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권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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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할 말을 잃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위압감이라는 말이, 성스럽다는 말이 현실화된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것 같았다.
혹은 공포라는 말이나 죽음이라는 말이 실현된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꿀꺽.
유시아 또한 생각했던 광경이긴 했다.
이 바티칸에 발을 디디면서 이렇게 될 것으로 예측하기는 했다.
하지만 생각한 것과 현실은 전혀 다른 법이었다.
파르르.
유시아의 손끝이 떨려왔다.
머릿속에는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달 사냥꾼이 되어 수도 없이 겪어온 아수라장.
마주했던 죽음이라는 공포, 이길 수 없는 적, 헤쳐나올 수 없는 늪.
산전수전 다 겪으며 모든 것을 경험한 그녀로서도.
“아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우웅.
이천이 넘는 숫자, 바티칸의 성전사들이 도열해 마치 기도를 올리는 듯했다.
우우웅.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듯 사방의 마력이 꿀렁대며 형상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이건 아니야.’
도망쳐야 한다.
아니다.
‘도망칠 수 있을까?’
누구라도 작금의 상황 속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 남자’ 최고의 시엘이라 불리는 그 자라 할지라도.
자신이 새로 얻은 힘?
그것이 대단하다는 것은 안다.
일반적인 헌터들과 비교할 수 없는 무언가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정….”
이정기에게 퇴각을 권유하려 했다.
자신의 힘과 이정기의 힘이라면, 이 사태가 시작되기 전인 지금이라면 도망칠 가능성은 있다고 판단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결국 이정기의 이름을 완전히 부르지 못했다.
도열해 있는 바티칸의 성전사들을 보고 있는 이정기의 눈.
“흡!”
그 눈이 너무나 고요하다.
겁에 질리지도, 떨고 있지도, 그렇다고 얕보지도 않았다.
정기에게 저런 눈빛이 있었던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
‘짐승의 눈.’
그것도 최상위의 포식자의 눈.
사자가 수천의 사슴 떼를 보고 겁먹는 것을 본 적 있나?
아니 그것들은 오히려 어떤 녀석을 사냥할까 바라보며 입맛을 다신다.
그저 사냥에 집중하고, 사냥한 녀석을 어찌 먹어야 하는지만 생각한다.
포식자란 그런 것이었다.
사냥당하지 않는다는 자신감, 자신이 사냥하는 존재라는 자각.
‘대체….’
올림포스에서의 이정기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덜덜덜.
이제는 유시아의 팔 전체가 떨려왔다.
하지만 그건 바티칸의 헌터들을 보고 느꼈던 두려움이나 경외 때문은 아니었다.
‘정기라면….’
이제부터 시작될 싸움.
그 결과에 대한 기대.
이정기라면, 저런 눈을 하고 있는 짐승이라면.
“이모님.”
“으, 응.”
“제 뒤에 서세요.”
저 사슴 떼를 쓸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앞으로 나오시면….”
카카캉!
몸에 덧씌워지는 사자 갑주.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천천히 걸어 나가는 이정기.
꿀꺽.
유시아는 그 박력에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한 채 나아가는 이정기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타앗!
마침내 짐승이 사슴 떼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 * *
우우웅.
이천이 넘는 성전사들이 기도하는 듯한 행위.
그건 그들이 자랑하며, 결코 쓸 일이 없을 것이리라 생각했던 절대의 신성 스킬을 사용하는 소음이었다.
신성 스킬, 생츄어리.
프랑스의 시엘이었던 뷔앙이 세계를 올림포스에서 구하겠다는 명목으로 만든 길드와 동일한 이름을 가진 스킬.
그러나 바티칸의 헌터들을 생츄어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어 보였다.
‘겨우?’
그딴 것이 성역이라는 이름을 쓰다니.
헌터들로 만들어진 집합체가 세상을 구한다니.
그런 것은 진정한 성역이 아니다.
신의 뜻을 이어받고, 믿음을 위해 싸우며.
‘구한다.’
세상을 진정 구하겠다는 목적을 가진 자들만이 진정한 성역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자질이 있는 법이다.
