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권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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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숱한 게이트와 던전에서 구르고 구른 이성과 백두의 헌터들도 긴장한 채 목숨을 걸어야 하는 몬스터가 바로 녀석들이었다.
이성도 백두도 지난 싸움에 부상자들이 생긴 상황이었고, 메두사들은 약간의 지성마저 있어 상대하기 더욱 까다로운 것이 사실이었다.
현실적으로 이런 곳에 윤하민이라는 초보 헌터가 들어온 것은 비정상적인 일.
그러나 가장 중요했던 것.
‘각오한 자는 따라오라.’
이정기의 그 말에 발을 디딘 것이기에 그녀가 지금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어쩌다 이정기의 대전사로 아마조네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 던져진 그녀.
상식을 내세운다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야 하건만.
“허억! 허억!”
그녀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마침내 메두사의 살갗에 상처를 내는 데 성공했다.
“끼에에에엑-!”
분노한 메두사가 그 뱀 같은 머리칼을 토해내며 윤하민에게 석화를 걸려던 찰나.
서걱!
메두사의 머리가 붉은 칼날에 깔끔하게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괜찮으십니까?”
“가, 감사해요.”
이진석의 목소리에 윤하민이 떨림을 멈추고 감사를 표했다.
원래라면 그녀의 신분이 어떻건 백두의 헌터 하나로 생각해야 하지만, 지금 그녀가 짊어진 것이 있기에 그녀의 대우는 달라졌다.
“그래도….”
이진석은 떨어져 부서지는 메두사의 머리와 분리된 몸통에 생긴 자상을 보며 말했다.
“놀랍네요.”
그것만큼은 진심이었다.
처음 그녀를 선두에 세우겠다는 이정기의 말에 이정기의 말이라면 이젠 더러운 흙탕물도 성수라고 하면 믿을 수 있을 이진석이었지만 반신반의했다.
‘초보 헌터.’
그것도 실전 경험도 크게 없는 애송이 헌터.
어쩔 수 없이 데려왔지만, 맨 후방에 두어 그 목숨만 부지하게 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대전사로 선택되었다 한들.
‘달라질 건 없어.’
그저 뒤에서 목숨만 유지한 채 만들어지는 자리를 차지하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선두에 서겠다는 것은 이정기의 뜻만이 아닌 윤하민의 뜻이라고 했다.
반신반의.
아무리 이정기의 대단한 능력이 있어도 가능할까 싶었는데.
“정말…, 메두사를 상대할 수 있게 될 줄은.”
겨우 상처 하나 남긴 것이지만, 그리 쉽게 생각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최상위 몬스터를 상대로 두려움 없이 무기를 내찌른다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각오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었으니까.
또한.
‘마력의 상승 폭이….’
그런 메두사에게 상처를 냈다는 것은, 윤하민에게 그러한 공격력이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윤하민의 전신을 훑는 이진석.
그 어떤 음흉함이 담겨 있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저.
‘아무리 레전드 등급의 아이템을 착용했다고 하지만….’
그녀가 입고 있는 모든 장비.
그것이 전대 시엘이나, 올림포스에서 사라졌던 레전드 등급의 장비를 마동철이 수리하여 가지고 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윤하민의 성장을 겨우 그 이유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레전드 등급의 무구는 말 그대로 전설과 같은 성능을 자랑하지만, 그 사용자의 능력도 따르는 법이었다.
처음엔 저 무구들의 효능이 윤하민이 죽지 않게 해주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무구를 사용하고 있어.’
무구의 성능을 사용하고 있다.
그녀의 마력이 증폭되고 있다.
몬스터를 바라보는 시선에 겁이 없어졌다.
움직임이 민첩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세월이 흘러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납득할 수 있지만.
‘단 몇 번의 전투.’
그것으로 벌어진 일이라면.
“허.”
그저 헛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더 열심히 할 수 있어요. 아뇨 무조건 해낼게요.”
거기다 꺾이지 않고 타오르는 저 눈.
이정기와 같은 또 다른 천재일까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이진석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이 새로운 천재 또한.
‘길드장님.’
