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권 7화
132
“전-진!”
우렁찬 함성 소리와 함께.
쿠구궁!
헌터들이 발을 내디뎠다.
“방-진!”
또 한 번의 소리가 울려 퍼지자, 가장 앞 열의 탱커 계열 헌터들은 방패들을 땅에 꽂고 마력을 일깨웠다.
우우웅!
마력이 공명하며 내는 소음.
지잉!
그들의 앞으로 마치 커다란 방패와 같은 형상이 나타났다.
이정기도 저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연합 스킬.’
수많은 헌터들이 마력의 배열을 하나로 만들어 막강한 규모의 스킬을 발동하는 것.
연합 스킬을 가진 한 헌터가 중심축이 된다면, 나머지는 비슷한 배열의 마력만 부여하는 것으로서 발동하는 스킬.
그 위력은.
콰아아앙!
SS급 던전의 수많은 몬스터들이 쏘아내는 독액과 점액, 원거리 공격들을 막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원-딜!”
또다시 울려 퍼지는 함성 소리.
지잉, 지잉, 지잉.
이미 준비되어 있던 마법들.
퓨욱! 퓨욱! 퓨우욱!
화살들을 기본 바탕으로 제작된 특수한 아이템들까지 연합의 방패 스킬을 너머 몬스터들을 향해 쏘아졌다.
콰아아앙!
폭발과 함께 수백은 되어 보이는 몬스터들이 일순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몇 마리는 죽어 바닥을 기었고, 중상을 당해 울음소리를 내는 몬스터들도 있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딜-러!”
그것이 수많은 공격대가 모인 연합의 주요 전략의 막바지.
탱커들이 적들의 강력한 공격을 막아내고, 원딜러들이 적들의 진형을 무너트린다.
그리고 이제.
타앗!
근접 딜러들이 나설 차례.
“이야아아아앗!”
고함을 내지르며 뛰쳐나가는 딜러들.
탱커들도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닌 몇몇은 딜러와 함께 뛰쳐나갔으며, 나머지는 원거리 딜러진을 보호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서걱!
딜러들이 몬스터들과 싸우는 사이, 원거리 딜러들은 대열을 이탈한 몬스터들을 집중사격하며 숫자를 하나씩 줄여나가고 있었다.
서포터들의 힐, 적재적소에서 터져 나오는 결계.
‘이게….’
연합 전투.
그건 헌터들의 공략이 더 이상 아니었다.
마치 전쟁.
잘 훈련된 정병들이 인류를 노려오는 적들과 겨루는 듯한 모습임이 분명했다.
“흐아아아압!”
백두의 이름을 단 병사들은 지금 그 누구보다 사기가 치솟아 있었다.
길드장이 바뀌었다.
길드장은 길드의 깃발이나 다름없는 존재이자, 길드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
두려워할지언정, 동시에 존경하는.
그래. 경외하는 자의 손자가 자신들의 리더가 되어 자신들을 이끌고 있었다.
또한, 길드장이 바뀌어 치르게 된 첫 전투이기에, 이곳에서 큰 전공을 세운 자는 새로운 길드장의 눈에 들어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계산.
“죽엇!”
“아이스 커터!”
“풀 배시!”
헌터들은 스킬을 아끼지 않으며, 몬스터들을 도륙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두 명이었다.
파앙! 파앙! 파앙! 파앙!
일 초에 한 발씩, 커다란 마력 화살을 발사하고 있는 강민혁.
그의 화살이 쏘아지면, 몬스터의 머리통이 터져나가며 즉사하기 일쑤였다.
탱커진들이 원딜러들을 보호하기 위해 섰다고 하나, 사실상 강민혁의 화살에 꿰뚫린 몬스터들은 원딜러 근처에도 오지 못하고 있었다.
파앙!
어디 그것뿐일까.
붉게 빛나는 마력의 화살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딜러들과 교전하는 몬스터들의 머리통까지 꿰뚫고.
“가, 감사합니다.”
위험에 처한 딜러들을 순식간에 구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
“하아아….”
마치 귀신이 우는 듯한 소리를 내는 남자.
불타오르는 검을 들고, 그 머리칼과 눈썹 상반신 전부가 타오르고 있는 남자.
타앗!
