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107화 (107/284)

제5권 7화

107

* * *

천둥 길드의 길드장실.

“유종훈이 무슨 일인가.”

그곳에 천둥 길드의 길드장 유종훈을 포함한 네 명의 사람이 있었다.

“맞네. 이제 곧 은퇴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었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정정한 노인들.

이곳이 천둥 길드의 길드장실임을 몰랐다면 동네 노인 헬스 클럽인 줄 착각할 광경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한민국의 헌터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들.

천둥의 유종훈.

백호의 백태산.

라우더의 신철호.

도현의 정판수.

그저 정정한 늙은이처럼 보이는 이들이 바로.

‘대한민국 10대 길드.’

그중 4개 길드의 길드장인 것이었다.

특히나 그들의 공통점은 또 있었다.

‘1세대.’

헌터와 게이트가 등장한 시기, 길드라는 개념이 정립되고 기업이 아닌 길드들이 만들어질 때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1세대.

이성의 아성에 도전할 수는 없어도 대한민국에서만큼은 무시 받지 않는 자들이 바로 그들인 셈이었다.

“그래서 우릴 왜 부른 겐가? 뭐 예전처럼 드잡이질이나 하자고 부른 것은 아닐 테고.”

신철호의 말에 유종훈이 가라앉은 눈으로 말했다.

“몰라서 그러는 겐가? 아니면…, 이미 얘기가 끝난 건가?”

그제야 나머지 셋의 표정이 일변했다.

방금 전까지는 그저 오랜 친구들을 만났던 것처럼 편안했다면 지금은 냉철한, 한 길드의 길드장이라는 말이 어울릴 표정이었다.

“김대정이 이야기하는구만.”

“그놈은 선을 넘었어.”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지. 녀석의 행보는 이십사 년 전부터 한결같지 않은가.”

김대정이 협회장을 24년 동안이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많았지만 가장 큰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절대 강자의 출현을 견제한다.’

길드든, 헌터든 절대 강자가 될 법한 자는 그 씨를 말린다.

균형을 유지하고, 길드와 길드, 헌터와 헌터가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성은 이미 김대정의 손에서 벗어났기에 어쩔 수 없다 해도, 다른 길드나 헌터들에겐 동일시 적용되는 정책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김대정을 협회장 자리에 앉혀두었다.

새로운 강자의 출현을 견제한다는 것은 즉,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미 기득권을 잡고 상위의 포지션을 잡은 이들은 김대정의 그러한 정책을 환영했다.

“물론 의외이긴 해.”

백호의 백태산.

“아무리 그래도 김대정이 이정기에게 그리할 줄은 몰랐지.”

김대정의 출신,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이건의 하수인이었다.

이건이라도 없으면 모를까.

“목숨을 걸었더군.”

김대정은 스스로의 목숨마저 건 선택을 한 것이었다.

“근데, 그게 왜?”

도현의 정판수.

유종훈은 그들을 살피며 말했다.

“우리에겐 갚아야 할 빚이 있지 않은가.”

“…….”

“설마 잊은 겐가?”

그들에겐 빚이 있다.

과거, 그들이 길드를 만들기 전 일개 헌터로서 활동하던 당시 그들은 하나의 팀으로 게이트를 공략했었다.

그러던 중, 한순간의 실수로 모두가 죽음의 위기에 빠졌을 때.

“이건. 그에게 갚아야 할 빚 말이야.”

이건이 그들을 구해주었다.

한 번이 아니었다.

세상의 인식으로 이건은 구제불능의 악마와 다름없다지만, 그 당시의 헌터들은 작건 크건 이건에게 도움받지 않은 자가 없었다.

적어도 그가 미친 듯 공략했던 게이트로 목숨을 건진 자들도 많았으니까.

“빚이라….”

추억에 빠진 그들.

그들의 눈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고오오.

들끓는 마력.

“예.”

그림자 속에서 이정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가 그 빚을 상속받았습니다.”

“이정기…?”

“어쩌시겠습니까.”

이정기가 담담한 목소리로 그들을 향해 말했다.

“그 빚 이제 제게 갚으시겠습니까?”

* * *

할아버지는 헌터로서 활동하던 당시 망나니라고 불렸고, 그건 사실이었다.

