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권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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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어난 이정기는 유시아와 그녀를 안아들고 있는 금발의 남자, 아폴론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과 감정은 경의와 감탄 그리고 환희.
“아폴론이 왕께 경배드립니다.”
그러면서 유시아를 안아 든 그 자세로 한쪽 무릎을 꿇어 예를 취하는 그.
[아폴론이 충성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메티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충성 맹세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솔직히.
당장 그 맹세를 받아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충성을 맹세하는 즉시,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제약이 걸리지만.
‘아폴론은 나보다 더 올림포스와 넥타에 대한 이해가 높다.’
그러니 이 충성 맹세에 있는 맹점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그는.
‘작금의 상황을 바라고 있었다.’
아마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 그.
그렇다면 진즉 모습을 드러내 이모님의 위기에서 구해주었어야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
그 속에 무언가 다른 속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확실한 예언자였다.
“충성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녀석은 지금의 상황을 기다려, 녀석의 충성을 꼭 받게 만든 것이었다.
“받아들인다.”
느껴지는 넥타의 기운.
지금껏 상대했던 것들과는 다르다.
농밀하고도 짙은 넥타, 그에 못지않은 방대한 마력들.
이것들이.
“티탄.”
처음으로 조우하게 된 완전한 티탄이라는 사실.
오케아노스였던 사츠키마저도 그 힘을 상실했었는데, 이것들은 하나하나가 완전한 힘을 소유하고 있었다.
백 퍼센트의 힘을 되찾은 자신으로서도 셋 전부를 상대하기에는 무리였기에, 아폴론의 충성 맹세를 받아.
[각성 진행도….]
승산을 높여야 했다.
[100%]
마침내 왕의 자격을 일깨워 생겼던 변화가 종착지에 도달했다.
과연 아폴론 또한 진정한 존재인 듯, 각성 진행도의 상승 자체의 격이 완전히 다르다.
[각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쿠웅!
심장이 다시 크게 뛴다.
하지만 광기에 침범당했을 때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화악.
동공이 확대되고.
드드드드.
감각이 확장됨에 따라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이런 것을 느껴본 적 있다.
쥬피터 할아버지의 훈련을 받으며, 신족의 육체에 익숙해지기 위해 했던 훈련.
그때도 이런 감각의 확장을 느끼며 소름이 끼쳤었다.
지금도 그러하다.
‘각성이 무엇인가 했더니.’
무엇인지 이제 알 것 같다.
쥬피터 할아버지와의 훈련의 끝,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받았던 할아버지의 육체.
신족의 육체.
이정기는 지금껏 그 육신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니었어.”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겨우 작은 변화일 뿐이라고.
지금 이것이야말로.
타앗!
진정한 신족의 육체를 각성시킨 것이라고.
땅을 차고 오르는 이정기.
순식간에 그의 눈에.
히이이잉!
놀라 울부짖는 흑마의 눈알들이 보였다.
콰악!
그것들을 그대로 잡아챈 이정기는.
쒜에엑!
그대로 그것을 당기는 반탄력으로 집어 던졌다.
아무리 헌터라해도 믿을 수 없는 완력과 힘.
하지만 그것을 해낸 이정기는 고요하게 잠긴 눈동자로 다음 상대를 찾을 뿐이었다.
“새, 생츄어리!”
또 한 명, 마차에 올라탄 여자가 소리쳤다.
“생츄어리를 다시 시전해!”
겁에 질린 채 고함을 내지르는 그녀의 모습에 성전사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정기를 가두었던 생츄어리가 깨져 반발력에 부상을 입은 것이 다수였지만, 그들은 죽음마저 각오한 듯 몸을 일으켜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다.
“어딜.”
그때, 아폴론이 입가를 말아 올리며 제 목소리를 내었다.
“왕의 행사를 방해하는 것들이다.”
그의 목소리와 함께.
화륵!
여러 곳에서 동시에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감히 불경을 저지르는 저것들을 처리해라.”
화륵.
그 불길 속에서.
“태….”
붉은 갑주를 입은 헌터들이 밀려 나오기 시작했다.
“태양이다!”
모습을 감추었던 태양 길드, 그들이 바티칸의 성역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것.
그리고 또 하나.
퓨숙! 퓨숙!
날아드는 화살들.
묵직하게 불길 속에서 등장한 태양과 달리 그녀들은 그녀들이 쏘아낸 화살만큼이나 빠르게 움직여 유시아의 곁으로 다가와 유시아를 부축했다.
“사슴, 구하러 왔어요.”
“너희….”
달 사냥꾼.
태양에 이어 그녀들마저 모습을 드러낸 것.
아폴론은 씨익 미소지으며 말했다.
“왕이시여. 하고 싶은 대로 하소서.”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모두 치워드리겠나이다.
* * *
쿵! 쿵!
심장 뛰는 소리.
하지만 광기에 침범당해 뛰는 것이 아니었다.
쿠웅!
심장이 울릴 때마다 전신에 혈류와 함께 마력이 꽉 들어찬다.
이런 것은 올림포스에서나 느끼던 것이었다.
대기 중에 포화상태라 할 수 있는 막대한 마력이 숨을 쉬며 끊임없이 공급되는 느낌.
쿠웅!
그렇게 들이차는 마력에 넥타가 더욱 펌프질을 하는 느낌.
“하아.”
숨을 내쉴 때마다 몸 안에 가득 들어찬 마력이 흘러나갈 정도였다.
이정기가 고개를 돌리는 즉시.
파앗!
그의 몸이 움직였다.
히이이잉!
울부짖는 말.
겁에 질린 그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것도 잠시.
콰앙!
이정기의 주먹이 말의 안면을 강타하자 말의 눈꺼풀이 뒤집혔다.
