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169화 (169/284)
  • 제7권 19화

    169

    “크아아아악!”

    아마조네의 최고의 실력자들, 수많은 아마조네스들 중에서도 선택받은 여섯만이 될 수 있다는 최고 전사.

    그런 최고 전사들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라예르는 지금 짐승과도 같은 울음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고통과 절규, 그리고 분노가 뒤섞인 울부짖음.

    “크아아아악!”

    또한, 그녀의 외형도 더 이상 아름답고 신비하던 아마조네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두 배는 더 부풀어 올라 있는 근육과 육체.

    비단 같던 머리칼은 마치 짐승의 털처럼 곤두서 공기를 찌르고 있었다.

    쿠우우.

    존재감으로 인해 뒤흔들리고 있는 공기.

    커억 숨이 막혀오는 압박감이 라예르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마침내 변화를 마친 듯한 라예르는 더 이상 이성이 있는 이종족의 모습이 아니었다.

    “크르르.”

    짐승.

    살육의 기세를 양 눈에 가득 담고, 파괴만을 생각하는 존재.

    ‘몬스터.’

    그와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라예르…!”

    또 다른 최고 전사가 그런 라예르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아마조네의 영광이자 자랑인 최고 전사 라예르가.

    “이렇게 영락한 꼴이라니.”

    무엇이 그녀를 저렇게 만든 것일까.

    이정기는 자신할 수 있었다.

    ‘탐욕.’

    그녀들이 내세운 이유가 이방인이 왕좌를 차지할 수 없게 한다는 이유였으나 보르예에게 들었던 아마조네의 율법은 다른 것이었다.

    ‘후계와 왕좌의 주인은 오직 하나, 여왕만이 정할 수 있다.’

    율법을 최우선시한다면서 가장 근간이 되는 율법을 거부한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저 왕좌를 차지하고 싶다는 욕심.

    탐욕이었다.

    그녀를 저 꼴로 만든 것은 그녀 자신, 그리고 그녀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거대한 탐욕이리라.

    “라예르…!”

    이정기를 상대하고 있다는 것조차 잊은 채 괴물이 되어버린 라예르를 부르는 최고 전사.

    라예르는 그런 최고 전사를 바라보며 다시금 살기를 피워내고 있었다.

    아군과 적군의 경계조차 무너져버렸다.

    “대체 몇 명의 선조의 힘을 끌어온 거냐!”

    그녀들은 답을 알 수 없었으나 이정기는 답을 알 수 있었다.

    ‘여섯.’

    그녀의 내면에 뒤섞여 있는 넥타의 흔적은 총 여섯 개.

    그 여섯 개가 어느 순간 부서져 뒤섞여 버렸다.

    색깔이 뚜렷한 여러 개의 색깔이 하나로 뒤섞여 버렸으니, 저것이야말로.

    ‘혼돈.’

    혼돈 그 자체인 것.

    그때.

    파슷.

    라예르의 신형이 모두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진 순간.

    “라…, 라예르!”

    울부짖는 듯 소리치는 전사의 목소리와 함께.

    콰득!

    잔혹하리만치 선명한 파육음이 울려퍼졌다.

    괴물이 되어버린 라예르.

    “안…, 안 돼!”

    짐승이 아마조네스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 * *

    그건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올림포스에서 갖가지 일을 다 겪은 이정기에게조차 당황스럽고 역겨운 일.

    콰득! 콰득!

    동료가 동료를 먹어치우는 것.

    라예르, 아마조네의 최고 전사는 이제 더 이상 존재치 않았다.

    한 마리의 짐승이.

    “크르르르르-!”

    “안 돼!”

    “막앗!”

    대항자를 사냥하는 것에 불과한 광경이었다.

    이정기를 포위하고 공격해오던 최고 전사들은 더 이상 이정기를 향해 창을 겨누지 않고 있었다.

    카아아앙!

    그녀들의 동료, 아니 동료였던 라예르를 향해 그 날카로운 창을 찔러내고 있었다.

    화아악!

    온 힘을 다 쏟아내는 듯, 그녀들에게서 피어나오는 오오라와 변화된 체형.

    그 모든 힘이 집중되어 있는 창끝이 동시에 라예르를 노리며 찔러 들어갔다.

    카아앙!

    하지만 역시나 결과는 똑같았다.

