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126화 (126/284)

제6권 1화

126

우웅.

묵직하고도 진득한 소음이 이정기의 손끝에서 나고 있었다.

작디작은 검은색의 구.

이정기에 의해 압축되어 새로이 태어난 넥타가.

꿀렁.

사츠키의 정수리를 타고 그녀의 온몸에 흐르기 시작했다.

이 안에 압축된 넥타의 힘은 마력으로 환산한다면, 감히 일반인을 제로 라인의 랭커로 만들 수 있는 힘.

‘선택지는 하나 더 있지만.’

이정기는 이 힘을 흡수해 넥타의 레벨을 한 단계 올릴 수도 있었지만, 사츠키에게 돌려주는 것을 선택했다.

그녀가 약속했던 티탄의 정보 따위나, 그녀가 말로만 약속했던 충성 때문이 아니었다.

‘왕.’

깨달은 왕의 자격.

그리고 이를 위해선 필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왕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홀로 있는 자는 그저 강자일 뿐, 왕이란 칭호를 사용할 수 없다.

본디 진정한 왕은.

‘백성.’

그 아래 백성을 두어야 하는 법.

왕의 넥타, 벼락은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었다.

꾸드득!

괴이한 소리와 함께 사츠키의 온몸에 튀어 오르는 검은 핏줄들.

빼앗겼던 넥타가 잠시 그녀의 몸에 저항하며 반항하고 있는 것이었다.

‘얌전히 돌아가라.’

하지만 이정기의 실력 행사.

꽈아악.

주먹 쥔 사츠키, 본래 넥타의 주인이었던 그녀의 의지에 따라.

“아아아!”

그녀는 마침내 넥타를 받아들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넥타를 부여하였습니다.]

[오케아노스, 대양의 넥타를 부여하였습니다.]

들려오는 메티스의 목소리.

[티탄 오케아노스의 넥타가, 가디언 오케아노스의 넥타로 변형되었습니다.]

넥타의 성질이 뒤바뀌었다.

자신을 거쳐, 자신에 의해 부여받았다.

[오케아노스의 넥타가 벼락과 연결되었습니다.]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안다.

말뿐인 충성이라면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라면.

“약속을 지켜준 것에 감사하오….”

믿을 수 있는 충성이다.

“나의 왕이여.”

검게 물든 동공으로 이정기를 향해 말하는 사츠키.

자신이 부여해, 그것을 받아들인 자는 자신에게 종속된다.

그것이 왕의 넥타.

“잠시…, 시험해봐도 좋겠소…?”

희열과 수많은 감정으로 번들거리는 눈을 한 채 사츠키가 이정기에게 허락을 구했다.

“마음대로.”

이정기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녀가 곧 넓게 펼쳐진 바다를 향해 양손을 내뻗었다.

쿠쿠쿠쿠쿠쿠!

뒤흔들리기 시작한 바다.

우미노오의 세 형제, 그들은 티탄에 의해 넥타를 받아 헌터를 뛰어넘는 강함을 손에 쥐었지만, 이정기의 기준에서 형편없기 그지없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사츠키의 손에서 퍼져나가는 넥타의 흐름.

찌릿.

그건 이정기의 등줄기를 잠시나마 오싹하게 할 정도로 방대했다.

쿠콰콰콰쾅!

바다가.

“아아아….!”

떠오르고 있다.

크기를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거인이 손바닥을 통해 바다를 퍼 올리는 것과 같은 모양새.

파아앗!

사츠키가 주먹을 쥐자 떠올라진 바다의 일부가 그대로 부서져 떨어졌다.

이것이 티탄이 가진 진정한 힘.

“이 은혜는, 앞으로의 충성으로 갚겠….”

사츠키가 이정기를 향해 말할 때.

“으아아아아!”

한쪽에선 울음소리에 가까운 절규가 들려왔다.

* * *

왕의 힘에 빠져 잠시 보지 못했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으아아아아!”

짐승과도 같은 절규를 하는 김한산.

그리고.

“……!”

그의 품 안에 안겨 있는 김윤태의 모습이었다.

그 옆에 상처 입은 주영은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지친 이진석은 안쓰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잔존한 백두의 공격대원들은 참담함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터벅.

