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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122화 (122/284)

제5권 22화

122

쏴아아!

백두 길드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크기의 배가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다.

우미노오가 오랫동안 공을 들여 만든 것으로 건조 기간만 수년, 그에 들어간 비용만 해도 가히 대형 길드 서넛의 수년 치 예산이라 불리는 물건이었다.

가히 전함급.

그 이름하여.

‘케토.’

우미노오라는 이름 그대로 바다의 왕이 되고자 하는 그들의 포부가 드러나는 것이었다.

쒜에에엑!

케토가 나아가며 이는 파도가 백두의 배를 당장이라도 뒤집어엎을 듯 맹렬했다.

“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주영은이었다.

“안 돼!”

우미노오의 케토는 그냥 단순한 여객선이 아니다.

전함의 크기처럼 전함의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그 능력마저 구시대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원한다면 섬 자체를 가라앉힐 수 있는 파괴력이 있는 것이 바로 저 케토.

“도착하게 놔둬선 안 돼!”

설마하니 이 일에 케토까지 들고 온 줄은 몰랐기에, 주영은은 발악하듯 소리치며 그녀의 양손을 모았다.

세컨드 라인의 랭커인, 주영은.

“막아야 해.”

그녀의 양손에서부터 지독한 한기가 뻗쳐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쩌저저저적!

케토의 앞, 파도가 그대로 얼어붙기 시작하는 것.

얼어붙은 바다의 일부에.

끼긱!

케토는 잠시 속도를 잃는 듯했다.

쩌어엉!

하지만 곧 얼어붙었던 바다가 곧장 깨어져 버렸다.

마력 저항.

괜히 케토에 국가 예산급 돈이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바다에서만큼은 그 무엇도 막아낼 수 없는 무적의 전함을 만들고 싶었던 것.

쒜에에엑!

케토는 바다에도, 백두에도 관심 없다는 듯 다시금 나아가기 시작했다.

“발을 묶어둬야겠구려.”

마침내 사츠키가 나서며 말했다.

“아직 그의 일이 끝나지 않은바, 이대로는 조금 위험할 수 있겠소.”

그녀의 곁으로 짙은 해무가 뻗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넥타의 힘을 잃었다.’

과거의 영광과도 같은 힘은 지금 사츠키에게 없었다.

그러나.

번쩍!

사츠키의 두 눈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서 완벽히 넥타의 힘을 빼앗아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사츠키의 깊은 곳에 남아있던 넥타의 일부.

우미노오의 세 형제들과의 결전이나, 최후의 최후를 기약하며 남겨두었던 그 힘을 끄집어내었다.

녀석들이 자신의 넥타를 가져갔다지만.

“진정한 주인의 부름에 답하라.”

힘을 어찌 사용할 줄 모르는 이들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약한 넥타가 더 위협적일 수 있는 노릇이었다.

쿠쿠쿠쿵!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지진과도 같은 소음이 울렸다.

하지만 그 진원지가 전혀 달랐다.

자신들의 목적지로 여겨지는 먼 섬에서부터 느껴지는 것이 아닌.

화아아악!

자신들의 지근거리, 아니 저 우미노오의 전함 케토의 밑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소음이었다.

“……!”

그 힘을 느끼지 못할 이진석과 헌터들이 아니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사츠키와 케토를 번갈아 볼 때.

“집어삼켜라. 나의 바다야.”

파아아아아앙-!

케토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니,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바다가 솟구쳐, 커다란 파토가 되어 케토 그 자체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조금….”

지친 사츠키의 목소리.

“조금의 시간은 벌었구려.”

말 그대로다.

남은 힘을 전부 사용해 녀석들의 발을 묶었지만, 결국 녀석들은 자신의 넥타를 가져간 것들.

쿠웅!

결국, 바다는 자신뿐만 아닌, 저들의 명령을 따라야 할 것이었다.

* * *

파짓, 파지짓!

작디작은 전류.

S급 헌터가 아니라 C등급의 전기 계열 스킬을 가지고 있는 헌터라도 일으킬 수 있어 보이는 미세한 전류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힘은 가히 거력이라 말할 수 있었다.

