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96화 (96/284)

제4권 21화

096

“히이이익!”

이정기를 보며 기겁하는 손인수.

그의 모습 어디에서도 퍼스트 라인의 랭커의 위압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살려줘….”

겁에 질린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

녀석이 모자란 것도 사실이지만, 이게 뭐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정기야.’

할아버지가 해주었던 이야기.

‘인간이란 폭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단다.’

인간의 깊숙한 내면 속 공포를 끄집어낼 수 있는 방법.

죽음에 덤덤한 척하는 인간도, 그저 그 죽음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을 뿐.

‘경험한다면 모두 똑같단다.’

김윤태도, 손인수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흘러 손인수가 재기할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손인수가 다시는 자신을 향해 이빨을 드러낼 수 없을 것이다.

사아아.

전투 불능 상태가 되어버린 손인수.

그에 따라 마력장이 걷혀 나갔다.

안과 밖을 분리하던 마력장이 걷히자.

“무슨….”

“손인수 헌터가….”

“패배했어?”

그제야 모두는 싸움의 결과를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주저앉은 손인수, 그 앞에 갈라져 부서진 곤봉을 들고 있는 이정기.

이정기의 상처는.

찌지직.

그대로 회복되어 사라졌다.

“……이게 무슨 냄새야.”

“…….”

주저앉은 손인수의 가랑이 사이에서 치밀어오르는 냄새.

“맙소사.”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오신이 그렇게 자신하고 자랑하던 손인수가 패배했다는 것을.

“와아아아아!”

그 모습에 사기가 더 오른 테베.

오신은 당혹감을 지울 수 없었지만.

“결국, 저자만 잡으면 된다!”

아직은 포기하진 않은 듯했다.

이진석이 최대한 열심히 해준 듯했지만, 혼자로서는 한계가 있었고.

“으아아아!”

테베 길드원들과 함께 전진하던 김윤태는 이제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오신으로써는 지금 이정기만을 잡으면 승리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스윽.

이정기를 향해 몰려드는 헌터들.

이정기가 손인수를 쓰러트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손인수 부길드장이 그냥 당했을 리 없어.”

“적어도….”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이 있었다.

“이정기 또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일 거야!”

그런 희망.

또한, 헌터들에게는 욕망 또한 피어나고 있었다.

“참, 한결같네.”

자신을 쓰러트릴 수만 있다면, 손인수를 쓰러트리고 이건의 손자인 자신을 쓰러트린다면.

“막대한 보상이 주어질 거야…!”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놓치지 않는 인간들.

그것이 참 솔직하면서도 불쾌한 것은 아직 이정기에게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터벅.

이정기가 발을 돌리자 한껏 긴장하며 몸을 움츠리는 그들.

“하나하나 상대하고 있을 생각 없습니다.”

“전부 덤비라는 건가?”

“바라는 바다!”

그들은 긴장을 지우며 이정기를 향해 몸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우우웅.

이정기의 관자놀이로 작은 황금 뿔이 돋아났다.

동시에 금빛으로 물드는 이정기의 눈.

화아아악-!

그런 이정기에게서 사방으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

이정기를 향해 달려들려던 헌터들.

툭, 털썩.

그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수백에 달하는 헌터들이 땅바닥에 쓰러져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쓰러진 헌터들은 오직 오신의 헌터들 뿐.

갑작스러운 상황에 테베의 헌터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을 벌릴 뿐이었다.

타악!

상황을 보고 급히 다가온 이진석.

“이게 대체 무슨….”

그 또한 당황을 숨기지 못한 채 이정기를 보고 있었다.

“뭘 하신 겁니까…?”

“환상으로 잠시 기절시켜둔 것뿐입니다.”

가볍게 말하는 이정기.

“패기 뭐 그런 겁니까?”

“……?”

“아닙니다.”

뻘쭘하게 서 있는 이진석.

이정기는 그를 뒤로한 채 나아가기 시작했다.

환상이 지속되는 몇 분 안 되는 시간.

타악!

이정기는 오신의 거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이정기를 견제하는 이는 없었다.

겁에 질려 물러서거나.

털썩!

또 한 번 환상에 당해 기절당 할 뿐.

그렇게.

-오신 길드의 거점에 깃발이 꽂혔습니다. 길드전의 승자는 테베 길드입니다.

길드전이 막을 내렸다.

* * *

오신 길드와 테베 길드의 길드전.

워낙 앙숙으로 알려진 두 길드가 실제로 길드전까지 치르게 될 줄은 몰랐던 사람들.

하지만 길드전은 벌어졌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신의 승리를 예상했다.

그리고.

“테베가 이겼다고?”

“대체 어떻게?”

“손인수 부길드장을 막을 수 있는 전력이 테베에 있는 거야?”

결과는 대부분의 예상을 빗나갔다.

“용병이 있었대.”

“그 용병이….”

또 한 번.

“이정기 헌터래.”

이정기의 이름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정기가 손인수를 꺾었다고?”

“미친!”

“그게 말이 돼?”

지금까지 몇 번, 이정기의 실력이 세상에 공개된 적이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건은 버서커 로베르트를 상대로 승리했던 일.

하지만 그 사건에 대한 것은 말이 많았다.

‘이정기를 봐주려다가 당한 거야.’

‘이성 측에서 무슨 대비를 한 것일지도 몰라.’

