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104화 (104/284)

제5권 4화

104

“나 쥬피터의 아들이거든.”

쥬피터 할아버지의 아들?

이정기는 갑작스러운 말에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놀라긴. 뭐, 설명은 내가 아닌 이건에게 맡기도록 할까.”

다시 물러서는 헤르메스.

“녀석의 말대로다. 녀석은 쥬피터의 아들….”

손을 휘휘 젓는 이건.

“그리고 내가 죽였던 올림포스의 보스, 가디언 중 하나다.”

“예…, 예?”

할아버지가 고기를 구우며 말했다.

“예전에 쥬피터 녀석이 말한 적 있었지. 티탄들이 틈을 타 나갔다면, 자신의 형제 자식들도 함께 지구로 향했을 거라고.”

그것까진 이정기도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녀석들을 쓰러트리긴 했지만, 넥타를 보유한 자들은 불사나 다름없기에, 넥타를 지닌 존재가 죽이지 않으면 되살아나는 것 때문이라고 했었다.”

그렇게 이건은 지구로 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움직였다.

하나는 쥬피터가 경고했던 적.

‘티탄.’

티탄들을 찾아내어 처단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네게 악감정이 있을 테지만,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닐 거다. 그중에서도 목적에 충실한 이들은 네 뜻을 밝히면 너와 함께할 거다.’

쥬피터의 핏줄들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찾아낸 것이.

“바로 녀석이다.”

“…….”

“뭐 처음에야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이지만 조금 자극을 해주니 저 모양이다.”

쥬피터 할아버지의 자식이라.

“이미 너는 한 명 만난 적 있을 텐데?”

헤르메스가 뒤늦게 끼어들며 말했다.

“제가 만난 적 있다고요?”

“유시아. 사슴을 말하는 게다.”

“네?”

헤르메스가 미소 지었다.

“그녀 또한 우리 중 하나야.”

“하지만….”

유시아는 분명 유영아의 동생으로 올림포스에 대해서나 여타 다른 것에 대한 기억이 없는 듯했다.

그에 반해 헤르메스는.

‘애초부터 인간이 아닌 쥬피터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처럼 느껴져.’

둘은 완전히 다르다.

“그건 내 특성 때문이기도 하고, 우연 때문이기도 하고, 운명 때문이기도 하지.”

“……?”

“우리는 원래 이건이나 인간들에 의해 한 번 죽었어. 그때 기억이 소실되어 힘만 남은 존재들은 인간에게 깃들어 희박한 영향력만을 발휘할 수밖에 없지.”

“아.”

조금 이해가 간다.

“하지만 특수한 몇몇은 오랜 시간이 걸려 깨어나 기억을 되찾고, 나처럼 인격을 아예 되찾게 되거나….”

또 한 가지.

“뒤섞여 두 존재 모두가 되는 경우가 있지.”

“뒤섞인다?”

“신족인 우리와, 인간인 그들의 인격이 하나 된다고 보면 돼.”

헤르메스는 말을 이었다.

“또 그 중에선 우리의 목적을 잊지 않은 자들도 있겠지만, 아예 목적을 잊은 자.”

유시아.

“목적을 깨달았음에도 행하지 않는 자가 있겠지.”

쥬피터 할아버지의 핏줄들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라는 듯했다.

타닥.

튀어 오르는 모닥불.

“나는 티탄들을 찾고 있다.”

이건이 말했다.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고, 그래야 한다.”

의지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이유는 짐작이 간다.

‘티탄은 위험해.’

뷔앙이야 그렇다 치지만 할아버지가 상대했던 동풍과 서풍이라는 자는 뷔앙보다도 윗줄의 실력자였다.

최고라 불리는 시엘들보다 윗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

대체 어디 숨어 있는지 모르지만.

‘그들보다도 더 강한 상대가 있다면 나도 아직 무리일 수 있어.’

그들이 위험한 상대임은 직감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들의 관심을 스스로에게 돌리고, 그들을 처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주목을 끈대도, 결국 너를 노릴 거다.”

