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권 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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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함선.
“케토….”
우미노오가 그토록 자랑하던 것이 바로 저 함선 케토였으니 그것을 몰라볼 리 없었다.
김윤태가 도끼를 든 채 케토를 노려보았다.
모르지 않는다.
꽈악.
“제2 공격대장…, 아니. 윤태야.”
그를 향해 다가와 말하는 1공격대의 헌터.
어린 시절에는 삼촌이라 불렀지만, 그 이후에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던 아니, 보았어도 한참 밑이라고 생각했던 헌터였다.
“네 의지는 알지만…, 늦었다.”
그는 포기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케토가 직접 온 이상 끝이야.”
그 안에 타고 있는 헌터들이 누구이던, 그건 아무 관계도 없다.
케토, 그 자체가 문제였다.
헌터들이 만들어낸 전함, 해양 게이트나 해양 던전을 위해 건조되었다고 하는 저것은 그야말로 괴물이나 다름없는 물건이었다.
수만의 마석, 수천의 아이템, 복잡하게 짜여진 마법식과 주술들이 케토를 보호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가장 큰 문제는….
쿠드드드득!
저 함포.
황소섬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 함포였다.
“저게 쏘아지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황소섬, 그 자체가 부서져 버릴 테니까.
“뒤편에 배가 있다.”
그가 김윤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원래라면 우리가 탈출할 때 쓰려던 것이지만, 네가 써라.”
“…….”
“지금이라도 가면 늦지 않을 거야. 우리가 한 발 정도는 막아볼 수 있을 거다.”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던 김윤태.
그를 향해 오는 말에 김윤태는 더욱 꽉 도끼를 쥐었다.
‘이런 사람들이었구나.’
멈추었던 시간이 흐르니 그 전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아랫것들이라 생각했던 사람들.
하지만 실제로 김윤태는 그들의 좋은 면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좋은 사람은 언젠가 떠난다.
마치 아버지처럼.
‘내게 잘해준 사람은….’
망가질 것이다.
그런 생각들.
하지만 그 생각들을 바꾸고 나니.
왈칵.
눈물이 샘솟았다.
지금껏 자신이 무슨 인생을 살았던가.
“아뇨.”
김윤태가 말했다.
“전 안 갈 겁니다. 그 배는 제1 공격대의 것이에요.”
“……그런 객기 부릴 것 없다.”
“모르십니까?”
김윤태는 마치, 이정기처럼 눈을 뜨고 이정기처럼 말했다.
“저는 제2 공격대장입니다!”
그저 누군가를 무릎 꿇리거나 제 자신을 추켜세우기 위해서만 사용했던 직위.
“백두의 공격대장이 어떻게 도망갑니까.”
하지만 지금이라면, 이곳에서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 이미 늦었구나.”
쿠쾅!
커다란 소리를 내며 케토의 함포가 황소섬을 겨냥했다.
“결계! 그래, 아직 결계장치가 남아있지!”
“예! 무력화된 것뿐이지, 두 번 정도 발동할 수 있습니다.”
“얼른 준비해!”
바삐 움직이는 헌터들.
“그래.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
그들이 결계 장치를 케토를 향해 내려놓고 남은 마석과 그들의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저도….”
한 손에는 도끼를 꽉 쥔 채 김윤태도 다가와 결계장치에 손을 올렸다.
우우우웅.
공명하는 결계장치에 의해 형성되는 결계.
우우우웅!
케토의 함포에서 모여드는 강렬한 마력.
꿀꺽.
헌터들과 김윤태는 긴장한 채 케토의 함포를 보았다.
“S급 보스 몬스터를 일격으로 끝낼 수 있다던 케토의 함포야. 한 번이라도…, 막을 수 있으련지.”
걱정되지만, 이젠 어쩔 수 없는 일.
그리고 그 순간.
지잉-!
작은 공명음이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에 바로 이어진 것은.
쿠콰콰콰콰쾅!
