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권 6화
106
이정기가 만들어낸 달의 이면.
그곳에 이정기와 이진석, 강민혁과.
“……….”
정훈이 함께 있었다.
공항은 물론 배편마저 막혀 있던 이정기.
예전이야 특수한 게이트를 통해서 국가 간의 이동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게이트가 사라진 현재 이정기가 대한민국에 들어올 방법은 극히 적었다.
그런 이정기가 대한민국에 들어올 수 있었던 까닭은.
‘그럼 잘 해 봐.’
헤르메스, 그의 능력 덕분이었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이정기는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정훈을 찾아갔고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어떻게…, 협회가 그럴 수 있습니까?”
분노한 이진석이 정훈을 향해 말했고, 정훈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입을 연 강민혁.
“왜….”
강민혁이 정훈을 향해 말했다.
“김대정 협회장이 왜 이정기 헌터를 노리는 겁니까?”
완전히 이정기의 편이라곤 할 수 없었으나, 이성과 이건의 눈치를 보느라 이정기를 호의적으로 대했던 김대정이었다.
“무슨 이득이 있기에.”
“이득은 없습니다.”
정훈이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따른 겁니다.”
“…….”
“김대정 협회장님은…, 진심으로 국가와 헌터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설마 정신지배라도 당하는 겁니까?”
이진석의 물음에 정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협회장님은 멀쩡하십니다.”
“그렇다면….”
“협회장님은 이정기 헌터가 헌터들의, 대한민국의 적이라고 상정하고 계십니다.”
“……!”
정훈은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상식을 벗어나는 성장 속도, 적을 용서치 않는 단호함…, 누가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정훈의 말에 이진석과 강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헌터.”
“예. 맞습니다. 협회장님은 이건 헌터를 수십 년 동안이나 보필해오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 왜….”
“그렇기 때문입니다.”
정훈이 말했다.
“예전 게이트가 존재하던 시대야 혼란의 시대였던 만큼 강력한 힘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
“올림포스에 이건 헌터가 남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회장님은 수일 동안 식사조차 하지 않은 채 협회장실에 앉아계셨습니다.”
이정기를 바라보는 눈.
“하지만 그 후, 회장님이 제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김대정은 분명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이라고.”
동시에 안도하고 있었다.
“이건이라는 헌터가 가진 힘이 너무나 크기에, 그의 성정 등을 생각하면 이편이 모두에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
가라앉은 이정기의 눈.
“하지만…, 다릅니다.”
이진석은 말했다.
“이건 헌터와 이정기 헌터는 분명….”
“예. 다르죠.”
정훈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난 성장, 단호함, 폭력성, 그 외에도 혼돈의 세대.”
“……!”
“또한, 성혈이자 이건의 핏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협회장님은 이정기 헌터가 이건 헌터보다 더 위험한 존재라 생각하시는 겁니다. 이정기 헌터 묻겠습니다.”
정훈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로베르트, 왜 죽이셨습니까.”
“정훈 부장님!”
“죽여야 했습니까?”
생츄어리의 로베르트, 녀석은 대의를 위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고문하고 창을 겨누었다.
하지만 작금의 시대에서 그것이 옳은 일일까?
“손인수 헌터는 대한민국에서 또 다른 가능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길드전에서 이정기 헌터와 겨룬 이후 바보나 다름없어졌습니다.”
헌터는 현재 국가의 부나 다름없다.
얼마나 많은 헌터, 얼마나 강한 헌터를 보유하고 있느냐가 국가의 힘을 대변한다.
“그러셔야 했습니까?”
“그들은 이정기 헌터의 목숨을 노렸….”
“여기 있는 강민혁 헌터는요?”
정훈이 말했다.
“김윤태 공격대장은 어찌 설명할 겁니까.”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 것 같았다.
“모든 것은 당신의 마음대로입니다. 적이라는 이유만이 아닌, 이정기 헌터의 마음.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거기다 윤문산 대표의 스폰서를 자처하셨죠?”
정치권.
“이성의 정치권을 이용한 적은 있어도, 그 둘이 뜻을 완전히 합치한 적은 없습니다.”
균형.
“저도 협회장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정기 헌터, 당신은….”
이십여 년 간 쌓여온 균형이 무너진다.
“이건 헌터보다 더 위험한 존재입니다.”
* * *
“…….”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이진석도 강민혁도 쉬이 입을 열 수 없었다.
정훈의 말…, 틀린 것이 없었다.
이정기의 심성을 안다고 하는 이진석이지만, 이정기를 변호해주기는 힘들었다.
너무나 강력한 힘, 앞으로 더 강해질 힘.
그 힘을 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이진석이 말했다.
“그저 이정기 헌터가 당할 만했다는 말을 하고자 온 겁니까?”
“아닙니다….”
정훈이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죄가 있을 때라면 모를까. 현재로서 이정기 헌터는 그저 위험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함정에 빠진 것이니까요.”
이제야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이번만큼은…, 돕겠습니다.”
정훈이 말했다.
“어쩌실 겁니까?”
이 또한 정훈의 시험이었다.
이번만큼은 이정기를 돕겠지만.
‘해결하는 방식에 따라 성향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다.’
이건의 방식대로라면.
‘협회로 쳐들어가 김대정 협회장을 쳐 죽이겠지.’
그것이 이건이 생각하는 배신의 대가이니까.
허면, 그 손자인 이정기는 어떨까.
“협회로 가 협회장님을 바로 마주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죠.”
마침내 입을 연 이정기.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적으로 돌릴 각오까지 하고 벌이신 일입니다. 그 정도 각오는 되어있겠죠. 제가 만일 협회장을 직접 만난다면….”
