈에 가까운 넥타가 가진 힘은 가히 절대적이라는 것이었다.

다른 이에겐 보이지 않겠지만 왕의 넥타를 가진 이정기에겐 보인다.

쿠우우우우!

존재 하나로 세상이 움직이고, 마력이 비명 지르며 넥타가 생성되고 파괴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저것으로 무엇이 가능할지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 힘이었다.

솔직히 말해.

‘힘들다.’

왕의 자격을 각성한 지금의 자신조차 그런 라예르를 봤을 때 승리를 자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정기는 담담했다.

마치 라예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자신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라예르가 어떤 각오를 다지건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었다.

사실이었다.

“라예르.”

이미 괴물이 되어 이성과 사고가 사라져버린 몬스터, 라예르.

이정기는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소용없는 짓이야.”

그녀의 패배는 그녀가 배신을 작정했을 때부터 결정지어진 것이었다.

화아악-!

이정기의 허리에서부터 밝혀진 빛이 라예르를 감싸 안기 시작했다.

“끄르.. 끄르르르!”

알 수 없는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내는 라예르.

그런 그녀가 발버둥 치듯 이정기에게 뛰어들었지만.

콰앙!

이정기의 주먹에 속절없이 나가떨어질 뿐이었다.

“끄, 끄아아아아”

거기다 갑작스레 비명을 내지르는 그녀.

툭, 투둑.

그녀의 살점이 녹아내리며 바닥으로 흐르고 있었다.

또 다른 선조의 힘을 끌어내 극대화시켰던 재생력이 그 힘을 잃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끄아아아아아!”

본능에 이끌려 다시금 선조의 힘을 끌어내 보는 그녀였지만.

투둑.

그녀의 재생력은 돌아오지 않았을뿐더러, 선조의 힘 또한 그녀에게 깃들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허락하지 않겠다.”

이정기가 그녀에게 선조의 힘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강민혁과 함께 보르예를 처음 만났을 때, 보르예는 자신에게 말했다.

‘절대군주.’

아마조네의 여왕이란 자리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다.

‘아마조네의 모든 힘은 여왕에게 나온다.’

아마조네스들이 가진 위력적인 힘이 여왕에게 빌리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여왕의 명은 절대적이고, 여왕은 그 대가로 힘을 빌려준다.

즉.

“라예르, 너에게 허락된 선조의 힘을 회수한다.”

여왕이 바랄 때, 언제고 허락했던 힘을 회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보르예가 자신을 찾아와 최고 전사들의 배신을 말했을 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정기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히폴리테.

‘그대를 부정하는 전사들이 있다.’

그녀가 먼저 최고 전사들의 배신을 짐작하고 이정기에게 이야기해주었으니까.

이미 여왕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버려 둔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아마조네의 백성은 군주가 있기에 존재한다.’

하지만.

‘동시에 군주 또한 백성들이 있기에, 전사들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

그녀는 말해주고 싶은 듯했다.

‘아마조네가 그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을 하길.’

그러면서 준 것이 바로 이 허리띠.

아마조네의 영광이었다.

본디 이 허리띠는 여왕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

여왕이 가진 권능이 일부가 담겨있는 것이었다.

“여왕 히폴리테는.”

“끄아아아아악!”

녹아내리는 라예르의 모습이 괴물의 탈을 벗어 던지고 있었다.

이정기의 독이 그녀를 덧씌웠던 선조의 힘을 녹여 사라지게 만들고 있는 것.

“당신들한테 마지막 기회를 준 거야.”

“아…. 아….”

돌아온 라예르의 목소리.

“여왕…, 이시여….”

회백색으로 탁해진 그녀의 두 눈동자가 점차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투둑.

마지막으로 녹아내리는 그녀.

주르륵.

눈물인지, 무엇인지 모를 액체가 라예르가 있던 자리에 흐르고 있었다.

“…….”

이정기가 시선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살아남은 최고 전사들과 보르예.

그녀들은 갖가지 감정을 두 눈에 담은 채.

“명을 내려주시길.”

조용히 고개를 숙임으로써 모든 것을 인정했다.

그때.

콰앙!

한쪽에선 또 다른 폭발음이 들려왔다.

이정기의 싸움이 끝났지만 모든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가만히 지켜보길.”

이정기의 명령.

“당신들의 여왕이 탄생할 테니까.”

이정기의 시선도, 최고 전사들의 시선도 한 곳을 향했다.

콰앙!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전장을 향해.

* * *

뚜뚝.

수십 일은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온몸이 삐그덕대고 있었다.

툭!

둔탁해진 움직임으로 온몸에서 소음이 일고 있었다.

‘석화.’

메두사의 석화가 발동한 것이었다.

잡몹이나 다름없던 메두사들은 주안나의 넥타가 가진 저항으로 인해 아무런 효과도 발휘할 수 없었다.

파앗!

그러나 메두사들의 여왕, 아니 메두사들의 오리지널이 가진 석화는.

“끅!”

주안나의 넥타마저 꿰뚫는 것이었다.

“길드장 대리!”

안인회가 메두사의 뱀 같은 머리칼이 주안나를 노려올 때 달려들어 머리칼을 쳐냈다.

“괜찮습니까?”

“괜찮아요…. 아저씨….”

부릅뜬 눈.

주안나는 안인회를 보았다.

안인회 또한 멀쩡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었다.

넥타를 가진 자신도 저항할 수 없건만.

꽈악.

안인회의 오른팔은 이미 돌처럼 굳어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끄으으윽!”

이성의 다른 헌터들도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주안나가 나서서 석화의 빛을 막아내지 않았다면 이성의 절반은 이미 온몸이 돌이 되어버렸을 것이었다.

또다시 이동하는 주안나의 시선.

“…….”

백두.

그들 또한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이진석, 강민혁.’

그들의 실력은 생각 이상으로 출중했지만 그뿐이었다.

끼에에에에엑!

저 괴물, 메두사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석화의 빛을 이겨내지 못하는 한.

꽈악!

자신들이 승리할 방법은 없는 듯했다.

다시 돌아간 시선.

“…….”

주안나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메두사만큼이나, 아니 메두사보다 더 가공스러운 힘을 내뿜던 존재.

최고 전사 라예르와 이정기의 싸움이 끝이 났다.

결과는 이정기의 승리.

승리를 따낸 이정기는 처음 말했던 것처럼.

“…….”

아무런 개입조차 하지 않은 채 전장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주안나의 온몸을 타고 흐르는 감정은 그것이었다.

‘패배감.’

결코, 느끼고 싶지 않았던 그 감정.

꽈악!

“포기 못 해.”

온몸이 돌이 되어 바스러질지언정.

“아니, 안 해.”

일단은 이 싸움을 끝낼 것이다.

그리고 그때.

화아악-!

찬란한 빛이 하늘에서부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빛이 몸에 닿자 변화가 일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주 소 | 경기도 하남시 조정대로 35 하우스DL타워 F915-1(9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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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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