이정기가 아니었다면 여기 서 있는 것조차 불가능했으리라.
* * *
윤하민의 성장을 보고 있던 이정기는 입가를 말아 올렸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였다.
그녀에게 입혀준 레전드리 등급의 무구들.
그녀에게 특히나 신경 써 주고 있는 왕의 군단의 효과.
대전사로 선택했을 때 주었던 넥타의 일부까지.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 그녀의 성장은 당연히 납득할 수 있었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절대적인 것.
‘시간.’
그 모든 것이 있더라도 그녀의 성장 속도는 결코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직이야.’
그녀의 진짜 능력은 아직 발아하지도 않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속에 숨겨져 있는 진짜 씨앗은 지금 보여준 능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
이정기가 해준 것은 그 씨앗이 서둘러 발아할 수 있도록, 확실히 발아할 수 있도록 도운 것뿐이었다.
나머지는.
‘온전히 그녀의 능력이자, 의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기사, 그녀가 평범한 헌터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실전 경험이 부족하고, 총 마력량이 부족하지만 분명 그녀는 윤문산 당 대표의 딸이었고, 윤문산은 테베 길드의 길드장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헌터로 각성했고, 일정 수준의 훈련은 받아온 그녀.
길드나 헌터에 관심이 없던 그녀였지만, 그녀에게는 확실히 재능이 있었다.
그렇게 며칠 더 흐르자, 윤하민은 더욱 제법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화르륵!
검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그녀가 드디어 레전드 등급의 무구가 가진 힘을 일부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의 성장은 이루어지고 있다.
이정기의 눈은 전장 전체를 보고 있었다.
“…….”
메두사를 사냥하면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두 길드.
그런 두 길드 사이에는 몬스터뿐만이 아닌 긴장감이 계속해서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언제 서로를 노릴지 모르는 상황.
몬스터라는 억제제가 있지만, 미친 척한다면 공멸마저 가능할 상황.
그 상황 속에서 아마조네의 최고 전사들은 착실히 길 안내를 하고 있었다.
‘어쩔 테냐.’
시꺼먼 속을 가지고 있는 그녀들.
또 한 번의 전투가 끝나고, 각자의 길드가 지친 숨을 토해내며 휴식할 때.
스륵.
이정기의 뒤로 그림자가 일렁였다.
“뒤를 잡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자칫 오해할 수 있으니까요.”
“그대가 그 정도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들려온 목소리를 향해 뒤돌아선 이정기.
그곳엔 앞줄에서 번갈아 길 안내를 하던 최고 전사 중 하나.
“보르예.”
보르예가 서 있었다.
강민혁을 통해 위협을 알려온 자이자, 최고 전사 중 유일하게 여왕의 선택을 존중하는 전사.
그녀는 원정에 떠나기 전 만난 이후 단 한 번도 이정기와 접촉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지금 노출을 감수하고 자신과 독대하기 위해 나타났다는 것은.
“결정되었나 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중요한 사항이 있다는 뜻으로 생각해도 좋았다.
“오늘.”
무거운 얼굴과 목소리.
“라르예가 주안나를 찾아간다.”
저들의 목표는 주안나의 편을 들어 백두, 아니 자신을 제거하고 아마조네의 왕좌를 차지하는 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주안나는 이미 일부 여왕의 힘을 이어받았다.”
보르예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잇고 있었다.
“그들이 힘을 합친다면…, 아무리 그대라도 어려울 수 있다.”
자신의 힘을 보았으면서도 저런 소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최고 전사들의 힘이 자신의 생각 이상일 수 있다는 소리였다.
“또한 그녀들에겐, ‘열쇠’가 있다.”
열쇠.
“주안나를 설득하는 것이 어떻겠나. 저들의 목적은….”
“아뇨.”
이정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르예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안다.
‘최고 전사들은 주안나를 그저 이용할 생각이야.’
애시당초 그녀들은 주안나에게 아마조네의 왕좌를 물려줄 생각이 아니었다.
주안나를 이용해 자신을 제거하고, 주안나마저 제거해 자신들이 왕좌를 차지하는 것.
