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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168화 (168/284)
  • 제7권 18화

    168

    “……!”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진 라예르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자연과 동화되는 방금의 기술은 그저 기척만 죽이고 모습을 숨기는 은신의 능력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자연, 그리고 자연의 마력과 동화되어 마력을 증폭시키고 그 존재 자체를 자연과 일치시키는 것.

    그렇기에 막대한 피해 저항 능력이 있었으며, 동시에 공격조차 어려운 상태가 바로 그것이었다.

    파짓!

    하지만 뱃가죽에서 피어오르는 전류의 불꽃.

    쩌르르.

    뱃속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동화의 능력이 이정기에게 아무런 소용도 없음을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흡!”

    하지만 라예르 또한 한 방에 모든 것을 포기할 위인이 아니었다.

    숨을 몰아쉬며, 다시금 자연과 동화되는 그녀.

    부릅뜬 눈의 그녀에게 이정기의 주먹이 다시 쇄도하려는 듯했으나.

    쒜에엑!

    세 개의 창이 회전하듯 휘몰아치며 이정기를 향해 찔러 들어왔다.

    카앙!

    울려 퍼지는 쇳소리.

    이정기는 라예르에게 한 방 더 갈겨주겠다는 목표를 완수하지 못한 채, 두 팔의 건틀렛으로 최고 전사들의 창을 막아내고 있었다.

    “라예르! 정비해라!”

    “알겠다.”

    뒤로 물러선 라예르.

    카카캉!

    그와 함께 이정기와 최고 전사들이 뒤얽혀 눈이 부신 불꽃을 튀겨대고 있었다.

    “하!”

    방금 전의 일격에 의한 데미지를 소화하고 있는 라예르.

    ‘이정기.’

    과연, 올림포스의 후계 중 하나라는 것일까.

    만만히 보았던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겪은 그의 힘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패배감에 찌들어 있지는 않았다.

    카캉!

    저 정도 힘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면, 애초부터 아마조네의 왕좌 따위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마조네가 무엇이냐!’

    지지 않는 사냥꾼이다.

    ‘내가 누구냐!’

    그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최고 전사들 중 하나다.

    “흡!”

    최고 전사들의 힘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휘이이잉.

    라예르에게로 몰아치는 바람.

    마력이 움직여 라예르에게 빨려들며 만들어내는 바람이었다.

    자연과의 동화로 증폭되었던 라예르의 마력이 또 한 번 배로 증폭되고 있었다.

    수많은 아마조네들 중에서도 그녀들이 최고 전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

    바로 이 힘을 받아들일 자격이 있기 때문이었다.

    최고 전사들이 아마조네의 정점에 설 수 있는 이유.

    바로 이 힘 때문이었다.

    아마조네가 강할 수 있는 이유 또한 이 힘 때문이었다.

    “선조의 힘을 꺼낸다.”

    라예르의 말에 이정기와 맞서던 최고 전사들이 잠시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쉬이 꺼내선 안 되는 힘이지만, 이정기가 상대라면 납득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라예르.

    화악!

    그녀를 감싸는 돌풍이 일순 사라졌다.

    그리고 나타난 라예르의 모습은 아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날카롭지만 아름다웠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방어구와 같은 것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투두둑!

    터질 듯한 근육, 부풀어 오른 덩치.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성별을 따져 볼 수 없는 하나의 전사였다.

    ‘선조의 힘.’

    아마조네의 비술로 아마조네의 전사들은 죽기 전 그 힘과 경험을 일부 남긴다.

    그리고 여왕의 선택을 받은 이들에게, 자격이 있는 이들에게 그 힘이 깃든다.

    그것이 아마조네의 최고 전사들이 일반 전사들과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이며.

    “올림포스의 후계자여. 그대를 인정하여.”

    그녀들이 무적이라 불릴 수 있었던 이유였다.

    스윽.

    그림자만 남겨두고 사라진 라예르.

    다시 나타난 그녀의 창이 이정기의 목을 정확히 노리고 있었다.

