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권 17화
167
“꺼져, 내 싸움에 훼방 놓지 말고.”
최고 전사들을 향한 살기 어린 말.
주안나의 진심이 여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자신을 찾아왔던 최고 전사 라예르.
‘돕겠습니다.’
손을 건넸던 그녀는 이정기와 백두를 제거하고 왕좌를 가지라 말했다.
그리고 그때, 주안나는.
“분명 말했지?”
살기 등등한 눈.
“그딴 더러운 짓에 엮이고 싶지 않다고.”
주안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이정기를 제거하는 것? 자신도 바라마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최고 전사들은 이 싸움이, 왕좌의 시험이 주안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힘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으나 거기까지였다.
이 싸움은.
‘증명.’
주안나의 증명이었다.
누군가의 딸로 태어났기에 가진 힘과 권력이 아닌 것.
이성, 성혈, 그따위 것은 다 집어치운 오롯이 주안나라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싸움.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고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다.
“비키지 않으면.”
주안나의 눈이 더욱 짙은 빛을 토해냈다.
점차 검게 물드는 그녀의 주변.
주안나가 마침내 숨겨두었던 모든 힘을 개방하고 있는 것이었다.
“너희도 덤벼.”
“허.”
그에 대한 답은 라예르의 짧은 비웃음이었다.
“상대를 가늠할 줄도 모르는 작자에게 왕국을 맡길 뻔했다니.”
블랙 메두사 퀸, 아니 오리지널 메두사는 아마조네의 최고 전사들과 여왕이 달려들어 겨우 봉인밖에 못 했던 괴물이었다.
하물며 그것도 힘이 봉인되어 있던 상태.
그런데 지금 그 봉인을 풀었다.
아직은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너무 긴 세월을 봉인되어 있었기에 그 힘이 온전히 않다고 하지만 주안나의 상대는 아니었다.
사냥꾼으로서 사냥감의 파악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은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실수.
“어차피 너 또한 죽어야 했다.”
라예르의 표정이 변했다.
스윽.
천천히 움직인다 생각했던 그녀의 팔.
훽!
하지만 그 팔은 어느새 휘둘러진 것도 모자라 기이하게 생긴 창을 쥐고 있었다.
주안나의 목을 향해 정확히 휘둘러지고 있는 창의 날.
그리고.
카앙!
불꽃이 튀었다.
주안나는 아니었다.
“혼자 하시게 두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안인회.
그가 라예르의 창을 막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창에 담긴 힘을 흘려내려 애쓰는 안인회.
아득.
하지만 창에 담긴 힘은 쉬이 흘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버러지 같은 인간들이….”
라예르의 입가에 피어오른 조소.
스윽.
주안나가 혼자가 아니듯, 라예르 또한 혼자가 아니었다.
카앙!
안인회를 향해 찔러 들어온 또 하나의 창.
그리고.
콰아아앙!
이성의 중앙에서 터져 나온 폭발.
전투가 시작됐다.
***
“크윽.”
현성호는 입술을 짓씹었다.
콰앙! 콰앙!
눈에 훤히 보이는 멀지 않은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
어찌 된 영문인지 안내자였던 아마조네의 최고 전사들과 메두사, 그리고 이성이 맞붙고 있었다.
백두에게 있어 이것은 최고의 상황이 맞았다.
경쟁자이자 적인 이성이 감당치 못할 싸움에 전력이 깎이고 있는 것.
콰앙!
최고 전사들이 드러낸 힘은 이성이 감당키 어려울 정도로 강맹한 것이었다.
거기다.
키에에에엑!
듣기 거북한 비명을 내지르며 움직이는 메두사.
‘이대로라면….’
현성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안인회가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고 하나, 눈에 훤히 밀리고 있었고 주안나가 숨겨둔 힘이 소름이 돋을 정도였으나.
카아앙!
최고 전사 둘을 혼자 상대할 수는 없었다.
키에에에엑!
무언가 이상해진 메두사가 저기에 제대로 합세한다면?
‘전멸.’
이성은 전멸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백두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기쁜 상황.