제멋대로의 헌터,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안하무인으로 활동하던 헌터.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과할 정도의 대가를 치르게 만들던 헌터.

하지만 할아버지는 단순히 악명만 쌓아 올린 것이 아니었다.

‘내게 도움받은 녀석들이 꽤 있다.’

그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구해내고 도움을 준 이들.

그들은 한 트럭으로 모자라, 트럭 수십 대에 태워도 부족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시간이 흘러 그때의 은혜를 잊은 자들이 대부분일 것.

‘믿을 수 있는 녀석들, 도움을 줄 수 있는 녀석들을 알려주마.’

지금 이정기의 눈앞에 있는 이들은.

“빚. 제가 상속받았습니다.”

그런 할아버지가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 알려주었던 자들이었다.

“갚으시겠습니까?”

이정기의 말에 침묵이 감도는 방 안.

“참고로 나는 이미 빚을 갚겠다 약속했네.”

유종훈이 정적을 깨며 말했다.

“그분이 없으시기라도 하면 입이라도 씻겠지만, 멀쩡히 살아계신 것으로도 모자라 정정하시지 않나.”

“……!”

“우리가 지불해야 할 빚을 지불하지 않았다간, 그 분노를 어찌 감당해야 할지.”

먼저 만난 유종훈은 이정기를 돕고 있는 것이었다.

만일 은혜를 갚지 않는다면 이건의 분노가 향할지도 모른다는 협박.

“살아야 얼마나 산다고.”

“네 놈이 죽어서 끝나면 다행이게? 길드는? 네 자식들은?”

“허.”

더욱더 무거워지는 분위기.

하지만.

“갚겠네.”

라우더의 신철호가 먼저 답을 내놓았다.

“나도 갚아야지. 나 죽는 거야 괜찮지만, 이제 손자 놈이 걷기 시작했는데 초등학교 입학하는 건 보고 죽어야지 않겠나?”

백호의 백태산.

“너만 죽으면 다행이게. 걷기 시작한 손자놈도 죽을걸?”

도현의 정판수까지.

“빚은 갚겠네.”

그들 모두가 이정기를 향해 답을 내놓았다.

“그래서 우리가 뭘 도와주면 되나?”

세계권에서 놀지는 않아도 대한민국에서는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이들이었다.

“김대정이 그놈을 네 앞에 데려다 놓을까?”

그저 허튼소리가 아닌, 실제로 해낼 수 있는 일.

한 명으론 불가능하겠지만 넷이 모여 한뜻을 펼친다면 실제로 가능한 일이었다.

씨익.

이정기는 저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그저 두려워하기만 한다.

하지만 이들은 할아버지를 공포의 대상처럼 말하지만.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

그것이 다르다.

“먼저 빚을 잊지 않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겉치레는 됐네. 안 그래도 이건, 그분이 돌아오고 제대로 잠도 못 잤어. 얼른 빚 갚아버리고 두 다리 뻗고 잘 거야.”

“나도.”

“자네도 그랬나?”

잠시 피어나는 웃음.

하지만 그들은 프로였고, 이정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네에게 생긴 의혹을 풀어주는 것으로 되겠나?”

김대정에게 죄를 묻는 게 아니니 그것일 가능성이 컸다.

이정기가 벌인 짓은 국제적인 일이었기에 쉽지 않을 수도 있으나 이 자리에 있는 그들도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무엇보다.

‘이성.’

최명희 회장이 움직이기만 한다면 세계를 움직이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 자신들은 그저 한국의 일을 처리해주기만 해도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무엇을 해주면 될까.”

무슨 일이든 해결해줄 수 있다는 자신감.

“김대정 협회장이 그 자리를 차지한 지 24년입니다.”

이정기가 입을 열었다.

이번 일은.

‘김대정 협회장을 처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김대정이 사라지면, 또 다른 김대정이 나타날 것이다.

물론 힘으로 찍어누르면 될 일이지만 그건 할머니가 이야기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성이었다.

그렇다고.

‘이번 일만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곧 있으면 할머니가 움직일 것이고, 계략이 좌절된 김대정은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협회장의 자리를 잃는 것이든, 어떤 것이든.

