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권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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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무력화된 헬리오스, 뒤이어 무력화시킨 루카와 루시.
그들을 모두 잡아 한 데 무릎 꿇린 후.
“아폴론, 제대로 해야 할 거다.”
아폴론을 그 앞에 데려다 놓았다.
마력장에 뒤얽혀 안에서의 내용을 듣지 못한 그들은 아폴론과 마치 합을 맞추듯 어색한 연기를 보였다.
“걱정 마시길.”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그들을 향해 손을 내뻗는 아폴론.
‘저건.’
이정기는 그 모습을 보며 눈을 크게 치켜떴다.
과거라면 몰랐을 테지만 지금이라면 알 수 있다.
알파급의 넥타, 그리고 그 속에서 들끓는 이색적인 기운.
‘왕의 자격?’
자신의 것과 비슷한 왕의 자격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예상은 했었다.
아르테미스의 넥타를 유시아에게 부여했던 것으로 말미암아 그가 넥타를 옮길 수 있는
그런 이정기의 머릿속으로 아폴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왕의 자격임은 맞지만, 발아할 수 없는 자격입니다. 또한….
아폴론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왕이 가지신 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조악한 것이지요.
무언가, 더 있는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아…, 폴…, 론!”
헬리오스의 경악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너…!”
무언가 잘못된 것을 느낀 듯한 목소리.
“걱정할 것 없어. 헬리오스. 우리네 왕의 아래에서 네 영광은 지속될 수 있을 거야. 물론….”
씨익.
“왕의 앞길을 닦아 놓을 마차로서.”
“어떻게…!”
경악하는 헬리오스.
이정기 또한 이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폴론에게서 빠져나오는 것이 헬리오스와 그 남매들을 붙잡고 한데 엉켜 무언가 다른 것으로 만들어내고 있음을.
이정기 자신조차 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티탄 헬리오스, 티탄 셀레네, 티탄 에오스….]
그것이 자신에게 위해가 되는 것이 아닌.
[그들이 충성을 맹세합니다.]
오히려 강제적으로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강제적인 충성 맹세.
이런 것이 가능하다면.
‘내게 맹세한 자들도 배신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그렇지 않습니다.”
아폴론이 의식을 마치고 돌아서 말했다.
“이 방법은 아직 이들의 왕들이 깨어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 또한 그들이 제게 심은 그들의 왕의 파편이 있기 때문입니다.”
“왕의 파편?”
“제 배신을 우려한 그들이 오히려….”
촤악.
그가 제 웃옷을 찢으며 벌거벗겨진 상체를 드러내 보였다.
그의 명치 깊숙이 박혀있는 검은색의 돌.
“제 배신을 막고자 왕의 파편을 심었죠. 하지만 저는 이미 그에 관한 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파편이 가진 제약은 지우고, 권능만을 사용할 수 있는 겁니다.”
이해가 갔다.
아폴론이 그들의 왕으로서 인식되어 충성을 파기하고, 강제로 그 충성을 자신에게 이어지게 했다는 것.
그리고.
화악.
그 대가로 인해 저 검은색 돌, 왕의 파편은 힘을 잃었다는 것까지.
쿵!
그리고 아폴론은 다시 무릎을 꿇고 이정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탈리아를 왕의 첫 번째 영지로 삼겠습니다. 이들을 왕께 전부 바치겠습니다. 그러니 왕이시여!”
그가 소리쳤다.
“성장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주시옵소서!”
* * *
헬리오스의 충성 맹세는 분명 자신을 향해 있었다.
또한, 단순한 충성 맹세뿐만은 아니었는지, 헬리오스와 그 남매들은 무엇이 잘못된 지도 모르는 눈치로 티탄들과 교신했다.
그로 인해 알게 된 사실.
‘시엘 엘리자, 시엘 욘가루….’
마지막으로.
‘시엘 리처드.’
그들이 티탄으로 교체되었다는 것.
올림포스에서 빠져나오는 그들에게 타르타로스에서 빠져나온 티탄들의 넥타가 깃들었고, 그들뿐만이 아닌 올림포스 원정대의 많은 이들에게 그들의 넥타가 깃들었다는 것.
‘그렇게 빠져나온 티탄들이 오십에 가깝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까지도.
알게 된 것이 많다.
그리고.
“걱정 마시옵소서. 저들은 왕의 앞길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얻게 된 것 또한 많다.
‘아폴론.’
아직 이 남자를 백퍼센트 믿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이 남자에게 원대한 목적이 있으며,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리라는 것.
‘그 목적을 이루는 데 내가 무조건 필요하다는 것.’
그것만 갖추어진다면 아폴론은 쓸만한 카드, 아니 그 이상이라 할 수 있었다.
“이번 시엘 회의에서 최명희는 시엘의 권좌에 오를 겁니다. 그리고 그녀는 시엘의 자리를 얻음과 동시에 새로운 힘을 얻게 될 겁니다.”
“새로운 힘이라면….”
불길한 감각이 등골을 지나갈 때.
“넥타입니다.”
불길함은 현실이 되었다.
“리처드, 히페리온은 넥타를 이동시킬 수 있는 힘이 있사옵니다. 그에게는 아직 남아있는 넥타들이 있고, 그것들을 인간에게로 이동시킬 계획이 있사옵니다.”
“할머니에게 티탄의 넥타가 들어가게 해선 안 돼.”
넥타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며 넥타가 인간의 일상의 얼마나 많은 것에 관여하는지 알고 있었다.
또한, 티탄의 넥타라면 할머니를 완전히 사라지게 할지도 모른다.
“걱정 마시옵소서.”
“네가 바라는 게 만약에 나라면, 내가 생각하는 내 가족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할 거야.”