이건의 목소리.

“그걸 위해 네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자신이 해야 할 일.

“할아버지.”

이정기는 말했다.

“뭐든지 말씀만 하세요.”

할아버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 무엇이든 할 자신이 있었다.

“쥬피터의 핏줄들을 찾고, 그것들의 힘을 일깨우던, 네 편을 만들건….”

이건이 이빨을 드러내 웃으며 말했다.

“말 안 들을 거 같으면 죽이던 해라.”

* * *

이미 올림포스의 첫 핵이 무너졌던 24년 전, 그때 지구로 나와 활동을 시작한 티탄들과 달리 쥬피터 할아버지의 핏줄이라 불리는 신족들은 뒤늦게 활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니 적어도 티탄보다는 덜 위험할 수도 있다는 뜻.

‘그게 내 역할.’

할아버지는 그런 올림포스 신족들을 찾는 일을 자신에게 위임했다.

‘헤르메스가 흔적을 찾는 중이다. 녀석은 내 넥타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나와 붙어있어야 하지만 필요하다면 녀석을 보내마.’

할아버지를 돕기 위해 자신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좋으냐?”

이건과 이정기는 오랜만에 조손 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 앉아 나누는 대화.

도대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그냥 돌아오시면 안 돼요?”

이건을 향한 이정기의 목소리.

“한국에 기반이 있으시니, 그걸 이용하시면….”

“아서라. 그 여편네가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할머니는 생각보다 따뜻한 분이에요.”

“푸핫.”

작게 웃는 이건.

그가 이정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뭐가 됐든, 네 할미니. 네가 알아서 판단하거라.”

이건은 먼 지평선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왜요?”

“내가 한국으로 가면, 한국 또한 폭풍에 휘말린다. 그러니 정리가 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떠돌아야겠지.”

자신이 보기에도 충분히 강한 할아버지.

이미 만났던 티탄들도 쉽게 제압할 수 있었지 않은가.

할아버지가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아직 드러난 녀석들은 피라미일 뿐이다.”

“……!”

“세계 곳곳을 장악하고, 제 정체를 숨기며 그 더러운 손을 뻗치는 개자식들도 있지. 하지만.”

무거운 얼굴의 이건.

“가장 무서운 건, 잠들어 있는 녀석들이다.”

“잠들어 있는 녀석들이요?”

“아직 깨어나지 않은 티탄들이 있다.”

“…….”

“그들을 일컬어….”

이건이 이정기를 보며 말했다.

“왕이라 부르더구나.”

“왕….”

“한 번, 그 힘의 일부를 본 적이 있다.”

벌써 할아버지에 그곳에도 닿았던 것일까.

“처음이었다. 그런 것은.”

“……!”

“그러니 아직은 아니다.”

이정기는 그런 이건에게 질문했다.

“혼돈의 세대는 전부 티탄이나 올림포스 신족인가요?”

“그것도 아니다.”

아쉬웠다.

차라리 혼돈의 세대가 전부 그들이라면, 그들만 찾아내어도 되는 것 아니겠는가.

“죽어간 녀석들의 파편이나, 자연 발생한 힘을 일부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 있다.”

그러니 혼돈의 세대가 전부 적은 아니라는 것.

“정기야.”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네게 꼭 말해주어야 할 것이 있다.”

티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와는 또 다른 무거움.

“너희 아비와 어미.”

“…….”

“그리고 나에 대한 이야기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는 걸까.

“과거, 우리가 올림포스에 남았던 이유.”

구구구구구궁.

할아버지의 몸에서 치솟는 마력이 공기를 떨어울리고, 구름을 치워냈다.

“시엘들의 배반에 관한 이야기다.”

* * *

“가, 감사합니다…!”

이진석은 지친 얼굴로도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정기가 제법 괜찮은 것을 주웠구나.”

할아버지가 이진석을 불러다 몇 번 가르침을 내려준 것이었다.

