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권 1화
151
주안나.
주형태 길드장의 딸이자, 자신과 같은 성혈.
또한, 그녀는.
‘혼돈의 세대.’
이성이 가지고 있는 혼돈의 세대 중 한 명이었다.
쿠우우웅!
날뛰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파에 이정기가 이채를 띠었다.
이성 길드와 생츄어리 간의 길드전에서 보았던 그녀.
그녀는 부족하지만 상위권 랭커의 실력을 보였으며, 넥타에 제법 익숙해진 듯 힘을 발휘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쿠우웅!
부족한 상위권 랭커?
아니 그녀는 어엿한 상위권 랭커.
그것도 제로 라인에 이를 실력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정기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넥타.’
그녀의 넥타가 큰 변화를 이루었다는 것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의 그녀는 불순한 넥타, 수준 낮은 넥타를 어떻게든 끌어올렸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우웅.
지금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넥타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순했다.
또한, 넥타의 총양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 이정기가 느끼기로.
[넥타 레벨 5]
‘넥타 레벨 5.’
넥타 레벨 5, 즉 각성 직전의 수준으로 느껴졌다.
과연 이성이 모든 것을 몰아주면 저런 성장이 가능하단 것일까?
하지만 어떻게?
쿠우웅.
느껴지는 기파.
마침내 주안나의 눈이 이곳을 향해 왔다.
“너….”
자존심이 상한 듯 입술을 짓씹는 그녀.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이정기는 이곳에 온 이후, 스스로의 존재감을 감추었으니까.
그것을 뒤늦게 눈치챈 그녀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탈리아에 있다더니, 바로 돌아온 모양이야?”
멀찌감치서 들려오는 목소리지만 바로 지근거리에서 들리는 듯했다.
“잘됐네.”
그녀의 눈, 발, 몸이 모두 이정기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막아!”
그제야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던 백두의 헌터들이 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야 이성의 이름에 짓눌려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지만 이정기가 나타난 지금은 다르다.
길드장인 이정기의 앞에서도 추태를 부릴 수 없다는 듯.
채채채챙!
헌터들은 마침내 전력으로 주안나의 난동을 막으려 나서고 있었다.
채채챙!
그리고 그건 이성 또한 마찬가지.
“잔챙이들은….”
주안나는 그녀 하나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과는 전혀 관심도 없다는 듯 성큼성큼 발을 내딛더니.
휘이익-!
그녀가 들고 있는 거대한 창을 냅다 휘둘렀다.
“빠져!”
파아아앙!
터져나오는 마력과 함께 밀려 나가는 헌터들.
그 틈을 놓칠 그녀가 아니었다.
타앗!
땅을 박차자, 그녀의 신형이 길게 늘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도 빨리 움직인 그녀의 잔상이 남은 것.
다른 헌터들이 그녀의 뒤를 쫓았을 때.
휘이이익!
그녀의 창은 위에서 아래로.
“제로 라인이라지?”
그대로 이정기를 향해 내리 떨어지고 있었다.
“어디 막아봐.”
전력은 아니지만, 전력에 가까운 힘이 느껴지는 창.
그에 따른 풍압이 모든 것을 밀어내고 폭풍을 일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러한 주안나의 창을 마주하고 있는 이정기는.
“…….”
그저 미동 없이 떨어지는 창 너머, 주안나의 눈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주안나가 당황한 것도 잠시, 그 또한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라 느낀 그녀의 창이 더욱 거칠게 내리 떨어지는 순간.
채에에엥!
이정기의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다.
* * *
이정기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날카롭게 벼려져 있는 황금색의 창 촉.
그리고 그것을 막아선 검은색의 대검과 검붉은 색의 장검이었다.
세 개의 병장기가 마치 뱀처럼 뒤얽혀 이정기의 눈앞에서 멈춰서 있었다.
“무슨 짓입니까!”
소리치며 분노하는 목소리.
검붉은 색의 장검의 주인 이진석이었다.
지금껏 참아왔지만 감히 이정기를 노리는 모습에 즉각적으로 나선 것.
그리고.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아가씨.”
낮게 가라앉아 있지만 놀라움을 숨길 수 없는 목소리.
이 남자.
이정기도 얼굴을 알고 있는 남자였다.
대한민국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남자이자, 이성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의 남자.
그리고 자신과도 꽤나 인연이 있는 남자.
‘퍼스트 라인.’
얼마 전까지 퍼스트 라인이었다던 남자는.
‘제로 라인.’
그다음 영역에 발을 디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랭킹 네임.
‘검성.’
검을 쓰는 수많은 헌터들 중에서도 오직 검 하나만큼은 최고라 인정받는 이 남자.
이 남자의 이름은.
“안인회 공격대장.”
안인회였다.
이성의 제1 공격대장, 그리고 안태민의 아버지.
주형태의 검, 아니 이성의 검이자 대한민국의 검이라 불리우는 남자.
“지금….”
주안나가 이 상황에 어이가 없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트릴 때.
“그쯤 하시죠.”
안인회의 무거운 목소리와 함께.
구웅.
저들이 맞부딪힌 병장기에서 묵직한 소음이 났다.
타앙!
뱀처럼 뒤얽힌 세 개의 병장기가 순간 떨어져 주안나와 안인회, 이진석은 셋이 마주 보고 있는 듯 섰다.
마력이 이용되었다고 하지만 그건 아주 작은 부분.
‘검술이야.’
안인회는 얽혀있는 힘을 이용해 저런 묘기를 부린 것이었다.
“백두의 길드장으로 취임하신 것은 들었습니다.”
