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118화 (118/284)
  • 제5권 18화

    118

    ‘부탁을 하십시오.’

    이정기가 주형태에게 했던 말.

    하지만 결국 주형태가 이정기에게 머리를 숙이는 일 따윈 생기지 않았다.

    ‘겨우 이런 일 하나로 고개를 숙일 것 같았으면, 이미 숙였겠지.’

    주형태는 이성, 성혈이다.

    그의 프라이드는 결코 이런 일에 무너져 내릴 것이 아니었다.

    김한산을 찾기 위해 우미노오와 거래를 해야 한다고 하나, 그걸 위해 주형태가 고개를 숙인다?

    차라리 주형태는 김한산을 포기할 것이다.

    아니.

    ‘다르게 움직이겠지.’

    우미노오와의 거래는 그저 편한 길일 뿐, 주형태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건방진 자식.’

    주형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정기를 길드에서 추방하거나 나가라 하지 않았다.

    이정기가 얻은 것은.

    ‘자율권.’

    이성의 방침이 정해지기 전까지 이정기의 행동을 억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정기는 시간을 벌었고, 또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 * *

    “…….”

    이정기를 향해오는 복잡한 시선.

    그건 주영은의 것이었다.

    “고마워.”

    그 대신 김윤태가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이정기는 그 둘, 그리고 이진석과 백두의 정예 헌터들과 함께 일본으로 향하는 백두의 전용기에 올라타 있었다.

    “시간을 잠깐 번 거에 불과해.”

    이정기의 말에 김윤태의 얼굴이 굳었다.

    “어차피 이성은 움직여.”

    그 어떤 방법을 써서든.

    “그러니….”

    백두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뿐이다.

    “이성이 움직이기 전,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는 것.”

    그리고 그걸 위해선.

    -착륙합니다.

    다이오 길드와의 거래를 성공적으로 끝마쳐야 한다.

    “…….”

    초조한 얼굴의 주영은.

    그녀가 질끈 눈을 감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그녀의 남편이 다시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느냐, 혹은 그대로 묻혀 알려진 대로 사라지느냐?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잘…, 잘 부탁한다.”

    이정기에게 달려있다는 사실을.

    “잘할 겁니다.”

    이정기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성공해야만 제가 받을 수 있는 것이 있을 테니까요.”

    주형태 길드장과의 만남.

    그때 주형태를 도발한 것은 단순히 주영은과 김윤태를 위해 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자신도 움직일 것이라고, 이를테면.

    ‘선전포고.’

    그것이다.

    * * *

    폐쇠된 일본 동부 지역.

    일본 헌터 협회는 실종된 헌터의 조사팀을 대신해 믿을 수 있는 두 개의 길드에 동부 지역의 조사를 맡겼다.

    하나는 일본 최대 길드 우미노오.

    바다의 패왕이었고.

    ‘다이오.’

    또 하나는 그들에게서 독립한 대양이라는 이름의 길드였다.

    백두가 접촉하기로 한 것은 다이오.

    쿠쿠쿠쿵!

    과연 아직도 지진은 간헐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대피는 다 끝난 모양이군요.”

    이정기의 말에 이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도 지진에 대한 대비가 철저한 일본입니다. 또, 게이트가 나타난 이후 일본의 방비는 더욱 단단해졌죠.”

    과거 게이트가 던전을 대신하던 시기, 일본은 게이트의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게이트의 발생이 잦았다고 했다.

    물론 그 천국이라는 것이 일반인들에게 통용될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저 지옥과도 같은 시간.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게이트, 일본의 헌터들은 쉴 새 없이 게이트를 공략해야만 했고 많은 것들을 잃어야만 했다.

    게이트가 나타난 첫해 일본의 인구 10퍼센트가 증발했다고 했던가.

    그 후 일본은 그 누구보다 게이트를 공략하고 헌터들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고 했다.

    “…….”

    주영은은 초조한 기색으로 계속 핸드폰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정기와 함께 있는 이곳이 먼저 조사를 시작한 다이오와 만나기로 한 접촉 지점.

    약속 시간이 아직 안 되었는데도 핸드폰을 계속 확인하는 것을 보니 주영은이 어지간히 초조한 듯싶었다.

    “하….”

    초조한 것은 김윤태와 백두도 마찬가지.

    ‘김한산.’

    그가 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띠익.

    그때, 핸드폰의 시계가 4시를 알렸다.

    약속된 시간.

    그럼에도 나타나지 않는 상대.

    “뭔가 잘못된 건가…?”

    불안해하는 김윤태와.

    으득.

    입술을 짓씹는 주영은.

    하지만 이정기는 너무도 태평히 입을 열었다.

    “이미 도착해 있습니다.”

    “뭐…?”

    지금 이정기와 함께 있는 헌터들.

    김윤태는 반쪽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모자란 S급 헌터였지만, 이정기를 만나 제대로 된 S급 헌터로 탈바꿈했다.

    백두 길드의 정예들도 랭킹 말석에 들어있는 자도 있었고, 전체가 S급 헌터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영은.’

    그녀 또한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가장 최명희의 피를 제대로 잇지 못했다고 평가되는 만큼, 그녀의 실력은 형편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성혈의 기준이었다.

    ‘서드 라인.’

    그녀는 서드 라인의 랭커.

    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기척을 느끼거나 하지 못했다.

    “보이지 않으십니까.”

    이정기가 말하며 손을 내뻗어 저었다.

    “안개.”

    “안개…?”

    과연 이정기의 말대로 희뿌연 안개가 사방에 깔려 있었다.

    “그게 왜….”

    김윤태가 말을 이으려던 때.

    “과연.”

    안개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무를 느끼고 꿰뚫을 수 있다니.”

