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권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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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기스의 파편이 감응을 시도합니다.]
들려오는 메티스의 목소리.
지금껏 메티스가 목소리를 내었을 때는 딱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었다.
‘넥타.’
바로 신족의 힘이 연관되어 있을 때라는 것.
즉, 이 랭킹석에 넥타의 영향이.
‘아이기스의 파편이라는 것이 신족의 힘.’
그것이 감응을 시도한다는 것이었다.
이정기는 눈을 감고, 가슴 깊숙이 박혀 있는 벼락의 보호를 풀었다.
그 순간.
화아악!
감은 눈 사이로 환한 빛무리가 터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부우어어어어엉.
들려오는 올빼미 소리.
멀리서 들려오던 그 소리는.
부어엉.
어느새 바로 코앞에서 느껴지는 듯했다.
이정기가 눈을 떴다.
“너는….”
올빼미의 형상이 낯이 익다.
평범한 듯하지만, 날개 속 깃털에서 드러나는 미세한 황금빛.
부어엉.
보석 같은 두 눈은 마치 루비를 통 채로 박아다 넣은 듯했다.
“케리네이아에서 본 녀석이잖아?”
유시아.
사슴의 영역에서 자신을 관찰하는 듯했던 특이한 올빼미.
달 사냥꾼들이 키우는 올빼미들 속에서 눈에 띄었던 녀석.
그 녀석이 다시금 이정기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아이기스의 파편….]
메티스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아테나의 파편과 접촉했습니다.]
아테나의 파편?
화아악-!
또다시 찬란한 빛이 이정기의 시야를 가렸다.
쏟아지는 빛은 이정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속을 꿰뚫어 볼 수 없었다.
겨우, 겨우 볼 수 있는 것은 황금빛에 물들어 있는 사람의 형상.
-쥬피터의 아들, 허큘리스의 이름을 계승한 자여.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동시에.
“……!”
이정기는 느낄 수 있었다.
이정기가 느낀 것이 사실이라는 것처럼 확인시켜주는 메티스의 목소리.
[알파급의 넥타입니다.]
넥타의 순도, 그 순수함이나 파괴력이 지금껏 이정기가 만났던 것과는 궤를 달리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레벨….]
떨리는 메티스의 목소리.
[10의 넥타입니다.]
그 넥타에 서린 힘이 이정기의 온몸을 떨리게 할 정도로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 * *
여러 단계로 순도가 다른 넥타, 그중 최고봉은 메티스의 말대로 알파급이라고 했다.
이정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쥬피터의 넥타도 알파급.
이성 길드의 주안나가 가지고 있는 넥타는 한참 아래의 등급인 입실론이라 했다.
자신이 쓰러트렸던 시엘, 뷔앙의 넥타는 알파급보다 하나 낮은 베타급.
유시아, 사슴이 가진 넥타 또한 베타급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
‘알파급.’
자신과 동등한 알파급의 넥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더욱이.
‘레벨 10.’
메티스가 말해주었던 넥타의 레벨 중 최고 수준.
그 힘의 일부인데도, 온몸이 긴장으로 꽉 조여온다.
하지만 이정기는 곧 이상함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알맹이가 없어.’
느껴지는 위압감은 상당하지만, 그 속에 존재해야 할 알맹이가 없는 듯한 느낌.
-저는 그저 파편일 뿐이기에 그렇습니다.
“생각을…, 읽는 건가?”
-여긴 저의 공간.
이곳은 랭킹석을 건드렸던 협회의 최상층이 아니다.
환한 빛무리만이 가득한 공간.
-저의 성역, 파르테논.
“파르테논….”
-그대 허큘리스에게 해주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해주어야 할 이야기.
그 전에 이정기는 확인해야만 했다.
“당신은….”
넥타를 가진 세 부류의 존재.
티탄, 가디언, 인간.
“가디언인가?”
자신에게 호의적인 태도,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기운에 벼락이 움찔거리며 반응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저 또한 올림포스의 딸, 그대의 적이 아닙니다.
물론 한 마디에 말에 그녀를 믿을 생각은 없었다.
“내게 해줄 이야기가 있다는 겁니까?”
-당신의 깊숙한 곳에 침투한 광기.
그녀가 말했다.
-그 힘은 그대를 좀먹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당신을 움직이게 할 겁니다.
김대정을 통해 자신에게 깃든 광기.
‘광기의 깃털.’
그녀는 그것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것이었다.
-광기는 그대의 약점이 될 수도 있지만….
그녀가 말했다.
-힘이 되어줄 수도 있습니다.
힘이 되어 준다.
“어떻게…, 말입니까?”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그녀의 정보를 듣는다.
-과업.
“과업?”
-올림포스에서 내정된 순서와는 다르지만, 이미 그대는 과업을 완수하고 있습니다. 그 속도에 박차를 가하세요.
“무슨 과업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특별 던전.’
그리고 넥타 보유자들.
그로 인한 성장.
혹시 그녀가 말하는 과업은 그런 것을 뜻하는 게 아닐까 했다.
-그리고….
빛무리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태양을 찾으세요.
“태양…!”
이번에는 과업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와는 달랐다.
바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내 의제야.’
‘그를 쫓을 거야.’
유시아에게 넥타를 주었다는 그 자.
‘태양 길드의 길드장이야.’
