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130화 (130/284)

제6권 5화

130

주병훈은 굳은 얼굴을 풀 수 없었다.

“후우.”

숨을 여러 번 토해보아도 가득 쌓인 긴장은 풀리지 않는다.

이성의 핏줄을 타고난 성혈.

그런 자신의 삶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딱 두 명이었다.

‘회장님.’

자신의 할머니.

그 입김 하나로 마치 대한민국에선 신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

그것도 모자라 대한민국의 신족이나 다름없는 자신들마저 낙엽처럼 날려버릴 수 있는 존재.

하지만 할머니는 너무나 고고하고 높으신 곳에 있기에 그 밑을 잘 내려다보지 않았다.

그 결과 주병훈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따로 있었다.

터벅.

‘부회장님.’

바로 자신의 아버지이자, 이성의 둘째 주인배 부회장.

자신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할머니보다 가까운 존재였지만 그렇기에 더욱 두려운 존재였다.

밑을 굽어보지 않기에 자신의 사소한 잘못은 덮어두는 할머니이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최고.’

입버릇처럼 했던 말.

‘최고가 아니면 죽어라.’

결코, 자식에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상상치도 못한 말을 들으며 주병훈은 자랐다.

그리고 지금.

“후우.”

주병훈은 주인배에게 불려왔다.

이성 호텔의 사장 자리에 앉고, 그간 보고만 올리느라 보지 못했던 아버지였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이지만 주병훈이 느끼는 감정은 설레임이나 반가움 따위가 아닌 두려움과 긴장 따위였다.

꿀꺽.

“들어가시죠.”

비서의 말과 함께 열리는 문.

주병훈이 방 안에 들어가자.

타악!

문은 닫혔고.

주병훈은 여지껏 했던 긴장이 무색할 만큼 평온한 얼굴의 아버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

꿈틀.

“대답이 없구나. 내 너를 그리 가르치지 않았는데.”

“죄, 죄송합니다.”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주병훈.

“네 짓이더냐?”

인사말 다음 바로 들려온 목소리.

“예…?”

“형태에게 숨겨둔 아이가 있다는 기사 봤다. 네 짓이냐 물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던 주병훈.

덜컥.

또 이 느낌이었다.

“…….”

자신의 방에 이정기가 찾아왔을 때처럼, 옴짝달싹 못 하는 이 기분.

하지만 이정기의 그것과는 다르다.

무언가에 속박당한 느낌을 주는 것이 이정기의 수법이었다면, 지금 주인배가 주는 것은.

‘단순한 위압감.’

어떤 마력 따위를 꺼내지도 않았다.

그저 눈빛에 주눅이 들고, 눈빛에 말문이 막힌다.

“또 대답이 없구나.”

질끈.

주병훈은 눈을 감았다.

애초부터 이 상황을 예상했다.

자신이 오랫동안 찾아내어 결국 결실을 본 주형태의 약점을 드러냈을 때, 일이 이렇게 되리라 생각했다.

“제가 했습니다.”

마주친 주인배의 눈동자가 약간 휘어졌다.

“이성 길드와 백두 길드의 합병에 내 입김이 들어갔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예. 알고 있었습니다.”

“말해 보거라.”

이제야 주병훈은 자유를 되찾았다.

“이성 길드와 백두 길드의 합병은 생각보다 더 큰 건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백두에 무엇이 잠들어 있는지.”

백두에 잠들어 있는 그것.

사실상 그것 때문에 이성은 백두를 노린 것이나 다름없다.

“거래를 하셨을 것인지는 압니다. 하지만, 혹여 일이 틀어져 주형태 길드장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주병훈은 지금이 중요한 순간이라 생각했다.

“힘의 균형이 틀어집니다.”

“이 아비를 믿지 못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주형태 길드장을 믿지 못하는 겁니다.”

띠익, 띠익.

전자시계가 계속해서 초를 바꾸어가고 있었다.

정적.

무언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주인배.

“잘했다.”

“……!”

“사실 이번 일은 내 입김보다는 형태 녀석이 원하는 바가 컸지. 나도 마뜩잖아하던 참이다. 더욱이 항상 주변을 경계하고, 살피는 태도. 나쁘지 않구나.”

“가, 감사합니다.”

“헌데.”

주병훈은 다시금 자신을 옭아매는 위압감을 느껴야만 했다.

“사실이더냐?”

“예?”

“형태에게 숨겨둔 아이가 있다는 것 말이다.”

주병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모르는 건가?’

설마 그 아버지가 모르는 것이 있다니 잠시 놀란 것도 사실.

주병훈은 곧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사실을 말해주어야 할지, 숨겨야 할지.

하지만.

“사실입니다.”

“…….”

곧 진실을 토해냈다.

“정확히 파악한 지는 얼마 안 되었습니다. 더 확실해지고 보고를 올리려고….”

“어디에 있더냐?”

“그건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국내외 길드 중 한 곳에 헌터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까지 밖에는….”

“알아 보거라.”

“……!”

“이미 벌집을 건드렸으니, 끝까지 책임지는 게 좋을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후우.

주병훈은 속으로 작은 한숨을 토해내며 또 한 가지를 고민했다.

‘이정기.’

아버지는 이 일이 단순히, 자신의 경계심이나 욕심 때문에 생긴 것인줄 안다.

하지만 사실 이 일은 이정기, 그 녀석 때문에 벌어진 것이었다.

녀석에 대해 보고해야 할까?

‘녀석이 생각보다 더 위험한 존재라고.’

아버지 또한 경계해야 한다고 말해주어야 할까?

하지만.

“나가보거라.”

주병훈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

“예.”

