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142화 (142/284)
  • 제6권 17화

    142

    히이이잉!

    말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하지만 그 소리는 점차 희미해져 갔다.

    그 대신 들려오는 것은.

    쿵! 쿵!

    미칠 듯 심장이 뛰는 소리.

    ‘나는 누구지?’

    머리가 새하얗다.

    쿵! 쿵!

    나는 누구며.

    ‘여긴 어디지?’

    이곳은 어딘가.

    또,

    콰앙!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던 건가.

    아무 신경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몸.

    콰쾅!

    무언가를 부수고, 파괴하고 있는 것만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나는 무엇을 부수고 있는 거지?’

    계속되는 의문.

    쿵! 쿵!

    하지만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의식은 더욱 가라앉고, 자신의 시야는 오직 칠흑으로 물들어 있었다.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지만 이제는 상관없다.

    쿵! 쿵! 쿵!

    부수고 있다는 감각, 파괴하고 있다는 감각이 좋다.

    피를 보고 싶지는 않다.

    그런 끈적하고 지저분한 액체 따위보다,

    ‘으아아아아아!’

    그저 이 감정을 토로하는 이 행위가 좋다.

    히이이이잉!

    들려오는 말의 울음소리에 이정기의 정신은 한 번 더 가라앉았다.

    마차가 자신을 끌고 저 깊은 밑바닥으로 향하는 것만 같은 느낌.

    ‘어딜!’

    감히 누가 내 허락도 없이 나를 움직인단 말인가.

    내 몸은 나의 것이며, 모든 것은 나의 의지로 행해져야만 한다.

    쿠우웅!

    더욱 크게 뛰는 심장.

    화아아악-!

    세상에 빛이 돌아왔다.

    눈이 시릴 듯 에이는 태양 빛.

    그 속에.

    “할아버지…,”

    그리운 얼굴이 다시 한 번 나타났다.

    “쥬피터 할아버지!”

    “정기야.”

    자신을 보며 웃는 쥬피터 할아버지의 얼굴.

    왜인지 모를 감각에 이정기는 그대로 달려가 쥬피터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정기야.”

    할아버지는 그런 자신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모두 죽이거라.”

    * * *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유시아가 활에 화살을 장전하며 소리쳤다.

    우웅.

    저 앞, 자신의 조카가 이상한 구에 휩싸여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쾅! 쾅!

    조카는 마치 그곳에서 벗어나려는 듯 난동을 부리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움직임을 멎고 가만히 서 있기 시작했다.

    하늘 위.

    ‘젠장.’

    결국,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던 자가 나타났다.

    첫 여성 교황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자, 동시에 이탈리아의 협회장인 자.

    또한.

    ‘루이기의 동생.’

    이탈리아의 시엘 루이기의 동생이자 그 자체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강자라는 루시가 나타난 것이었다.

    하늘 위, 공중에 떠 마차와 말을 몰며 이곳을 내려다보는 그녀.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히이이이잉!

    멀리서 들려오던 울음소리가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뚫어야 해.’

    소리를 내는 말이 도착하기 전, 조카를 가둔 구를 뚫어야 한다.

    그리고 조카를 데리고 도망쳐야만 한다.

    우우웅.

    이건 함정이었다.

    애시당초.

    ‘모든 걸 계획한 거야.’

    어쩌면 태양조차 한 편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

    그 생각 속에서 유시아는 마침내 화살을 완성시켰다.

    자신이 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발.

    ‘만월.’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것이라면 조카를 가둔 구를 깨부수고, 조카를 구해낼 수 있으리라.

    그 과정에서 이정기가 부상을 입을 가능성도 높았지만.

    ‘살려야 해.’

    그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늘에 계신….”

    “악을 가두고….”

    “우리를 보호하사….”

    기도와 같은 주문들에 휩싸인 채.

    히이잉!

    말 울음소리가 더욱 가까이 들려오는 것을 들으며.

    팡.

    유시아가 활시위를 놓았다.

    맑고 청량한 소리.

    하지만 그 위력만큼은.

    콰콰콰콰쾅!