    튕겨 나오는 창 촉.

    조금 박혀 들어간 창도.

    타앙!

    그대로 튕겨 파편만을 날릴 뿐이었다.

    콰득!

    한 명의 최고 전사를 먹어치운 라예르가 또 다른 사냥감을 찾아 몸을 움직였다.

    “막앗!”

    그에 대항하며 다시금 진형을 갖춘 그녀들.

    하지만 그녀들이 막아서기에 라예르가 끌어낸 힘은 이미 많은 것을 초월한 상태였다.

    ‘또 하나가 뒤섞였다.’

    라예르가 최고 전사들을 노리고 있는 까닭.

    이정기의 눈에는 그 이유가 보였다.

    라예르가 가진 넥타와 가장 비슷한 넥타를 찾아 노리고.

    스르륵.

    그것을 흡수하여 그 덩치를 부풀린다.

    꾸물, 꾸물.

    모든 것이 보이는 이정기의 눈에는 넥타끼리 뒤섞여 엉망진창의 형태가 되는 것이 라예르가 동료를 포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겨운 광경이었다.

    콰악!

    라예르의 손에 붙들린 또 다른 최고 전사.

    아마조네의 최고 전사답게 그녀들의 반항은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녀들의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안, 돼….”

    절망, 그리고 포기의 감정들.

    아무리 최고의 전사라 한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채 좌절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냥꾼의, 전사의 의지가 꺾였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무엇일까.

    주륵.

    침이 흘러내리는 주둥이를 그대로 가져가, 최고 전사의 머리통을 씹는 것.

    그것이 바로 의지가 꺾인 전사들의 최후이자 결과였다.

    같은 것을 욕심내어 뜻을 함께하였고, 그 욕심이 과해 스스로마저 버린 라예르와 그 동료들.

    이정기가 무엇을 할 필요도 없이, 이것은 그녀들이 부른 참사였다.

    태에에엥!

    그래도 아직 의지가 남아 있는 최고 전사가 라예르의 주둥이에 창을 세로로 꽂아 넣어 닫히지 못하게 막아내었다.

    “크아아아!”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잠시, 라예르의 주둥이에 꽂힌 창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턱힘을 이기지 못한 채 부숴져 버릴 것.

    이제 그녀들에게 남은 미래는 없는 듯했다.

    “제발-!”

    그때, 지금껏 자취를 감추었던 한 존재의 목소리가 이정기의 귓가로 들려왔다.

    “제발 라예르를 막아주시오!”

    탐욕에 모든 것을 내던지지 않은 유일한 최고 전사, 보르예.

    전투가 시작되고 자취를 감추었던 그녀가 나타나 이정기를 향해 소리치고 있는 것이었다.

    “제발…, 오직 그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오.”

    빌 듯이 들려오는 목소리.

    “나를 노린 적들이다.”

    그에 답처럼 들린 것은 이정기의 싸늘한 목소리였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것이 솔직한 감정이었다.

    나를 노린 적들이다.

    왕국의 뜻마저 저버린 채 책임지지 못할 일을 벌인 것은 저들이었다.

    헌데 그들이 자신이 무언가를 하지도 않았건만 스스로 자멸하여 서로를 먹어치우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최고 전사들은 전멸한다.

    “감정에 호소할 생각하지 마라.”

    이정기의 목소리.

    “내게 이들을 구해줄 이유 따윈 없으니까.”

    “크윽!”

    입술을 짓씹는 보르예.

    “만일 내가 저들을 구해내길 바란다면.”

    파르르.

    그 순간에도 라예르의 입이 닫히지 못하게 하는 창은 계속해서 떨리며 곧 자신이 부서지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에 합당한 이유를 이야기해.”

    “이것을 주겠소!”

    보르예의 손에 들려있는 낯선 창.

    아마 보르예가 전투가 시작되고 모습을 감추었던 것은 바로 저것 때문인 듯싶었다.

    “이게 진짜 열쇠요!”

    “진짜 열쇠?”

    “메두사를 봉인하는 데 쓰였던 진짜 열쇠! 그리고 메두사의 힘이 깃들어있는 진짜 심장!”

    보르예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가디언 넵투누스의 창이요!”

    “……!”

    처음으로 이정기의 얼굴에 표정이 깃들었다.

    하지만 그건 분노였다.

    일그러진 이정기의 얼굴.

