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권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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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조네스의 여왕이 되기 위한 왕좌의 시험.
커다란 것이 걸린 시험인 만큼.
“끄으윽!”
“피햇!”
“포션!”
그 난이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허억…, 허억….”
숨을 헐떡이는 헌터들.
그들은 절망감에 찌든 얼굴로 낮게 중얼거렸다.
“어떻게….”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블랙 메두사 퀸의 둥지.
당연하게도 이곳에 존재하는 몬스터는 블랙 메두사 퀸 뿐만이 아니었다.
보스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잡몹들.
문제는.
“어떻게 잡몹이 메두사인 거냐고….”
잡몹이라 표현해야 할 일반 몬스터가 다른 던전에선 상위 보스로 알려진 메두사라는 것.
다행이라면 한 번에 상대해야 하는 메두사가 세 마리 정도로 다른 던전에 비해 잡몹을 처리해야 하는 숫자가 적다지만.
“석화 못 풀어?”
“잠시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절망적이라는 것이었다.
백두와 이성.
던전 바깥 지구에서는 그 둘의 격차가 커다랗다고 말하지만, 이곳에선 아니었다.
“하아…. 하아….”
백두도 이성도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난이도의 전투를 하고 있었다.
다만 사정은 이성이 조금 더 나았다.
“물러서라.”
그 차이는 경험.
안인회, 그 한 명이 쌓아 올린 경험이 백두와 이성 모두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메두사를 다수 상대해본 경험이 있는 안인회.
그는 메두사를 어찌 상대해야 하는지, 메두사를 상대로 공격대를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당연히 그 차이는 막대했고, 시간이 갈수록 이성에 비해 백두가 지쳐.
‘어떻게 된 거냐.’
안인회는 입술을 질끈 씹으며 백두의 공격대 쪽을 바라봤다.
분명 지금쯤 사상자가 몇십은 발생했어야 정상이건만, 백두 쪽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그들의 공략은 처음엔 허술하기 그지없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그들 또한 메두사를 상대하는데 빠르게 익숙해지고 있는 듯했다.
그건 배움이었다.
자신의 운용을 보며 상대편의 지휘관, 이정기가 빠르게 공격대의 운용을 배우고 있었다.
‘그런 것이 가능하냐.’
그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헌터, 인간들을 다루고 적재적소에 그들을 활용한다는 건 헌터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아무나 쉬이 할 수 없는 일.
거기다 이런 강대한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그 패턴을 숙지.
“아.”
안인회는 그때 무언가 깨달은 듯했다.
‘올림포스.’
괴물 중의 괴물들만이 존재한다던 지옥의 땅.
이정기가 그곳의 출신임을.
‘설마….’
이런 싸움을 수도 없이 했던 것 아닐까.
메두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메두사가 가진 능력과 한계를 자신보다 더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닐지 하는 생각.
그리고 그 생각은 곧 확신이 되었다.
콰앙!
결코, 피할 수 없다는 메두사의 필사 패턴, 뱀으로 이루어진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나 땅속 깊이 박힌 순간, 피할 수 없으니 막아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으나.
쿠쿵!
이정기가 땅에 제 발을 꽂아 넣자, 당연히 일어났어야 할 메두사의 패턴이 사라져버렸다.
“…….”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보고 있는 또 한 명의 헌터.
백두와 이성이 거의 나란히 전진하고 있는 것에 가장 큰 불만을 가진 헌터.
“큭.”
주안나가 입술을 짓씹었다.
차라리 지금 이성을 공격해 떨궈버리거나 승부를 내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지만.
“참아야 합니다.”
이런 수준 높은 던전에서 그런 일을 벌였다간, 메두사들에 의해 양측 전부가 커다란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하아. 좀 더 속도를 올려야 돼요.”
“알겠습니다.”
결국, 둘이 끝장을 보는 것은 레이드를 통해, 그리고 레이드가 끝났을 이후에나 가능하다.
묘한 긴장감.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로가 함께 나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
특히나.
“…….”
주안나의 얼굴은 더욱더 짙은 고민에 잠겨 있는 듯했다.
* * *
짙은 밤.
두 공격대는 마침내 전진을 멈추었다.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해가 진 어둠 속에서 강해지는 데다, 메두사들의 석화 패턴은 검은빛이기에 밤에 그들을 상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기 때문이었다.
타닥.
피어오른 모닥불.
두 진영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성과 백두, 두 진영 모두 조용히 다음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
백두의 중심부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정기, 그리고 단 두 명의 여자.
“마음은 정했어?”
그 두 명의 여자가 바로 이번 왕좌의 시험에서 자격을 갖추었다고 판단한 두 명이었다.
“응.”
한 명은 최인해.
백두에도 강한 여성 헌터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녀들은 왕좌의 시험을 이정기 대신하여 치를만한 신뢰도, 실력도 부족했다.
강하다 하나 백두에서 쌓아온 경험.
변하고 있다지만 아직인 그녀들.
메두사들을 상대하는 모습만 보아도 그렇다.
항상 적당한 난이도의 던전만을 공략한 그녀들, 아니 백두의 대부분 헌터들은 극복하고 있다지만 공포에 잠식당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최인해는 다르다.’
애초부터 이성에 가입하는 것이 목표였고, 그것을 해낼 만큼 집요함과 실력이 있는 자.