하지만 그건 김대정 협회장이 원하는 바가 된다.

‘나에 대한 의구심은 남겨둔 채 이성의 비호마저 받는 꼴이 된다.’

이 문제는 전적으로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

‘나에 대한 의혹과 의구심을 풀고, 김대정도 처리해야 해.’

그렇기에 이들이 필요하다.

“24년.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24년이면 고인물도 썩기 마련입니다.”

“……….”

김대정뿐만이 아니다.

한국 헌터 협회, 그 안 전체가 썩은 것이었다.

수많은 이권을 쥐고 있는 가축들, 그들이 축사에 갇혀 진흙은 물론, 똥마저 차 있었다.

그저 대의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진행했던 일들.

‘그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 자신을 함정에 빠트릴 힘이 있는 것이다.

이정기가 바라는 것.

“전부 치울 겁니다.”

다시는 협회라는 존재가 자신을 견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이성의 다른 성혈들과 다투어야 할 자신, 뒤를 생각하며 싸울 겨를은 없다.

“시원하게 쓸어버려야죠.”

“협회를….”

유종훈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없애자는 건가?”

너무도 터무니없는 소리.

“아닙니다.”

이정기는 정훈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축사를 청소하고, 새 사람들을 채워 넣자는 이야기입니다.”

새 사람들을 채워 넣는다.

“물갈이를 하자는 거군.”

결코, 쉽지 않은 일.

협회장 하나를 갈아버리는 것이야 가능할지 몰라도, 협회 전체를 갈아버리는 것은 이성이 나서도 어렵다.

그러나.

“명분이 있는 지금이라면 가능합니다.”

멀쩡한 헌터를 함정에 빠트려, 국외로 추방하려던 일.

그리고 그 헌터가.

‘이건의 손자이자, 성혈. 그리고….’

제로 라인의 랭커라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국부를 유출했다 손가락질할 것이었다.

“그래서?”

유종훈이 다시 말했다.

“뭘 도와주면 되나?”

그들과 대화를 나눈 이정기.

그는 천둥 길드의 길드 하우스를 나와 조용히 핸드폰을 들었다.

“예. 윤 대표님. 이정기입니다.”

* * *

프랑스에서 학살을 벌인 이정기에게 대해 쏟아지던 악의적인 기사들.

원래라면 이성과 이건을 눈치를 보느라 내보내지 못했을 기사들이지만, 대한민국뿐이 아닌 세계에서 쏟아지는 기사였기에 내보낼 수 있었다.

또한, 잠시 동안 은거한 최명희를 대신한 나머지 성혈들의 묵인하에 진행된 일.

그러나 며칠 후, 기사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미심쩍은 프랑스 사건.

-외신들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다.

-생츄어리와 이정기의 만남, 과연 우연?

이정기를 옹호한다고 할 수 없으나 의구심을 던지는 기사들.

성혈들은 일전에도 묵인했고, 이번에도 묵인했다.

전이야 이정기를 보호할 이유가 없었지만, 이번에 한 숟가락을 얹으면 최명희가 분노할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정기 헌터, 그가 누구입니까? 국내 유일의 시엘인 이건 헌터와 시엘 후보로 거론되는 최명희 회장의 손자입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의 인터뷰.

-더욱이 그 자체로도 대단한 헌터입니다. 이번 프랑스 사건, 그것이 이정기 헌터를 함정에 빠트리려던 것이건, 아니건….

윤문산, 그가 마이크를 잡고 텔레비전에 나왔다.

-생츄어리와 미시랭, 그리고 뷔앙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것 아닙니까? 이런 이정기 헌터의 이야기 한 번 듣지 못한 채 수배되어 국내로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윤문산은 힘있게 외쳤다.

-국부 유출입니다! 국력 약화입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주 소 | 경기도 하남시 조정대로 35 하우스DL타워 F915-1(9층)

대표전화 | 070-8233-6450

팩 스 | 02-6442-7919

홈페이지 | www.osmedia.kr

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 위 책은 (주)타임비가 저작권자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이므로 발행자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형태로든 이 전자책과 내용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 이 전자책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는 저작물이며 무단 복제/전제하거나 배포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최강의 손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