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98화 (98/284)

제4권 23화

098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정훈.

그는 평소 보았던 것처럼 활동이 용이하고 편안한 차림이 아닌 완전한 정장 차림이었다.

또한,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

그 뒤로 늘어선 협회의 헌터들.

그들 또한 정장을 잘 차려입고 긴장한 기색으로 이정기를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이정기가 정훈을 향해 물었다.

오랜만에 보는 정훈의 달라진 점은 옷가지뿐만이 아니었다.

‘얼굴.’

정훈의 얼굴은 수척해 있었고, 눈 밑으로는 다크 서클이 짙게 내려와 있었다.

과한 업무에 찌들어있다고 하기엔.

‘마력이 불안정해.’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한 마력의 흐름이었다.

“얼굴이….”

“아, 아닙니다.”

정훈이 그제야 뒤늦게 미소를 보였다.

평소와 같은 웃음.

“무슨 일이랄게 있겠습니까. 뭐 있다면야, 이정기 헌터 때문이겠죠.”

“……?”

“오신과 테베의 길드전에 용병으로 참전해 또 한 번 대형사고를 치시지 않으셨습니까?”

오신과 테베의 합병.

대한민국 10대 길드와 그에 들진 못해도 만만치 않은 규모의 테베가 길드전을 통해 합병했으니 당연히 협회가 처리해야 할 업무도 많았다.

특히나.

‘이번에 협회 쪽에도 화살이 향했다지.’

오신과 테베의 길드전은 평소와 다른 총력전으로 치러졌다.

손민기의 오신이 승리했다면 상관없었겠지만.

‘결국, 윤문산 대표가 협회에도 경고를 한 셈이지.’

테베가 승리하며 총력전을 만들어주었던 협회도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손민기처럼 물어뜯기진 않았으나, 협회에 대한 의구심이 조금씩 떠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저희야 바빠졌지만, 축하드립니다.”

정훈은 말했다.

“결국, 손인수 헌터까지 꺾으셨네요.”

퍼스트 라인의 랭커를 꺾은 이정기.

이정기가 귀환하고부터 본 정훈이었기에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이정기는.

‘뭔가 있어.’

찝찝함을 숨길 수 없었다.

그저 바쁘다는 말로 해결하지 못할 정훈의 불안.

그러나 지금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가 이번에 이렇게 이정기 헌터님을 찾아온 것은….”

척!

편히 서 있던 협회의 헌터들이 각을 잡고 똑바로 섰다.

또렷한 눈빛, 강렬한 기세.

“축하드립니다. 이정기 헌터.”

오신과 테베의 일이 아니다.

기다려왔던 때.

“수많은 위업을 달성하고, 실력을 증명했기에….”

정훈의 손에 들린 목걸이.

세계 헌터 협회의 문양이 그려진 목걸이였다.

“랭커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 * *

수많은 사람들의 꿈이 초인의 힘을 가진 헌터가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헌터들의 꿈은 극소수를 제외하곤 모두 같다고 말할 수 있었다.

‘랭커.’

이제는 수백, 수천만을 넘어가는 헌터들 사이에서 오직 천여 명에게만 주어지는 칭호.

랭커가 되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부, 명예, 권력,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손에 들어온다.

또한, 랭커의 지위는 그저 호칭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합당한 특혜도 주어진다.’

각국, 어디를 가도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만일 국적을 바꾸는 경우라도 있다면 랭커를 포섭하기 위해 수조 원 이상의 예산이 편성된다.

협회에서 주어지는 특혜들도 만만찮았다.

던전 공략권에 대한 우선권, 협회 시설 이용에 대한 특혜, 공략을 위해서라면 협회가 전용기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외에도, 수십, 수백 랭커를 위한 혜택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랭커들의 꿈은 무엇인가.’

아주 간단했다.

‘더 높은 순위.’

그들의 순위를 올리는 것.

더 높은 순위일수록 제공되는 혜택, 부, 명예, 그리고 권력.

아니.

‘더 강한 힘을 갖는 것.’

애초에 더 높은 순위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의 힘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이정기가 지구에 와 보낸 일 년여의 시간.

“최단기 랭커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최연소는 아니어도, 협회에 헌터로 등록을 한 후 가장 이른 시일 안에 랭커가 된 것이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야.’

이정기가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랭커의 지위는 꼭 필요한 것.

랭커가 된 것은 앞으로 자신이 얻어야 할 것을 위한 초석일 뿐이었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정훈이 말했다.

“특수한 일이지만, 이정기 헌터는 랭커가 되기 전 수많은 위업과 공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이미 랭커들을 상대로 승리한 전적들도 있고요.”

이미 이정기는 상위권의 랭커를 쓰러트렸다.

로베르트, 강민혁, 손인수.

모두 중상위, 최상위권의 랭커들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경우….”

기다려왔던 때.

“바로 순위전을 치를 수 있습니다.”

특혜가 주어진다.

“순위전….”

“예. 랭커가 랭킹을 올리기 위한 필수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랭킹은 아시다시피 정확히 천여 명의 헌터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랭킹.

“이 순위를 바꾸기 위해서는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랭킹은 쟁취하는 것이다.

“원래라면 이정기 헌터가 도전할 수 있는 순위는 900번대입니다.”