    보르예의 제안은 확실히 흥미로운 것이 맞지만.

    “그건 원래 내 것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저것의 주인은 이들이 아니다.

    헌데.

    “남의 것으로 거래하자는 건가?”

    “그런 것이….”

    “그런 게 아니라면….”

    파르르.

    “더욱 합당한 이유를 대라.”

    내가 이들을 살려야 할 이유.

    아니.

    ‘아마조네.’

    자신이 그들을 거두어야 할 이유.

    “이건 시험이다.”

    이정기는 분명 왕좌의 시험을 시험이라 불렀다.

    아마조네의 여왕 히폴리테가 내려준 시험이 아닌, 이정기가 내어준 숙제를 풀어야 하는 시험.

    그리고 주안나는 그 시험에 합격했다.

    그렇다면 다음 차례는 아마조네였다.

    파르르.

    질끈 눈을 감는 보르예.

    마침내 그녀가 눈을 뜨며 소리쳤다.

    “나는 전사요.”

    그녀가 넵투누스의 창을 들어 라예르를 겨누며 말했다.

    “그리고….”

    죽음을 각오한 듯 기세를 펼치는 그녀.

    그리고 그녀의 기세와 마력이 창과 공명하며 공기를 떨어 울리기 시작했다.

    주변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푸른색의 오오라.

    “그대 또한 전사요.”

    전사라.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을 이대로 내버려 둘 것이오?”

    마지막을 결심한 듯 결연한 보르예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마치, 이것이 정답임을 확신한 듯 만일 정답이 아니더라도 그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대가 나서지 않는다면.”

    그녀가 땅을 박차며 나아갔다.

    “내가 먼저 사냥할 수밖에.”

    파직!

    마침내 부서져 버린 창.

    또 하나의 최고 전사를 짓씹으려는 라예르의 입.

    보르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런 라예르의 눈을 찔러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파아앙!

    천둥처럼 울리는 파공성과 함께.

    “크어어어어!”

    라예르가 쓰러지고 있었다.

    라예르가 서 있던 자리.

    “그건 맞는 말인 것 같군.”

    그 자리에 이정기가 서 있었다.

    * * *

    ‘정기야.’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무렵부터.

    ‘너는 사냥꾼이다.’

    할아버지가 언제나 해왔던 말이었다.

    ‘동시에 너는 전사이기도 하다.’

    어린 자신을 붙잡고 할아버지는 언제나 그렇게 말해주었다.

    사냥꾼이라고, 전사라고.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간단했다.

    ‘사냥감이 되지 말거라.’

    누군가에게 사냥당하지 말고, 누군가를 사냥하라고.

    피식자가 아닌 포식자가 되라고.

    ‘사냥감들의 발버둥은 기억하지 말거라.’

    오직 사냥감을 사냥하는 것만을 신경 쓰라고.

    세월이 흐르며 할아버지는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이정기는 언제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다.

    ‘사냥꾼, 전사.’

    할아버지가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이미 자신이 그러한 존재라는 것을 각인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냥꾼이자 전사다.’

    그들이 정확히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해야 하며 어떤 신념을 가져야 하는지 할아버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행동을 보며 이정기는 스스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었다.

    그렇기에.

    ‘아마조네.’

    히폴리테와 그녀들과의 만남이 반가웠다.

    지구의 헌터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것들과 달리 타성에 물들어있는 자들.

    이제야 진짜 전사와 사냥꾼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번 시험은 주안나에 대한 시험이자, 또 다른 이에 대한 시험이자.

    ‘아마조네.’

    히폴리테가 자신에게 맡기려 하는 아마조네에 대한 시험이었다.

    진짜 사냥꾼과 전사.

    그들이 무엇인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고 싶다는 생각.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실망스러웠지만.

    씨익.

    단 한 명.

    “결과가 어찌 되든 이 창은 돌려주겠소. 이것은 그대의 말대로 내 것이 아닌, 그대의 것이요.”

    단 한 명의 전사이자, 사냥꾼이라도 존재하면 되었다.

    “걱정마세요.”

    이정기는 하대가 아닌 공대를 했다.

    “원하는 대로 될 테니까요.”

    그건 이정기가 상대를 인정했다는 뜻.

    화르륵!

    이정기의 몸이 어느새 사자갑주에 둘러싸여 있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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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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