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권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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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돌아간 이정기의 고개.
그런 이정기의 시선을 따라 다른 이들의 고개도 돌아갔지만.
“……?”
시선을 따라간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천천히 긴장하며 마력을 끌어올리던 그들의 눈앞에.
스윽.
산뜻한 풀 내음과 함께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
그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헌터들.
“내 살다 살다….”
사실상 이곳에서 가장 경험 많고 경력이 많은 헌터인 현성호.
그조차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이종족은 처음 보는군.”
몬스터라 판단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인간과 닮아있는 몬스터는 지금도 수많은 던전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들의 눈빛만큼은 인간의 그것과 전혀 달랐다.
전혀 정제되어 있지 않고 살기를 감당하지 못하다 싶어 흐르는 눈빛들, 또한 그것들이 가지는 특유의 분위기와 공격성.
지금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저것은 그런 것이 전혀 없는 존재였다.
꿀꺽.
아름답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 신비스러운 외모.
그리고 그런 존재의 눈빛에는 확연한 정제됨이 갖추어져 있었다.
감정도 살기도 마력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발견조차 하기 힘들었던 존재.
또한, 동시에 조용히 숙인 고개나, 수많은 헌터들을 앞에 두고도 내보이지 않는 공격성은 지금껏 만나본 그 어떤 몬스터와는 확연히 다른.
“엘프….”
진짜 이종족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설마.”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긴장하고 있는 다른 이들과 달리 현성호는 그 경험을 양분 삼아 현 상황을 파악했다.
이 던전에 들어오게 된 이유, 주안나의 집착, 그리고 목적했던 곳.
얼핏 듣기로 그 이름이 왕국이라 했었다.
“사냥에 용이한 몬스터들의 왕국 따위라 생각했거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진짜 말 그대로의 왕국, 그것도 인간의 왕국이 아닌.
“이종족의 왕국이었단 건가.”
현성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속은 다른 이들 못지않게 놀란 상태였다.
그러나 그와 대비되게 이정기는 겉도 속도 같은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리고 그 생각은 사실이었다.
‘아마조네.’
던전과 접촉하여 그들의 존재를 이미 알아차렸던 이정기.
그리고.
[아마조네의 여왕이 가디언의 새로운 지도자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들의 여왕 또한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접촉을 시도했었던 것.
“올림포스의 주인 되실 분이시여.”
“한국어…!”
엘프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에 더욱 놀라는 이들.
하지만 몇몇은 엘프가 한국어를 했다는 사실보다 그 입에서 나온 단어에 집중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 따윈 상관없다는 듯 나타난 엘프는 오직 이정기만을 보며 말을 이었다.
“여왕께서 귀빈을 아마조네로 초청하셨습니다.”
이러니.
‘어차피 찾아갈 이유 따위 없는 거지.’
어차피 자신을 마중 나오기로 했으니까.
* * *
백두와 이성의 길드전.
백두는 호걸에게서 얻은 승리와 현성호의 합류로 자신감을 얻었을지언정, 긴장은 놓치지 않고 있었다.
철산 그리고 백철순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했으면서도 아직 진짜 싸움이 남아있다며 긴장하고 있던 그들.
“우… 와….”
그런 그들의 긴장이 풀리며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촤아아아-!
마력의 기파와 함께 숨겨져 있던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허허벌판이었던 삭막하기 그지없던 그곳에.
살랑.
울창한 숲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긴장했을 때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히 숨어있던 그곳.
수많은 나무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울창하게 뻗어있었으며, 그 중앙에 그 누가 보아도 거대한, 마치 대한민국의 마천루라 불리는 이성의 타워가 생각날 법한 크기의 나무가 우뚝 솟아나 있었다.
사박, 사박.
작게 들려오는 소리들.
긴장을 풀었던 백두의 헌터들이 다시금 긴장하기 시작했다.
마중 나온 엘프를 보았을 때도 느꼈지만.
“정말…, 경이로울 정도의 은신술입니다.”
이들의 존재는 바로 눈앞에 있으면서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은밀하다.
이 정도의 은신술을 사용할 수 있는 헌터들이 있던가?
분명 존재키는 하지만 상위의 랭커들이나 가능할 법한 일이었다.
그러나.
“만일 이들이 적이었다면.”
이들의 수는 결코 극소수에 해당하는 랭커들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어림잡아 백.
그리고 저 속에 숨어있을 자들까지 생각하자면.
꿀꺽.
족히 천은 넘어가리라.
랭커 전체를 아우르는 숫자, 그들 전부가 이 정도의 은신술을 사용한다.
그런 이들이 적이었다면?
“끔찍했겠습니다.”
그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깊은 어려움을 겪었어야만 할 것이었다.
하지만 말을 하던 이진석은 쉽게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 대신.
-길드장님. 알고 계시겠지만.
조용히 넥타로 연결되어 있는 이정기에게만 목소리를 내었다.
-적의를 가진 자들도 있는 듯합니다.
분명 환대하듯 마중 나와 있는 저들의 모습.
그러나 이진석은 다른 헌터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정기로 인해 얻은 넥타, 그 속에 담긴 공능이 저들이 존재만큼이나 숨긴 어떤 것을 감각으로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환대하듯 서 있는 그들 사이로 특정할 수 없는 적의가 느껴지고 있었다.
끄덕.
이정기도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강의 상황을 알만해.’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갔다.
그리고.
“……!”
곧 모든 헌터들이 긴장하며.
채앵!
무기를 꺼내 들었다.
갑작스러운 상황, 마중 나온 엘프들은 뒤로 물러섰고 그 사이로.
