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권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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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포스의 복구인가, 세상의 파괴인가.”
히폴리테의 말에.
“……?”
이정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자신의 목적이 무엇이냐며 물어오는 두 개의 질문.
이정기의 목적은.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둘 다 아니었으니까.
쥬피터 할아버지에게 힘을 받아 그 뜻을 이었지만, 올림포스의 복구에 대한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렇다고.
“세상의 파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세상의 파괴라는 건 아예 생각도 해보지 못한 문제였다.
씨익.
유쾌하다는 듯 말려 올라가는 히폴리테의 입꼬리.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군.”
“…….”
“뭐, 누군가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히폴리테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거대한 위압감과 존재감.
그녀가 온전했다면 이정기조차 한발 물러서게 할만한 힘을 가지고 있음은 확실했다.
“언젠가 스스로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다만 지금은 그대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안심해야겠군.”
알 수 없는 소리.
그에 대해 자세히 묻고 싶은 것이 있지만, 히폴리테의 분위기는 이정기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이정기, 아니 허큘리스여.”
천천히 이정기에게 다가오는 그녀.
“왕좌의 시험이 치러질 것이다. 생의 끝에 서 있는 나의 힘을 이어, 아마조네를 다스릴 여왕을 뽑는 자리이지.”
그녀의 손끝이 이정기의 턱을 스쳤다.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은 이정기.
“한 명의 후보는 이미 알고 있겠지?”
주안나.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의 후보는….”
피식.
“준비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름에서 알듯이 여왕을 뽑는 자리이니, 그대가 나올 수는 없겠지.”
“……!”
“아마조네의 힘은 어쩔 수 없이 가리는 것이 많거든.”
장난스러워 보이는 그녀.
이정기는 그런 그녀를 향해 말했다.
“왜….”
이해가 가질 않는다.
왕좌의 시험이 무엇인지 몰라도 죽어가는 그녀가 후세를 위해 힘을 넘긴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왜.
“아마조네스들에게서 뽑지 않는 것입니까?”
외부인에 불과한 주안나나 이정기 측에서 뽑으려는 것일까.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그대 때문이야.”
* * *
부르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떨리는 주안나의 손.
던전에 들어와 왕국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믿었던 그녀의 계획이 무너지다 못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왕국에 도착했건만 만나주지 않던 여왕에게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어야 했는데.
“이정기….”
부르르.
“그 개자식이 또…!”
왕좌의 시험을 이정기 측에서도 치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아마조네에서 수많은 시험을 치르고 후계가 되었던 자신은 도대체 무얼 한 것이란 말인가.
“크으윽!”
결국, 여왕도 똑같은 작자였다.
자신의 아버지나 여왕이나 자신을 진짜 후계자로 생각하는 이는 그 누구도 없었다.
그저 자신은 언제나 그랬듯 도구에 불과했다.
“이래선….”
울컥 눈물이 치솟는다.
“어머니와 하등 다를 게 없잖아….”
이용만 당하고 버려진 어머니.
어머니처럼 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건만 결국 운명이란 이어지는 것인 걸까.
“…….”
안인회는 지금 주안나의 심정이 어떨지 알기에 그저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스륵.
주안나가 있는 방에 아마조네 한 명이 나타났다.
쏘아보는 주안나.
“여왕께서 전하란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
주안나는 그런 그녀에게라도 화를 풀고 싶었지만,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지금의 신세에 쉽게 행동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문득 이상한 점을 눈치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던 아마조네스는.
“로하느는 어디 가고?”
로하느라는 아마조네스.
하지만 지금 자신을 찾아온 아마조네스는 주안나 또한 처음 보는 이였다.
“왕좌의 시험이 치러질 겁니다.”
주안나의 말을 무시한 채 이야기하는 그녀.
“시험의 방식은….”
“이젠 개나 소나 나를 다 무시하는군. 어디 말해봐.”
“사냥입니다.”
사냥.
이제 것과 같다.
아마조네스의 시험들은 전부 이런 식이었다.
“이번엔 뭐지?”
다른 것도 아닌 왕좌를 두고 겨루는 시험이다.
그 시험의 대상이 결코 가벼운 존재는 아닐 것이다.
“블랙 메두사 퀸입니다.”
“……!”
들려온 이름에 주안나도 안인회도 두 눈을 치켜떴다.
메두사, 그 존재 자체가 다른 몬스터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몬스터였다.
그런 메두사의 상위급 몬스터라 불리는 블랙 메두사.
올림포스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등급인 SS급 게이트에서 출몰했던 극악의 몬스터.
하지만.
“퀸이라고?”
그 뒤에 붙은 수식언이 더 신경 쓰였다.
지금껏 퀸이나 킹이 붙은 몬스터들은 그 궤를 달리하는 것들.
메두사 퀸도 아니고 블랙 메두사 퀸이라면.
“…….”
그 수준을 가히 짐작조차 하기 힘들었다.
“사냥은 추후 공지된 시일에 치러지며, 사냥의 방식은 언제나 그렇듯 자유입니다. 먼저 사냥에 성공한 자가 시험을 통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말을 잇는 그녀.
“왕좌의 주인이 되어 아마조네스의 여왕이 됩니다.”