랭커가 되고 바로 순위전을 치르는 것이니 당연하다.

하지만.

“그러나 이정기 헌터가 쓰러트린 랭커들은, 하위권이 아닌 최상위권의 헌터들이죠.”

특별한 일, 그렇기에 이번 순위전 또한 특별할 것이다.

‘예상했던 바야.’

이진석도, 강민혁도 이야기했던 일.

“특수한 조건만 허락하신다면….”

정훈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제로 라인에 도전하실 수 있습니다.”

“……!”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이진석이 눈을 크게 떴다.

“생각보다, 더 높은 순위에 도전할 수 있군요.”

원래 이정기들이 예상했던 순위전은 퍼스트 라인까지.

그 위의 순위를 도전하기에는.

‘여러 이해관계 때문에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랬던 당초 예상과 달리 이정기에게 주어진 기회는 제로라인.

‘그러나 단서가 붙어있다.’

특수한 조건을 허락해야만 한다는 것.

“그 조건이 뭡니까?”

이정기의 물음에 정훈이 태블릿을 건넸다.

그곳에 적혀져 있는 것은 제로 라인 랭커들의 명단.

특이하게도 그중 몇 명은 붉은 글씨로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이들은….”

이진석이 그 명단을 보며 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에키드나들입니다.”

“에키드나?”

“예.”

이진석 말했다.

“제로 라인 랭커들에는 특수한 자들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랭킹이 측정되지 않은 자들 또한….”

정훈을 노려보는 이진석.

“세계 협회에서 쫓고 있는 자들입니다.”

즉.

“헌터법을 위반한 헌터들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이 중에는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자들이나, 정부를 전복시키려 했던 자들, 헌터들의 목을 수집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헌터로 이루어진 중대 범죄자들.

그렇기에 일반적인 헌터나 랭커들보다도 극히 위험한 이들이 바로 에키드나로 통칭되는 이들이었다.

‘괴물.’

인간이지만 몬스터나 다름없는 존재.

“설마….”

이진석이 정훈을 향해 말했다.

“이들 중 하나를 상대해야 한다는 겁니까?”

그런 이진석의 질문에.

“맞습니다.”

정훈이 답했다.

* * *

“저는 반대입니다.”

정훈이 돌아가고 이진석이 말했다.

“너무 위험합니다.”

이정기의 첫 순위전, 에키드나를 상대해야 하는 일 때문이었다.

만일 이번에 순위전을 치르지 않는다면.

‘랭커에게 순위전을 치를 수 있는 기회는 일 년에 단 한 번.’

혹은 특수한 사건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즉 최소 일 년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진석은 반대했다.

“에키드나는 지금껏 이정기 헌터가 상대했던 랭커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로베르트, 손인수, 강민혁.

“애시당초 제로 라인은 여타 랭커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함이 있습니다. 거기다 그들은….”

이진석은 말했다.

“인간을 사냥하는 자들입니다.”

괴물.

“로베르트나 손인수 역시 살인의 경험이 없지는 않겠지만, 살인의 경험이 있는 것과 살인을 주로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

“인간을 상대하는 프로들. 그들은 같은 제로 라인 랭커들조차 꺼리는 괴물들입니다.”

그렇기에 이진석은 이번 순위전을 포기하자는 것.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강민혁도 의견을 냈다.

“에키드나를 상대하라는 건, 여지껏 없던 방식입니다. 아무래도 무언가 이상합니다.”

강민혁이 걱정하는 것은 에키드나가 아니었다.

‘왜 이정기가 에키드나를 상대해야 하는가?’

분명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있었으리라.

“또 에키드나를 상대해야 한다면 대한민국을 떠나야 합니다.”

그렇다는 건.

“그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 이정기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였다.

성혈이기에, 최명희가 있기에 알게 모르게 이정기는 보호받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이성의 힘이 약화되는 외국에서라면….

“생츄어리의 습격이 다시 한 번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생츄어리, 그들이 이성과의 길드전에서 약속한 것은 대한민국에 입국하지 않는 것이지 이정기의 전방에 접근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이정기가 한국을 나서는 순간,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것.

“성공한다면 단박에 제로 라인 랭커가 되겠지만…,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이진석과 강민혁 둘 모두 이정기가 이번 일을 받아들이길 원치 않고 있었다.

“…….”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이정기.

그가 곧 눈을 뜨고 말했다.

“아직 저에 대해 잘 모르시는군요.”

“……?”

안전하고 확실한 길.

그것이 할머니의 방식임은 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또 다른 피도 흐르고 있다.’

이건.

절대자이자, 승부사, 누구나 불가능할 것이라 했던 일을 해내는 최강의 피.

그리고 자신의 목적은 오직 이성을 갖는다는 것 하나뿐이 아니었다.

‘쥬피터 할아버지.’

그분이 경고했던 적, 지금도 이건 할아버지를 노리는 적들.

그들을 찾아내어 처치해야만 한다.

“순위전은 치를 겁니다.”

확고한 이정기의 말.

“알겠습니다.”

더 이상 이진석도 강민혁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따른다.’

이정기를 믿으니까.

“그렇다면 누구를 선택하실 겁니까?”

정훈이 말하길 자신에게 상대할 에키드나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고 했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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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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