이정기가 그를 향해 다가갔다.

“으아…. 으아…. 으아아….”

제대로 사람의 말조차 하지 못한 채 울부짖는 김한산.

“왜….”

그가 겨우 호흡을 가다듬으며 소리쳤다.

“왜에에에에에!”

김한산의 품에 안겨 있는 김윤태.

이정기는 그의 호흡을 느낄 수 있었다.

가느다랗고, 작게만 뛰는 호흡을.

“왜, 이제야 만나게 되었는데…, 이제야…, 이제야 너를 안을 수 있게 되었는데…!”

김윤태가 어린 시절 넥타에 영향을 받아 황소섬에 갇히게 된 김한산.

그는 그의 어린 아들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드디어 정신을 차려 보게 된 아들, 김윤태는.

“하아….”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작은 숨소리를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주영은 일행이 도착하기 전, 우미노오와 이성을 홀로 대적했던 김윤태.

그들이 도착하고서도 김윤태는 목숨을 다해 제 역할을 해냈다.

말 그대로.

뚜욱.

목숨을 다해.

녀석의 상처는 가히 눈을 뜨고 보기 힘들었다.

랭킹의 말석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헌터.

각성하여 그 이상의 힘을 내비치었다고 하나 한계는 있는 법이었다.

우미노오와 이성이 그를 가지고 놀다시피 해, 겨우 버텨내었던 것.

그 시간 동안 김윤태는 또 한 번의 각성을 이루어낸 듯했으나….

‘그 때문이다.’

헌터의 각성은 마력의 증폭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포션이…!”

외부의 상처는 포션이나 회복 스킬을 통해 나아질 수 있다고 하나.

“포션이 통하질 않아….”

두 번의 격한 각성을 이루어낸 김윤태의 가장 중요한 것이 부서져 버렸다.

넥타처럼, 녀석의 안쪽에 존재하던 마력의 핵.

‘그것이 부서졌다.’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힘이 결국 녀석을 망친 것이었다.

“제발…!”

이정기를 향한 시선, 주영은의 것이었다.

“너라면 할 수 있겠지…? 그렇다고 해주거라! 제발…!”

지금껏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던 이정기.

그를 보며 절규하는 두 부모.

“…….”

지금의 김윤태를 살린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정기에게 있어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튜토리얼 기간 중 여러 헌터를 보며 회복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화아악!

하지만 김윤태의 위중함은 자신이 배운 회복 스킬로는 회복 불가능한 것이었다.

엘릭서나 다름없는 황금 산양의 젖도 마찬가지.

그건 육체를 회복시키는 것이지.

‘마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야.’

살린다면 살릴 수 있을 거다.

그저 목숨만.

그 이후의 삶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의료기기에 연명하며 숨만 쉬는 삶이 이어질 것이다.

“비켜보시오.”

사츠키, 그녀가 그런 김윤태에게 다가가 양손을 뻗었다.

바다.

그것은 본디 충만한 생명을 품은 것.

꿀렁.

사츠키가 가진 힘이 김윤태를 휩쓸자, 김윤태의 안색이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사츠키도, 이정기도 모르지 않았다.

이건 그저 응급처치일 뿐.

그 무엇도 깨져버린 김윤태의 핵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

“아…, 아빠….”

“윤태야!”

“윤태야!”

마침내 입을 연 김윤태를 향해 부르짖는 두 부모.

“걱정 마! 엄마가 누군지 알지? 할머니가 꼭….”

“엄… 마….”

“할머니가….”

주영은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 또한 바보가 아니었으니까.

“울지 마… 요.”

음절씩 끊어지며 나오는 김윤태의 목소리.

“아빠가… 돌아왔으니까… 엄마도… 이젠 그만… 웃… 어… 도… 돼.”

그건 누가 뭐라 해도 그것이었다.

작별 인사.

스스로의 상태를 아는 김윤태가 제 부모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것.

그런 김윤태의 시선이 이정기를 향해왔다.

“고마… 워.”

그것이 마지막.

“윤태야! 윤태야-!”

김윤태는 더 이상 입조차 열 수 없는 미약한 신음만을 흘릴 뿐이었다.

“아….”

복잡한 기분.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이정기의 심장을 때렸다.