    가히 볼텍스에 비교할 수 있다고 헌터들이 생각할 수준이었다.

    주변을 전부 찢어발기며 나아가는 황금의 화살.

    쿠쿵.

    그 화살이 이정기를 가둔 구와 부딪히며 묵직한 굉음을 냈다.

    쿠쿠쿠쿠쿠쿠쿠!

    회전하며 구를 뚫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화살.

    “……!”

    유시아는 다시금 활에 화살을 장전하며, 이번에는 쏠 수 있는 만큼 쏘았다.

    쾅! 쾅! 쾅! 쾅!

    가히 신궁이라는 말이 절로 어울릴법한 실력이었다.

    먼저 쏜 만월의 뒤로 정확히 박혀 들어가는 화살들.

    그 화살들의 힘을 받은 만월이 구에 깊숙이 박혀나가려던 순간.

    타아아앙!

    만월은 결국 구를 뚫지 못하고 튕겨져 나왔다.

    “소용없는 짓거리야. 사슴.”

    당황한 유시아를 향해오는 위에서부터 들리는 목소리.

    “가디언의 힘조차 완성하지 못한 주제에 무슨 수로 타르타로스의 일부를 깨부순단 것이냐?”

    루시.

    그녀의 웃는 얼굴.

    그리고.

    “힘을 완성했다 한들, 부수지 못할 테지.”

    또 하나의 목소리.

    “루카….”

    더 데이의 루카, 그녀가 흑마가 끄는 흑 마차를 탄 채 유시아와 이정기를 내려보고 있었다.

    그것만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 같았다.

    결국.

    “우리 티탄들을 헤아릴 수 없는 시간 동안 가둬놓은 감옥의 일부다. 그리고….”

    화륵!

    타오르는 말과 마차.

    보는 것만으로도 신성을 넘어 미지의 감정이 들게 하는 그 모습.

    그것이 무엇인지 모를 리 없다.

    “루이…, 기.”

    결국, 이탈리아의 최강자 셋이 한자리에 모였다.

    스위스에서 열리는 시엘 회의에 참여한다고 알려졌던 루이기.

    ‘함정이었던 거야.’

    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결국 이 모든 상황을 예견하여 함정을 파놓았다는 뜻이었다.

    자신을 잡기 위해.

    아니, 이정기를 잡기 위해.

    그리고 그 말인즉슨.

    으득.

    태양이 결국 저들의 편에 서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예언자, 태양.

    “마침내.”

    하늘에서 들려오는 루이기의 목소리.

    그 뒤로 태양이 밝혀져 눈이 시려왔다.

    “악의 씨앗….”

    씨익.

    “아니 왕의 씨앗을 사로잡았구나.”

    그의 시선이 정확히 멈추어져 있는 이정기를 향해 왔다.

    “아르테미스. 이토록 기분 좋은 날이니, 네 놈은 보내주마. 이대로 돌아가겠다면….”

    지잉.

    “길을 열어주지.”

    시엘은 저 중 한 명뿐이지만, 셋 모두가 시엘급이다.

    어디 그뿐일까.

    이곳은 바티칸, 저들의 영역이며.

    “악의 처단이야말로….”

    아직 천에 가까운 바티칸의 성전사들이 남아 기도를 외고 있었다.

    누가 이 난관을 타파할 수 있을까.

    생각나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지만, 유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라도 혼자서 이 난관을 타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상황은 그 정도였다.

    최강일지라도, 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좌절감을 들게 만드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었다.

    “기회는 단 한 번뿐.”

    유시아를 향한 목소리.

    유시아는 생각을 마치고.

    스윽.

    활을 들어 올렸다.

    “결국, 죽음을 택하는군.”

    들려오는 목소리는 무시한 채 유시아는 웃어 보였다.

    ‘그래.’

    이제야 조금이나마 행복이 무엇인지 알았다.

    하지만 그 전의 인생에 있어 자신이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질렀던가.

    또한, 정기에 대한 기대감에 정기를 말리지 않은 것도 자신이다.

    자신의 신념.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야.’

    그때가 온 것일 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우웅!

