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117화 (117/284)
  • 제5권 17화

    117

    “부탁?”

    주형태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보자 보자 하니까….”

    옆에 서 있던 홍수혁이 분노한 듯 진득하고 날카로운 마력이 이정기를 향해 쏘아져 오고 있었다.

    처억.

    그때 주형태가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파앗!

    홍수혁이 뿜어내던 마력의 기파가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제로 라인의 랭커, 홍수혁.

    그의 기세를 그저 주먹을 쥐는 것만으로 흩어낼 수 있다는 것.

    ‘텐.’

    그것이 주형태가 속한 영역의 힘이었다.

    제로 라인 중에서도 가장 상위의 열.

    시엘들의 빈자리가 생기면 그 빈자리를 채울 것으로 예상되는 열 명의 헌터들.

    “조용히 하게. 낄 데 안 낄 데도 모르는 건가?”

    그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홍수혁이었지만, 주형태는 가차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그것이 진짜 성혈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헌터이든, 그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든 주형태에게는 그저.

    ‘도구.’

    잘 드는 칼, 말 잘 듣는 도구에 불과한 존재.

    주형태는 다시금 이정기를 보며 말했다.

    “네 위치를 잊은 거냐? 지금의 너는 제10 공격팀 팀장으로 불려온 걸 텐데.”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이성의 이름, 10팀의 팀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는 이상 너를 부른 나는 네게 부탁을 하는 것이 아닌 명령을 하는 것이다.”

    마력 한 점 느껴지지 않는 낮은 목소리.

    하지만 그에 깃들어 있는 위압감은 이정기가 느끼기에도 상당한 것이었다.

    이정기가 대답이 없자 알아들은 것이라 생각했는지, 주형태가 말을 이었다.

    “일본의 우미노오 길드의 요청으로 그곳의 길드장을 만나야겠다. 한두 시간으로 준비를 끝내면….”

    “부탁입니다.”

    이정기가 주형태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꿈틀.

    한 번은 참았던 주형태.

    하지만 그에게 그러한 인내심이 있을 리 없었다.

    고오오오!

    들끓는 마력.

    그에 감응하듯 방 안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쩌릿.

    피부를 따끔하게 만드는 마력이 송곳처럼 이정기를 사방에서 찔러왔다.

    “제법이군.”

    그 기운을 받아내면서도 인상 한 번 찌푸리지 않는 이정기의 모습에 가볍게 말하는 주형태.

    “하지만 객기도 부릴 곳을 정해 부리는 거라는 걸 알아야 할 거다.”

    쿠쿠쿠쿠쿠.

    이정기를 찔러오는 마력이 더욱 거세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이정기를 무릎 꿇릴 때까지 강도를 더해나가겠다는 듯한 기운.

    하지만.

    “……!”

    이정기는 그때까지도 무표정하게 서 주형태를 보고 있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지막.

    “길드장님이 제게 하실 말은 명령이 아니라 부탁입니다.”

    이정기는 다시금 주형태를 향해 말했다.

    * * *

    한참의 눈싸움이 벌어졌다.

    서로가 서로를 살피기 위한 듯, 눈동자를 통해 그 내면을 보려는 것인 듯 이정기와 주형태는 한참이나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뷔앙을….”

    먼저 입을 연 것은 주형태.

    “뷔앙을 쓰러트린 게 너라는 소문이 헛소문은 아닌 것 같군.”

    뷔앙을 꺾은 것이 이정기를 도우러 온 이건이 아니라 이정기일지 모른다는 소문.

    “하지만.”

    주형태의 기운이 변했다.

    넓게 퍼져 사방에서 이정기를 찔러오던 것이, 일 점에 집중되어 이정기의 명치 앞에 멈추어 있었다.

    그건 마치 보이지 않는 칼날과 같은 날카로움이 있었다.

    원한다면 당장이라도 이정기의 가슴을 꿰뚫고 그 장기를 헤집을 것만 같은 날카로움.

    “…….”

    이런 마력 컨트롤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타고 나야 가능한 것.

    “시엘은 이제 명예일 뿐, 그들의 실력이 진정 텐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더군.”

    경고였다.

    주형태, 그 자신도 원한다면 뷔앙을 쓰러트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사아.

    명치 앞에 드리운 날카로운 마력이 사라졌다.

    “그래 들어보자.”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앉아 이정기를 보는 주형태.

    “네가 왜 부탁이라 하는지.”

    큰 선심을 쓴다는 듯한 말투.

    이정기는 그런 주형태를 향해 말했다.

    “10팀장으로서의 책임.”

    말을 꺼내기 시작한 이정기.

    “그건 팀장의 직책에 대한 혜택이 있어야 가능한 말 아닙니까?”

    이성의 팀장이라는 자리.

    수많은 헌터들이 이 팀장의 자리를 꿈으로 생각하며 바라본다.

    팀장이 된다고 헌터로서의 큰 성장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인생을 갈아 넣으면서까지 팀장이 되고자 노력하는 그들.

    그 이유야 간단했다.

    ‘이성의 팀장.’

    그 자리가 가지는 혜택과 명예, 보상 때문.

    휘하에 강한 헌터들을 두고, 원하는 던전을 공략하며 막대한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성.’

    이성의 이름.

    그 이름 아래 그들의 행위들은 수없이 많은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즉, 이성이 팀장들을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이성의 이름을 달고 있는 것만으로, 말단의 길드원도 어깨를 당당히 펴고 다른 헌터들과 맞선다.

    그들이 만일 이성의 헌터를 건드린다면, 이성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니까.

    그래서였다.

    “저는 혜택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이정기, 자신은 팀장으로서의 혜택을 단 하나도 누리지 못했다.

