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권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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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된 헌터들이 있었다.
시엘이라 불리우는 그들.
그들이 현역으로 활동하며 쌓은 업적은 지금까지도 깨어지지 않은 기록이며, 신세대가 탄생하여 헌터들의 전력이 일률적으로 상승한 지금도, 범접할 수 없는 하늘 위의 하늘이라 평가되는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도 비교 불가능한 자가 있었다.
‘공포.’
이름만 들어도 공포에 떠는 헌터들.
‘경외.’
그러면서도 그를 존경하며, 그처럼 되고 싶기를 바란다.
그와 함께 설 수 있다면 목숨을 버리는 것도 각오할 정도였으며.
‘광신.’
차라리 그의 손에 죽고 싶다며 그를 찾아가 대결을 요구하는 자들마저 있을 정도였다.
전설 중의 전설.
하늘 위의 하늘, 그 위의 하늘이자 우주.
그의 이름이 바로.
“이…, 건.”
이건이었다.
콰앙!
어느 한 길드의 간부급이나, 원로라 불릴 정도로 나이가 있는 자들이 아니면 그의 전투를 직접 목도한 경험도 없었다.
열화된 화질의 옛 화면 속에서만 볼 수 있던 것이 그것이며, 그마저도 이건을 두려워해 업로더들이 자진으로 삭제한 것이 바로 그의 전투 장면이었다.
하지만 운 좋게도 대한민국의 헌터들, 백두의 간부급은 한 번 혹은 그 이상 이건의 전투를 본 적 있었다.
그리고.
“이건이…, 아니, 아니지.”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광경은 마치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
콰앙!
계속해서 들려오는 폭발음들.
수백에 가까운 스틸 크로우가, 만약 헌터가 존재치 않았다면 저들만으로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을 재앙급 몬스터의 군단이.
콰아앙!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마냥 매를 맞고 있었다.
타앗.
땅을 박차고, 하늘에서 주먹을 내뻗는다.
그렇게 수십의 스틸 크로우를 말 그대로 갈아버리고, 남자는 공중에서 방향을 뒤튼다.
“비행 스킬…!”
비행 스킬마저 가지고 있는 걸까?
하지만 실력 있는 헌터들은 저것이 단순한 비행 스킬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개 중 눈썰미가 뛰어난 자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볼텍스… 부스터….”
전설의 헌터가 마치 허공을 땅처럼 밟으며 사용하던 그 능공허도의 기술.
이건의 손자.
“이게 가능한 건가….”
이정기는 이건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듯해 보인다.
콰앙!
또 한 번의 폭발.
이정기의 주먹 끝에서 터져 나온 붉은 사자가 스틸 크로우 백 마리를 한꺼번에 먹어치웠다.
타앗.
지친 듯, 잠시 땅에 내려앉은 이정기.
‘그래, 그도 인간이야.’
당연한 일이라고 안도함과 동시에.
“이제 저희가….”
그들이 나서 저 영웅을 구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었다.
“길드장님의 신호가 있을 때까지는 무조건 대기합니다.”
하지만 이진석은 그마저도 막았다.
이정기가 지친 것이라 판단한 것은 그들만이 아닌 스틸 크로우들도 마찬가지인 듯, 허공을 빠른 속도로 돌던 녀석들이 이정기를 향해 내리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우웅.
이정기의 양손에 빛나는 붉은 빛의 활이 들려있는 것은.
그런 그의 활에 금색의 화살이 깃든 것은 바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파아아앙!
활시위가 놓였다.
백두의 헌터로 활동하며, 아니 그 이전부터 헌터로 활동하며 지옥 같던 게이트의 시대를 지나온 헌터들.
그런 그들이 얼마나 많은 원거리 딜러들을 보았고, 또 얼마나 많은 궁수들을 보았겠는가.
아니, 바로 옆의 강민혁만 해도 세계에서 손꼽는 궁술 실력을 지닌 궁사였다.
하지만.
콰콰콰드드드드드드득!
이것은.
“마, 말도 안 되는….”
“맙소사….”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이정기의 활에서 발사된 화살이 일직선으로 내려오던 스틸 크로우 무리를 그대로 꿰뚫었다.
“꿰뚫기….”
그리고도 힘이 남았는지.