커다란 폭음.
그리고.
쿠쿠쿠쿠쿠쿵!
커다란 충격이었다.
“커억!”
곳곳에서 일어나는 비명.
결계장치에 마력을 공급했던 헌터들이 결계가 흔들리며 충격을 받아 내는 소음이었다.
“크윽!”
김윤태 또한 몸으로 느껴지는 충격을 참아내며 눈을 부릅뜨고 앞을 바라봤다.
구구구구궁!
결계를 부수기 위해 뚫고 들어오는 거대한 마력.
그건 그야말로 파괴 그 자체란 말이 어울리는 것이었다.
“으아아아아아!”
고함과 함께 더욱 스며들어가는 김윤태의 마력.
파앙!
그 순간, 결계를 찢으려 들던 마력포가 튕겨져 나갔다.
“하아…. 하아….”
거친 호흡을 토해내는 그들.
“할…, 수 있습니다.”
김윤태의 눈에 희망이 깃들었다.
결국, 결계를 뚫지 못한 케토의 주포.
그러나 아까 보았지 않았나.
‘이정기는….’
그저 화살 한 번으로 결계를 꿰뚫었음을.
그런 녀석과 지내온 자신이다.
“할 수 있습니다!”
이젠 자신도 그의 발끝이라도 따라가야 할 시간이었다.
너무나 늦었기에, 그동안 엉망으로 살아왔기에.
“정기가 아버지를 고칠 때까지…!”
“윤태야!”
소리치는 헌터.
김윤태가 부릅뜬 눈으로 그를 보려던 때.
쿠콰아아아앙!
다시금 커다란 충격이 일었다.
케토의 주포, 그 두 번째 일격이 결계를 강타한 것.
쩌저저저정!
그 결과 결계가 부서졌고.
콰아앙!
김윤태들이 서 있던 땅은 검은 재만이 가득해져 버렸다.
“아…, 아….”
바닥에 쓰러진 김윤태.
그가 등에 느껴지는 싸늘한 감촉을 밀어내며 기었다.
“아…, 안…, 돼….”
방금까지 자신과 함께 있던 제1공격대의 헌터.
아니, 민수 삼촌.
그가 형체를 알 수도 없이 타버린 상태로 죽어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더 이상 주포의 탄환은 날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헌터의 안력으로 보이는 것은 케토의 밑으로 마치 새끼 고래를 낳듯 검은 배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쒜에엑.
배들이 황소 섬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사냥한 전리품을 확인하려는 듯이.
* * *
콰아아아앙!
충격이 인 것은 느꼈다.
하지만 이정기는 감은 눈을 뜰 수 없었다.
‘집중해야 해.’
100퍼센트였던 자신도 온전히 다루지 못했던 힘.
80퍼센트인 지금 그 힘을 다루어야만 한다.
파짓!
휘몰아치는 전류가 이정기와 김한산의 몸을 훑어내고 있었다.
‘집중…, 해야만 해….’
오직 그 생각뿐.
외부의 충격이 무슨 일인지 모르지는 않았다.
‘목숨이 위험하다면…, 포기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
-으아아아아!
절규가 들려온다.
김윤태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곧, 마력들이 접근한 것이 느껴졌다.
‘집중.’
벼락을 이용해 넥타를 건드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뒤틀리고 더럽혀져버린 넥타를 어떻게 원상태로 복구시켜야 하는지 아직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 사이에도 살갗을 태우고, 내장을 짓이기는 고통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아직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기운은 없다.
그때.
‘도착했구나.’
또 다른 마력들이 느껴졌다.
아주 익숙한 마력.
이진석의 마력이.
-비켜어엇!
고함치며 득달같이 마력을 일으키는 이진석.
이정기는 그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력의 급이 다른 네 개의 존재.
그 중 셋.
‘넥타 보유자.’
녀석들이 바로 사츠키의 넥타를 빼앗은 우미노오의 길드장과 두 형제라고.
