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99화 (99/284)

제4권 24화

099

협회의 전용기.

“…….”

이정기는 가만히 앉아 정보를 정리하고 있었다.

-제라르.

그것이 이번 이정기가 순위전을 위해 상대해야 할 대상의 이름이었다.

제로 라인의 랭커.

그의 악명은 이미 유명하다고 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프랑스의 한 농경지를 전부 불살라버렸던 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가족을 몰살시키거나 하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 자였다.

제로 라인의 랭커이기에 누구도 쉬이 건드릴 수 없었으나.

‘추적이 시작되자 자취를 감춘 지 삼 년.’

벌써 그 종적을 찾을 수 없게 된 지 삼 년이라고 했다.

“꽤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옆에 앉아있던 이진석이 말했다.

그가 말하는 것은 제라르를 상대하는 것을 말하는 것도 있었지만.

“세계 협회와 수많은 길드들의 추적을 피해, 삼 년을 숨어지낸 자입니다.”

“…….”

“그리 쉽게 찾아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라르를 찾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순위전을 제안했으니, 협회가 제라르의 위치를 특정했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현실은 달랐다.

제라르의 위치를 파악하기는 했다.

다만, 그의 세부적인 위치가 아닌 그가 현재 숨어 있는 국가를 특정해주었을 뿐이었다.

‘시간을 끌려는 속셈이 분명합니다.’

강민혁이 했던 말.

‘그럴지도.’

이정기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협회가 자신의 순위전이 쉽게 끝나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않다는 것을 계속해서 느끼고 있었다.

특히나.

“조심하셔야 합니다.”

전용기가 향하는 목적지, 제라르가 숨어 있는 땅이 어딘지를 아는 지금 그 의심은 확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프랑스는, 뷔앙의 영역입니다.”

프랑스.

“생츄어리와 미시랭의 구역이나 다름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이성이 가지는 위상이 높다지만, 프랑스에서 뷔앙이 가지는 위상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시엘 뷔앙.

“뷔앙은 프랑스에서….”

이진석은 말했다.

“왕이나 다름없습니다.”

자신을 습격했던 생츄어리, 그들의 권역인 프랑스.

거기다 시간을 끄는 듯한 협회.

‘이 모든 것이 우연일까?’

이정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왜?’

갑작스레 협회가 이렇게 나오는 이유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지금까지 강제적인 이유로라도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나왔던 협회.

갑자기 그들이 행동을 변화할 이유가 있던가?

만일 있다면.

“아닐 거야.”

최악의 상상.

김대정이 자신의 눈치를 보는 이유는 할머니 때문도 있지만 사실상 다른 이유 때문이다.

‘할아버지.’

그런데 갑작스레 행동을 바꾸고 적대하듯 한다?

‘할아버지에게 변고가 생긴 걸까?’

할아버지와 연락이 안 된 지는 꽤 오래.

잘 지내고 있는 것인지 확인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아니야.’

이정기는 쓸데없는 상념을 지우려 고개를 흔들었다.

-착륙합니다.

* * *

“……!”

이정기는 사방을 둘러보며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이정기를 보며 미소짓고 있는 이진석.

“대한민국 밖으로 나온 것은 처음이시군요?”

그의 말처럼 이정기는 대한민국 밖으로 나와본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보낸 치열한 시간들.

외국 땅을 밟고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이었다.

“영상으로는 봤었는데….”

프랑스, 파리.

“실제로 보니 다르네요.”

영상으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대한민국과는 전혀 다른 건축물과 형태.

“어떠십니까?”

“아름답네요.”

처음 지구에 왔을 때, 정신이 깨어 보았던 창밖.

수많은 불빛과 사람들, 그리고 자동차들이 이정기의 기억에 깊게 박혀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파리의 풍경 또한 이정기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대한민국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일단은….”

이정기가 이진석을 보며 말했다.

“밥부터 먹으러 갈까요?”

“……?”

“프랑스 음식이 한식만큼이나 맛있는 것들이 많다던데.”

그 말에 피식 웃는 이진석.

그러고 보니.

‘음식에 대해서는 아이 같으시지.’

올림포스에서 나고 자랐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냉철하고 똑똑한 이정기.

하지만 그가 그래도 하나만큼은 순수한 면이 있었으니, 음식을 대할 때였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시간을 확인한 이진석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예전에 출장 왔을 때 즐겨 먹던 곳이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시죠.”

그렇게 시작된 식도락.

이정기와 이진석은 부지런하게도 움직이며 배를 채워나갔다.

시간이 없는 그들이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이유가 있었다.

“역시.”

이진석의 조용한 목소리.

“벌써 따라붙었군요.”

공항에서부터 자신들에게 따라붙은 눈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것도 일반인들이 적절히 뒤섞여 있습니다.”

자신들에게 따라붙은 눈은 헌터 뿐만이 아니었다.

수준급의 랭커들은 마력을 감지하기에, 미행이 소용없는 만큼 마력이 없는 일반인들을 섞어 계속 쫓고 있는 것이었다.

네 번째 음식점에서 나왔을 때.

“그럼.”

이진석이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이따 뵙겠습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둘.

타앗!

이진석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뉘었다.’