뒤돌아선 주병훈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이정기가 그토록 위험하다면.

‘아버지 또한 겪어보셔야겠지.’

그걸로 모든 걸 잃으신다면?

‘내가 주워 담으면 그만이다.’

터벅.

주병훈이 이성의 부회장실을 나섰다.

* * *

“사실일까요?”

이진석도.

“…….”

강민혁도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이 들썩이고 있었다.

이성과 백두의 합병이 무산된 것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닌 그 이유에 초점을 둔 것.

‘주형태의 숨겨둔 자식.’

또 하나의 성혈이 있다는 걸까?

그렇다면 왜 숨겼을까.

또 누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사실일 겁니다.”

강민혁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만약 거짓이라면 주병훈 사장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재벌들이 사고를 쳐, 낳은 자식 따위와 비교할 수 있는 안건이 아니었다.

성혈이 무엇인가.

그리고.

‘헌터.’

소식에 따르면 주병훈의 숨겨둔 자식은 꽤나 높은 실력을 지닌 헌터라고 했다.

성혈, 헌터.

그리고 길드.

숨겨둔 자식은 그저 피만 이은 것이 아닌, 주형태가 숨겨둔 하나의 카드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

“회장님은 알고 계셨을 겁니다.”

강민혁의 말에 이진석과 이정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병훈이 안 사실을 할머니가 모를 리 없다.

할머니는 알면서도 눈감아준 것이 분명하다.

‘누굴까.’

이정기 또한 호기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알아보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강민혁에 대한 일도 해결되었다는 것이었다.

주병훈이 직접 강민혁의 일은 함구하겠다고 밝혔고, 그에 대한 대가도 이미 지불을 완료했다.

여러 잡음이 끓겠지만, 그건 주병훈이 감당해야 하는 문제이지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이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주영은 길드장이 무혐의로 풀려났습니다.”

주영은 길드장이 무혐의로 풀려났다는 것이었다.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 어떤 방식인지는 관심도 없다.

결과로서 주병훈이 약속을 지켰다는 게 중요한 것.

“나머지도 전부 주병훈 사장에게 넘기세요.”

이정기의 말에 강민혁이 잠시 우물거렸다.

“전부 말씀이십니까?”

강민혁이 가진 자료가 주병훈에게 보여준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아직도 강민혁은 혹여 있을 상황을 생각해 나머지 자료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쓸 곳이 있을 겁니다.”

주병훈이랑은 이제 완전한 적.

훗날을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를 가지고 있으라는 조언.

“전부. 넘기세요.”

하지만 이정기는 단호했다.

“약속을 지켰으니, 저도 약속을 지켜야 할 차례입니다. 제 첫 거래나 다름없는데, 만일 숨겨둔 것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후에 저와 거래를 하려 하겠습니까?”

“…….”

“전부 넘기세요. 폐기 처리를 하든 어떻든 저희랑은 이제 관계없는 일입니다.”

“……알겠습니다.”

강민혁이 고개를 끄덕일 때.

“그리고.”

이정기가 말을 이었다.

“저를 상대로 보험을 들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런….”

“저는 주병훈 사장처럼 만만히 속여 넘길 수 없을 겁니다.”

확연한 경고.

한 번 주인의 발을 문 개는 또 물 수 있기에.

그것이 이 지구의 이치란 것을 깨달았기에.

“경고는 한 번뿐입니다.”

후환은 남겨두지 않는다고 배웠기에 확실히 하려는 것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강민혁도.

“명심하겠습니다.”

이진석도 답했다.

그리고 곧.

띠링.

주영은에게서 연락이 왔다.

* * *

“오랜만은 아니죠?”

소집된 백두의 장급 회의.

그곳엔 불편한 기색이 감돌고 있었다.

가장 상석에 앉아있는 주영은, 그리고 소집되어 올 수 있는 공격대장들과 길드의 간부들이 도열해 있었다.

“여러분의 충의는 잘 봤습니다.”

전부, 전부다.

주영은의 목을 물어, 이성에 바치려 했던 이들.

“그건….”

“모르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충의가 어디로 향해 있는지, 이성이 아니라는 것도요.”

주영은은 평소와 달랐다.

조금은 신경질적이고, 무언가에 쫓기는 듯 불안해만 보였던 것과 달리 지금은 그저 고요하다 할 수 있었다.

“김한산 길드장에 대한…, 제 남편이었던 남자에 대한 충의란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크흠.”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한 일이죠.”

간부들은 더더욱 동요하고 있었다.

주영은 길드장의 입에서 감사라는 말이 나오다니.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크게 있으리란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이의 죽음에 제 책임이 있다는 건 분명 인정하겠습니다.”

“길드장…!”

“하지만 그 직접적인 원인이 제가 아님은 제 이름과, 이성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

“또한.”

주영은은 거침없었다.

“오늘, 그이의 뜻을 이어받은 자를 소개시켜 주도록 하죠.”

“길드장!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의 그이에 대한 충의가 확고하다면….”

덜컥!

회의장의 문이 열어 젖혀졌다.

“증명해보세요.”

그곳에 잘 차려입은 남자 하나가 서 회의장을 훑어보고 있었다.

쿠웅!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커다란 경종.

존재감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압도되는 것만 같은 느낌.

“오늘 저는 제 부족함을 인정하고 길드장 자리에서 물러나려 합니다.”

주영은의 말과 함께 남자가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한산 길드장의 뜻을 이은 진짜 후계를 길드장에 추대하려고 합니다.”

“……!”

어느새 주영은의 옆에 선 남자.

“안녕하십니까.”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이정기라고 합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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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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