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권 25화
125
-꿇어.
괴물의 목소리가 모두의 머릿속에 왕왕 울릴 때.
타악!
선명한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헌터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덜덜덜.
몸을 온통 묶인 것처럼 옴짝달싹 못 하는 그들은….
“마… 도… 아… 대….”
제대로 발음조차 못 한 채 무릎 꿇어 있었다.
온 마력을 끌어내려 해도 소용없었다.
마치 그들이 품은 마력은 겁에 질린 듯 제 안쪽에 숨어 나올 생각을 하질 못하고 있었다.
타앗.
움직이는 괴물.
그제야 그들은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이정기.’
푸르게 빛나는 그 눈의 주인은 누가 뭐라 해도 분명 이정기였다.
그가 걸어올 때마다 온몸이 떨려온다.
그것이 두려워 눈을 감으면.
“크, 크윽!”
마치 전기의자에 앉아있는 사형수처럼 더욱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그들이 누구던가.
세계 헌터들에게 정점이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찌리릿.
그들은 초보 헌터들이 상위 보스 몬스터에게서 받는 피어에 노출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초보 딱지를 떼고, 이성에 들어와 한 번도 겪지 못했던 경험.
그들의 동공은 황당과 경악, 공포로 물들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장 경악으로 물든 것은 바로 셋.
“……!”
우미노오의 세 형제들이었다.
원래도 명가에서 태어나 자라, 헌터의 힘까지 갖추며 세상을 오시하던 그들.
그런 그들에게 티탄의 힘, 넥타까지 부여되었다.
그때 얼마나 흥분했던가.
그건 세상이 뒤바뀌는 듯한 흥분이었다.
일반인에서 헌터가 되었을 때, 그때와는 다른 흥분.
마치.
‘신이 된 듯한 느낌.’
무엇이든 하지 못할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 형제가 힘을 합치면 바다마저 움직일 수 있었으니, 그 희열이 얼만할까.
“제…기…라알!”
하지만 그 힘이 무엇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온몸을 속박하는 이 거대한 힘.
그건 처음 보았던 그들과 같았다.
“이대로….”
보는 것만으로 무력감과 좌절, 심연을 들여다보는 공포를 느끼게 하는 힘.
“아무것도 못 한 채 당할쏘냐!”
마침내 목소리를 토해내는 그들.
쩌어엉!
그 순간, 그들을 옭아매던 속박이 깨어졌다.
타앗!
바로 몸을 쏘아 이정기를 향해가는 삼 형제.
그들이 속박을 풀어낸 대가로 헌터들 또한 속박 속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나머지는….”
이정기의 옆에서 또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폐인이 분명해 보이는 추레한 모습, 앙상하게 마른 뼈밖에 남지 않은 몸이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크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가 힘을 내뿜자, 그의 이마에서 두 개의 검은 뿔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제가 맡겠습니다.”
정신을 차린 김한산.
꽈앙!
그가 달려드는 삼 형제와 몸을 부딪쳐, 그들의 돌진을 막아냈다.
하지만 김한산의 목표는 그들이 아니었다.
타앗!
그 뒤, 속박이 풀려버린 헌터들.
넥타를 가진 삼형제는.
“네메아.”
이정기의 몫이었다.
***
왕의 자격.
이정기는 메티스의 말대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희미하기만 했던 왕이라는 개념.
하지만 그건 지구에서 존재하던 왕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개념이었다.
‘정점에 선 존재.’
그리고.
‘권력을 틀어쥔 존재.’
왕의 넥타, 그 힘은 하위의 넥타를 가진 존재를 향해.
그 하위의 마력을 가진 존재를 향해.
파아아앙!
권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정기에게 달려들던 세 형제가 튕겨 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럴 순 없다!”
“이 힘이….”
“우리가 가진 힘이….”
세 명의 형제는 마치 한 명처럼 소리쳤다.
“이 정도일 리 없다!”
다시금 이정기를 향해 솟구쳐오는 그들.
파파파파파파!
그들의 뒤로 파도가 일렁이며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이정기의 몸을 밧줄처럼 옭아매어 하늘로 높이 치솟게 했으며.
파아앗!
그대로 이정기를 이끌고 바다를 향해 내던져버렸다.
“역시!”
세 형제의 눈에 희열이 감돌았다.
마침내 이정기에게 닿았다는 생각.
그들이 가진 힘이 거짓이 아니라는 확신.
파하악!
그들은 이정기가 딸려 들어간 바닷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화악!
그들의 몸에 마나가 깃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진 넥타의 속성.
그건.
‘바다.’
짠 내가 가득한 바닷속에서 어떤 헌터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겠지만 그들은 다르다.
쒜에엑!
마치 물고기가 된 듯, 바닷속에서 숨을 쉬며 그 힘이 증폭된다.
저 멀리 자신들이 펼쳐낸 바다 줄기에 의해 심해 속으로 끌려들어 가는 이정기가 보였다.
쑤에에엑!
바닷속을 가르며 이정기를 향해 쏘아져 나가는 그들.
그들이 손을 휘저었다.
출렁!
바닷속에서 또 다른 파도가 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꽈아악-!
그것이 그들이 가진 힘의 위력이었다.
현실을 비틀고, 불가능한 것을 해낼 수 있는 힘.
그야말로.
‘신의 힘.’