‘운이 좋았을 수도 있지.’

이정기가 실력으로 로베르트를 꺾은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상식에서 그건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정말….”

“실력으로 꺾었다면?”

퍼스트 라인의 랭커를 운으로 이길 수 없다.

거기다 버서커라는 해외의 랭커보다 섬광이라는 국내의 랭커가 대한민국 사람들에겐 더욱 와닿는 존재였다.

또한, 입단속을 시켰던 이성과 달리….

“그거 알아?”

“뭐?”

“이정기 헌터가 쳐다보는 것만으로 수백의 헌터들이 쓰러졌데.”

“에이 거짓말. 무슨 만화도 아니고.”

“진짜라니까!”

테베 길드원들은 이정기에 대해 떠들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퍼져나가는 명성.

또한, 그 명성과 승리를 이용하는 자가 있었다.

-테베 길드, 오신 길드 합병 절차에 나서다.

-오신의 길드원들의 대거 이탈이 예상되었으나….

-당초 예상과 달리 오신의 길드원들 대부분이 길드에 남다.

윤문산.

그는 노련한 정치가였다.

잃은 것이 많았던 싸움, 그 싸움이 승리로 끝나며 리스크를 전부 리턴으로 만들었다.

쉼 없이 몰아치는 그.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오신과 테베간의 약조도 있었지만, 불리와 불합리를 이겨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윤문산은 멈추지 않았다.

-속보, 오신과 테베의 길드전의 내막.

-윤문산 대표의 자식들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윤문산 대표의 납치에 손민기 여당 대표가 관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윤문산의 숨통을 끊기로 한 것.

손민기가 자신의 숨통을 끊으려 했으니,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윤하민과 윤하수의 납치에 관여한 것이 손민기라는 증거는 없었으니까.

하필 길드전 전에 납치되었던 것을 증거라 해보았자, 정황 증거일 뿐.

손민기가 그저 자신의 열렬한 추종자가 벌인 짓이라며 유감을 표한다는 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네.

음지에서 암약하며 헌터 관련 범죄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는 히든 길드가 나선다면.

“주병훈 사장 쪽의 일 처리는 어떤지 훤히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일을 벌이는지 알고 있는 내부자가 나선다면.

-손민기 대표, 오늘 구속.

틈을 보이지 않는 손민기라도 무너트릴 수 있었다.

“아쉽네요.”

이정기가 강민혁을 보며 말했다.

사실, 이번에 노린 것은 손민기뿐만이 아니었다.

“어디서도 주병훈 사장의 이야기는 찾을 수 없으니까요.”

이번 납치와 연관되어 있을 주병훈.

그 증거까지 일부 확보했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강민혁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성이니까요.”

* * *

테베와 오신의 길드전이 끝난 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테베와 오신의 합병 절차가 끝이 났다.

이정기는.

터벅.

이성의 저택 복도를 걷는 중이었다.

오랜만에 할머니의 호출.

“…….”

긴장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회장님.”

할머니의 서재 앞에서, 박윤태는 노크했다.

곧 열리는 문.

이정기는 문턱을 넘어서자 두 눈을 크게 떴다.

원래 항상 할머니의 서재에 오면 독대를 했던 이정기.

하지만 오늘은.

“손님이 계시네요.”

할머니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 불편하느냐?”

“그럴 리가요.”

그러자 손님이 곧 일어서선 이정기를 향해 악수를 건네왔다.

“근 한 달 만에 보는군요.”

전에도 그러했듯, 나이가 어린 자신에게도 깔끔한 공대를 하는 이.

그 눈빛과 기운은 전에 비해 더욱 선명했으며 근심이 많이 사라진 듯 표정 또한 밝아보였다.

“오랜만입니다. 윤문산 대표님.”

윤문산, 그가 할머니의 손님이었다.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왔습니다.”

윤문산이 최명희를 보고 있었다.

“회장님 덕분에 오신 길드를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

그 목소리에 이정기가 더욱 눈을 크게 떴다.

‘할머니가 도왔다고?’

최명희는 따로 정치권과는 엮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의외더냐?”

대수롭지 않은 듯한 목소리.

“이미 차고 기운 균형이다.”

가장 강력했던 차기 대권 주자인 손민기, 그는 이번 일로 완전히 추락해버렸다.

그 대신 떠오른 것이.

‘윤문산.’

문제가 없는 자는 아니었지만 다른 이들에 비해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는 자.

최악이 아니라 차악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지지율이 연일 상승세를 오르고 있다고 했었다.

“거기다 직접 내게 와 고개를 숙이니, 내가 도와주지 않을 턱이 있을까.”

어찌 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할머니가 도운 것은 윤문산이 아니었다.

‘나를 도우신 거야.’

자신이 윤문산을 선택한 데다 윤문산을 승리로 이끌었다.

할머니는 그저 거기에 한 숟가락을 얹어, 기운 균형이 완전히 굳어지게 만든 것뿐이었다.

물론.

‘할머니가 가져갈 이득도 만만찮겠지만.’

정말이지 이길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단순히 그러한 이유로 윤문산의 손을 들어주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정치인을 구렁이나, 족제비와 같다고 평가하는 할머니.

할머니가 그들을 믿을 수 있는 무언가.

“윤문산 대표가.”

최명희가 입을 열었다.

“너와 윤하민을 약혼시키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더구나.”

“……!”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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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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