쫓던 자들이 나뉜 것이 느껴졌다.

미행에 있어 기본.

하지만 인파 속에 숨어 몸을 숨기기로 한 이진석과 달리 이정기는….

파앗.

서 있던 그대로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이정기가 사라지고 한참.

“젠장! 놓쳤어!”

이정기가 있던 자리를 찾아온 자들이 소리쳤다.

* * *

미행이 붙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붙을 줄은 몰랐다.

벌써 밤이 되어버린 거리.

이정기는 골목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후.”

하늘을 올려다본 이정기.

그의 눈에 휘영청 떠 있는 달이 보였다.

드드드.

마력을 끌어올리자 진동하는 공기.

그에 따라 이정기의 관자놀이에 황금의 뿔이 드러났다.

그리고 곧 세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정기가 방금까지 있던 곳은 파리의 한 골목, 하지만 지금 이정기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곳에 서 있었다.

‘달의 이면.’

달 사냥꾼들이 사용하는 은신처였다.

“오랜만이에요.”

이정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녀.

“다들 잘 지냈죠?”

박혜성과 자신을 찾아왔던 달 사냥꾼들이었다.

“덕분이에요. 사슴께서 아프셨던 이후로 얼마 만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몰라요.”

잠시 안부를 나누었다.

‘달 사냥꾼.’

히든 길드인 그녀들의 영역은 전 세계라 해도 무방했다.

그녀들 대다수는 한국인이었지만 오히려 그 활동 무대는 외국에 있었다.

프랑스 또한 그들이 주로 활동하던 구역.

이정기는 제라르를 상대하겠다 마음먹었을 때 유시아에게 이미 연락을 취해놓은 상태였다.

“미행이 붙었습니다.”

“알고 있어요. 생츄어리와 미시랭이 이미 이정기 헌터님이 프랑스에 올 것을 알고 있었어요.”

“…….”

굳은 이정기의 얼굴.

방금 박혜성의 말로 정보가 노출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순위전에 대한 것은 에키드나를 노리는 만큼 극비로 진행된 일.

‘협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할머니와 협회뿐이었다.

할머니가 정보를 노출했을 가능성은 없으니, 의심이 가는 것은 협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제라르….”

이정기가 말했다.

“멧돼지는 어디 있는지 찾았습니까?”

통칭 멧돼지라 불리는 제라르를 추적하는 것을 달 사냥꾼들에게 맡겼다.

정보를 수집할 마땅한 세력이 없는 이정기.

그러나….

‘달 사냥꾼이야말로 정보 수집의 프로입니다.’

이진석의 말마따나 달 사냥꾼이라는 히든 카드가 있었다.

음지에서 암약하며 수많은 의뢰를 수행하는 그녀들.

그렇기에 그녀들은 누구보다 정보 수집에 능하며, 추적에 용이한 집단이었다.

“멧돼지는 원래부터 저희가 추적 중이던 자였어요.”

박혜성이 말했다.

“하고 다닌 짓들이 많은 만큼 에키드나들은 히든 길드에 있어 최고의 사냥감이니까요.”

이해가 가는 이야기였다.

히든 길드의 주 임무는 헌터의 암살도 있었던 만큼, 악인이라 말할 수 있는 에키드나들에 대한 현상금도 붙어있을 터였다.

“워낙에 도망을 잘 치는 자라 찾는 데 조금 애먹었지만, 마침 사슴께서 정신을 차리시고 녀석을 추적 중이었어요.”

“……….”

“그리고….”

박혜성이 웃어 보였다.

“얼마 전 녀석의 위치를 찾았죠.”

“……!”

역시, 달 사냥꾼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세계 협회가 쫓고 있는 악인을 가장 먼저 찾은 것이었다.

“보르도 지방의 한 산골에 숨어 있는 것 같더군요.”

보르도.

이정기의 얼굴이 굳어졌다.

“보르도라면….”

“예. 맞아요.”

박혜성 또한 무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미시랭의 근거지죠.”

뷔앙의 길드 미시랭.

그들의 본부가 있는 곳이 바로 프랑스 보르도였다.

‘우연일까.’

멧돼지가 그곳에 숨어 있는 것이 우연일까?

마침 자신이 순위전을 치르기 위해 상대해야 하는 멧돼지, 그리고 자신에게 원한이 있는 뷔앙의 길드가 한 곳에 있다.

점점 더 굳어지기 시작한 이정기의 얼굴.

“너무 위험해요.”

박혜성이 말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미시랭과 멧돼지 둘 모두를 상대해야 할 수도 있어요.”

“…….”

“저희가 돕고 싶지만.”

어두운 얼굴의 그녀.

“지금은 여력이 없어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박혜성.

“사슴께서 태양 길드의 흔적을 찾았거든요.”

“……!”

확실히 그렇다면 달 사냥꾼의 도움은 더 이상 바랄 수 없을 듯했다.

“차라리 포기하시는 것이….”

박혜성조차 포기하라 말하는 이번 일.

“고민해보겠습니다.”

이정기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함정이라 확신시 되는 상황.

그런 상황에 굳이 몸을 던질 이유가 없었다.

그보다.

‘이상해.’

이정기는 짙은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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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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