    다시금 활에 충전된 만월.

    “널 구해줄게.”

    파앙!

    화살이 향한 곳은 루이기도, 루시도, 루카도 아니었다.

    그 뒤에 떠 있는 태양.

    “만월의 유성우.”

    유시아의 목소리가 울리자 밤이 찾아왔다.

    * * *

    “모두 죽이거라.”

    “할아버지…?”

    웃으며 자신을 향해 말해오는 쥬피터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이정기는 당황하여 두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모두 죽이라니.

    “감히 올림포스에 반항한 것들이다. 그들이 스스로를 주인이라 부르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이냐?”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점점 일그러졌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며 공포만을 느끼는 것들을 살려둘 이유가 있느냐?”

    “할아버지….”

    “느끼지 않았느냐?”

    할아버지의 얼굴은 이제 분노의 형상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겪었지 않았느냐? 네가 어떤 선의를 품고 있든지 간에 인간은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

    “네가 가진 힘을 질투하고, 갈망할 것이다. 너를 갈가리 찢어 저 바다에 던질 것이며, 네가 남긴 자그마한 것이라도 먹어치우기 위해 달려들 것이다.”

    이어지는 목소리.

    “그것이 인간이다.”

    이정기는 쉬이 부정할 수 없었다.

    쥬피터의 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틀리지만도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자신도 느꼈던 것.

    ‘이성이라는 가족.’

    그리고 일반 시민들.

    이탈리아에서의 모습.

    그들은 마치 동전과 같았다.

    언제든 다른 면을 보여 뒤바뀔 수 있는 것.

    그것이.

    “인간.”

    “그래. 그것이 인간이다. 정기야. 너는 그들의 왕이다.”

    “…….”

    “정화하여 네 땅을 개척하거라. 네 백성을 선택하거라. 그것이….”

    할아버지는 말했다.

    “왕이란 것이다.”

    꾸욱.

    이정기는 주먹을 쥐며 눈을 감았다.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던 충동이 머리를 쳐드는 것만 같았다.

    가족이라 생각했건만 가족처럼 여기지 않는 이성의 성혈들.

    자신을 질시하며 질투의 시선을 보내고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뒤통수를 노릴 것만 같은 헌터들.

    자신의 힘을 두려워하여 자신을 제거하려 했던 김대정이나 그런 목적을 가진 인간들.

    지금은 칭송하며 떠들고 있지만.

    ‘그들은 전에도 그랬어.’

    언제든 얼굴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

    이건, 할아버지가 어떤 취급을 받았던가.

    세상을 위해 온몸을 불살랐건만, 할아버지가 올림포스에서 돌아오지 못했을 때 할아버지를 추모하면서도 그들은 안도했다.

    또한, 기뻐했다.

    그런 것이.

    ‘인간.’

    자신은 인간에 대해 크게 배울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해하려 하면 할수록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편해지고 싶다.

    자신의 죽음이 아닌.

    번뜩.

    그들의 죽음으로.

    내 것을 빼앗는 자, 내 것을 탐하는 자, 나를 질시하는 자.

    콰앙!

    그 모든 것을 부수고 세상을 새로 쌓는다.

    ‘나에겐….’

    그래.

    “너에겐 그럴 힘이 있다.”

    힘이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할아버지들이 만들어놓은 제한을 부순다면 나는 원하는 무엇이든 가지고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겐.

    “네겐 그럴 자격이 있다.”

    세상을 위해 희생된 두 부모님의 아들.

    세상을 위해 지금도 싸우고 있는 할아버지.

    나는.

    “이 세상에 내리는 철퇴가 되거라.”

    저들이 저지른 죄악을 처벌할 심판.

    그때였다.

    쥬피터를 똑바로 직시하고 있던 이정기의 눈이 환한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너.”

    고요했던 눈이 분노로 이글거리며, 광기마저 물들어 있는 순간.

    이정기는 말했다.

    “누구야.”

    콰악!

    이정기가 쥬피터의 목을 움켜쥔 채 말했다.

    “나는….”

    쥬피터 할아버지, 아니 녀석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너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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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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