정훈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것이야말로 김대정 협회장이 가장 원하는 것일 겁니다.”
“그렇다면….”
김대정이 이정기를 함정에 빠트리며 사용한 것은 힘이 아닌 권력이었다.
이정기가 가라앉은 눈으로 정훈을 보았다.
“제가 할아버지보다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신다고 했죠?”
꿀꺽.
“그래서 어쩌란 말입니까?”
“……!”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이었다.
“제가 위험한 존재이니 그냥 입 닥치고 죽어드려야겠습니까?”
“이정기 헌터…!”
“아니면 스스로 족쇄라도 차고 사람들에게 안전한 존재임을 내비쳐야 합니까?”
“그런 말이….”
이정기의 눈빛에서 사나운 기세가 퍼져나갔다.
“김대정 협회장이 뭐가 다릅니까?”
“예…?”
“결국, 제가 위험한 존재라 멋대로 판단하고, 그가 가진 힘을 이용해 저를 제거하려던 것 아닙니까?”
정훈은 입을 다물었다.
“저도, 김대정 협회장도. 아니….”
이정기가 말했다.
“모든 인간이 똑같습니다.”
그것이 이정기가 느낀 것.
“저도 그들 중 하나고요.”
이정기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똑같이 갚아줄 겁니다.”
내게 했던 그대로.
* * *
대한민국 10대 길드 중 하나인 천둥 길드의 길드장실.
“이거….”
길드장 유종훈은 무거운 얼굴로 부길드장을 향해 말했다.
“김대정이가 작업 들어간 것 같지?”
그가 본 신문에는 이건의 손자인 이정기의 타락이라며 대문짝만한 글씨가 적혀져 있었다.
생츄어리와 미시랭을 도살한 학살자.
에키드나를 잡는 것을 도와주려는 미시랭과 생츄어리에 은원이 있는 이정기가 급습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거기다 타깃은 이정기뿐만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이건과 손잡고, 시엘 뷔앙에 대한 복수를 계획했을 것이다, 라.”
이건 또한 타깃이 되어있었다.
명분은 충분했다.
올림포스에서 나오고 자취를 감춘 이건, 원래부터도 좋은 소리를 듣던 인물은 아니었으니.
세계 신문과 국내 신문은 모두 그 이야기뿐이었다.
이정기와 이건.
두 조손이 괴물이나 다름없다고.
아무리 헌터들 사이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해도, 생츄어리와 미시랭을 건드리고 뷔앙까지 살해당했다.
“거기다….”
해외는 달라도, 국내 신문의 논조는 비슷했다.
“겨우 둘이서 생츄어리와 미시랭, 그리고 뷔앙까지 도살한 힘.”
사람들이 잊고 있었던 이건의 강력한 힘을 떠올리게 만들고, 이정기 또한 그못지 않다 이야기하고 있었다.
“김대정이 성향이야 알고 있었지만….”
유종훈이 말했다.
“김대정이가 미친 건가?”
누구를 건드리는지 모르는 놈이 아니다.
이건, 그리고.
‘최명희 회장이 싸고 돈댔지.’
이성의 비호를 받는 이정기를 건드렸다.
“이거….”
확실하다.
“목숨을 걸었구만.”
좋지 않다.
“이성은 뭐 하고 있나?”
“아시다시피 최명희 회장의 시엘 선발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 때문인지 평창동은 조용합니다.”
평창동, 최명희의 이성 저택이 있는 곳이었다.
“아니면 다른 성혈들이 반발을 한 것일 수도 있고요. 아시잖습니까. 주인배 부회장이나 주형태 길드장한테 이정기가 얼마나 눈엣가시일지.”
“그렇지.”
조용히 생각에 잠긴 유종훈.
“…….”
마음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한민국 10대 길드지만 이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천둥 길드.
이번 일로 이성에 타격이 있던 없던 유의미할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
유종훈이 이렇게 가라앉아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가 도와줄 건 없나?”
빚 때문이었다.
“어렵습니다.”
“왜?”
“이성이 주춤하는 사이 여론이 전부 이정기 군의 정반대에 서 있습니다. 여기서 저희가 자칫 이정기 군을 돕는다면….”
부길드장이 말했다.
“저희도 타깃이 될 겁니다.”
“그렇겠지?”
김대정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이성이라는 이름이 대한민국에 너무나 강렬한 빛을 비추고 있을 뿐, 협회와 김대정 또한 빛나는 별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결국.
‘할 수 있는 일이 없구나.’
은인과 은인의 손자를 도울 수 없다는 현실.
이 자리까지 올라왔건만, 달라지는 것은 크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좀 더 알아봐. 눈치 보는 한이 있더라도 조금은 거들어야겠지.”
“진심이십니까?”
“그래….”
그때였다.
타앗!
몸을 일으킨 유종훈과 부길드장.
어느새 그 둘은 손에 무기를 꼬나쥔 채 창가를 보고 있었다.
“누구냐!”
아무도 없어야 할 그곳에 서 있는 한 인영.
그가 후드를 벗으며 부길드장이 유종훈에게 했던 말을 반복했다.
“진심이십니까?”
“넌…!”
“할아버지에게 받았던 은혜, 이번에 갚으시겠습니까?”
이정기.
그가 그곳에 서 있었다.
‘할아버지.’
이것이 할아버지의 도움이었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 그에게 빚을 진 자들.
이것이.
‘할아버지의 유산.’
이정기의 질문에 유종훈이 무기를 내리며 말했다.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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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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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