    물러서며 손을 치켜드는 이정기.

    콰아앙!

    이정기의 주먹과 라예르의 창이 만들어낸 굉음은 지금까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주먹에 가로막힌 창.

    하지만 라예르의 공격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창을 한쪽 손으로 쥔 채, 다른 팔을 움직였으며.

    휘익!

    그와 동시에 왼 다리를 돌리며 이정기의 복부를 노렸다.

    쾅!

    다시금 터져나온 굉음은 이정기의 복부에서 난 것이었다.

    “…….”

    충격이 있는 듯 물러나는 이정기.

    그리고.

    “돕겠다.”

    라예르처럼 선조의 힘을 일깨운 최고 전사들이 이정기를 포위하며 섰다.

    * * *

    끼에에엑!

    듣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굳어버리는 듯한 소름 끼치는 비명.

    “닥쳐-!”

    주안나가 비명을 내지르는 메두사를 향해 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쒜에엑!

    메두사는 고통을 느끼는 듯 비명을 지르면서도 제 머리칼을 뱀처럼 움직여 주안나의 창을 옭아맸다.

    “어딜!”

    창을 부여 잡힌 주안나, 거력이 창을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고 있었지만 주안나는 창을 놓치지 않았다.

    그저 더 많이 더 강한 힘을 창에 싣는다.

    그리고.

    ‘뚫는다.’

    물러서 봐야 답이 없다.

    ‘지금이 기회야.’

    메두사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지금만이 기회다.

    투둑!

    머리칼을 끊어내며 나아가는 창.

    하지만.

    “컥!”

    주안나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창을 붙잡지 않던 메두사의 머리칼이 날카롭게 변해 주안나의 어깨를 꿰뚫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느껴지는 고통에 창을 부여잡은 손에 힘이 빠지려던 순간.

    카앙!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다다닥!

    메두사의 머리칼이 끊어져 바닥에 흩날렸다.

    “포션입니다.”

    안인회.

    “하아.”

    카캉!

    유려하게 검을 휘두르고 있는 안인회.

    아무리 그가 전설적인 헌터라지만 혼돈의 세대도, 신세대도 아닌 안인회였기에 그가 가진 마력은 메두사에게 상처를 입히기에 부족했다.

    사각!

    하지만 조금씩, 안인회의 검이 메두사의 머리칼을 끊어내고.

    끼에에엑!

    상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 안인회를 향해 메두사의 머리칼과 손톱이 파고들려던 순간이었다.

    마력의 총량을 따지자면 안인회는 이 또한 막아낼 수 없다.

    그러나.

    카앙!

    안인회의 검은 메두사의 공격마저 막아내고 있었다.

    아니 흘려내는 것이었다.

    공격해 상처입힐 수 없는 존재를 상처입히는 것은.

    ‘결.’

    안인회의 검이 상대의 결을 따라 베어내고, 그 결을 정확히 노릴 수 있는 빠름과 정교함이 있었기 때문.

    카앙!

    안인회가 메두사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이유 또한 공격의 결을 보며 그 틈을 찔러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검성.’

    그 명성이 가진 검술의 실력은 이 정도였다.

    믿을 수 없는 싸움이라 하는 것이 맞겠다.

    그러나 그 싸움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푹!

    절대적인 마력의 총량이 이렇게나 차이 나는 상황이라면, 많은 것을 무시할 수 있다.

    푸우우욱!

    “아저씨-!”

    안인회의 살갗이 뚫리는 파육음.

    주안나가 달려들어 창을 내찔렀지만, 메두사의 머리칼과 손톱이 주안나를 튕겨내었다.

    그리고.

    쾅!

    메두사의 등 쪽에서 폭발이 일었다.

    “돕겠다.”

    현성호, 그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메두사를 막아서며 말했다.

    카아앙!

    “지금은 메두사를 사냥하는 데 집중하죠.”

    이진석.

    쒜에에엑!