그러니 자신들의 생츄어리는 뷔앙의 가짜와는 전혀 격이 다른 것이다.
우우웅!
이것이야말로 진짜 성역이다.
악은 침범할 수 없는 성역.
아니, 바티칸의 성역은.
‘악을 가둘 수 있는 성역.’
원래는 멸망을 부르는 자를 위해 준비한 것이며, 또 다른 최악의 인간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지만.
“전원.”
저 정도도 생츄어리의 위력을 눈에 담기는 충분하다.
이번 기회로 바티칸의 성전사들은 진정한 생츄어리의 위력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 믿음은 더욱 신실해질 것이며, 바티칸의 결속과 믿음은 위대한 영역에 닿을 것이다.
그러니.
“버텨라.”
생츄어리가 발동하기만 하면 된다.
타앗!
발을 박차는 소음.
그와 함께 자신들이 악이라 규정된 존재가 쏘아지듯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씨익.
바티칸의 최고 전사인 오투르는 그것을 보며 미소지었다.
주먹을 내뻗는 움직임이 겨우 눈에 잡힐 듯 빠른 속도, 그에 담긴 위력이 가히 파괴적이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 있는 수준.
그러나.
콰아아아앙!
악은 결코 신성을 꿰뚫지 못한다.
폭음과 함께 바티칸 전체가 진동하는 듯했다.
“괴물은…, 괴물이군.”
인정할 수밖에 없는 파괴력.
그러나 오투르의 미소는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
지금 저 장막 밖에 서서, 자신들을 보고 있는 악의의 눈빛.
악은 결국 이 장막을 뚫지 못했다.
이건 생츄어리가 발동하며 생기는 일종의 보호막에 불과하다.
보호막조차 이 정도인데.
‘생츄어리는….’
가히 비교할 수 없는 신성함을 자랑할 것이 분명했다.
생각을 마친 듯 악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앙!
내지르는 주먹질에 또다시.
쾅!
장막을 두드리는 소음이 울려 퍼졌다.
콰콰쾅!
그 소음이 일며 바티칸이 출렁이고, 성전사들의 안색이 파리해졌지만.
파스스.
장막은 꿰뚫리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겠지만 소용없다.”
오투르는 멈춰선 악을 향해 말했다.
“바티칸은 마음대로 발 디디고 돌아갈 수 있는 관광지 따위가 아니다.”
들어섰다면, 허락을 받아야만 나갈 수 있는 곳.
이탈리아와 로마의 중심.
아니.
‘이곳이야말로 세상의 중심이다.’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선택받은 바티칸의 시민들만은 모두 생존하리라.
그러니.
“얌전히 네 최후를….”
그때였다.
즈이이, 즈이이이잉.
괴기한 소음.
“……!”
그 소음에 바티칸의 헌터들이 얼굴을 굳혔다.
휘이이이이이잉!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움직여야만 하는 바티칸의 마력이.
구구구구구궁!
악의 손 등으로 몰려들어 회전하고 있었다.
‘저게 무엇이냐!’
오투르는 속으로 경악했다.
“대체…!”
저 힘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떻게 일개 개인이 이런 힘을 사용할 수 있냔 말이다!”
이천의 성전사들.
그들이 기도하며 만들어내는 생츄어리 만큼이나 막대한 기운이 악에게 몰려들기 시작한다.
파리해진 악의 안색.
분명 무리하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렇다 해도 홀로 이런 힘을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꿀꺽.
무언가 잘못됐다, 그렇게 생각한 오투르가 곧 눈을 가라앉히고 숨을 골랐다.
의심해선 안 된다.
자신들은 신의 선택을 받았으며, 신의 힘을 얻었다.
자신들은 결코 패배.
“너희들의 신이 있다면.”
악이 입을 열며 그 주먹을 뒤로 당겼다.
천천히 밀려 나오는 주먹.
휘이이이이이잉-!
그에 따른 소음이 귀청을 찢어발길 듯 커지고 있었다.
“모습을 드러내야 할 거다.”
점점 더 나아가는 주먹.
“아…, 안….”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은.