그는 홀로 적진에 들어온 용맹한 장수처럼 전장을 누비며 적들을 베어나가고 있었다.
던전의 몬스터는 스틸 크로우.
별 볼 일 없을 것 같은 이름과 달리 그 커다란 덩치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이점으로, 어지간한 스킬에는 상처 하나 입지 않는 방어력이 발군인 몬스터.
서걱!
하지만 이진석의 칼날 앞에 녀석들을 마치 두부처럼 썰려나가고 있었다.
쿵!
또 한 마리가 격추되어 바닥에 떨어졌고.
타앗!
이진석은 격추한 몬스터를 박차고 하늘로 떠올라,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히이이이잉.
귀신이 우는 듯한 소리가 나면 언제나 스틸 크로우가 반 토막이나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총 세 시간.
마침내 첫 전투가 끝났다.
* * *
“푸하!”
이진석이 머리에 수통을 부으며 호흡을 내뱉었다.
온통 피로 물들어 있는 모습.
그뿐만이 아니었다.
“포션! 포션!”
백두의 길드원 모두가 전투의 후유증을 씻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SS급 던전에서의 첫 전투.
그건 나름대로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었다.
“부상자, 삼십칠 명!”
소리치는 길드원.
“사망자, 제로!”
“와아아아-!”
SS급 던전에서의 사냥.
사망자가 없다는 소식에 헌터들의 얼굴이 흥분으로 달아올랐다.
이번 던전 공략이 무리라고 생각했던 많은 헌터들, 새로이 바뀐 길드장 탓에 따라왔지만 던전에서 개죽음을 당하기 싫다면서 탈퇴한 길드원만 해도 기백이었다.
헌데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도 모자라 사망자까지 없다니.
“이진석! 이진석!”
“도깨비!”
그 이유라 할 수 있는 이진석을 연호하는 길드원들.
“강민혁! 허깨비가 최고다!”
“강민혁-!”
강민혁을 부르짖는 길드원들.
사실상 그들이 처치한 몬스터의 수가 하나의 공격대보다 더한 숫자였기에 당연한 일.
기존의 공대장들은 그런 모습에 작게 입술을 짓씹기도 했다.
너무나 명확한 실력차.
“저 정도라고…?”
“이렇게 금세 성장할 수 있는 건가?”
그들이 아는 이진석도, 강민혁도 결코 이 정도의 실력을 갖추지 못했었다.
그런 놀라움도 잠시.
“어떠셨습니까?”
강민혁과 이진석이 다가와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이정기는.
“실망입니다.”
하나도 속이지 않은 사실을 말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은 전부 헌터들, 그것도 상위의 실력을 지닌 헌터들이었다.
못 들었을 리가 없다.
“…….”
사납게 굳는 얼굴.
이정기는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말했다.
“차라리 몬스터가 낫겠더군요.”
“……!”
“불필요한 전력 배치도 그렇고, 쓸데없는 겉치레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정기의 말에 더욱더 굳는 얼굴들.
하지만 이진석과 강민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누구던가.
최고라 불리우는 이성에 몸담았던 헌터들이었다.
‘이성은 이렇지 않다.’
최소한 이정기의 기준에 만점은 아니어도 합격점은 받을만한 실력들이었다.
그러나 백두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아.’
이진석과 강민혁이 없었다면?
‘절반이 죽었겠지.’
왜 백두가 이 던전을 내버려 둔 채 공략하지 않았던 것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이들은 부족하다.
대한민국 10대 길드라는 이름에 안주했으며, 엉망이 되어가는 길드에 안주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길드장님.”
제3 공대장 김규한이 그런 이정기를 향해 다가와 말했다.
“길드원들이 듣고 있습니다.”
“사실을 말하는 것도 문제입니까?”
“그런 게 아니라….”
김규한 또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정기를 인정하기는 한다.
그가 백두를 새롭게 이끌 것이라고 기대도 한다.
하지만.
‘이러면 안 되지.’
처음부터 길드원들의 기를 죽이고, 깎아내린다면 어떻게 하자는 건가.
그리고.
“이런 말씀을 드리기 죄송하지만….”
길드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많았다.
“길드장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첫 전투에서 이정기는 안전한 뒷 라인에 몸을 숨긴 채 그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세상에 위명을 떨치고 있는 이정기이지만, 그 실력을 제대로 본 이는 손에 꼽는다.