    강민혁이 저 멀리서 화살을 쏘아내고 있었다.

    이성과 백두의 헌터들이 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꾸물, 꾸물.

    메두사의 파편이 꿈틀거리며 생성된 열화된 메두사들.

    그것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아….”

    조금은 지친 듯한 목소리.

    덜덜덜.

    떨림을 숨기지도 못하는 윤하민도 조금은 멀리 서 있었다.

    “…….”

    와락 얼굴을 일그러트린 주안나.

    하지만.

    “…….”

    그녀는 그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메두사에게서 느낀 힘,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콰아앙!

    저 한쪽에서 싸우고 있는 굉음을 내는 대상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이정기.’

    인정하긴 싫지만 이미 속으론 인정했다.

    이정기가 최고 전사들을 막지 않고 있었다면 자신은 이미 저 땅에 누워 제 핏물로 웅덩이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그렇다고 포기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그저.

    끼에에에엑!

    메두사를 사냥하는데 집중할 뿐이었다.

    * * *

    크허어엉!

    붉은 사자가 라예르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화르륵!

    시뻘겋게 끓어오르는 열기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리라 생각했지만, 라예르는 겁먹지 않은 채 두 팔을 뻗어냈다.

    콰악!

    거대한 사자의 아가리를 붙잡은 라예르.

    “끄흑!”

    그녀가 신음을 토해내며 핏줄을 돋아내고 있었다.

    라예르의 피부가 붉게 타올라 갈라지기 시작했을 때.

    퍼어엉!

    사자는 결국 라예르를 이기지 못하고 두 갈래로 찢겼다.

    “허억.”

    숨을 토해내는 라예르.

    그녀가 사나운 눈으로 사자의 주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콰앙! 쾅!

    이정기.

    ‘그래.’

    라예르는 생각을 바꾸었다.

    여왕 히폴리테가 주안나와 이정기에게 메두사를 사냥하라는 시험을 내려주었다면, 이것은 라예르 자신이 본인에게 주는 시험이다.

    ‘왕좌.’

    아마조네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선 강력한 사냥감의 머리가 필요했는데, 자신의 경우.

    “죽여주마.”

    이정기의 머리가 그 시험의 증명이 될 것이다.

    투둑!

    라예르의 핏줄과 근육이 더욱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라예르!”

    다급히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

    최고 전사들의 몸에는 지금껏 이어져 내려온 수많은 전사들의 영혼과 힘이 담겨 있었다.

    영혼들이 가진 능력과 힘이 다르며, 그 중 위험한 이의 영혼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금기된 것은 한 가지.

    “라예르!”

    결코, 한 번에 두 가지 이상의 선조의 힘을 사용하지 말 것.

    투둑!

    라예르는 그 금기를 어겼다.

    몸 깊숙한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거력.

    꽈아악.

    그 거력이야말로 형언하기 힘든 충만감을 주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그 무엇이고 부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전사로 인정받아 받은 이 창?

    파스슷.

    먼지로 화해 사라져도 상관없다.

    이 육체만 있다면, 이 선조의 힘만 있다면.

    “크아아아아!”

    최고의 전사가 되어 사냥감을 사냥할 수 있을 것이다.

    쿠쿠쿠쿠쿠!

    라예르가 코뿔소처럼 이정기를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에 더 이상 최고 전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이정기, 그 하나만을 보고 있는 라예르.

    콰득!

    그런 그녀가 울려 퍼지는 소음에 멈추어 서 고개를 숙여 제 배를 보았다.

    “…….”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지금의 자신은 무적일 텐데.

    하지만.

    “크아아아아악!”

    배에 뚫린 구멍은 지독한 통증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더 큰 힘을 필요로 한다고.

    투둑!

    라예르의 이성이 끊어졌다.

    두 가지의 선조의 영혼과 힘으로 안 된다면.

    파아아아앗!

    세 개, 네 개를 끌어다 쓰면 될 것이다.

    이정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을 해 봐.”

    그런 라예르를 보며 조용히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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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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