“큭.”
주안나가 비틀린 웃음을 냈다.
시험의 난이도 탓이 아니었다.
어떤 어려운 시험이고 치러낼 자신이 있었건만, 그 시험을 또 다른 후보와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 이름은 라예르.”
“……?”
그제야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라예르.
동시에.
화악!
그녀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투구와 갑주, 그리고 활과 검.
안인회가 급히 검을 들었지만.
처억!
주안나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지금 라예르라 소개한 아마조네스는 자신을 향한 적의를 보이기 위해 저런 모습을 취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조네에서 수많은 시험을 치렀던 주안나이기에 알 수 있는 것.
“최고 전사는 처음 보는데?”
아마조네스의 계급 중에서도 여왕의 바로 밑에 있는 존재들이 바로 아마조네스의 최고 전사들.
그녀들은 모두 여섯 명으로 이루어져 있어, 일반적인 아마조네스와 비교할 수 없는 강함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주안나 또한 그녀들 중 하나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
“갑작스레 최고 전사가 날 찾아온 이유가 뭐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존재.
그리고 이름을 뒤늦게 밝히던 모습.
그건 마치.
‘시험.’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보려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주안나의 경험이 다른 이에 부족하다 하나 그녀는 이성의 혈족인 성혈이자, 이성에서 경험을 쌓아온 자였다.
헌터로서의 능력도 정치력도 부족하지 않다.
그리고 그녀는 이러한 광경을 몇 번이나 보았다.
씨익.
캥기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남몰래 움직이는 것들.
“이번 시험은 지금까지와 다르게, 함께 온 인간들 또한 시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는 예상했어. 아마조네의 문을 모두에게 열어주었으니까.”
“또한, 저희 최고 전사들은….”
이제서야 본론이다.
“시험의 안내자로 지정되어 후계자들을 블랙 메두사 퀸에게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최고 전사 여섯 모두가?”
“아뇨. 다섯입니다.”
다섯이라.
이 또한 무언가 있다.
주안나는 이럴 때 말을 아끼는 것이 최선이라 배웠다.
역시나.
“다른 후계자가 생긴 것이 납득이 가지 않으십니까?”
월척이었다.
“다른 후계자의 제거를 돕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나,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그래서 너희가 원하는 것은?”
이들이 바라는 것.
“여왕의 힘을 가지십시오. 대신 자리는 저희에게 주셔야 합니다.”
“아가씨…!”
“인간에게 저희의 통치를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죠.”
* * *
아마조네의 왕좌의 시험.
이정기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시련.’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이고, 여기서 결과를 얻어야 한다고.
하지만 시험은 자신이 치르는 것이 아니었다.
‘대전사.’
아마조네의 힘은 여성만이 계승할 수 있는 것.
남성인 자신은 시험을 돕는 역할일 뿐, 그 열매를 가지는 것은 다른 이가 되어야 할 터였다.
지금 함께 게이트에 있는 백두의 헌터들 중에서도 여성은 꽤 있었다.
다만, 그중 누구를 대전사로 내세워야 하냐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생각나는 후보는….’
둘 정도.
이정기는 잠시 생각을 접어두고 앞을 바라봤다.
“고생했습니다.”
회복된 듯하지만, 아직은 초췌한 몰골을 하고 있는 남자.
그는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못난 꼴을 보였습니다.”
스스로를 증명하고자 노력한 것이었지만, 이런 결과만이 생겼다.
강민혁.
그와 백두 이 공격대는 아마조네에게 구출되어 이곳에 와 있었다.
그리고 보내던 시간.
“2 공대장 잘못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저 정해진 운명이나 다름없는 것.’
시련이란 이름으로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혔을 뿐이었다.
“사망자들의 시신은…, 찾아두었습니다.”
또한, 이번 공략으로 강민혁은 휘하의 공대원 다수를 잃었다.
살아남은 이들도 제대로 된 몰골은 아니었다.
“잘하셨습니다.”
“여왕을…, 만나셨습니까?”
강민혁의 말에 이정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아마조네스에 와 있던 그였으니 보고 들은 것이 있을 것이었다.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
“아마조네스 중에서 길드장님을 반기지 않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러리라 생각했었다.
외부인에 불과한 자신, 그나마 주안나는 이들과 오랜 시간 교류를 했다고 하나 자신은 완전한 외부인이었다.
그런 자신에게 통치권이 넘어갈 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 누가 반길까.
여왕의 뜻이라 따를 뿐.
“그중 최고 전사라는 자들이 있습니다.”
“최고 전사?”
“여왕을 제외하고 가장 강한 아마조네스들입니다.”
여왕이야 상식 외의 존재이니 그렇다 할 수 있지만.
‘그들이었군.’
아마조네스에서 자신의 기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 신경 쓰이던 존재들.
“길드장님.”
지금껏 침통했던 강민혁의 얼굴에.
씨익.
미소가 번져있었다.
스스로의 증명에 실패하여 침통했던 그.
하지만 지금 그의 얼굴은.
“만나보셔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기회를 잡은 이의 얼굴이었다.
스스로를 증명할 기회.
강민혁은 끝까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스륵.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자.
아마조네스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마조네스의 최고 전사 보르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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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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