    들려오는 목소리에 모두가 긴장하며 마력을 끓어 올렸다.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자들.

    “그분의 후인이구려.”

    들려오는 것은 어색한 한국어.

    안개 속에서 나타난 자들은 총 셋.

    그중 맨 앞은 달라붙어 움직임이 편하게 만들어진 가죽옷을 입고 있는 여자였다.

    꽤나 작은 키.

    칼같이 잘려 찰랑거리는 단발.

    하지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결코 그녀의 가녀린 외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에스기 사츠키.”

    그녀가 바로.

    “당신이 다이오의 길드장이군요.”

    만나기로 했던 다이오의 길드장이라는 것을.

    * * *

    일본의 헌터계는 꽤나 특이한 형태를 취해 성장해왔다.

    헌터로 각성한 일반인들이 새로운 주류가 되어 권력을 쥐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것과 달리.

    ‘역행.’

    일본은 가히 역행했다 표현할 수 있었다.

    특이하게도 헌터들의 초기 각성이 일본의 명문이라 불리는 가문들에서 많이 일어났고 그들은 새로운 질서가 될 힘을 놓치지 않았다.

    그 결과.

    ‘명문들이 일본 헌터계를 장악했다.’

    명가 체제.

    총 다섯 개의 명문가가 일본 헌터계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 중 다이오 길드의 길드장, 우에스기 사츠키는 꽤나 특별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녀 또한 일본의 명문이라 알려진 우에스기의 여식이었지만, 우에스기가는 따로 길드를 만들어 활동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우에스기가는 사실상 몰락한 가문이었으니까.

    그저 허울뿐인 명문가.

    금력의 시대에서 그들은 꽤나 막강한 힘을 쥐고 있었지만, 무력의 시대에선 그들은 몰락해버렸다.

    수십, 수백의 헌터를 배출하는 다른 가문과 달리 우에스기가는 오직.

    ‘하나.’

    사츠키만이 가문의 헌터가 되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가문의 길드를 만들기보다 우마오노 길드의 일원이 되는 것을 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분의 후인.’

    이정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미 이곳까지 오며 수십 번 생각했던 일.

    ‘왜 나를 보고자 했을까.’

    우미노오나 다이오, 두 거대 길드가 왜 자신을 보고자 했을까?

    그것이 길드의 영입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는 억측이다.

    성혈인 자신이 다른 길드에 영입될 것이라 누가 감히 생각할까.

    그렇다면 무엇 때문일까.

    ‘피.’

    자신이 타고난 피.

    성혈인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던가.

    할아버지 이건과 교류가 있다던가.

    하지만 강민혁과 이진석이 아무리 조사해보아도 사츠키와의 연관점을 찾을 수는 없다고 했다.

    어찌 되었건 우에스기가는 일본의 주류가 아니었던 만큼 할머니 할아버지와 큰 접점이 없다고 했었으니까.

    “…….”

    그러니 쉽게 그 이유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거래 조건은 갖추었구려.”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고루한 말투.

    사츠키는 주영은을 보며 말했다.

    “약속은 지킬 것이오. 한국의 길드, 백두는 이번 다이오의 동부 조사에 참여할 것이며, 당신들의 편의를 최대한 봐주겠소.”

    거기다 단지 자신을 보게 해준 것만으로 막대한 편의를 봐주기까지.

    생각했던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제거.’

    바로 자신을 제거하려 들 수 있다고.

    ‘메티스.’

    이정기는 사츠키를 보며 메티스를 불렀다.

    [넥타 보유자는 아닙니다.]

    혹여 그녀가 넥타를 보유한 혼돈의 세대.

    그들 중에서도 티탄이라면 자신을 제거하려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메티스는 그녀가 넥타 보유자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넥타의 흔적이 있습니다.]

    “……!”

    넥타의 흔적이 있다?

    이정기의 눈초리가 싸늘하게 변했다.

    이미 그런 경우를 한 번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김대정.’

    이 또한 함정일 가능성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이정기. 그대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울려 퍼지는 사츠키의 목소리.

    “…….”

    주영은은 잠시 당황한 듯싶었다.

    “그럴 순….”

    그녀에게 자신은 단순히 거래 조건이 아니었다.

    김한산을 치료할지 모르는 유일한 가능성.

    “해를 입히려는 것이 아니오. 가문과 다이오 길드를 걸고 맹세하겠소.”

    하지만 사츠키가 그렇게까지 나오자 주영은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러죠.”

    “그럼….”

    사아아.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사방에 희뿌옇게 내려앉았던 안개가 마치 배열을 바꾸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동시에.

    “…….”

    이정기는 더욱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분명 사츠키는 메티스의 말처럼 넥타 보유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남아있는 넥타의 흔적.

    그리고 이 힘은.

    ‘넥타.’

    신족의 힘이 짙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사방을 둘러싼 안개, 이정기도 아무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건만 어느새 공간에 남아있는 것은 이정기와 사츠키 둘 뿐이었다.

    “당신이 그분의 후인.”

    말을 꺼내는 사츠키.

    하지만 뒤이어 나온 이름은 이정기의 모든 추측을 부숴버릴 만한 것이었다.

    “쥬피터의 계승자구려.”

    역시나 사츠키가 원했던 것은 자신의 피.

    하지만 그 피는 이건이나, 최명희의 피가 아니었다.

    쥬피터 할아버지!

    “당신은 대체….”

    “내 이름은 우에스기 사츠키. 하지만 그 전의 이름은….”

    그녀가 말했다.

    “오케아노스.”

    그 순간.

    [오케아노스, 티탄의 이름입니다.]

    메티스의 목소리가 함께 울렸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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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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