거품들이 이정기의 몸과 얼굴을 옭아매고, 바닷물의 줄기가 이정기의 사지를 붙들었다.
이정기는 그때까지도 아무런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그럴 것이다.’
자신들을 속박했던 그 힘을 자유로이 쓸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반칙이다.
거대한 힘에는 거대한 반동이 따르는 법.
이정기는 아까 전 자신들을 속박했던 대가로 아무것도.
번뜩.
그때 이정기의 눈에 선명한 붉은 빛이 감돌았다.
그리고.
‘무언가.’
세 형제는 깨달을 수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분명 이정기를 잡아당겨 사지를 끊어놓았어야 할 파도 줄기가.
파아앙!
너무도 허무하게 부숴져 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순식간에 자유를 찾은 이정기.
‘그래도….’
이 바닷속에서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훈련을 통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다가 무엇인지, 흐름이 무엇인지, 타고 나야.
부우우웅.
이정기의 오른팔에 모여드는 거대한 마력.
세 형제는 두 눈동자를 치켜뜬 채 급제동했다.
그리고.
‘도망쳐!’
그대로 줄행랑을 치려 하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웅.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선명한 마력.
아니, 그보다 더 짙은 힘.
‘넥타.’
그 힘의 정수가.
콰콰콰콰쾅!
이정기의 오른 주먹에서 쏘아져 나왔다.
그걸 무어라 표현할까.
바다를 가르는 힘?
아니면.
쾅-!
바다를 부수는 힘.
깊은 바닷속에 잠겼던 그들, 그들은 어느새 선명한 태양 빛을 보고 있었다.
거스를 수 없는 자연, 바다의 중심에.
쿠쿠쿠쿠쿠쿵!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다.
***
꽈악.
이정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찌릿.
온몸을 관통하는 통증.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힘이 토해져 온 반동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쩌릿.
그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저 하나.
‘왕의 자격을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왕이라 불리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 안에 숨겨져 있는 힘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것 하나만으로.
“…….”
세상은 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직 오르지 않은 넥타의 레벨, 원래 이정기가 최대로 쓸 수 있는 힘은 본디 힘의 80퍼센트.
하지만 왕의 자격을 쓰는 순간.
‘100퍼센트.’
올림포스에서 자신이 지녔던 그 힘을 그대로 쓸 수 있었다.
80퍼센트와 100퍼센트.
하지만 그건 단순한 숫자일 뿐.
그 차이는.
“커, 커어어….”
일반인과 헌터만큼이나의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었다.
이정기의 앞에 쓰러져 있는 우미노오의 세 형제.
그들은 전부 제로 라인의 랭커에, 일본 헌터계를 장악했으며 왕좌를 차지한 자들이나 다름없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커억!”
그들은 그저 죽음과 삶의 경계 속에서 울부짖은 한낱 인간에 불과할 뿐이었다.
넝마나 다름없는 몰골.
치솟는 피에 입조차 제대로 열지 못하는 그들.
타앗.
그들은 다가오는 이정기를 보며 공포에 질려 온몸을 떨고 있었다.
아직, 이 힘을 제대로 쓸 순 없지만.
꽈악.
이정기가 그들을 휩쓸 듯 손을 움직여 주먹을 꽉 쥐자.
타앗!
그들이 뭉쳐져 한 곳에 포개졌다.
“…….”
그들의 앞에 선 이정기.
“제…발….”
이정기를 향해 간절한 얼굴을 하는 세 형제.
네메아의 이빨을 드러낸 이정기의 손이 그들을 향해갔다.
화아악!
퍼져나오는 마력이 점차 색을 변해가기 시작했다.
붉은색, 금색, 그리고.
‘검은색.’
넥타.
줄줄이 뻗어 나온 넥타가 세 형제를 동그랗게 감싸 안았다.
‘왕의 자격.’
그건 하위의 넥타와 마력에 명령할 수 있는 힘.
사츠키가 처음 이 힘을 어떻게 되돌려 달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안다.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넥타도 아닌, 흩어져 세 개로 나누어진 넥타.
그것도 안정되지 않은 채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넥타라면.
“안… 돼…!”
회수할 수 있음을.
“너희에겐 자격이 없다.”
선고와도 같은 목소리.
휘이이잉!
그들을 둘러싼 검은 구가 빠르게 회전하며 덩치를 불려가기 시작했다.
[넥타를 회수합니다.]
파앗!
회전을 거듭하다 사라져버린 검은 구, 그 힘이 이정기의 오른손에 꾹 쥐어져 있었다.
타박. 타박.
천천히 들려오는 발소리.
이정기가 천천히 발소리의 주인을 봤다.
‘왕의 자격.’
그건 누군가를 무릎 꿇릴 수 있는 힘.
하지만 이정기의 생각에 왕이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강제로 누군가를 무릎 꿇리는 건, 더 강한 힘을 존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진정한 왕이라면.
타악!
자신을 향해 스스로 무릎 꿇게 만들 수 있는 힘.
“약속을 지켜주시오.”
양 무릎을 꿇은 채 이정기를 향해 고개를 숙인 사츠키.
“내게 힘을 되돌려주시어….”
그녀가 조금은 떠는 목소리로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그대를 모실 수 있게 해주시오.”
이정기의 오른손이 천천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손이 그녀의 정수리에 닿는 순간.
“아… 아아아….”
사츠키의 입에서 신음과도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넥타를 부여합니다.]
왕의 자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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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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