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153화 (153/284)

제7권 3화

153

“이러려고 모인 것 아니었나?”

이정기의 말에 말문이 턱 막힌 그들.

이정기의 말마따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모인 것은 맞았지만, 그들이 놀란 것은 전과 다른 이정기의 태도였다.

‘무언가 억눌려 있던 모습.’

안인회가 직접 이정기를 본 적은 없었지만, 이정기와 가까이 지냈던 아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면 그랬다.

‘예의를 지키는.’

오만방자함의 대명사인 성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여러 모습들.

‘하지만….’

안인회는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의 아들 안태민이 스치듯 해주었던 이야기.

‘그 속에 형언할 수 없는 거대한 난폭함이 있는 듯했습니다.’

이정기의 안에 그도 보지 못하던 난폭함이 숨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

그리고 안인회가 지금 느끼는 감정도 같았다.

오만함, 그리고 난폭함, 하지만 그것이 성혈들의 그것과 같지는 않았다.

다른 한 남자.

‘이건.’

그와 똑 닮아 있는 듯한 모습.

자신이 기억하는 그의 모습도 그러했다.

‘뭐냐?’

아직 어리고 모자란 헌터였던 자신에게도 차별 없이 대하던 따뜻함.

그리고 그와 동시에.

‘꺼져라.’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떤 누구라도.

일국의 수장이자 대형 길드의 길드장 따위도 지나가는 벌레와 같은 취급을 하던 오만함과 난폭함 말이다.

꿀꺽.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그 난이도가 더 높을 것이라 직감한 안인회와 달리.

“이정기.”

주안나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눈에 뵈는 게 없는 거야?”

“아가씨…!”

“할머니의 이쁨을 받고, 제법 랭킹이 올랐다고 하지만….”

씨익.

웃고 있는 그녀의 입꼬리가 떨렸다.

저건 주안나의 습관 같은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참지 못하던 분노를 억누르려 어떻게든 애를 쓰며 생긴 습관.

“그 위에 우리가 있는 거야.”

“…….”

“다시 말하지. 던전 구출은 우리가 맡는다. 백두의 길드원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주지. 또한!”

그녀가 말했다.

“구출 후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주겠다.”

이 정도면, 주안나는 많은 것을 참고 두 발 물러섰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정기.’

그가 받아들일 것이냐는 것.

그리고 마침내 이정기의 입이 다시 열렸다.

“개소리.”

“……!”

“우리 소유의 던전이고, 우리의 길드원이다. 대체 이성이 뭔데, 주제넘게 자꾸 나선다 안 나선다 하는 거냐?”

“뭐…?”

이성으로서는 대한민국 내에서 결코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

“내 제안은 똑같다. 이성을 넘겨. 그러면 너희와 함께 구출 작전을 펼치겠다.”

“이 개자식이 그래도…!”

“그게 싫다면.”

화악!

장내에 감도는 싸늘한 분위기.

분노로 들끓던 주안나의 얼굴도 살짝 굳을 정도의 냉기가 감돌았다.

“길드전이라도 치르던가.”

“길드전!”

“길드전의 승리 조건으로 구출 작전, 아니 소유 던전의 소유권을 넘길 수도 있겠지. 다만 이성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걸어야 할 거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두 길드가 겨우 구출권 하나를 위해 길드전을 치른다?

이성과 백두의 체급 차이를 완전히 무시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아가씨 제발!’

안인회는 떴던 눈을 감으며 주안나의 어깨를 잡아내려 했다.

안 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면.

“길드전? 그래 좋아.”

제기랄.

“네 그 오만방자함이 결국 백두와 길드원들을 사지로 밀어 넣는구나.”

주안나는 승리를 직감한 듯 미소를 지우지 못한 채 말했다.

* * *

“아가씨 너무 경솔하셨습니다.”

안인회의 말에.

“아저씨. 그만.”

주안나는 결국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답했다.

“나는 지금 아저씨 공격대 소속 헌터가 아니라, 길드장 대리라는 걸 명심하세요.”

“…….”

“나는 내 권한을 사용한 것뿐이고….”

권한?

길드전을 치를 수 있는 권한이라면 있는 것이 맞다.

또한, 그녀가 무언가를 걸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도 맞았다.

“어차피 이기는 싸움을 걸어주는 바보를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

그녀의 말마따나.

‘이성의 승리.’

그 또한 당연한 것이 맞았다.

이정기에게서 느껴지는 싸늘함, 그 안에 웅크리고 있을 거대한 힘.

분명 그것은 두렵고도 대단한 것이 맞았다.

“토너먼트 형식 같은 것을 치르지는 않을 거에요.”

주안나도 안인회가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안다는 듯 말했다.

“이정기가 강하다는 것? 인정해요. 토너먼트 형식은 불리하죠. 하지만 다른 방식의 길드전이랑은 달라요.”

그녀가 말했다.

“강력한 헌터 몇 명이 전황을 좌우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성과 백두의 체급 차이는….”

씨익.

“그 정도가 아닌 것 알잖아요?”

그녀의 말이 맞는다.

그렇기에 안인회도 이성의 승리를 점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정기에게서 느껴지는 싸늘함과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듯한 웅혼한 힘은 안인회도 그 깊이를 헤아리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토너먼트, 일대일의 결투가 아닌 이상 백두와 이성의 체급 차이는 겨우 몇 명의 헌터로 뒤집을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아니.

“토너먼트여도 상관없어요.”

백두가 가진 카드?

이정기가 전부다.

이진석이 강하다고 하지만.

