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권 1화
101
쿠웅.
끝까지 당겨지는 활시위.
활시위의 강도는 이정기의 마력과 감응해 팽팽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활시위를 이정기가 놓자.
파아아아앙-!
공간을 찢어발기며 화살이 쏘아져나갔다.
쿠드득.
그 반동으로 깊게 박힌 이정기의 발이 땅을 긁어내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고 한참, 이정기는 아직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저 묵묵히 활을 장전하고.
파아아아아앙-!
발사한다.
이 간단한 일련의 행위.
쿠콰콰콰쾅!
하지만 그 결과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막대한 화살의 위력에 산이 깎여나간다.
그런 화살의 목표물은 어떻겠는가.
“끄억!”
그저 단말마의 비명만을 내지르며 스러질 뿐이었다.
그렇게 이정기가 쏘아낸 화살에 유명을 달리한 헌터가.
‘육십.’
자그마치 육십에 달해 있었다.
“…….”
저들도 바보가 아니었다.
이정기에게 접근조차 제대로 못 한 채 계속해서 동료들이 쓰러지자 거리를 벌리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하아.”
이정기가 숨을 토해냈다.
적들이 전략을 바꾸고 있었다.
스윽.
몸을 숨긴 채 거리를 벌리고 모여들고 있었다.
‘화살의 속도가 느리다는 걸 깨달았다.’
이정기의 활의 약점.
그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만큼 속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적들은 그 사실을 눈치채고 숫자를 모아 한 번에 접근하려는 듯했다.
“하아.”
다시 한 번 이정기는 호흡을 삼키며 활시위를 당겼다.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금빛을 띠던 마력의 화살이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활을 사용하는 건 아직도 무리야.’
자신이 백 프로의 힘을 사용하던 올림포스에서도, 너무나 강력한 위력에 사용을 자제하라 했던 할아버지의 충고.
그 말마따나 아직 무리가 있지만.
‘확실한 기선제압.’
그것을 위해선 더 큰 한 방을 먹일 필요가 있었다.
고오오.
이정기의 온몸으로 마력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모여든 적들.
그것으로 자신의 화살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면 착각이다.
“하.”
숨을 내뱉으며 팽팽하게 당겨졌던 시위를 놓는다.
그와 함께.
피이이이이잉!
이정기의 화살이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할아버지가 알려준 궁술의 궁극.
‘볼텍스 애로우.’
콰콰콰콰쾅!
소용돌이를 머금은 화살이 산기슭을 찢어발기며 적들의 중앙에 떨어졌다.
* * *
콰아아아앙!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폭발.
‘이번만큼은 진심으로 나서야겠네요.’
허튼 말을 하지 않는 이정기인 만큼 무언가 숨겨둔 것이 있으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라곤 생각했다.
그러나.
“미친.”
콰콰콰콰쾅!
이런 것일 줄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터져 나오는 폭발.
이진석 또한 마력에 민감한 랭커이기에 느껴진다.
‘하나, 둘….’
스러져가는 헌터들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저게…, 활이라고?”
이정기에게 훈련을 부탁했던 이진석.
이진석은 얼마 전 또 하나의 부탁을 했었다.
‘궁수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습니다.’
달 사냥꾼을 상대하며 궁수에 대한 무서움을 깨달았던 이진석.
그렇기에 그는 궁수를 상대하기 위한 훈련을 부탁했다.
화살을 막아내는 그 능력을 사용하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궁수라는 존재에 더욱 익숙해질 수 있는 훈련.
마땅한 상대도 있었다.
‘세컨드 라인의 강민혁.’
자신보다 윗줄인 강민혁.
그와의 훈련을.
‘격차를 느꼈었지.’
이진석은 훈련을 하며 강민혁과의 격차를, 또한 상위권 랭커가 궁수라면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달았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강민혁과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의 위력.
콰아아아앙!
이정기가 다른 대단한 능력들을 지니고, 이런 궁술을 지녔을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치도 못했었다.
그때.
“……!”
이진석의 두 눈동자가 크게 확장되었다.
“미…, 미친.”
이정기에게서 느껴지는 강렬한 파장.
그리고 그 파장이.
쿠콰콰콰콰콰콰쾅!