이정기를 향한 안인회의 목소리.
“인사가 늦었습니다. 안인회라고 합니다.”
자신보다 더욱 지긋한 나이, 그리고 이성에서 받는 대우.
그 모든 것을 떠나 진정성이 느껴지는 인사.
“익히 들었습니다.”
이정기 또한 그의 인사를 무시할 수 없었다.
묘한 카리스마와 박력, 그리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느낌까지.
이런 느낌은.
‘할머니.’
지금껏 할머니에게서만 받았던 것이었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저희는 잠시 물러나 있겠습니다.”
질문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그.
빠득.
결국, 주안나도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물러나는 이성과 몰려드는 백두.
그렇게 잠시간의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 * *
“아저씨!”
주안나가 빼엑 소리를 내질렀다.
붉게 물들어 있는 그녀의 얼굴이 얼마나 흥분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왜 막으신 거예요!”
앞뒤를 가리지 않는 불같은 성격의 그녀였지만 안인회의 앞에서만큼은 예외였다.
어릴 때부터 친삼촌처럼 여겨온 것이 바로 안인회였다.
말뿐인 삼촌인 주인배보다 안인회가 더욱 가까운 것이 사실.
“아가씨.”
“아저씨가 내버려 뒀으면 다 끝났을 문제에요!”
주안나는 안인회의 말을 무시한 채 소리쳤다.
“녀석이 볼품없이 나가떨어지는 걸 모두가 보았을 거라고요! 그러면 백두도 어쩔 수 없이….”
이성의 참여를 허락할 수밖에 없을 거다.
헌터의 세계는 누가 뭐라 해도 약육강식.
헌터법이든, 법이든 존재한다고 하지만 상위의 헌터 세계에서 힘보다 명확한 것은 없다.
또한, 이정기가 한 방에 나가떨어진다면.
‘추후 명분도 생겨.’
이성이 이 난리를 피우는 것에 대한 명분도 생긴다.
어차피 백두는 해결할 힘이 없으니 이성이 참여한 것처럼.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싸늘하게 내려앉는 목소리.
“당연한 소리예요! 보셨잖아요!”
주안나는 안인회의 목소리에서 느낀 불길함을 무시하려 더 목소리를 높였다.
“그 자식은 제가 코앞까지 창을 들이밀었는데도 아무런 반응도….”
“그렇게 보이셨던 거군요.”
안인회의 말에 마침내 주안나가 입을 다물었다.
“잘못 생각하셨습니다.”
“뭐라고요?”
“만일.”
안인회의 목소리와 눈빛.
‘흡.’
주안나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 삼킬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자신에게 훈계할 때 저런 모습이었다.
아니 지금 이것은.
‘실망.’
자신에 대한 실망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대로 창을 꽂아 넣었다면 쓰러지는 건 이정기 길드장이 아닌 아가씨였을 겁니다.”
“무슨 소리를….”
“보십시오.”
안인회가 제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
펼쳐진 손바닥을 보며 눈을 치켜뜬 주안나.
안인회의 손바닥 안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막강한 헌터의 회복력으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지만, 안인회의 손바닥에 저런 멍이 들었다는 게 중요했다.
“왜…?”
“아가씨가 이정기 길드장의 영역에 들어가기 전에 제가 막은 겁니다.”
움직인 안인회.
그는 억지로 이정기의 영역을 꿰뚫어야 했다.
마력장과 비슷한 느낌, 그리고 그것을 넘어설 때 자칫 검을 놓칠 뻔했다.
그 거대한 반탄력.
그건 가짜가 아니다.
“제로 라인이라지만…, 그냥 말뿐인….”
그렇게 생각했던 주안나.
모든 것은 그저, 할머니와 그의 할아버지.
‘이건.’
그 이름 때문에 벌어진 것들이라 생각했던 그녀였다.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안인회가 말했다.
“축소된 듯합니다.”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
“거기다 이진석 보셨습니까?”
“…….”
“그 또한….”
안인회의 말에 주안나는 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혼돈의 세대가 된 듯합니다.”
* * *
“죄송합니다.”
이진석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렇게 날뛰게 해서는 안 되었는데….”
이성의 폭정과도 같은 일에 휘둘린 백두.
백두가 나름대로 반항을 했다지만 사실상 그건 그저 눈 가리기 정도일 뿐이었다.
이성이 모든 상황을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주안나가 있었다.
“면목이 없습니다.”
이것이 이들의 어쩔 수 없는 문제점이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헌터로서 이성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
또한, 백두 자체가 이성의 산하 길드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던 신세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안인회.’
그가 직접 움직이지 않았던가.
그는 랭킹은 낮을지언정 그 입지가 주형태 못지않은 존재였다.
어쩔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시는.”
이해해줄 생각 따윈 없었다.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됩니다.”
처음으로 있는 질책, 이진석은 이정기의 목소리에 몸을 떨었다.
그리 얼마 되지 않은 시간, 이탈리아에 가기 전 보았던 이정기와 지금의 이정기는.
‘다르다.’
무언가 몹시 달라져 있었다.
말 한마디에 서린 거대한 힘, 그리고 그런 힘에서 느껴지는 공포.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절로 무릎이 떨릴 지경.
“이번만 봐주겠습니다.”
“명심…, 명심하겠습니다.”
“일단 저쪽의 상황을 주시하세요. 저들이 저렇게까지 나오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특히나.
‘안인회가 움직였다면 더더욱.’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 블락이 일어난 던전 앞 백두 소유의 건물 앞에 이정기가 서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어떻게 된 겁니까?”
낯익은 얼굴들이 있었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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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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