그러나 던전에 들어와서까지 이성에 몸담고 있던 현성호와 호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당장 달려들어 이성과 함께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선택을 했다.’
자신은 결국 이정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정기의 싸움에 지금의 상황은 내버려 두어 자멸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었다.
“크윽!”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백두를 욕할 수도, 이성을 도울 수도 없다.
콰아앙!
그 사이에도 이성의 전력을 깎여만 가고 있었다.
“차이를 보여주마.”
최고 전사들이 저딴 개 같은 이유로 이성을 농락하지 않았다면 벌써 사망자가 백은 넘게 나왔을 터였다.
“크윽!”
그리고 또 한 명.
“길드장님.”
안태민은 결국 참지 못한 채 이정기를 향해 나서서 말했다.
“저는….”
이정기에게 돌아오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패배라는 명목으로 기회가 되어 돌아왔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성이 처참히 뭉개지고 있는 것.
자신이 따르려고 했던 주안나가 짓밟히는 것.
‘아버지!’
언제나 뛰어넘고자 생각했던 아버지가 무너지는 모습을 안태민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저는…!”
그러니 도와야겠다.
이정기가 하지 않겠다면 혼자서라도.
모두의 시선이 이정기에게로 향했다.
“길드장님. 도와야 합니다.”
이진석 또한 한마디를 거들었다.
“이성이 이대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다면….”
이성에 몸담았고, 성혈에 대한 충성심도 있다.
하지만 이진석은 지금 오직 이정기에게만 충성한다.
그리고 그런 충성심을 기반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적들을 감당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최고 전사들, 그리고 메두사.
그 힘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그러니 이성을 돕고 힘을 합쳐 적을 토벌해야 한다.
원래부터 계획했던 대로 길드전을 벌여서라도 결과는 그때 내어야 한다는 것.
“…….”
해야 할 이야기가 있는 자들은 모두 이야기를 마쳤다.
남은 것은 결정권을 가진 이정기의 선택뿐이었다.
마침내 열리기 시작한 이정기의 입.
“주안나.”
하지만 그런 이정기가 부른 것은 뜬금없게도 주안나의 이름이었다.
순간.
훽! 훽! 훽!
저 멀리 전투를 치르던 자들의 고개가 돌아가 이정기를 보았다.
화아악!
살기와 분노, 마력으로 등등한 주안나의 눈이 이정기를 또렷하게 보고 있었다.
“시험은.”
그 이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어느새 이정기는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
그 대신.
콰앙!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는 충격음이 들려왔다.
***
“시험은 합격이다.”
백두의 진영에서 사라졌던 이정기가 나타난 곳은 주안나와 최고 전사들 사이였다.
주안나를 향해 오는 두 개의 창날.
그 하나하나가 대지를 가를 만큼 파괴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것들이었다.
카앙!
하지만 그 두 창날이 각각 한팔에 잡혀 있었다.
“……!”
지금껏 관심 없다는 듯 떨어져 있던 이정기의 양팔이 그 주인공이었다.
최고 전사들은 자신들의 창이 이렇게 잡힐 줄 몰랐다는 듯 당황한 눈초리였고.
“뭐…?”
주안나는 황당하다는 듯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지금 합격이라고? 무슨 개소리를….”
“적어도 용서받지 못 할 짓은 하지 않았으니 합격이라는 거다.”
최고 전사들이 주안나를 끌어들이려 했던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주안나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해도 겁날 것은 없었다.
이정기에게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정기가 중요시한 것은.
‘주안나가 제안을 받아들이냐.’
힘을 얻고자 무엇이든 저버리려 했다면.
왕좌의 시험을 치르는 주제에 다른 것에 눈독을 들였다면.
그래서 자신을 노렸다면.
‘불합격.’
결과는 낙제였을 것이다.
이성을 갖고자 하는 이정기.
그러나 더 이상 성혈들을 무조건적으로 봐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스스로를 증명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라.
그렇다면 적어도 기회는 주겠다.
그것이 이정기의 생각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할 정신이 있나?”