지옥 같은 고통이 수반되었지만.

“근성도 있어.”

“감사합니다…!”

이진석은 그것을 참아내며 그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내가….’

이건에게 지도받은 이진석.

‘이건 헌터의 주먹을 두 번이나 막아냈어!’

그는 죽을 뻔한 그 고통을 떠올리며 깊은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좀 나사가 빠진 것 같지만…, 뭐 쉽게 등을 돌릴 녀석은 아닌 것 같구나.”

이건의 눈이 이정기를 향했다.

“이제 네 차례다. 하지만 그전에 네가 얘기했던 것을 생각해봤다.”

자신이 얘기했던 것.

시엘의 배반에 대해 들은 이정기는 자신도 할아버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협회, 그리고 김대정.’

그들이 할아버지를 노리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겨,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자고 했다.

그리고 지금, 할아버지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다. 뷔앙 녀석이 티탄들과 날 노리는 함정을 파기 위해 널 이용한 것이라고.”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헤르메스.

“하지만.”

이건이 말했다.

“협회는, 아니 그 녀석은 다른 것 같구나.”

대한민국 협회, 그리고 김대정의 뜻.

“녀석들이 노리는 건 내가 아닌 듯싶다.”

“……?”

“녀석들이 노리는 건.”

자신을 향한 이건의 손가락.

“너를 노린 게다.”

“저를 노렸다고요?”

“그래. 지금 네가 뭘 한 지 아느냐?”

사방을 둘러보는 이정기.

“생츄어리와 미시랭의 헌터들을 학살했다. 그것도 모자라 프랑스의 왕이라 불리는 심판자를 처치했지.”

“……!”

“지금 네가 무엇일 것 같으냐.”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에키드나.’

헌터가 규정한 악인.

할아버지가 끼어들었다고 하나.

‘공식적으로는 내가 보르도로 향한 것으로 되어 있을 거야.’

그리고 이곳에서 일어난 학살이 우연일까.

“김대정이가 뷔앙이 날 처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리 없다. 김대정이가 뷔앙의 오만을 이용했다면 모를까. 녀석은 아마 내가 나타나 뷔앙들을 처치하고 그 오명을 네게 씌우려 한 듯하다.”

“…….”

과연,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공적이 되어 네가 세상에 쫓기도록, 적어도 대한민국으로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손을 쓴 것이 아닌가 싶구나.”

“왜….”

이해가 가질 않았다.

도대체 김대정이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만…, 내가 해줄 이야기는 아닌 듯하구나. 다만 이 할애비도 그 부분을 걱정했는데, 아마도 김대정이를 자극한 누가 있나 보구나.”

배신에 대한 분노보다는 안쓰러운 눈을 한 이건.

“정기야.”

“네 할아버지.”

“이 할애비가 처리해주길 원하느냐?”

“…….”

잠시 생각 후 이정기는 고개를 내저었다.

“얼마 전, 할머니와 독대를 했어요. 그리고 할머니가 제게 물으셨습니다.”

이정기가 말했다.

“이성을 원하느냐고.”

그 말에 이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뭐라 답했느냐.”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아버지의 것이었기에, 아버지께 돌려드리기 위해서라고요.”

“푸, 프흐흐.”

이건이 잠시 웃고선 말했다.

“좋구나. 내게 그 말을 하는 이유는?”

“이성을 갖겠다 했습니다. 헌데 이 정도의 일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면 그럴 자격이 없는 거겠죠.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이름을 팔아야 할 땐 팔겠지만….”

굳은 의지로 일렁이는 눈동자.

“제 이름 자체를 올릴 필요가 있겠죠.”

“좋다. 어차피 티탄들이야 내가 견제하고 있고, 그 정도 힘을 되찾았으면 어중이떠중이들에게 당하진 않겠지.”

이건이 웃으며 옆을 바라보았다.

드드드드.

다가오는 헤르메스, 그의 손에 있는 것이 바닥에 질질 끌려 딸려오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까지는 도와주마.”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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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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