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권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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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새로운 소식을 때려대는 언론.
처음엔 대한민국이 세계의 뉴스를 다시 썼다면, 지금은 세계가 대한민국의 뉴스를 갖다 쓰고 있었다.
이정기에 대한 의문에 대한 보도들.
프랑스만큼은 극구 부인하며 이정기를 추적하여 진실을 밝히겠다고 하지만….
-의혹이 많은 것은 사실.
여론은 뒤바뀌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정기를 습격했던 생츄어리.
그리고 이성과 길드전을 치렀던 그들이, 정말 우연히 이정기와 조우했냐는 것이었다.
애시당초 이정기를 노린 것이라면?
-정당방위 일지도.
이정기는 오히려 자신을 노리는 거대 세력을 홀로 이겨내고 살아남은 죄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언론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의혹을 추적하고 추적해, 의혹이 어디서부터 나왔는가를 살펴보았다.
또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어진 제보.
-이정기 헌터가 치른 순위 전의 진실.
-제로 라인 헌터에 도전한 이정기 헌터, 헌데 그 순위 전이 여타의 것과는 다른 형태라는 것이 밝혀졌다.
-에키드나 사냥? 그것이 순위 전에 옳은가.
에키드나를 사냥하라고 한 이번 순위 전, 지금까지의 순위 전과 다른 그 모습에 의혹은 증폭되었다.
마지막, 여론이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된 제보가 나왔다.
-세계 헌터 협회는 이번 일에 심히 유감. 순위 전의 자격을 부여한 것은 사실이나 그 세부 사항은 한국 헌터 협회에 맡기다.
-에키드나 사냥, 한국 헌터 협회의 요청으로 밝혀져….
타깃이 바뀌었다.
-김대정, 24년의 독재자.
김대정으로.
* * *
24년, 시끄러운 일은 있을지라도 이 정도까지 혼란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지금 협회는 전쟁을 겪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해명하라-!
협회 건물 밖에서 매일같이 이루어지는 시위.
-의혹을 제대로 해명하기 전까지, 저희 길드는 협회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헌터들이 협회를 보이콧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김대정이 협회를 이끌어나가던 방식은 언제나 기득권을 유지시키고, 새로운 싹을 밟는 것.
그로 인해 수십 년간 불만이 쌓인 헌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저 강력한 길드들이, 헌터들이 김대정의 편을 들어주기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였던 것.
하지만 이번 일로 일반 헌터들과 중소규모 길드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이번에도 그저 지나가는 물결이겠지.”
24년이다.
그간 이러한 일이 한 번도 없었겠는가?
언론이 협회를 내리까고, 헌터들이 시위를 벌이며 보이콧을 한 것이 처음일 리 없었다.
“이번엔 조금 다릅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지금껏 수많은 항의에도 협회와 김대정 협회장님이 지위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10대 길드와 이성의 비호가 컸습니다.”
작금의 시대는 과거와 다르다.
헌터들이 등장하기 전, 금력의 시대.
그때는 그나마 시민들이 들고일어나 시위한다면 세상을 바꾸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
‘무력의 시대.’
헌터들이 등장하고 실질적인 힘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무력을 지닌 자는 금력을 지녔고, 그것도 모자라 권력까지 지녔다.
금력이나 권력을 지닌 자들은 휘하에 무력을 둘 수 있어도, 무력을 앞세운 자들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그렇게 지켜온 24년이었다.
헌데, 이번엔 자신들의 편이라 생각했던 대형 길드들이 등을 돌렸다.
“갑자기 왜!”
이해가 가질 않는 상황.
“결국, 이게 자신들의 이득을 줄이는 것을 모른단 건가?”
김대정은 대형 길드에 호의적이다.
새싹을 밟지만, 그중 피어나는 꽃도 있는 법이다.
만일 김대정이 힘을 잃는다면, 그들 또한 함께 쌓아 올린 기득권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10대 길드 중 6곳이 등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점은….”
결국, 그 이름이 나왔다.
“이건입니다.”
이건.
“허.”
“이건의 손자를 건드린 것이 이번 이탈에 주효한 이유인 듯합니다.”