터벅! 터벅!
참아내려 하는 듯하지만 참지 못하는 분노가 서린 발걸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왜-!”
카랑거리는 목소리.
“왜 저것들이-!”
울분이 가득 찼지만, 다행이게도 억누르고 있는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여기 있는 겁니까-!”
항의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주안나였다.
주안나, 그리고 그녀를 앞에 두고 안인회와 이성의 제1 공격대 일 검이 도열하여 백두와 대치를 이루고 있는 상황.
“이정기…, 어떻게 네가 여기…!”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듯 분노만을 토해낼 뿐이었고.
안인회 또한 당황한 모습이 분명했다.
또한, 그의 눈은 곧 이정기의 옆으로도 흘러갔는데.
“…….”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현성호 공대장. 왜 그곳에 서 있는 것이지?”
함께 있어선 안 될 존재.
그리고.
“아버…, 아니 일 공대장님.”
안태민까지.
저들을 유인하여 사냥하라 했던 이성의 공격대가 오히려 이정기를 지키듯 서 있었다.
기가 차 말이 나오지 않을 상황.
“좋아.”
주안나는 결심했다는 듯 이를 악물고, 제 창을 꺼내 들었다.
“여기서 끝장을 보자.”
타오르는 마력이 그녀의 진심을 대변하며, 적의로 가득 차 있었다.
일촉즉발.
이성이든, 백두든 스킬을 하나라도 사용하면 그것이 바로 시작의 타이밍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쓰러트리고 죽여야만 하는 진짜 총력전.
거기다.
사아아.
이성이든 백두든 둘 다 포위하고 있는 형태의 엘프들은 과연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먼저 함께 있던 주안나, 혹은 귀빈 대접을 하며 마중 나온 이정기.
그들이 어디에 서느냐가 승패를 좌우하리라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잠시.
“……!”
“……!”
모든 헌터들의 눈이 크게 떠지기 시작했다.
지금껏 앞에 있어도 그 존재감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했던 엘프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지금 느껴지는 기운은.
구웅!
모두를 장악하며 경악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덜덜덜.
일반 공격대원들은 그 존재감을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손이 떨릴 정도였고.
“하아. 하아.”
공대장급도 그 존재감을 몰아내려 숨을 헐떡여야 할 정도였다.
씨익.
올라가는 주안나의 입꼬리와.
“…….”
표정 모를 이정기의 얼굴.
그들 사이로.
“그만.”
위엄 서린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단순한 목소리임에도 절로 경외심이 들며, 산뜻한 향 내음이 나는 듯했다.
그제야 표정 없던 이정기의 얼굴에도 표정이 깃들었다.
“아마조네에서의 싸움은 금한다.”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목소리.
그리고 숨이 멎을듯한 외모.
그 뒤에 후광이 비추는 듯한 위압감까지.
“그대들의 승패는.”
아마조네의 여왕.
“시험에서 가르라.”
히폴리테의 등장이었다.
* * *
“올림포스의 후계자에게 인사하지.”
오만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전혀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아마조네의 여왕, 히폴리테다.”
그녀에겐 그러할 자격이 있었다.
표정 변화 없던 이정기가 그녀를 만나고 표정이 변했던 이유.
[넥타 레벨….]
메티스의 목소리가.
[노벰.]
노벰.
9를 뜻하는 숫자.
지금껏 이정기가 보았던 티탄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높은 수치.
가디언들을 포함해도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존재가 가장 커다란 넥타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한가는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올림포스의 파괴로 인해 그 육체를 잃고 인간의 육체를 빼앗아 정착한 티탄.
그 육체를 빼앗거나, 그에 깃들어 공생하는 가디언.
그리고 아마조네의 여왕 히폴리테는.
‘그 둘 다 아니다.’
전혀 다른 존재.
이정기는 그런 존재를 알고 있었다.
바로.
‘나.’
그녀는 자신과 같다.
‘육체와 정신 모두 그녀의 것이야.’
올림포스가 무너져 넥타를 가진 존재들이 그 육체를 잃었건만 히폴리테라 말한 그녀의 육체는 그녀의 것이었다.
그러니 그녀가 쌓아온 모든 힘이 그녀에게 내재하여 있는 것.
하지만.
“죽어가고 있군요.”
이정기는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정기에게만 보이는 그녀의 넥타가 불안정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노벰이라는 커다란 숫자는 그저 그녀가 원래 가졌던 넥타의 총량을 말할 뿐.
‘그 안은 비어있는 것이나 다름없어.’
그 속은 무너지고 파괴되어 형체만을 갖추고 있을 뿐이었다.
“보이는가.”
“예.”
“올림포스가 무너지고, 그 밖에 존재하던 우리 또한 파괴되어야 할 운명이었지.”
넥타를 가진 존재는 모두 올림포스에 귀속된다고 쥬피터 할아버지에게 배웠다.
그런 그들의 근원은 올림포스의 파괴와 함께 무너졌다.
그러니 그때를 노렸던 티탄들조차 제대로 된 힘을 갖추지 못한 것이 현실 아니던가.
“아마조네를 숨기고, 온전히 존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지.”
그녀는 그 모든 파괴와 훼손을 홀로 막아낸 것이었다.
그녀야말로 아마조네, 그리고 아마조네의 자연이나 다름없는 존재인 것이었다.
“그대, 올림포스의 후계 중 하나여.”
“…….”
“그대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정기를 향한 질문.
“올림포스의 복구인가. 아니면.”
그녀의 질문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모든 세상의 파괴인가.”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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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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