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138화 (138/284)
  • 제6권 13화

    138

    씨익.

    스테파노의 웃음이 더욱더 진해졌다.

    아침부터 느껴지는 이 기분 나쁜 불쾌함이 곧 사라질 것만 같은 예상이 들었으니까 말이다.

    “왜 대답이 없어?”

    이 덩치만 큰 동양인은 결국 두 손 두 발을 든 채 제 여자를 내놔야 할 것이다.

    만일 내놓지 않는다면?

    씨이익.

    더더욱 좋은 일 아닌가.

    아까는 제대로 스트레스를 풀지도 못했는데, 스트레스를 풀 기회까지 준다면?

    ‘사랑스럽게 어루만져줘야겠어. 두 연놈 모두.’

    스테파노는 허리를 똑바로 세운 채 동양인들을 보았다.

    “열을 세지. 그동안 네 운명을 결정짓는 것도 좋을 거야. 동양인 친구.”

    경고는 끝났고.

    “하나.”

    카운트가 시작됐다.

    스테파노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씨익.

    웃고 있는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이봐, 둘, 우리 말을 못 알아듣는 건가?”

    가장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어야 할 동양인 여자가 웃고 있는 것이었다.

    왜지?

    혹시.

    ‘헌터?’

    아니, 아니다.

    로마의 법에 의하면 헌터들은 제 가슴에 헌터 표식을 달고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계급의 차이와 신분의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으니까.

    저들에게 그러한 표식은 없다.

    어느 미친놈이 상위의 신분 표식을 할 수 있는데 하지 않겠는가.

    ‘마력 또한 느껴지지 않아.’

    분명, 분명히 헌터는 아닐 것이다.

    “셋. 뭐 알아듣건 말건, 두 눈깔은 멀쩡하겠지.”

    스테파노는 손가락 세 개를 접은 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그때.

    “이 녀석들 재미있는데? 우리 조카랑 내가 연인인 줄 아나 봐.”

    동양인 여자가 목소리를 내었다.

    처음 들어보는 여자의 목소리.

    스테파노는 조금 불길한 기분이 드는 것을 느꼈다.

    여자의 입에서 나온 언어, 그것은 헌터라면 모를 리가 없는 언어였다.

    “한국어? 한국인들이었나…?”

    괴물임과 동시에 존경을 받는 최고의 헌터, 그의 국적이 한국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때문인지 몰라도 한국의 헌터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을 가지고 있었다.

    랭커의 거의 십 퍼센트가 한국인 아니던가?

    헌터들에게 한국은 꿈의 땅이나 다름없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니야.’

    그저 국적이 같을 뿐.

    문제 될 것은 없다.

    사람은 모두 자기 편한 대로 상황을 유리하세 생각하는 편향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스테파노가 그랬다.

    한국인을 잘못 건드렸다간 일이 생길 수 있지만.

    ‘나는 더 데이야.’

    괜찮을 것이다.

    “넷. 알아듣지도 못할 헛소리를 했다간 숫자가 줄어드는 수가 있다.”

    “재미있네. 어쩔래? 조카.”

    그리고 처음으로.

    “시험 같군요.”

    동양인 남자가 입을 열었다.

    “다섯….”

    “시험? 무슨 시험?”

    “예언자라 하지 않았습니까? 저희가 이곳에 도착하는 걸 예견했다면, 저희가 그들에게 닿지 못하도록 손을 쓰려는 것이거나….”

    남자의 언어는 한국어가 아니었다.

    자신도 들을 수 있는 이탈리아어.

    “통행료 아닐까요?”

    “여섯…, 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둘은 완전히 스테파노를 무시하고 있었다.

    “통행료라…, 그럴 듯해. 태양이 사라지기 전 그들의 성격이라면 더 데이를 두고 보지 않았겠지.”

    “더 데이? 우리 길드를 알고 있다니 말이 잘 통하겠군. 여섯!”

    “태양 길드의 길드장은…, 저희도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있죠.”

    스테파노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더 이상 숫자 따윈 세지 않겠다! 이 벌레 같은 자식들! 네놈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몸소 느끼도록 해봐라!”

    그렇게 소리친 스테파노가 당장 동양인 남자의 멱살을 쥐어 바닥에 내팽개치려 했다.