그 여파로 인해 흔들리는 마차.
“최초의 밤-!”
소리치는 더 데이의 루카.
우우웅!
그와 함께 주변에 칠흑이 깔리며 이정기를 먹어치울 듯 감싸왔다.
그사이 추락했었던 교황 루시 또한 마차를 이끌고 함께 서 소리쳤다.
이정기는 칠흑에 둘러싸여 속박당한 듯 움직일 수 없는 상황.
“여명!”
루시의 목소리와 함께.
딸깍.
마치 시계추가 움직이는 소리가 나더니 주변이 환해졌다.
드러난 이정기는 검은 밧줄들에 꽁꽁 싸인 채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 보고 있었다.
스으으윽.
온몸에서 빨려 나가는 마력.
구구구구구.
넥타 또한 그에 동화하듯 이정기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댔다.
그리고.
히이이잉!
다시 한 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화륵!
온몸에 가해지는 뜨거운 열기.
치이이익!
이정기의 온몸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고온에 노출됨에 따라 피부가 타오르고, 수분이 증발한다.
또한, 이 햇볕은 그저 물리적인 영향만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치이이익!
여명에 빠져나간 마력을 대신하고 있는 새로운 마력을 태우고, 넥타의 활성화를 방해한다.
속박은 더욱 옥죄여오고, 이정기의 눈꺼풀이 감겨 들어가고 있었다.
“이럇!”
밑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이정기가 고개를 내리자 그곳에는 불타오르는 말과 마차를 이끌고 있는 시엘 루이기가 돌진해오고 있었다.
“너희는….”
이정기는 졸음 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티탄이냐, 인간이냐.”
이정기의 물음.
“너희가….”
달려오는 마차를 보며 이정기는 말했다.
“우리 부모님의 죽음에 관여했나?”
“인간의 기억을 물어보는군.”
이미 그들의 시간은 다른 헌터들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것.
1초가 1분처럼, 그 이상처럼 느껴지는 가속의 세계.
루시는 이미 승리를 확신한 듯 미소지으며 말했다.
“올림포스에 한국팀을 남겨둔 것을 말하느냐?”
파르르.
눈가가 떨리는 이정기.
“그건 내가 아닌 헬리오스에게 물어야겠지.”
시엘 루이기, 녀석을 차지한 티탄의 이름이 바로 헬리오스.
“하지만 루시와 루카의 기억에도 그에 대한 것은 있더군.”
루시의 입가는 귀밑까지 찢어질 듯 크게 올라가 있었다.
“한국팀의 헌터들이 훗날 자신들의 앞길에 방해가 될 테니, 제거할 기회가 있다면 제거해야 한다고.”
파르르.
“특히나….”
이번에는 루카의 목소리였다.
“루카라는 인간은 유영아라는 인간을 질투했던 것 같군. 이강이라 했나? 그 남자를….”
“그래.”
답을 하는 이정기.
그의 감겼던 눈이 뜨인 순간.
파아아앗!
강렬한 기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가 돌풍을 만들어내었다.
“감히 어떻게…, 최초의 밤을!”
경악하는 목소리.
최초의 밤이 무엇인가.
셀리네라는 티탄이 가진 권능으로,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속박에 빠트려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는 권능이었다.
이것은 가디언들의 목숨마저 빼앗을 수 있는 절대의 권능 중 하나.
세 남매가 티탄 중에서도 상위에 포진할 수 있었던 이유였으며, 쥬피터마저 고전시켰던 것이 바로 이 기술이었다.
헌데.
“……!”
이정기라는 인간이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파훼했다.
아무리 쥬피터를 계승하고, 왕의 자격을 일깨웠다고 하나 아직 애송이에 불과한데.
“어떻게!”
그때 그녀들의 눈에 보인 것은.
치이이익!
이정기의 마력이 타올라 생긴 줄 알았던 연기였다.
저건 이정기의 마력이 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꾸물.
진득한 검은색의 무언가.
“독…?”
자신들의 권능이 타버리고 있던 것이었다.
“권능을 태우는 독이라니!”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의 맹독, 티시포네.”
치이이익!
이정기는 고통스러운 얼굴을 참아내며 손을 내뻗었다.
다시 회수되어 흡수되는 검은 액체들.
그리고 이정기는 밑을 내려다보았다.
다그닥! 다그닥!
허공을 짓밟으며 맹렬히 돌진해오고 있는 태양의 형상을 한 마차.
그리고 마차를 운전하는 루이기의 손에 들린 기다란 장창.
이정기는 그것을 보며 양 주먹을 쥐었다.
‘네메아.’
붉게 물든 이정기의 눈, 그 뒤로 나타난 사자의 갑주.
네메아를 발동시킨 이정기의 평소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지만, 무언가 미묘한 느낌이 달랐다.
기다랗게 자라난 머리.
파스스.
그 머리가 새하얗게 탈색되어가고 있었다.
파스스.
동시에 푸르게 물드는 사자의 갈기.
이정기는.
콰아아앙!
그대로 태양 마차와 충돌해 굉음을 일으켰다.
시뿌옇게 가득한 연기.
파앗!
돌풍이 그 연기를 걷어내고 속에 감추었던 것들을 드러내었다.
고꾸라진 말들에게는 더 이상 불꽃은 없었고, 마차는 깨부숴져 파편이 흩날렸다.
그리고 이정기의 손에….
“커억!”
루이기의 목이 붙들려 있었다.
아주 조금, 조금만 더 힘을 준다면 이 목이 비틀려 루이기는 생을 마감할 것이다.
이정기의 팔에 힘줄이 돋아나던 그때.
“왕이시여!”
아폴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게 충언을 할 기회를 주십시오!”
이정기의 눈이 사납게 땅을 쳐다보았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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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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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