“안 돼….”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니면 제 병사들을 전부 잃어야 할 테니까.”
완전히 뻗어 나오는 주먹.
그와 함께 악의 입에서 나오는 작은 목소리.
“미들 볼텍스.”
우웅.
작은 공명, 그것이 오투르가 들은 전부였다.
무언가 커다란 소음은 이미 들을 수 없었다.
이미.
주륵.
그의 귀청은 터져나갔으니까.
* * *
“크억!”
“허, 허어…. 허억!”
“신이시여!”
절규가 가득한 광장.
그들이 그토록 믿었던 장막은 결국 깨져버렸다.
이제 바티칸의 헌터들은 장막 하나 없이.
퍼억! 퍽!
그대로 맹수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빠른 속도로 바티칸의 헌터들을 쓰러트려 나가는 이정기.
거친 호흡을 터트리고 있지만, 그의 움직임은 하나도 느려지지 않았다.
“버텨라!”
이곳저곳에서 울려 퍼지는 소음.
타앙!
그런 그들을 향한 화살 세례가 내려오기까지 했다.
“뭔가 이상해!”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저 멍하니 지켜보기만 하던 유시아가 나서기 시작한 것.
그녀의 화살은 망설임 없이 바티칸의 헌터들을 꿰뚫고 있었다.
“녀석들의 신성 스킬이…!”
장막은 깨졌고, 성전사들은 쓰러진다.
헌데.
“취소되지 않고 있어!”
아직도 바티칸의 마력 흐름은 어떤 목적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점점 더 거세지고 있는 상황.
유시아가 떠올린 단어는.
‘함정.’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함정일지 모른다는 말.
태양이 이 상황을 바라고 밀어 넣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서둘러야 해!”
결과가 무엇이든지 간에 서둘러야만 한다.
성전사들을 쓰러트리고,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콰앙!
하지만 이정기는 미친 듯 날뛸 뿐, 무언가 다른 것을 하진 않았다.
-정기야!
이정기의 머릿속에 목소리를 내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쿠웅!
이정기의 머릿속에 목소리를 전달하려는 순간, 유시아는 심장이 크게 뛰는 것을 느꼈다.
쿠웅!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격렬한 감정.
파괴에 대한 욕구만이 가득한 느낌이 자신의 심장을 타고 전해 들어와 자칫 유시아마저 정신을 잃을 뻔했던 것.
“정…. 기…. 야!”
무언가 잘못됐다.
사실 이미 함정에 빠졌을 수도.
“버텨라!”
버티는 성전사들과.
쾅!
그것들을 부수어나가는 이정기.
유시아의 선택은.
우우웅.
이정기를 향해 활을 겨눈 것.
‘무력화시켜야 해.’
이정기는 이미 이성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정기를 무력화시켜 이곳에서 데리고 빠져나가야 한다.
성전사들을 향해 쏠 때와는 전혀 다른 마력의 흐름.
마침내 무력화의 화살을 쏘아내려던 찰나.
팟!
달빛의 화살이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반역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머릿속에 들리는 괴이한 목소리.
“……!”
당황하는 유시아.
“안…, 돼!”
그리고.
우웅!
마침내 바티칸의 마력 흐름이 제 목적을 달성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고함소리.
“신이시여!”
“악을 가두는 성역을 하사하사!”
“우리를….”
바티칸의 모든 마력이 한 존재.
이정기를 향해 집중된다.
“보호하소서!”
그리고.
“……….”
이정기가 날뛰며 내던 굉음이 멈추었다.
유시아가 본 것은 적당한 크기의 구에 갇힌 이정기의 모습.
두웅.
그런 이정기가 주먹을 내지름에도 깨지지 않는 구.
그리고.
히이이잉-!
말의 울음소리.
유시아의 안색이 더욱 파리해졌다.
“……젠장.”
정말 함정이 맞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들이 나타날 리 없잖아.”
공중에 떠 있는 마차, 흐린 하늘색의 말과 마차,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교황…, 루시.”
바티칸의 주인, 그녀가 모습을 드러낸 것.
경악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히이이이잉-!
말의 울음소리가 더 먼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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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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