    뻗어 나가는 손.

    그 손이 동양인 남자의 멱살을 쥐어 들어 올렸지만.

    “……!”

    그건 스테파노의 상상 속에서 벌어진 일에 불과했다.

    우뚝.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어…, 어….”

    입이 열리지 않는다.

    “더 이상 참는 것은 질렸다는 겁니다.”

    “참는 건 질렸다?”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저 두 동양인을 제외하고 자신들의 동료들도 멍청한 얼굴로 딱딱히 굳어 있었다.

    “예. 어차피 더 데이랑은 한 번 충돌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죗값이 있다면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할 테니까요.”

    “화끈하구나. 우리 조카는.”

    스윽.

    일어서는 두 동양인.

    “그래 좋아. 나도 뭐, 슬슬 짜증 나던 참이니까.”

    동양인 여자가 웃고 있을 때.

    “커억!”

    스테파노는 왜인지 모를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세상이 거꾸로 뒤집혀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

    “로마와의 전쟁이라. 나름 로맨틱한 것 같아.”

    그것이 스테파노가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 * *

    로마의 으슥한 골목길.

    퍼억! 퍽!

    묵직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시민들.

    또 어떤 헌터가 불쌍한 일반인을 붙잡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미…, 친놈들…. 너희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알고는 있는 거냐!”

    상황은 전혀 다른 종류의 성질을 가진 것이었다.

    헌터가 일반인을 폭행하는 것이 아니다.

    헌터가, 헌터를.

    “더 데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퍼억!

    더 데이가 당하고 있는 소음이었다.

    전혀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

    로마의 귀족들이 당하는 것은.

    “너희는….”

    또 다른 헌터가 의식을 잃어가며 말했다.

    “로마와 전쟁이라도 치를 셈이냐…!”

    로마와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더 데이, 그리고 휘하에 예속된 수많은 길드들.

    로마의 권력층, 그걸 넘어선 이탈리아의 권력층들이 모두 더 데이의 밑에 있다.

    “로마와의 전쟁이라.”

    동양인 여자가 씨익 웃어 보이며 말했다.

    “맞아. 그럴 셈이야.”

    “뭐…!”

    “그러니까 똑똑히 전해.”

    이미 수차례, 더 데이의 헌터들을 사냥하고 있는 둘.

    동양인 여자는 마침내 목적을 밝히며.

    “달 사냥꾼의 사슴이 돌아왔다고.”

    “……!”

    그 정체마저 밝혔다.

    “그리고 태양이 함께라고.”

    “마, 말도 안 되는….”

    씨익.

    스스로를 사슴이라 밝힌 여자가 쓰러져 있는 헌터의 머리채를 잡아들며 말했다.

    “지금까지 편하게 지냈지? 일반인들은 사람 취급도 안 하면서 말이야. 아, 헌데 이걸 어째?”

    그의 목에 닿아있는 화살촉.

    살대에 그려진 것을 헌터인 남자가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붉은 만월.

    “진짜….”

    진짜 달 사냥꾼인 것이었다.

    “우리 정의의 도적들이 너희를 처단하러 왔다 이 말씀이란다.”

    “아무리 달 사냥꾼이라도….”

    “제대로 못 들은 거야?”

    뚜욱.

    “태양도 함께라고.”

    퍼억!

    마침내 소리치던 남자마저 의식이 끊겼다.

    장내에 가득한 쓰러진 헌터들.

    “이제 슬슬 반응이 올 때가 됐는데.”

    벌써 수차례 더 데이의 헌터들만을 골라 사냥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이제 슬슬….”

    유시아가 말을 잇다가 말고 웃음을 내보였다.

    선명히 느껴지는 마력의 파동.

    이제야 기다렸던 것이 시작되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위잉.

    상공으로 울려 퍼지는 작은 소음.

    위이이이이이잉-!

    사이렌 소리가 로마 전체를 울리기 시작했다.

    “로마의 사이렌이라.”

    게이트에 의해 가장 피해를 최소로 입었던 로마.

    로마에만 있었던 헌터들이 이 사이렌 소리를 들어봐야 얼마나 들었을까.

    “게이트 브레이크 경보음을 듣는 건 오랜만이네.”