결코, 좋아할 수 없는 짜증 나는 녀석이었음은 분명하다.

가족이란 카테고리에 속하지만, 가족이라 부를 수도 없었던 녀석.

하지만.

꽈아악.

이 복잡한 심경은 도대체 무언가.

“방법이….”

그때 울려 퍼지는 사츠키의 목소리.

“방법이 있소.”

“……!”

* * *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정기가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후회라….”

들려오는 목소리.

그건 김한산의 것이었다.

“이강 형님의 아들이라 했나.”

김한산의 말에 이정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다행이야. 마지막엔 너를 볼 수 있어서.”

“……….”

“강이 형님은 내게도 소중한 분이셨다. 내가 백두를 세울 수 있었던 이유였고, 영은이를… 만날 수 있었던 이유였으니까.”

백두의 김한산과 연애했던 주영은.

이성은 그에 크게 반대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그때 주영은의 편을 유일하게 들어준 것이 바로 이강이었다고.

“항상 감사했네. 하지만 제대로 감사 인사를 드릴 기회도 없었지. 이제나마, 그 인사를 네게 전할 수 있겠군.”

김한산의 표정은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후회하지 않겠느냐고. 후회할까 보냐.”

그가 웃어 보였다.

마치 어린 시절 도끼 한 자루를 들고 공격대를 이끌며 수 개의 게이트를 토벌하고 공략했던 헌터의 면모가 엿보이는 듯했다.

“내 아들에게 하나라도 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진심이 느껴지는 목소리.

“자네 아버지, 이강 형님도 그러셨을 걸세. 그분이라면… 나보다 더했을지 모르겠군.”

그는 웃어 보였다.

그리고 돌아가는 고개.

“영은아.”

주영은은 제대로 서지조차 못한 채 김한산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을 모두 잃은 듯한 얼굴.

그 얼굴엔 평소엔 가득한 독기마저 사라져 있었다.

“미안해.”

“아….”

“이제는 그러지 말자.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저 행복을 좇아 살자. 알겠지.”

“아…, 아….”

김한산은 고개를 돌렸다.

제 발아래 누워있는 식어가는 아들, 김윤태를 향해.

“언제나 함께 있어, 언제나 지켜줄게. 자네도….”

이정기를 향한 시선.

“그래 줄 수 있겠나?”

“…….”

“염치없는 부탁인 건 알고 있네. 내가 영은이를 모를까. 하지만…, 윤태가 자네 편이라면 영은이도 자네를 함부로 하지 않을 거야.”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그것이면 됐네.”

김한산이 김윤태의 가슴에 양손을 올리며 눈을 감았다.

“난 준비 됐네.”

사츠키가 말해주었던 김윤태를 살릴 수 있는 방법.

그건.

‘넥타.’

바로 신의 힘이었다.

마력의 핵이 파괴되어버린 김윤태.

그를 되살릴 유일한 방법은 그 핵을 다시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정기조차 불가능한 일.

유일한 방법이라면.

‘왕의 힘을 깨달았다면, 그 힘을 줄 수 있을 것이오. 물론 완벽한 방법도, 확실한 방법도 아니지만….’

유일하게 시도해볼 수 있는 일.

김윤태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둘 다 죽는다.’

그러나 받아들인다면.

‘그대는 또 하나의 백성을 얻게 될 것이라오.’

김윤태는 살 수 있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닌, 하나의 가디언.

아니 이정기에 의해 태어나는 완전히 새로운 가디언으로.

확률은 반반, 아니 죽을 확률이 더 높은 계획.

“부디…, 최선을 다해주게.”

이정기는 그런 그들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파짓, 파지짓.

튀어 오르는 전류.

“꼭.”

이정기는 김한산을 향해 말했다.

“꼭 바르게 나아가도록 만들겠습니다.”

눈 감은 김한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고맙구나.”

우우우웅!

김한산의 온몸에 검은 혈관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파악!

그의 이마로 두 개의 검은 뿔이 튀어나온 순간.

“끄아아아아악!”

온몸을 찢어발기는 고통에 김한산의 절규가 황소 섬을 가득 퍼졌다.

그건 두말할 것도 없는.

‘숭고한 희생.’

아버지라는 이름의 희생이었다.

우우우우웅!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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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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