모여든 적들에게 나아가 전에 없던 파괴력을 선보였다.
산이 깎여나가는 정도가 아니다.
꿀꺽.
땅이 움푹 패여, 일부가 사라졌다.
“이 정도면 애초에 함정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허탈한 듯 그렇게 말했지만, 이진석도 알고 있었다.
‘막대한 위력의 힘은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또한.
‘움직인다.’
아직 저들의 전력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지금까지의 훈련, 그리고 이정기가 준 레전더리 아이템으로 혹시 이정기와 비슷한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잠시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랬던 기대는 이정기의 화살을 보고 깨져버렸지만.
“나도 내 밥값은 해야겠지.”
이정기가 준 레전더리 아이템들의 값을 치러야 한다.
타앗.
이정기와 거리를 벌려 달려나가는 이진석.
이정기의 부담을 덜려면 자신이 헌터 하나라도 더 유인해야만 했다.
‘열대여섯 정돈가.’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수의 헌터들이 모였을 때.
화르르륵-!
이진석은 곧장 마나 아머를 몸에 둘렀다.
꽈악.
입고 있는 레전더리 아이템들이 온몸을 조여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결코 불쾌한 느낌이 아닌.
“아아….”
커다란 충만감이 느껴꼈다.
“이게 레전더리 아이템….”
이성의 간부격으로서 수많은 유니크 아이템을 사용해 본 경험이 있지만 단언컨대 레전더리 아이템은 격이 다르다.
한 단계?
‘아니, 그 이상.’
그저 아이템을 착용했을 뿐인데 자신의 성장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시야에 들어오는 적 헌터들.
이진석은 곧장 호흡을 조절하며 아파르체를 들었다.
우웅.
마력을 부여하자 울기 시작하는 아파르체.
다른 명검들과도 전혀 다른 느낌.
“하아….”
그 충족감을 느끼며 이진석은 땅을 박찼다.
쿠쿵. 쿠웅!
발을 내딛자 그 반동에 부서져 나가는 땅.
이진석은 앞으로 쏘아지며 아파르체를 횡으로 휘둘렀다.
화륵!
작게 타오르는 불꽃은.
화아아아아악!
커다란 화염이 되어 전방을 불태워버렸다.
“하, 하하….”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다섯의 헌터.
이진석이 그 위력에 헛웃음을 짓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랬던 이진석의 눈이 가라앉았다.
휙!
급히 뒤돌아 검을 들었다.
쿠우우웅!
아파르체로 느껴지는 둔중한 위력.
이진석은 상대와 눈을 마주쳤다.
낯익은 얼굴.
“오랜만이군.”
생츄어리 소속, 서드 라인의 랭커 철사자 레옹이 그 자리에 있었다.
“…이런 성장이 말이 되는 건가?”
그들이 이정기를 습격했을 때, 이진석은 레옹과 검을 나누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 만나는 것은 처음.
그때만 해도.
“나보다 하수였는데.”
이진석은 레옹보다 하수였다.
레옹이 시간을 끄는 목적이었기에, 이진석이 쉽게 패퇴하지 않았던 것이지, 만일 레옹이 이진석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죽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어떻게….”
이진석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다.
“두 번이나 이정기 헌터를 노린 죄.”
이진석이 그 눈을 붉은 마력으로 물들이며 아파르체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카카카카카캉!
“………!”
“죽음으로 갚으십쇼.”
끼이이이이익-!
아파르체에서 울리는 귀곡성.
귀검을 켠 이진석이.
투캉!
레옹의 그 커다란 대검을 두 동강으로 조각냈다.
* * *
퍼억! 퍽! 퍼억!
선명히 울려 퍼지는 타격음.
소리가 울린 곳에 여지없이 헌터들이 추욱 늘어져 있었다.
“으아아아!”
그 모습에 분노를 터트리며 달려드는 헌터들.
우웅.
이정기의 관자놀이에 황금 뿔이 돋아나며.
털썩, 털썩.
이정기에게 달려들던 헌터들은 맥없이 땅에 쓰러졌다.
“괴, 괴물….”
이젠 쉬이 달려들지 않는 적들.
“하아…, 하아….”