    게이트 브레이크를 경고하는 사이렌.

    이 소리가 울려 퍼지면 시민들은 대피하고, 근처에 동원할 수 있는 헌터들은 지정된 위치를 사수해야만 한다.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사이렌.

    지금껏 위험에 극히 노출이 드물었던 로마는.

    “우리를 게이트 브레이크 취급하는 거네?”

    뭐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이미 그들이 쓰러트린 더 데이 헌터의 숫자가 100을 넘겼으니.

    “조카, 이제 시작이야. 괜찮겠어?”

    태양 길드를 찾으러 갈 때도 했던 말.

    “물론입니다.”

    이정기는 똑같이 답해주었다.

    * * *

    위이이이잉!

    로마 어디에서도 들을 수 있는 사이렌 소리는 멈출지 모르고 울려 퍼지고 있었다.

    척! 척! 척!

    헌터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자리를 고수했고, 전투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

    “진짜 게이트 브레이크라도 일어난 거야?”

    헌터들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당황하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미쳤냐. 게이트가 발생 안 한 지 20년은 넘었어.”

    “그럼 왜 이 소란이야?”

    “그게….”

    소식 빠른 헌터 하나가 말했다.

    “더 데이 헌터들이 사냥당하고 있다더라.”

    “뭐?”

    그건 게이트가 발생했다는 소리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로마에서 더 데이를 건드는 미친놈들이 있다고?”

    “그냥 미친놈들이면 이 난리도 안 났겠지. 벌써 사냥당한 더 데이 헌터가 100을 넘었단다.”

    “뭐….?”

    그 정도면 그냥 미친놈의 난동 수준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에서도 최고의 헌터들만이 가입할 수 있는 더 데이.

    그런 더 데이의 헌터가 100이나 당할 정도라면.

    “랭커…, 가?”

    “그냥 랭커겠냐. 사냥당한 헌터 중에….”

    꿀꺽.

    침을 삼키며 남자가 말했다.

    “시티즌도 있다더라.”

    “……!”

    시티즌.

    더 데이에서도 일반 길드원이 아니다.

    간부로 취급되는 상위 길드원.

    그들은.

    “최소 중위권 랭커야.”

    말단이라도 하지만 랭커에 해당하는 이들.

    그런 시티즌을 사냥할 정도라면 중위권은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대체 누구이기에….”

    남자의 질문에 또 다른 남자가 주변을 살피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자신도 믿기지 않는 일.

    “망령들이야.”

    “망령들?”

    “달 사냥꾼.”

    “……!”

    “그리고 태양.”

    “뭐…?”

    들으면 들을수록 현실성 없는 이야기.

    “더 데이의 악행을 처단하겠다며 녀석들이 움직였단다.”

    위이이이이잉!

    또다시 울려 퍼지고 있는 사이렌.

    “미친….”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히든 길드 중 세 손가락에 드는 두 개의 길드가 움직였다.

    그렇다면 게이트 브레이크에 준하는 경보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금방 끝나겠지.”

    더 데이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아니 그들이 가진 힘에 대한 공포가 이미 모든 헌터들에게 있었으니까.

    그때였다.

    “왜 그래?”

    갑자기 멈춰선 남자를 향해 불안하게 묻는 질문.

    “…….”

    하지만 남자는 대답 없이 우뚝 서 있었다.

    “그 생각….”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등줄기에 쫘악 소름이 돋았다.

    “변치 않을 자신 있니?”

    “……!”

    자신도 마찬가지다.

    몸이 말을 듣질 않는다.

    도망쳐야 한다, 소리쳐야 한다, 아니면 반격이라도 해야 한다.

    수십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어….”

    그저 조용히 신음만을 내는 것.

    “더 데이가 아니네. 어쩔래?”

    “어차피 경고는 더 데이만으로 충분합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나머지들은 알아서 눈치를 채야 할 겁니다.”

    또 다른 목소리.

    “더 이상 예전처럼 지낼 수 없다는 걸요.”

    “그래? 그렇다면….”

    퍼억! 퍼억!

    기절해버린 헌터들.

    “녀석들이.”

    유시아가 마력의 흐름을 느끼며 말했다.

    “가드들이 오고 있어.”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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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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