치, 치이이이익!

김한산의 몸에서 살갗이 타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김한산의 두 뿔을 잡은 이정기의 양손을 타고 흐르는 전류 때문이었다.

“큭!”

하지만 곧 이정기 또한 신음을 흘려야만 했다.

이것이었다.

자신이 지금껏 벼락을 사용하지 않던 이유.

‘벼락의 완전한 주인이 되기 전에는….’

떠오르는 쥬피터 할아버지의 말씀.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그 말대로였다.

이건 할아버지의 볼텍스와 겨룰 수 있었던 유일한 기술인 벼락.

아니.

‘벼락이 더 위다.’

이건 할아버지가 말하기에 벼락은 볼텍스보다도 더 상위의 능력이라 말했던 적이 있었다.

자신과 이건이 조우했을 때의 쥬피터는 그 강력함을 대부분 잃은 상태라고.

‘만일 쥬피터가 멀쩡했다면.’

이건 또한 목숨을 걸어야 할 상대였을지 모른다고.

벼락은 그런 힘이었다.

파짓! 파지지짓!

자신이 벼락을 다루었을 때도, 올림포스의 보정을 받아 끓어 넘치는 힘을 방출했을 뿐.

파지지지짓!

이렇게 미세한 조정을 해 본 적은 단연컨대 이번이 처음이라 할 수 있었다.

김한산의 몸을 태우는 벼락.

그와 동시에 벼락은 자신의 몸마저 갉아 먹고 있었다.

이래선 안 되었다.

이정기가 바라는 것은 벼락이 김한산의 몸 깊숙이 숨어있는 넥타를 자극하고 정화시키는 것.

“크으윽!”

하지만 벼락은 넥타를 건들지언정, 김한산과 자신마저 파괴하고 있었다.

소리치면 버틸 수 없을 것 같기에 참고 있지만.

“으, 으으윽….”

처음이었다.

‘포기…, 포기해야 하나?’

이 지독하고도 끔찍한 고통에 이정기는 처음으로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냥 벼락을 거두고, 김한산과 거리를 벌린 다음 그의 몸에 볼텍스를 쏘아버리고 싶었다.

한 방으로 해결되지 않겠지만, 두 번, 세 번, 연달아 볼텍스를 쏘아내고 네메아로 마무리하면 되지 않을까.

아니다.

그것이 있지 않은가.

‘티시포네.’

뷔앙과의 싸움에서 얻어낸 절대의 맹독.

어쩌면 벼락만큼이나, 벼락보다도 위험할 수 있는 그것을 조금만 사용한다면.

쩌저절.

김한산은 그대로 녹아내려 독물이 되어버릴 것이라 장담할 수 있었다.

“크으윽!”

벼락의 통증은 이런 것들을 상상하게 할 만큼이나 지독했다.

“부….”

그때였다.

지금껏 짐승처럼 울어대기만 했던, 김한산의 입에서.

“부탁….”

할아버지의 모국어,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나를…, 죽여…, 줘….”

벼락에 의해 일시적으로 정신을 차린 듯, 스스로의 죽음을 바라고 있는 김한산.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고, 그의 눈은 분노로 일렁였다.

하지만 그 깊숙한 곳, 이정기는 볼 수 있었다.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눈물.

“짐…?”

그건 자신에게 할 부탁이 아니었다.

“영은이…, 내 아들…, 나는….”

그의 입가가 어색하게 일그러졌다.

“괴물….”

괴물.

이 남자.

이 지독한 통증을 참아내며 제 아내와 아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가 죽고자 하는 이유는 그 스스로의 고통 따위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빛나는 별들, 성혈인 자신의 핏줄들이 괴물이 된 자신으로 인해 겪게 될 고초와 훼방, 고생 따위.

그런 것들을 걱정하며 스스로에게 죽음을 내려달라 부탁하고 있는 것이었다.

“짐이…, 되어선….”

그는 수십 년, 이 섬에 갇혀 있으며 오직 그것들만을 생각한 듯싶었다.

언제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 더 이상 짐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

하지만.

“안…, 돼에에에엑!”