“아니, 망령이나 다름없는 존재 아닌가. 올림포스에서 귀환했다고 하나 대한민국에 있지도 않고 또….”
24년.
“그간 이건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성장한 것 아닌가?”
도대체 이건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쉽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가 헌터들에게 얼마나 상징적인 존재인지. 그리고….”
이건.
“애초에 협회장님이 협회장실에 앉아계실 수 있는 것도 이건 때문 아닙니까?”
그 존재가 드리워낸 그림자.
그것은 24년의 세월로도 걷어낼 수 없을 만큼 깊고 어두운 것이었다.
“이대로면 다 죽습니다. 내부 고발자 얘기 못 들으셨습니까?”
“내부 고발자?”
“예.”
언론은 마치 단계를 올리듯 보도 내용을 바꾸고 있었다.
처음에는 프랑스 사건에 대한 의혹.
그리고 김대정.
지금은.
“정훈 정보부장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협회 전체에 대한 비리.
던전 공략권을 토대로 쌓아 올린 이득들, 협회가 가진 힘을 통해 온갖 갑질을 해왔던 정황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었다.
“맙소사….”
그 정보 제공자가 정훈이라면, 지금까지의 보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수십 년 협회장을 모시며 협회의 요직을 차지하던 인물이었다.
협회의 직원들이 속옷 몇 개를 가지고 있는지, 오늘 입은 속옷이 무슨 색인지조차 알고 있는 자가 바로 정훈이었다.
“더 늦으면 다 죽습니다.”
“이성은? 이성이 가만히 있을 리 없을 텐데.”
기득권 중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이성.
그들은 사실상 김대정을 앞세우고, 협회를 좌지우지하는 자들이라 할 수 있었다.
김대정이, 협회가 무너지면 이성 또한 그만한 힘을 잃을 터, 그들이 움직인다면 이 사태도 가라앉을….
“이성은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
“아시지 않습니까. 사실상 이성은 저희가 없어도 상관없다는 거.”
절대적인 힘을 가진 이성.
그들은 협회장이 바뀌건 협회가 바뀌건 관계없을 것이다.
누가 새로운 협회장이 되건, 새로운 협회가 탄생하건 그들의 영향력은 굳건할 테니까.
“더욱이…, 이정기 헌터. 그가 성혈 아닙니까.”
믿고 있던 한 수마저 등을 돌렸다.
협회의 간부들.
그들이 결론을 내렸다.
“희생자 한 명으로 끝내야 합니다.”
독이 퍼져 전체를 휩쓸기 전, 잘라내야 한다.
“협회장님을 탄핵해야 합니다.”
* * *
“결국은 이렇게 됐는가.”
김대정이 감은 눈을 파르르 떨었다.
‘각오했던 일이다.’
권력에 맛을 들이고 결코 놓지 못했던 그였다.
하지만.
“후.”
이제는 다르다.
죽음마저 각오한 자신이다.
[탄핵소추….]
권력을 잃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 할 것은 없었다.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그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이건의 그림자, 그건 겨우 24년의 세월로는 지워낼 수 없는 것이라고.
씨익.
옅은 미소를 지은 김대정.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상했던 바다.’
그가 협회장실에 앉은 지 24년이다.
그 전이야 멋모르는 협회의 일개 직원이었지만 24년의 세월은 김대정을 바꾸어놓았다.
그간 헌터들과 정치권, 일반인들 사이에서 지내온 시간들.
그 경험으로 이번의 일을 예상치 못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 대응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것 또한 예상한 일.
“아직….”
김대정이 말했다.
“아직 끝이 아니다.”
자신의 계획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협회장실을 열고 나온 김대정.
“모시겠습니다.”
평소라면 정훈이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사표를 낸 그 녀석 대신 경호부의 헌터들이 김대정을 모셨다.
‘녀석.’
정훈을 생각한 김대정이 다시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많이 컸군.’
협회장으로서의 삶 대부분을 함께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정훈.
원래도 뛰어난 녀석이었지만 처음엔 부족함이 많았다.
하지만 가장 부족했던 점은.
‘따르겠습니다.’
자신을 너무 맹목적으로 따른다는 것이었다.