파아아아아앙!
화살은 허공에서 그대로 폭파해 마력을 떨어트려, 나머지 스틸 크로우를 처치하고 있었다.
“미친….”
전투의 끝.
그것이 전부였다.
공격대 전체가 나서 수 시간을 싸우고, 안간힘을 다해 싸워야만 했던 몬스터들.
지금 이정기가 상대한 것은 그보다 더 많은 수, 그리고 더 강력해 보이는 것들이었지만.
“아이템과 마석과 사체를 수거하세요.”
이정기는 그것을 홀로 쓰러트린 채, 피 한 방울 묻지 않고 다가와 말했다.
스스스슥.
헌터들이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며 길이 만들어졌다.
인간, 같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리고.
“와…, 와아아아아아아!”
저자가 자신들의 길드장이라는 벅차오르는 감정에 길드원들이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정기는 조용히 이진석이 건네는 수통을 받아들이며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각성 진행도… 1%]
* * *
길드원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첫 전투에서도 새로운 길드장인 이정기를 위해 돋보이려던 그들은.
“뒈져!”
“으아아아!”
더더욱 안간힘을 쓰며 전투에 몰입하고 있었다.
아주 무뎌졌다고는 하나 그들은 헌터, 그 본성이 어디 가지 않았다.
‘그런 것을 봤는데….’
‘피가 안 끓을 수가 있나.’
이정기의 전투를 본 그들은 잠들어 있던 그들의 본성을 일깨웠다.
‘강해지고자 하는 열망!’
사실이 어떻든 그들이 본 이정기는 자신들과 같이 피와 살, 뼈로 이루어진 인간.
그가 쓰는 힘마저도 같은 마력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럴진데.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저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하는 데까진 해보자.’
성장에 대한 기대.
그리고 그 끝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게 된 그들.
“와아아아아아아!”
그들의 사기는 가히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아있었다.
일반 길드원들뿐만이 아니었다.
“오랜만이군. 이런 감정은.”
“자네도인가?”
“몬스터 사냥이 재밌다고 생각될 줄이야.”
“피나 닦고 말해.”
오랜 시간 진전 없이 제 자리에 머물러 있던 공대장들.
스스로의 성장을 신경 쓰기 보다는 공격대를 굴리고, 그들을 지휘하며 전체적인 것을 바라보던 그들이 직접 전투의 일선에 선 채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멈추어있던 열망이 다시금 샘솟는 것.
“열다섯.”
“저는 열일곱입니다만.”
“다른 딜러들이 거의 죽여놓은 것을 막타친 것 아닙니까?”
“그럼 활을 배우시죠.”
이진석과 강민혁 또한 불이 붙은 것은 마찬가지.
‘그래도 봐줄 만하네.’
이정기는 그 모습을 보며 이제야 봐줄 만하다고 생각했다.
꺼져 있던 열망이 타오르는 것.
‘그래야 헌터는 성장할 수 있다.’
이것이 할아버지의 가르침이자, 자신이 몸으로 체득했던 경험이었으니까.
분명 첫 전투 이후로 지쳤을 것이 분명한 길드원들은 오히려 작금의 전투에서 더 월등하고 숙련된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상처를 입어도, 망설이지 않고 나아간다.
콰앙!
그들이 위험할 것 같으면, 다른 헌터들이.
아니면 이정기가 나서 그들이 목숨을 잃지 않게 도와주었으니까.
‘즉사만 안 하면 어떻게든 살 수 있다.’
‘그리고….’
강해질 수 있다.
헌터들의 움직임은 시시각각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좌-익! 전-진!”
연합 공격대의 움직임은 이정기의 명령에 따라 바뀌어 가고 있었다.
지휘를 이정기가 한다고 했을 때, 사실 불안해하던 헌터들이었다.
일신의 실력이 뛰어난 것은 당연하지만 오히려 실력이 너무나 뛰어나기에, 나이가 적기에, 지휘 경험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이정기가 이성의 팀장으로 있었던 사실은 알고 있으나 그 팀원의 수가 너무 적었고, 팀급을 지휘하는 것과 공격대, 아니 연합 공격대를 지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인 것도 이유였다.
“방-벽!”
하지만 아니었다.