    던전 공략은 스스로 협회와 거래하여 획득했고, 팀원에 대한 혜택도 받은 적이 없다.

    보상으로 주어지는 금전은 이정기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을뿐더러.

    “보호.”

    이성의 이름 아래 보호받은 기억이 없다.

    “프랑스 보르도 사건으로 수배된 저를 구하기 위해 이성이 움직였습니까?”

    피식.

    이정기는 입꼬리까지 말아 올리며 말했다.

    “제가 한국에 입국하여 움직이는 것을 포착하지 못하셨을 리 없죠. 다른 대한민국의 10대 길드가 과거의 연으로 제 편을 들 때 이성은 뭘 했습니까?”

    딱 한 마디.

    ‘아무것도.’

    이성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성의 팀장이라는 지위를 지닌 자신을 구하기 위해 이성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런데도 책임을 물으시는 겁니까?”

    자신이 이성을 위해 무언가를 해 줄 의무가 있는 것일까.

    “책임을 물을 수 없으니 내가 네게 부탁하는 것이다?”

    주형태, 그가 말하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좋군.”

    선명한 대답.

    “그렇다면 쉽게 해결될 문제야. 네가 이성의 책임을 회피하겠다면….”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이성을 그만두면 되겠군.”

    * * *

    주형태는 사실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이성을 그만두면 될 일이야. 어차피 없는 혜택, 책임도 지지 않고 좋은 일 아닌가?”

    이성에서 자신을 제거하는 것.

    애초부터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하는 주형태였다.

    최명희가 이성에 자신을 박아넣은 탓에 어쩔 수 없던 것일 뿐, 만일 자신이 제 발로 나간다면 주형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었다.

    “…….”

    “그게 아니라면 다시 말하지. 내가 네가 하는 것은 부탁이 아닌 명령이야.”

    나갈 수 있으면 나가보라.

    그게 싫다면 쥐 죽은 듯 넙죽 엎드려 시키는 것이나 하라는 소리.

    “어쩔 거냐?”

    마치 코너로 몰았다는 듯 자랑스럽게 말하는 주형태.

    홍수혁도 옆에서 웃음을 참는 듯한 소리가 났다.

    대답 없는 이정기의 모습에 승리를 확정한 듯 주형태가 말했다.

    “가서 출국 준비나 해. 곧 사람을 보낼 테니까.”

    상황은 종결된 듯 보였다.

    “나가겠습니다.”

    “그래, 나가 보….”

    “이성을 나가죠.”

    주형태의 표정이 변했다.

    마치 생각지 못했던 한 방을 맞은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얼굴엔 더욱 짙은 웃음이 피워져 있었다.

    그가 가장 바라던 일, 이성의 내부에 있지 않으면 이성의 주인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조차 없다는 것.

    특히나 최명희는 포기하는 자를 좋게 보지 않는다.

    최명희의 총애를 받고 있는 이정기, 그가 알아서 떨어져 나가는 것만큼 주형태가 바라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근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정기가 말했다.

    “회장님께서 진노하실 텐데요.”

    “허.”

    코웃음을 치는 주형태.

    “결국, 한다는 게 또 어머니께 기대는 건가?”

    그는 이제 이정기를 경멸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아뇨.”

    하지만 이정기는 답했다.

    “제가 회장님의 손자여서가 아니라….”

    화아악!

    이정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

    홍수혁은 급히 전투태세를 갖추었고, 주형태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성에 속해 있는 제로 라인 랭커를 그렇게 내보내도 괜찮겠냐는 말입니다.”

    “……!”

    “세상 어딜 가도 대우받는 게 랭커 아닙니까?”

    이정기의 얼굴에 여유가 번져갔다.

    “더욱이 상위의 랭커일수록, 받는 대접은 전혀 다르죠. 제로 라인 랭커라면?”

    어떤 길드를 가도 부길드장의 자리에 앉거나, 그에 준하는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이성이 아닌, 세계 어딜 가도 말이다.

    그도 아니면 홀로 독립해도 괜찮다.

    제로 라인 랭커.

    “이건의 손자, 성혈.”

    그러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이정기.

    “제 밑으로 들어올 헌터들이 꽤 될 텐데요.”

    물론 그런 것들로 주형태를, 이성을 압박할 순 없다.

    이성이 가진 세월, 그리고 그간 쌓아온 충성은 쉽게 무너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잊어선 안 된다.

    “제가 독립하여 홀로 성장한다면? 일 년만에 제로 라인 랭커가 되었습니다.”

    자신은.

    “더 위로, 텐이 된다면? 그도 모자라…, 시엘이 된다면?”

    성혈이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회장님의 진노를? 그건 성혈이라는 핏줄로는 감당하지 못할 직무유기이며, 무능의 증명일 텐데요.”

    주형태는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똑똑한 편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런 것까지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성혈.’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손에 쥔 핏줄.

    한 손에는 권력을 또 한 손에는 칼을, 머리 위엔 금으로 된 왕관을 지고 태어난 것이 그들이었다.

    어느 누가, 성혈이 협박을 당할 것이라 생각했는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 그렇기에 주형태는 당황하는 것이었다.

    사아아.

    이정기의 마력이 한 차례 변모했다.

    “……!”

    옆에 있던 홍수혁, 그가 찔끔 놀라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미간에 드리운 기운.

    그건 주형태가 보였던 것처럼 칼날처럼 변해버린 마력이었다.

    주형태에 비해 절대로 꿇리지 않는 마력 컨트롤을 할 수 있다는 증명.

    “어쩌시겠습니까? 나가라면 나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품 안에 둔 채 지켜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정기는 완전히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나가는 게 싫으시다면….”

    씨익.

    “제게 부탁을 하십시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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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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