이건이 자신을 키운 것처럼, 자신이 정훈을 키웠다.
그렇기에 정훈은 자신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채 납득되지 않는 일조차 따랐다.
하지만 이번이야말로 처음으로, 정훈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반기를 들었다.
괘씸하지 않다면 거짓이겠지만.
‘대견하군.’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인다는 것이 나름대로 대견했다.
저벅.
김대정은 그분을 생각했다.
‘이건.’
자신을 이 자리에까지 있게 만들어준 은인.
‘죄송합니다.’
이건은 고아였던 김대정에게 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거칠고, 과격할지언정 자신에게 한없이 고마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 이면엔.
꾸욱.
두려움이 있었다.
지금의 세상은 모른다.
24년이란 세월은 그들에게 이건의 존재를 지워냈다.
아니, 부정적인 것들은 지워지고 긍정적인 면만이 남았다.
영웅이란 그런 존재니까, 영웅이 서사를 쓰며 만들어낸 작은 부스러기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으니까.
김대정은 이건을 모시는 시간 동안 그것을 깨달았다.
‘너무나 강력한 힘.’
그 힘이 몬스터가 아닌 세상을 향해 표출된다면.
꾸욱.
그 결과는 끔찍할 것이라고.
하지만 확신할 수 있다.
‘이정기.’
그가 이건보다 더 위험한 존재라고.
이건의 힘과 이성의 권력을 함께 받은 이정기야말로 희대의 괴물이 될 것이라고.
녀석은 세상에 너무나 위험한 존재다.
‘지금도 그렇다.’
예상했던 일 중 하나라지만, 헌터들을 움직이고 여론을 이용할 줄 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뷔앙마저 쓰러트린 힘이 있다.’
가히, 절대자.
지금이야 부족한 면이 많다지만.
“세상은 알아야 한다.”
새로운 괴물이 탄생했음을.
저벅.
협회의 건물 밖으로 나온 김대정.
촤촤촤촤촤촤!
그를 향한 수없이 많은 플래시 세례가 쏟아져나왔다.
담담히 걸어 단상에 올라갔다.
‘내가 세상에 알릴 것이다.’
김대정이 선 단상.
그 바로 밑에.
“오랜만이구나.”
이정기가 서 있었다.
촤촤촤촤촤!
김대정과 이정기를 향해 터지는 플래시.
꾸욱.
김대정은 눈을 감고 주먹을 꽉 쥐었다.
이미 이정기에 대한 의혹은 풀린 상황이었다.
증거가 밝혀졌으니까.
“제라르의 기억 영상을 보셨을 텐데! 이미 알고 계신 것입니까?”
생츄어리와 미시랭이 죽거나 입을 닫아 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진실.
하지만 증인이 있었다.
이정기가 순위 전을 위해 쫓았던 제라르, 그가 살아남아 이정기와 함께 나타난 것이었다.
온몸을 구속당한 그는, 대한민국의 길드에 자신의 기억을 넘겼다.
그렇게 펼쳐진 기억 영사에서.
-너는 미끼가 되어 이정기를 유인한다.
모든 진실이 밝혀졌다.
-그렇게만 한다면 에키드나의 기록은 지워주지.
뷔앙과 생츄어리가 제라르에게 지시를 내리는 기억.
-길드장, 만일 실패한다면 어떡합니까?
-실패? 실패 따윈 없다. 나는 시엘, 그리고…, 뷔앙이다.
뷔앙의 자만에 가득 찬 말들.
-이건이 정말 옵니까?
-그래. 김대정이 자신했다. 우리 시엘보다 이건에 대해 더 자세히 아는 것은 그 자이니 맞을 거다.
-김대정은 왜 이런 짓을…, 이건의 심복 아닙니까?
-두려운 게지. 괴물이 무엇인지 가장 지근거리에 보고 자란 존재이니까.
김대정과의 연관성.
이미 돌이킬 것은 없다.
하지만 김대정은 말했듯, 죽음마저 각오했다.
“똑똑히 보십시오.”
“……?”
“새로운 괴물을.”
바로 그 순간.
콰앙!
김대정이 몸을 던져, 이정기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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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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