콰콰콰쾅!
이정기는 지휘 또한 수준급, 아니 그 이상이었다.
‘대체 이런 건 어디서 배웠을까?’
이런 의문은 길드원 전체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그건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길드원들이 더더욱 잘 느끼고 있는 현실이었다.
‘부담이 적어.’
방진은 막아내는 공격에 대한 부담이 덜어졌다.
위치 선점이 바뀐 것과 타이밍이 변화한 것뿐이었다.
헌데, 더 적은 수의 탱커들이 더 많은 양의 공격을 막아내면서도 마력과 체력에 부담이 덜했다.
딜러들 또한 마찬가지.
콰콰쾅!
이정기가 가리킨 방향에 미리 스킬 포격을 가하면, 스틸 크로우들은 마치 빨려 들어가듯 그곳에 나타나 공격에 몸을 노출시켰다.
“이게 뭐야…, 대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식과 결과.
이정기는 그것을 보며 남몰래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직 안 녹슬었네.’
자신이 지휘에 대한 경험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
그들은 틀렸다.
‘내가 얼마나 많이 지휘를 해보았는데.’
이십여 년을 보낸 올림포스.
훈련과 생존에 기초한 생활이라고 하지만, 쥬피터 할아버지를 만나고 나선 생존에 대한 걱정은 크게 던 채 생활했다.
훈련이 끝나고 주어지는 자유 시간.
하루 이틀이야 모르겠지만, 그것이 몇 년이나 지나면 심심할 수밖에 없는 노릇.
이정기는 처음 이건 할아버지가 가져다주었던 것처럼 놀이를 시작했다.
‘몬스터 놀이.’
다만 어릴 때와 같은 술래잡기는 아니었다.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떠냐.’
쥬피터 할아버지가 의견을 주었던 것은.
‘전쟁 놀이다. 내가 어릴 때, 많이 했던 것이지. 몬스터들을 포획해 오면 녀석들이 네 말을 따르게 해주마.’
몬스터들을 포획해 길들이고, 녀석들로 군대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수십이었던 녀석들이 해가 거듭될수록 배로 불어나 나중에는 거의 일만이 넘어가는 숫자를 가지고 놀았었다.
제각기 다른 몬스터들, 혹은 통일된 몬스터들.
그렇게 따로 부대를 운영해 본 경험도 있었다.
몬스터를 통한 지휘와.
‘인간을 움직이는 건 별반 다를 바 없어.’
물론 조금의 차이점이 있다지만, 이정기는 오히려 인간을 통솔하는 게 더 쉬웠다.
콰아아아앙!
그렇게 백두 길드는 차곡차곡 전진해나가며 성장해나가고 있었다.
* * *
“하아. 하아.”
첫 전투가 끝났을 때처럼 거친 숨을 토해내는 길드원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 더 이상 피로감은 없었다.
오히려 희열과 짙은 만족감이 가득한 얼굴들.
“마력 운용량이 크게 성장했어….”
“스킬 하나가 더 생성됐어.”
“이거 보여? 육체가 진화한 것 같아.”
극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변화.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헌터들의 성장은 지독하게도 지난한 일이지만, 이들이 해낸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SS급 던전.’
사실상 이성급이 아니라면 전멸을 각오해야 하는 수준.
이진석과 강민혁을 제외하고 이곳의 몬스터들과 일대일로 싸울 수 있는 헌터가 몇이나 될까?
공대장들 중에서도 절반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이들은 그런 것들의 시체를 산으로 쌓아가며 온 것이었다.
백두에 배정된 이 던전이 누군가 백두를 무너트릴 계획으로 배정시킨 것일지도, 혹은 정말 우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던전이 백두의 전체 수준이 하나 이상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었음은 확실한 것이었다.
원래라면 결코 불가능했을 공략.
‘이정기.’
길드원들의 뇌리에 자신들의 새로운 길드장의 이름이 깊게 박혔다.
생과 사를 함께하며, 그들의 목숨을 수십 번은 구해준 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더욱 이상한 일이라.
하지만 모두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정기는.
“…….”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곧 보스를 마주해야 할 시간.
그런데.
[넥타 반응입니다.]
지금과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흠. 이곳은 특별 관리 던전이 아닐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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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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