벌써 몇이나 상대한 것일까.
“백 명….”
아니다.
“이 백….”
자신이 쓰러트린 숫자는 거의 이백에 달했다.
가히 경악할만한 일이었다.
헌터 이백을 홀로 상대했다는 것은.
‘길드 급.’
단신의 헌터가 길드 급의 파괴력을 지녔다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처음엔 사냥감으로 자신을 보던 눈들이 분노로 변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을 향해오는 감정과 눈빛은.
“하.”
두려움이었다.
호흡을 조절하고 마력을 분배한다.
다시금 허리를 편 이정기는 다음 상대를 좇아 고개를 돌렸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
이정기가 급히 양팔을 교차시키며 땅에 발을 박아넣었다.
콰앙!
교차된 양팔에 느껴지는 육중한 충격.
드드드드드득.
이정기는 땅에 발을 박아넣은 그대로 한참을 밀려 나가 흙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흔들리는 이정기의 눈빛.
방금 전의 공격, 그건 어떠한 스킬이나 무언가가 아니었다.
‘바람…!’
강렬한 바람이 자신의 몸을 때린 것.
“네 놈이구나.”
들려오는 목소리.
“네 놈이 녀석의 손자로구나.”
그 목소리는 둘.
“허, 그 사이에 이만큼이나 강해진 건가?”
셋이 되어 이정기의 사방을 포위하고 있었다.
[넥타 반응입니다.]
들려오는 메티스의 목소리.
[넥타 반응 셋.]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안다.
넥타를 지니지 못한 존재가 이 정도의 파괴력을 낼 수 없음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
“뷔앙.”
저 중 자신의 정면에 있는 자가 바로 시엘, 뷔앙이었다.
“허.”
자신을 향해 탄식하는 뷔앙.
“함정임을 알고도 무슨 자신감으로 이곳에 왔나 했더니, 이 정도일 줄이야.”
그는 진심으로 경악하고 있는 듯했다.
“그가 나타날 때까지는 지켜보며 힘만 빼놓으려 했는데….”
그런 뷔앙의 얼굴이 경악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안 되겠구나.”
끌어 오르기 시작하는 뷔앙의 마력.
그건 지금까지 상대하던 헌터들과는 격이 다른 것이었다.
“뷔앙. 할아버지에게 그렇게 당했으면서, 정신을 못 차린 거냐?”
뷔앙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이정기.
“꼬마 녀석이 당돌하기는, 지 할아버지를 똑 닮았구나. 하지만 모르는 게냐?”
뷔앙의 입꼬리가 실룩거리며 올라갔다.
“내 옆의 둘은 네 할애비를 처죽이기에 충분한 힘을 지닌 존재들이다.”
“…….”
“네 할애비는 오늘 죽는다. 그 건방진 낯짝을 더 볼 것도 없이 아주 갈아버려 스프에 넣을 거다.”
분노가 절절히 느껴지는 목소리.
“푸….”
이정기는 호흡을 내뱉으며.
“푸하하하핫!”
크게 웃어젖혔다.
“……?”
“…….”
“…….”
이정기가 뷔앙을 노려보며 씹어뱉듯 말했다.
“함정에 빠진 것은….”
“이런!”
“제기랄. 언제!”
이정기의 양옆에 서 있던 넥타 보유자들이 급히 대검을 들어 휘둘러내었다.
쿠쾅!
대검에서 일어난 바람은 마치 폭탄처럼 터져나가며 이정기를 향해 짓쳐들어왔다.
피할 방향은 없었고, 마주한다면 큰 피해를 감당해야 할 정도로 거대한 힘.
하지만 이정기는 똑바로 선 채 뷔앙을 보며 말했다.
“너야. 뷔앙.”
콰앙!
마침내 두 바람이 이정기의 곁으로 부딪히며 폭풍이 일어났다.
“내 뒤에 있을래?”
들려오는 목소리.
“……?”
하지만 이정기는 이채를 띠며 목소리의 주인을 봐야 했다.
이 목소리도 말투도 자신이 아는 할아버지의 것이 아니었다.
“누구?”
전혀 다른 누군가가 폭풍과도 같은 바람을 지팡이 하나로 막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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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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