‘내 선에서 잡을 수 있어.’

안인회는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결국, 이정기 하나, 그 하나만 잡으면 무조건 승리하는 싸움.

자신의 상식으로도 싸움을 받아들이는 것이 맞았지만.

‘이정기가 바보일까?’

지는 싸움을 거는 멍청이가 있단 말인가?

자신이 알기로 이정기는 바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곰 같은 여우에요.’

그 머리가 비상할 정도로 빠르고, 잔머리나 상황 판단이 빠르다고 했다.

더욱이.

“바티칸이나 더 데이, 여타 길드의 개입도 없이 치를 거예요. 그래도 제가 잘못된 선택을 했어요? 아저씨?”

잠시 말을 아낀 안인회.

“이 던전이 저희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알잖아요.”

이것도 그녀의 말이 맞다.

이 던전은 이성이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할 정도로 중요한 곳.

그리고.

“아저씨. 그래야 제가 살아요.”

던전은 특히나 주안나에게 중요한 곳이었다.

지금 블락이 일어나 백두가 소유하고 이 던전.

이곳이야말로.

‘주안나 아가씨가 힘을 얻고 키운 곳이니까.’

안인회는 눈을 꼭 감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주안나의 말마따나 그녀의 불안이 이 모든 것을 초래했다.

그리고 이 불안은.

‘왜 그러셨습니까.’

주형태 때문이었다.

얼마 전 밝혀진 사실, 주형태에게 숨겨진 아들이 있으며 주형태가 은밀히 그 아들의 성장을 도우며 후계자로 점치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주형태가 자리를 비운 것도.

‘그 아들을 정식으로 데려오기 위함.’

그러니 주안나가 불안을 느끼고, 주형태가 없는 사이 제 힘을 키우기 위해 일을 벌이고 있는 것도 안다.

마침내 눈을 뜬 안인회.

“따르겠습니다.”

그것이 틀린 길이건, 아니건, 제 주인이 원한다면.

‘해야겠지.’

그러면서 안인회는 자신의 아들을 생각했다.

녀석이 도와준다면, 이 사건을 완만히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 * *

블락이 발생한 지 5일 차.

백두가 예상키로 강민혁이 던전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은 최소 일주일.

아직 최소 시간은 2일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강민혁.’

녀석이 녀석의 위험에 이렇게 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반응을 할까.

그러나 그것이 자신에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라면?

그런 생각을 할 때.

“오랜만이야.”

은밀히 자신을 방문한 남자가 있었다.

“오랜만이야.”

녀석 또한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니, 권신우나 최인해와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이라 말할 수 있었다.

원래부터 천재란 말을 들었던 그.

그리고 그 천재는 이제야 마침내 제 재능을 개화시켰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아니었다.

타악.

자세를 고쳐 앉는 남자.

안태민.

“백두 길드의 길드장님께 말씀을 전달해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안인회의 아들, 그리고 이성의 일 공격팀장이 된 안태민으로서 전하는 이야기.

“안인회 공격대장님께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이것이 그와 자신의 사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이성에 남아있었다면….’

녀석은 자신의 밑에 왔을까.

하지만 이성을 떠난 지금 안태민은 자신을 따라 이성을 떠나기 힘든 처지였을거다.

혼자인 최인해와 권신우와는 사정이 다르니까.

“원하는 게 있으시다면, 어떻게든 조율해보시겠다고 하십니다.”

“왜 그 던전에 그토록 집착하는 거지?”

이정기의 물음에 안태민은 잠시 고민하는 듯 말했다.

“주안나 길드장 대리님에게 중요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주안나에게 중요하다?”

안태민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7년 전. 그 던전을 공략했던 것이 주안나 길드장 대리셨습니다.”

7년 전이라면.

“…….”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안인회 공대장님이 처리할 수 있으신 것이라면 무엇이든 처리해주겠다고.”

사실상 주안나를 무시한다고 느껴질 수 있는 행위.

그러나 안인회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

“안인회 공대장은….”

이정기는 천천히 입을 열며 말했다.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 말에 굳어지는 안태민의 얼굴.

그리고.

“솔직히 어려운 싸움일 거다.”

안태민의 말투가 달라졌다.

“네가 상정 외의 전력이란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이성은, 이성이다.”

이성은 이성.

그것은 대한민국에서 속담처럼 쓰이는 말이기도 했다.

“어려운 싸움일 거야. 그 방식이 무엇이든. 아직은….”

빠르게 성장해 제로 라인에 오르고, 백두를 먹어치운 이정기.

이탈리아에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에서 이성에 이빨을 드러내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해.”

그것은 안태민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이성 전부.

그리고 백두의 길드원들도.

‘무리야.’

‘설마 길드전이 벌어지는 건 아니겠지?’

아직 겁먹고 있는 것이 사실.

이정기는 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화악.

공간을 장악하는 마력.

투투툭.

가구들이 부서지며,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저.

“하아.”

작은 숨을 내쉰 것뿐인데, 생겨난 일들이었다.

그에 따라 변화하는 안태민의 얼굴.

일그러진 얼굴은 경악으로, 그리고는 마치 무언가를 해탈한 듯한 얼굴.

“내가 원하는 건.”

이정기는 공간을 장악한 채 말했다.

“이성의 이름, 혹은 이성의….”

안태민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자신이 어디에 닿아있는지.

그리고.

‘승산.’

승산을 다시 점쳐야 한다는 것도.

“제1 공격대, 그리고 일 공격팀이다.”

안인회, 안태민.

둘을 가져야겠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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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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