“크윽.”
주안나는 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니.
“제대로 시험을 치를 수 있게 해주지.”
“뭐?”
카아앙!
최고 전사들의 창을 튕겨낸 이정기.
스윽.
이성의 진형에서 날뛰던 최고 전사와 안인회를 가지고 놀던 최고 전사까지.
어느새 보르예를 뺀 네 명의 최고 전사가 이정기를 둘러싸고 있었다.
“내가 최고 전사들을 붙잡아두겠다.”
“지금….”
“헛소리하지마. 이대로면 증명이고 뭐고 안인회와 이성과 함께 전부 죽을 거니까.”
“큭.”
부정할 수 없는 진실.
알고 있지만 해야만 했었던 일.
“너는….”
이정기의 시선이 백두를 바라봤다.
순간 사라졌던 이정기가 전장에 들어서 있는 것을 본 그들의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처어억!
똑같이 전장에 서는 것.
싸움을 구경만 했던 백두가 마침내 움직이고 있었다.
“치르려던 시험을 치러.”
“네까짓게 뭐라고….”
“메두사를 두고, 윤하민과 싸워. 그리고 이긴다면 그때 나도 네 시험을 치러주지.”
일렁이는 주안나의 기운.
잠시 동안 고민하는 그녀의 감정이 마력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타앗!
그녀가 땅을 박찼다.
“고마워할 거라곤 생각하지마.”
“그런 생각 한 적 없어.”
이정기의 위로 스쳐 지나가는 주안나.
“어딜!”
라예르가 그런 주안나를 향해 창을 찔러넣으려 했다.
퍼어엉!
하지만 그녀의 뱃가죽에서 울려 퍼진 북소리와 함께, 그녀의 창은 궤적을 잃고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말했을 텐데, 너희는 내가 붙잡고 있겠다고.”
“…….”
주안나를 상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표정.
애초부터 최고 전사들은 이정기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주안나와 함께 상대하거나, 주안나를 먼저 제거하려 했건만 상황이 꼬였다.
“올림포스의 후계, 너무 자만하지 마라.”
충격을 벌써 이겨낸 듯 라예르가 타오르는 눈으로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티탄과의 전쟁에서 가장 앞에 섰던 것이 우리 아마조네스이다.”
증폭되기 시작한 그녀들의 마력.
과연, 주안나를 상대할 때는 진심이 아니었다는 듯 최고 전사들의 기세가 확연히 바뀌어 있었다.
“그때도 올림포스는 아마조네를 갖기 위해 수를 썼었지.”
일렁.
그녀들의 모습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형체를 지우듯, 흐릿해져 가는 그녀들의 몸.
“하지만 갖지 못했던 아마조네다. 하물며 올림포스의 진정한 주인도 아닌 너 따위가….”
분명 이정기의 눈앞에 있던 그녀들이 사라졌다.
아니다, 그녀들은 눈앞에 있다.
‘동화.’
그저 자연과 동화되어 알아차리기 힘들 뿐이다.
이것이 아마조네의 최고 전사들만이 배울 수 있는 비전이었다.
자연과 동화된 그녀들은 자연의 힘을 끌어쓰고, 그녀들의 육체는 자연과 동화되어 최상의 상태로 변한다.
-사냥감이 되어 죽어라.
메두사를 사냥했을 때처럼, 그녀들의 온 힘이 이정기에게 쏟아질 것이다.
그리고.
퍼어어엉!
다시 한 번 뱃가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파짓!
시퍼런 전류가 튀어 올랐다.
“할 말은 끝났나?”
이정기의 주먹이 라예르의 배에 꽂혀 있었다.
라예르는 충격에 동화가 풀린 채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주 소 | 경기도 하남시 조정대로 35 하우스DL타워 F915-1(9층)
대표전화 | 070-8233-6450
팩 스 | 02-6442-7919
홈페이지 | www.osmedia.kr
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 위 책은 (주)타임비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이므로 발행자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로든 이 전자책과 내용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며 무단 복제/전제하거나 배포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최강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