새로운 길드장.
길드를 이끄는 것에 수많은 재능이 필요하다고 하나, 어찌 되었건 실력이 가장 중요했다.
전 길드장 주영은도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 스스로가 서드 라인의 랭커이기에 군말 없이 따랐던 것 아닌가.
제로 라인이라고 하지만.
‘그 격차를 제대로 아는 이가 많지 않다.’
그렇기에 더욱 실망스러웠다.
이런 것이 10대 길드라니.
“앞으로의 전투에서 이진석 일 공대장은 가능성이 있는 헌터들을 눈여겨보세요.”
이정기는 이진석을 향해.
“강민혁 2 공대장은….”
이번에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목숨마저 바칠 수 있는 충성심 있는 자들을 선발하세요.
고개를 끄덕이는 강민혁.
“그리고….”
이정기는 어느새 김규한을 앞세워 모여든 공대장들을 향해 말했다.
“앞으로 세 번의 전투까지, 아무도 나서지 마세요.”
“그게 무슨…?”
“이건 명령입니다.”
휴식이 끝나기도 전, 이정기가 먼저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 * *
“말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도열해 있는 기천의 길드원들.
그들은 불안한 눈으로 앞을 보고 있었다.
까드드드득!
괴이한 울음소리를 내는 스틸 크로우, 그것들이 도합 육백에 가까웠다.
첫 전투에서보다 훨씬 많은 숫자.
자신들 전부가 나선다고 해도 어찌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위압감을 내뿜는 숫자였다.
원래라면 후퇴하는 것이 정상.
“지금이라도….”
하지만 그들은 못에 박힌 듯 움직일 수 없었다.
“말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들의 새로운 길드장, 이정기가 그들의 맨 앞, 아니 저 멀찌감치 서 있었으니까.
그건 마치 기천의 구경꾼들이 콜로세움 안에 던져진 검투사를 보는 것과 같은 광경이었다.
헌데 검투사의 적이 너무나 많고 강대하다.
그렇기에 흥분으로 검투사의 죽음을 바라는 것보다 애시당초 싸움을 말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쉬잇.”
이진석, 백두의 길드원들에게 한 번의 전투로 강렬한 인상을 각인시킨 남자가 검지를 입에 대며 말했다.
“명령입니다.”
“아무리 명령이라도…!”
“……미치겠군.”
이진석이 눈 끝을 찌푸리며 말했다.
더 이상 그의 말투에 존대는 없었다.
“길드의 수칙을 모르는 건가?”
“…….”
“김규한 공대장님. 공대원 교육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만.”
이진석은 김규한을 잠시 노려보고, 다시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길드원을 향해 말했다.
“게이트 내에서, 던전 내에서는 상급자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한다.”
그것이 모든 길드의 공통 수칙.
“죄, 죄송….”
“이름이 뭐지?”
“윤태선입니다.”
“한 번은 넘어가지. 하지만 잘 봐둬라.”
이진석이 다시금 이정기를 향해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백두는 오늘 새로 태어나는 거다.”
“…….”
입은 다물었지만, 아직 불신하는 눈빛.
윤태선이라는 그 길드원뿐만이 아닌 모두가 비슷한 얼굴이었다.
공대장들, 김규한까지도 마찬가지.
아무리 제로 라인의 헌터라고 해도.
‘이건 미쳤어.’
저 많은 스틸 크로우를 홀로 상대하겠다?
객기이고, 만용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길드의 수칙을 지켜야 하는 것은 공대장들 또한 마찬가지일진데.
바로 그때.
우우웅.
작은 공명음이 이정기에게서 시작됐다.
하지만 그것은.
쿠쿠쿠쿠쿵!
지금껏 보지 못했던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쿠왁!
이정기의 주변 땅이 갈라지며 파여간다.
화륵!
이정기의 온몸이 마치 불이라도 붙은 듯 타오른다.
어느새 그곳에 서 있는 이정기는 사자의 형태를 한 갑주를 입은 채 스틸 크로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까드드드드득!
소름이 끼치는 울음소리와 함께 하강하는 스틸 크로우 무리들.
이정기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그저 느긋이 제 주먹을 뻗어내었다.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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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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