그들이 움직인 이상 일반 헌터들은 어차피 치워져야 할 먼지나 다름없는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믿는 것이 있었다.
‘사츠키.’
그녀는 넥타를 잃었지만 그들의 넥타를 원래 보유하고 있던 원종이나 다름없는 존재.
과연 세 형제의 기운이 움직이며, 사츠키 또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냥 얌전히 저희 손에 있었다면 이런 꼴이 없었을 것 아닙니까.
선명히 들려오는 일본어.
-나의 것을 빼앗은 강도들 주제에, 말이 많구려.
그들이 충돌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리 사츠키라 한들, 그들의 상대가 될 리 없다.
허나 믿는 것이 있었다.
‘녀석들은 쉬이 날 어쩌지 못할 것이오.’
녀석들의 넥타는 본디 사츠키의 것.
그들은 진즉 사츠키를 죽일 수 있었음에도 죽이지 않았다.
그 이유야 간단했다.
‘내가 죽는 순간, 완벽하지 못한 녀석들의 넥타도 흔들릴 테니까.’
아직 불안정한 넥타들이 문제가 되리라는 것.
우미노오의 세 형제는 그것을 우려하여 사츠키를 죽이지 못했을뿐더러, 사츠키가 자결이라도 할까 다이오까지 내버려 두었다고 했다.
그러니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집중.’
마침내 벼락이 제대로 움직였다.
타앗!
넥타를 건드려 넥타의 겉 부분에 퍼져있는 불순물들을 태우기 시작한 것.
그것은 마치 정화와 같은 의식이었다.
남들은 볼 수 없지만 이정기에게는 또렷이 보였다.
벼락이 넥타의 불순물들을 자석처럼 이끌며, 태우는 것을.
그리고.
파지직!
벼락이 그 힘을 먹어치워 성장하고 있음을.
‘왕.’
왕이 무엇인지 안다.
지구의 역사를 살피기 전부터 올림포스에서 보았던 것들.
올림포스에서도 왕과 같은 존재들이이 있었다.
‘블랙 오크 킹. 바질리스크 퀸. 하피 퀸.’
그런 것들.
그것들은 일반 개체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모든 것을 무릎 꿇렸다.
그것은.
‘절대.’
그래, 절대라는 말이 어울릴 힘들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할아버지의 주먹질 한 방에 핏물이 되어 흩어져버렸지만, 그 개체들 사이에서 왕이라 불리는 존재들은…. 그래, 개체를 뛰어넘는 절대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었다.
올림포스의 법칙에 따라.
‘왕.’
자신이 가진 왕의 넥타, 벼락 또한 그런 것일 것이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그저, 쥬피터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힘.
마력과 비교하여 막대한 위력을 발휘하며, 마력의 상위호환인 힘.
마력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힘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것은.
‘그래.’
번쩍!
권능이다.
그저 물리적인 위력뿐만이 아닌 그 이상을 해낼 수 있는 힘.
‘유산.’
이정기에게 이어진…, 그래.
‘권력.’
왕이라는 이름의 권력이었다.
선명해진 모든 것.
이정기는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김한산의 넥타를 정화해가는 벼락.
‘벼락은 저런 것이 아니다.’
벼락은 겨우 저런 것이 아니다.
벼락은!
[먹어치워라.]
이렇게 쓰는 것이다.
파지지지지짓!
갑작스레 튀기 시작하는 스파크.
천천히 김한산의 표면을 갉아먹는 듯한 전류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 몸집을 부풀렸다.
번쩍!
빛이 번쩍이며 심상의 시야가 멎은 즉시.
사아아.
그 안에는 깨끗이 정화되어버린 넥타가 존재했다.
이정기는 마침내 눈을 떴다.
주륵.
상대의 눈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
이정기는 그를 보며 말했다.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가….”
그 또한 이정기의 말에 화답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메티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왕의 자격을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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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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