더욱이 이성의 10팀에서 자신과 함께 성장했던 경험으로 공포에 대한 극복을 어느 정도 해냈다.
하지만 문제는.
‘신뢰.’
그녀 자체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못 본 사이 달라진 그녀의 모습이 신경 쓰였다.
그리고 또 한 명.
“네. 마음은 정했어요.”
윤하민이었다.
사실 그녀가 후보로 올라온 것은 이례적이다 할 수 있을 만큼 특별한 일이었다.
그녀는 백두의 다른 헌터들만큼의 신뢰도, 실력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후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세 가지.
‘이성은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에 기반을 둔 길드입니다. 이성을 원하신다면….’
이진석과 강민혁.
‘윤하민 양을 길드장님의 사람으로 확실히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혼약이더라도 상관없지만, 그런 것을 추천하지는 않은 그들이니 이번 기회에 가능성을 보고 휘하에 두라는 말.
단순히 그것뿐이라면 이정기는 윤하민을 후보에 올릴 생각이 없었지만.
“…….”
이정기는 남들이 볼 수 없는 특별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윤하민의 내부, 그녀조차도 모르고 있는 숨겨진 잠재력.
그리고.
‘저 눈.’
순수로 빛나는 저 두 눈에 담긴 자신에 대한 호의.
그렇기에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답을 들을 시간.
“나는 포기할게.”
최인해가 먼저 포기를 선언했다.
“이유는? 너라면 이번 기회의 가치를 모르지 않을 텐데.”
의외의 선택에 놀란 이정기.
최인해 같이 욕망이 큰 인간이 바보가 아닌 이상 커다란 힘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나는….”
굳어진 최인해의 얼굴.
“할 수 없으니까.”
“……?”
“이번 던전이 끝나면 할 이야기가 있어. 그때 이야기해줄게.”
그렇게 말한 최인해는 망설임 없이 돌아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남은 것은 윤하민.
만약 그녀도 거절한다면 다른 헌터에게 기회를 주어야 했다.
그리고.
“할게요.”
이어진 그녀의 대답은 승낙이었다.
“길드장님께 필요한 일이죠? 제게 자격이 있으니 권하셨을 거고요.”
윤하민은 긴장했지만 담담히 말했다.
“그렇다면 해볼게요.”
“앞으로 헌터로서 살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헌터로서 살아야 한다.
윤하민에게는 열려 있는 많은 기회가 있는 만큼, 굳이 헌터로서 살지 않아도 된다.
지금 그녀는 이곳까지 따라왔다지만 돌아가려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사람.
“받아들인다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정기의 말에 놀란 듯 흠칫 몸을 떠는 그녀.
하지만.
“그거 청혼인가요?”
“……?”
“그렇다면 더더욱 승낙해야겠네요. 해볼게요. 어떻게든 해볼게요.”
조금은 붉어진 얼굴로 그녀가 말했다.
* * *
다음날에도 이어진 사냥.
변화 없는 이성과 달리 백두의 진영에는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스윽.
백두의 선두에 긴장한 얼굴의 풋내기 헌터가 서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그녀의 이름이, 윤하민이라는 것이었다.
‘C등급.’
이성에 비해 훨씬 낮은 커트라인임에도 백두에 겨우 합격할만한 최소한의 실력을 가진 그녀.
이런 던전에는 원래 들어와서도 들어올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던전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선두에 서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 짓.
“무슨 짓을….”
이성은 물론 백두의 헌터들도 변화된 진영에 당황을 금치 못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눈썰미 좋은 자들은 새로이 알아차린 것이 있었다.
“……?”
윤하민, 그녀가 처음 입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는 것.
빛바래고 천으로 덧대 외형을 많이 가렸다지만 그 장비들은 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것이었다.
“하.”
코웃음을 치는 주안나.
장비가 아무리 좋으면 뭘 하나.
그것을 다룰 수 없는 실력이 없다면 장비는 소용없는 것일 뿐.
거기다.
‘윤하민으로 결정했나 보군.’
그녀가 이정기 측의 대전사가 된 것을 확인하자 주안나는 슬쩍 미소지었다.
경쟁자가 그녀가 생각하기에 하찮은 존재인 만큼 승산을 더욱 점쳐볼 수 있는 것.
“잘됐네. 뭐, 아예 고꾸라져주는 것도 나쁘지 않고.”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과 함께 그날의 첫 전투가 시작되었다.
결과는 역시나였다.
백두와 이성은 메두사와의 전투에 익숙해진 만큼 더 빠르고 피해 없이 사냥에 성공했지만.
“하아…. 하아…. 흑.”
윤하민은 전장에서 제대로 버티지조차 못했다.
그녀를 감싸는 이진석과 강민혁이 아니었다면, 분명 윤하민은 죽었을 것이다.
더욱이 그녀를 보호하느라 이진석과 강민혁이 붙어 백두의 피해가 커졌다면 더 커졌던 것.
“그러니까 안 어울리는 것들은 집에나 처박혀 있을 것이지.”
그런 모습을 비웃던 주안나.
그리고 다음 전투.
또 똑같은 모습이 반복된 듯했지만, 무언가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조금은 달랐다.
아예 나서지도 못하던 윤하민이 떨리는 두 발로 제대로 선 것.
그리고 다음 전투.
그리고 또 다음 전투.
그리고.
“……!”
모두의 표정이 변했다.
윤하민, 그녀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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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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