“그렇기 때문입니다.”
“……?”
아폴론은 다시금 우아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최명희에게 주어지는 넥타는 티탄의 것이 아닙니다.”
“그럼?”
“가디언의 것이옵니다.”
가디언.
“리처드가 가디언의 넥타도 손에 넣었나?”
“아닙니다. 제가 준 것입니다.”
“……!”
“그것만큼 최명희에게 어울리는 것은 없습니다. 또한, 최명희에게 주어지는 넥타는 최명희의 정신을 침범하지 않을 겁니다.”
확신이 느껴지는 말.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이번 일에 다른 사람도 아닌 할머니의 운명이 걸려있다면.
‘내가 직접 확인해야 해.’
곧이어 아폴론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최명희 또한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
“시엘 회의로 가기 전, 그녀는 가디언 중 한 명과 접촉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디언이 많은 정보를 주었지요.”
“너를 말하는 건가?”
아폴론이 고개를 저었다.
“헤르메스입니다.”
“……!”
“헤르메스가 누구와 있는지 아시지요?”
알다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그에 따른 대비를 한 것이었다.
자신도 어느 정도 따라잡았다고, 어엿하게 성장했다고 생각했건만.
‘할아버지는 더 멀어졌구나.’
허탈한 감정이 드는 것도 잠시, 이정기는 무언가 더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최명희에게 문제는 없을 겁니다.”
“할아버지가 관여했다면 믿을 수 있지.”
조금 더 노력해야 한다.
‘조금 더, 아니 아주 많이 성장해야 한다.’
할아버지처럼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아폴론.”
“하명하시옵소서.”
“그런 말투는 됐어.”
“허, 허나.”
처음으로 당황하는 듯한 아폴론.
“편히 대하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하지만 여긴 올림포스가 아닌 지구야. 그러니 왕을 대하듯 하더라도 그런 어색한 말투는 쓰지 마.”
꿀꺽.
침을 삼키며 당황하는 아폴론.
하지만 그는 왕의 심기를 거스르려 하지 않는 충신이었다.
“명대로, 아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이정기가 아폴론을 보며 말했다.
“네가 전에 말했던 것.”
아폴론이 직전에 말해주었던 것.
‘성장을 위해 가장 빠른 방법이자, 더욱더 신족의 육체에 적응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또 하나, 랭킹석을 만졌을 때 들었던 목소리가 말해주었던 것.
“시련에 대해 말해봐.”
* * *
‘시련이란.’
아폴론은 시련이자 과업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랭킹석에서 만났던 가디언에게도 들었던 시련이란 것.
‘왕의 길입니다.’
그것은 왕이 되기 위해 밟아야 하는 길이라고 했다.
원래라면 올림포스 내에서 이루어졌어야 할 일이지만, 이정기는 그 절차를 제대로 밟지 못했기에 지구에서 밟아나가야 하는 길.
이미 왕의 자격을 일깨웠고 각성까지 했다지만.
‘아직 완전한 왕이 되신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아폴론은 부족하다 말했다.
더 높은 곳, 더 높은 것.
‘더 강한 힘.’
이정기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올림포스에서의 힘을 되찾았지만, 더 큰 힘을 바라고 있는 자신.
언제나 목표는 같다.
‘할아버지.’
이건의 뒤를 따라야 한다는 생각.
그렇기에 시련을 밟아 온전해지겠다는 각오가 생겼다.
랭킹석에서 들었던 목소리처럼, 찾아낸 태양 아폴론은 길을 알려주었다.
달의 이면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던 이정기.
그가 다시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는.
“…….”
복잡한 얼굴의 헌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번쩍이는 은색의 갑주, 그 가슴팍에 그려져 있는 문양.
‘바티칸.’
이탈리아의 협회이자, 헌터들의 집단으로는 최대 규모 중 하나에 속하는 바티칸의 헌터들이 바로 그들의 정체였다.
“던전은….”
입을 여는 남자.
그의 본디 이름은 이미 잊었다.
대신 바티칸에서 받은 이름은.
‘유라엘.’
이정기와 맞섰지만 처참하게 패배했던, 믿음마저 흔들렸던 그 헌터가.
“저희가 확실히 봉쇄하고 있…, 있습니다.”
떨며 이정기를 대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단 하루, 바티칸으로 향했던 이정기.
그리고 그가 나왔을 때 상황은 백팔십도 뒤바뀌어 있었다.
이탈리아를 혼란으로 몰아넣던 태양의 괴인은 바티칸의 최고 귀빈으로 취급받고 있었으며.
‘전력으로 협조하도록.’
더 데이의 일원들조차 그를 공손하게 대하고 있었다.
떠오르는 목소리 하나.
‘믿음이 생긴다면 언제든 찾아와라.’
과연 그 말은 무엇이었을까.
유라엘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자신은 바티칸의 팔라딘이었다.
지금은 그저 바티칸의 명을 따를 뿐.
하지만 언젠가.
“던전 자체도 특별 관리 던전인데다, 녀석이 들어가고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간단한 브리핑을 들은 이정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나올 때까지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만 하면 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터벅, 터벅.
아무렇지 않게 홀로 던전을 향해 들어가는 이정기의 일행.
그 모습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유라엘 혼자만이 아니었다.
전번의 싸움, 그리고 특별 관리 던전을 홀로 들어가는 모습, 거기다 그 안에는.
‘에키드나.’
에키드나 중 하나로 유명한 호스가 날뛰고 있는 공간.
그런 곳을 홀로 들어가면서도 흔들림 없는 그 등을 보며.
쏴아.
유라엘은 물론 다른 팔라딘들도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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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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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