보르예는 그 정보를 통해 주안나를 설득하여 힘겨운 싸움을 만들지 말자고 하는 것이었다.
전에도 제안했던 일.
그때도 이정기는 거절했다.
“그러지 않을 겁니다.”
“왜….”
보르예는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듯했다.
함정이 위험하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미리 함정을 안다는 것은 오히려 함정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다.
전략적인 이점, 오히려 상대의 함정을 역이용해 역공할 수도 있는 일.
피해를 최소화시키고 상대를 제압시키는 것만큼.
“……!”
그때 보르예는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그동안 이정기를 찾지 않는 까닭은 다른 최고 전사들의 눈을 피한 탓도 있지만, 이정기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니었어.’
그녀는 자기 생각이 송두리째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정기는 처음부터 고민할 거리가 없었다.
아니.
‘내가 찾지 않아도 되었어.’
보르예가 최고 전사들이 주안나를 이용해 함정을 판다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도 없었다.
이정기는.
“어떤 결과든 그대가 승리할 것이라 생각하는군…!”
패배 따위를 생각지 않는 겁니다.
“예.”
들려오는 이정기의 대답에 보르예는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애시당초….”
다시 등을 돌린 이정기.
그는 아까와 같이 전장 전체를 눈에 담고 있었다.
왕좌의 시험이라고 했던가.
“시험은 제가 치르고 있는 것이니까요.”
여왕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 *
근 한 달에 가까운 시간.
블랙 메두사 퀸을 찾는 원정에 소요된 시간이었다.
매일같이 수 번에 걸친 강도 높은 전투.
부상을 제대로 회복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전투의 반복.
“하아….”
이성과 백두 할 것 없이 모든 헌터들은 지쳐있었지만.
씨익.
백두의 헌터들은 그만한 성장 또한 함께했다.
거의 엇비슷한 수의 메두사를 처치한 두 길드.
그러나 그 결과는 전혀 달랐다.
이성은 부상과 보급품의 고갈을 얻었지만.
꽈악.
백두는 성장을 얻었다.
왕의 군단이 주는 효과.
그로 인해 메두사를 쓰러트리며, 빠르게 성장해 이성과의 격차를 줄인 것이었다.
적이 강해지는 것을 두고만 봐야 하는 이성은 난색을 표했지만, 아직 이성은 무언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직 수뇌부만이 무슨 생각이 있는 듯 묵묵히 전진을 명하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이 지긋한 싸움의 끝이 도래하고 있었다.
싸아아.
여지껏 느낄 수 없었던 싸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돈다.
싸아아.
그 기운은 대지 너머, 저 어두운 공간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덜덜덜.
몬스터와의 수없는 전투를 겪으며 이 자리까지 온 헌터들이었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몸이 떨리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건 공포였다.
근원에서부터 치밀어오르는 공포.
피식자가 포식자를 보았을 때 느낄 수 있는 공포.
어찌할 도리 없이 먹혀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공포.
꿀꺽.
이미 상대의 아가리에 들어와 있다는 공포.
그리고 그곳이.
“블랙 메두사 퀸의 둥지다.”
최고 전사 라예르의 설명.
그리고 그녀는 조용히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이것을 땅에 박는 순간.”
기다랗게 자라있는 나뭇가지는 마치 누군가의 시체와 같은 모습이었다.
“블랙 메두사 퀸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천천히 땅에 그것을 내려놓는 라예르.
“준비되었는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하는 목소리.
“물론.”
조금은 지친 듯한 주안나의 당찬 목소리와.
“네.”
윤하민의 떨리는 목소리가 교차했다.
“좋다.”
그리고 뒤돌아선, 라예르.
푸욱!
그녀가 커다란 나뭇가지를 땅에 박아넣었다.
동시에.
씨익.
그녀의 입매 또한 함께 비틀어졌다.
블랙 메두사 퀸, 원래라면 봉인 당해 힘을 잃은 그 괴물은.
“진정한 네 모습을 보이거라.”
이제 그 진짜 모습을 꺼낼 것이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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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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