그에게 깃들어 있는 넥타가 그것을 허락지 않았으리라.

숙주가 죽어버린다면, 그 넥타마저 사라지는 것.

넥타에 각인된 본능이 정신을 차리려는 김한산을 계속해서 자극해 광기의 바다로 밀어 넣은 것이었다.

으득.

이정기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다면.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군요.”

덕분에 누가 떠올랐다.

지구에 와 보았던 영상.

그건 올림포스로 떠나기 전, 몇 명의 헌터가 유언 같은 인터뷰를 하는 것이었다.

‘굳이 올림포스로 떠나는 이유가 뭡니까? 숭고한 희생이겠지만…, 그 모든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는 겁니까?’

누군가 물었다.

원한다면, 아니 시간만 흐른다면 대한민국의 왕이 될 수도 있는 남자를 향해.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노력만 받쳐준다면 세계의 제후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는 남자를 향해.

그에 대해 남자는 대답했다.

‘언젠가 태어날 내 아이. 그 아이가 안전한 세상에서 지낼 수 있다면, 그 무엇이든 감내할 겁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위해 목숨을 건다는 한 남자.

‘이강.’

자신의 아버지.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이정기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러니….”

파지지짓!

“포기하지 마십시오!”

* * *

김윤태는 미칠 것만 같았다.

어린 시절 흐릿한 기억 속에만 존재하던 아빠.

아빠가 실종되고 다시 그를 만났을 때.

‘크르르….’

아빠는 괴물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선 안 됐다.

‘윤태야. 바르게 자라거라.’

언제나 자신을 향해 따뜻한 미소를 던지며, 그 등을 바라보았는데 아빠가 이리되어선 안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은 없었다.

자신이 누구던가.

‘성혈.’

대한민국의 왕족이 아니던가.

그리고 엄마는 또 누구던가.

비록 아빠가 당장 저렇게 됐지만 곧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일 뿐이었다.

‘아빠.’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자신도, 엄마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아빠를 깊숙이 숨겨두고, 들키지 않게 하는 것이 전부였다.

노력을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자신도 무언가 할 수 있게 된다면 아빠를 구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야.’

그러나 곧 깨달았다.

자신은 형편없는 존재이자 실패작이었다.

헌터로서의 재능도, 특별함도 없다.

이성을 이어받을 자격도 조건도 갖추지 못했다.

이대로.

‘아빠.’

아빠는 그 빌어먹을 섬에 묻혀 사라질 것이다.

김윤태의 시간은 그때 멈추었었다.

더 이상 노력해도 나아질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자신은 오히려 방해만 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김윤태의 시간은 멈췄다.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김윤태는 망가져야만 했다.

조그마한 자극이라도 있어야 그것에 목을 맬 것 같았다.

그렇게 지내온 시간들.

“아버지-!”

이제는 달라져야만 했다.

눈물이 앞을 가리어온다.

자신도 S급 헌터다, 방금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오랜만의 한국어를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아버지-!”

멈추었던 시간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두 뿔을 붙잡고 선 이정기.

언제나 지루하다는 듯한 그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져있다는 것을.

이제는 더욱 확신한다.

녀석만이 아버지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쿠쿠쿠쿵!

멀리서 들려오는 진동.

“이곳으로 우미노오가 오고 있습니다!”

단 한 번도 말을 높이지 않았던 김윤태였다.

“정기가 아버지를 고칠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하지만 김윤태는 입술을 앙 다물고 두 눈을 치켜뜨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도와주세요!”

“……!”

“어떤 보상이든 하겠습니다! 백두의 이름이 아닌, 제 이름으로!”

그렇게 말한 김윤태가 뒤돌아서서, 무기를 들었다.

아버지가 백두에 있을 때 사용하던 것으로, 실종되기 전 남겨졌던 물건.

자신도 언젠가 아버지에게 모자람 없는 아들이 된다면 들 것이라 맹세했던 커다란 도끼.

후우우우.

김윤태에게서 일어난 소용돌이.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마력이 곧 푸른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저 멀리, 커다란 전함의 머리통이 보이기 시작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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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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