그녀가 말하는 태양이 바로 그 태양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당신은 어디 있는 겁니까? 또….”
이정기는 잦아드는 빛무리를 향해 소리쳤다.
“왜 당신의 파편이 랭킹석에….”
이정기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완전히 멀어졌다.
우웅.
공간이 먹혀 한 점에 사라지는 듯한 느낌.
이정기가 서 있는 곳은 아테나의 성역 파르테논이 아닌 협회의 최상층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멍하니 랭킹석에 손을 댄 채 서 있는 이정기를 향한 질문.
“아닙니다.”
이정기는 그렇게 답하면서도 랭킹석의 윗부분을 뚜렷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 * *
대한민국의 새로운 제로 라인 랭커가 될 것이라 촉망받던 오신 길드의 손인수.
그가 테베 길드와의 길드전에서 폐인이나 다를 바 없이 변한 것은 이미 유명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손인수를 폐인으로 만든 결정적 원인인 이정기를 성토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새로운 제로라인 랭커의 탄생.
그 여론은 김대정 사건에 뒤이어 새로운 제로 라인 랭커의 탄생에 묻혀갔다.
-허큘리스, 대한민국의 이름을 빛내다.
헌터는 곧 국력.
그중에서도 랭커의 수가 국가의 전력을 여실히 드러낸다 할 수 있었다.
헌터란 무력뿐만이 아닌 금력, 권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이정기의 소식마저도 묻히게 만드는 소식이 하나 있었다.
-새로운 시엘, 곧 탄생하나?
-여제, 새로운 시엘이 될 가능성….
최명희.
그녀가 곧 시엘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제로 라인의 랭커만으로도 세상이 시끄러워질 정도의 일이었지만 시엘은 그 격 자체가 다르다.
올림포스의 공략 이후 사망자들을 제외하곤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시엘들.
사람들은 그런 시엘을 넘어서지 못하는 벽이라 말하며, 과연 그들의 삶에서 시엘이 또 한 번 바뀔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최명희가 뷔앙을 상대로 길드전에서 승리했던 이후 나오던 이야기.
마지막으로.
‘뷔앙의 죽음.’
뷔앙이 이정기에게 죽었다 알려지며 최명희가 시엘의 빈자리를 채울 것이라는 예상이 높아져만 가고 있었다.
물론, 뷔앙의 죽음이 이정기에 의한 것이라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이건.
그의 도움이 있었다는 확신.
그렇기에 최명희의 시엘 선발 이야기는 더 화제가 되고 있었다.
‘각국에서 한 명.’
명확히 규정된 것은 없었지만, 과거 올림포스 공략 때 정해진 룰이 현재까지도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각 국가는 단 한 명의 시엘만을 배출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아직 시엘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건이 있는 이상 최명희가 시엘이 될 수 없을지 모른다는 것.
하지만 이건이 뷔앙의 죽음에 간섭했다면, 그리고 지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홀로 숨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이건이라면.
‘시엘의 자격을 박탈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를 위험 인자로 분류하고 이건이 가진 시엘의 자격을 박탈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그렇기에 최명희의 시엘 선발이 더욱 힘을 얻었다.
‘비록 최명희가 이건의 손자인 이정기를 거두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이정기가 최명희의 피 또한 이었기 때문.’
약점이 될 수 있는 이정기는 명분이 된다.
‘오직 최명희만이….’
최명희, 그녀가 가진 상징성.
‘이건을 견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이유로 최명희의 시엘 선발이 힘을 얻고 있는 지금이었다.
곧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이정기는.
“…….”
김윤태를 만나고 있었다.
김대정 사건이 끝나고, 새로운 제로 라인의 랭커가 된 이정기.
그가 집에 있다는 소식에 김윤태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형으로서 도움이 되어줄 수 있었다면 좋았겠는데.”
어물쩍 말을 꺼내는 김윤태.
“하, 한국에 들어왔으면 연락이라도 하지. 내가 그래도 아직 백두 길드의 공략 대장이야. 네 일에 한 푼이라도 도움….”
평소와 다른 녀석의 모습.
“제로 라인 랭커가 된 건…, 축하한다. 정말 감탄 밖에 나오지 않는 위업이야.”
김윤태는 쉬지 않고 이정기에게 미안함과 칭찬만을 건네고 있었다.
자신에게 당한 이후, 계약의 송곳을 받아들이고 납작 엎드려 자신의 눈치를 보던 김윤태.
하지만 이정기는 그 속에 있는 반항심을 모르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왜 그래?”
녀석은 진심으로 바짝 엎드려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왜일까.
‘제로 라인의 랭커?’
녀석이 생각했던 것보다 자신이 더 강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반전의 기회는 없을 것이기에 현재의 상황이 최선이라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할아버지가 보르도 사건에서 모습을 드러내었고, 자신과 큰 연관점이 있으며 건재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정기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녀석의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
“제발….”
간절함.
“제발 도와줘!”
녀석은 단 한 치의 사심도 없는 간절함을 자신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우리…, 우리 아빠가 죽을 거야….”
“네 아버지라면….”
백두 길드의 원 길드장.
“김한산 길드장…?”
“그래! 제발 부탁할게!”
녀석은 마침내 무릎까지 꿇으며 양 손바닥을 모으고 있었다.
“너밖에 도와줄 사람이 없어…!”
김윤태가 이러는 이유를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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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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