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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95화 (95/284)

제4권 20화

095

쒜엑! 쒜엑! 쒜엑!

내찔러지는 손인수의 레이피어.

그의 이명은.

‘섬광.’

가속의 힘을 가진 금빛의 마력을 이용한 그의 속도는 가히 섬광에 비교되곤 했다.

주륵.

꿰뚫려 상처 입은 것조차 알아차리는 게 느릴 만한 속도.

씨익.

손인수는 레이피어를 찔러넣으며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잘 피하는구나.”

이정기의 살갗에 붉은 줄기들이 가득했다.

전부 레이피어에 당한 상처들이지만, 치명상이라고 할만한 것들은 없었다.

이정기가 생각보다 잘 피해낸 것도 있지만.

“더 즐겁게 해줄 수 있겠지?”

손인수가 조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감히.’

자신에게 창피를 주었던 이정기.

그를 쉽게 용서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때는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소용없다.

당해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 번 당해보았다면 그 대비를 하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주렁.

손인수의 목에 걸린 여러 개의 목걸이.

손가락에 끼워진 수 개의 반지들.

이 모든 것이.

‘환상 내성.’

환상에 대한 내성을 키워주는 아이템들이었다.

“로베르트를 네 놈이 어찌 쓰러트렸는가 했더니.”

손인수는 다시금 레이피어를 찔러내며 말했다.

“환상 같은 특이한 능력을 숨기고 있을 줄이야.”

아마도 강력한 환상을 통해 틈을 만들고, 쓰러트린 것이 틀림없다.

환상 계열 능력은 헌터들 사이에서도 가히 까다롭기로 소문난 능력.

그에 따른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어지간한 헌터라면 제대로 대응조차 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대비가 되어 있다면?

씨익.

너무 쉽다.

환상 계열의 능력을 지닌 헌터의 특징은, 그 능력을 활용한 싸움에 익숙한 나머지 환상이 막혔을 때의 방비는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편이 많았으니까.

쒜엑!

이정기도 다르지 않았다.

어찌어찌 레이피어를 피해내고 있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반격조차 못 하고 있었다.

‘속도를 조금 올려볼까.’

화아악!

손인수의 팔을 타고 피어오르는 금빛의 마력.

쒜쒜쒜쒜쒜엑!

손인수의 레이피어가 이제 잔상을 남기며 이정기를 농락하고 있었다.

“성혈이라 자만했겠지?”

잠시 레이피어를 휘둘러 내려놓은 손인수.

고오오.

그의 발밑으로 피어오르는 마력이 지반을 뭉개고 있었다.

“하지만 이걸 어쩌나.”

사방에 퍼져나간 마력장이 손인수와 이정기를 차단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네 죽음을 바라는 이가 많은데.”

“…….”

처음으로 표정에 변화가 있는 이정기.

손인수는 그것이 겁을 먹은 것이라 확신하며 천천히 어깨를 움직였다.

처음엔 일반인이라도 볼 수 있는 수준으로 움직인 어깨.

하지만 찰나, 눈을 깜빡이는 그 순간.

파아아아아앗!

레이피어는 금빛의 마력을 가득 머금고 섬광처럼 쏘아져 갔다.

‘불릿.’

이것이 손인수가 자랑하는 최고의 스킬 중 하나.

콰득!

손인수의 눈앞, 서 있던 이정기의 가슴께에 작은 구멍이 나 있었다.

“기대해.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 * *

싸움이라기보다는 가지고 노는 듯한 모양새.

속도의 이점을 확실히 이용하는 손인수는, 이정기를 상대로 장난을 치듯 놀고 있었다.

서걱! 서걱! 푸욱!

찌르는 공격들이 모두 적중한다.

누가 봐도 그건 싸움이 아닌 일방적인 유린이라 부를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뚝.

손인수의 이마로 땀방울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뚜둑.

더욱더 흘러내리는 땀방울.

그에 호응하듯 손인수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곧.

“어떻게….”

손인수가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 한 것이냐!”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유린이라 부를만한 싸움.

하지만 그 싸움이 지속되며, 손인수는 이상함을 느꼈다.

처음에야 그저 가지고 놀 생각에 속도를 조절했지만.

‘중간부턴 꽤 본심을 냈건만….!’

이정기에게 치명타 하나 주지 못하고 있었다.

자잘한 상처가 수십 개,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손인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떻게 내 속도를 따라오고 있는 거냐!”

이정기가 자신의 속도를 따라오고 있다고.

쒜에에에엑!

더욱더 속도를 올리는 손인수.

이제 손인수의 레이피어는 쉼 없는 찌르기에 대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허억…. 허억!”

역시 이정기는 그 공격들을 최소한의 피해만으로 피해내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지금껏 자신의 속도를 따라올 수 있던 이가 몇이나 될까.

날고 긴다고 하는 랭커들 중에서도 극소수.

자신보다 윗줄의 헌터들도 속도만으로는 자신이 우위인 경우도 있었다.

“이제….”

그런 손인수의 귓가로 이정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충 어떻게 하는지 알겠네.”

“……?”

화륵.

아까부터 피어오르고 있던 이정기의 붉은 마력.

“……!”

그 마력이 점차 색을 변모해가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

현실을 부정하듯 소리치는 손인수.

이정기의 마력이.

“그, 금빛!”

금빛으로 변해 있었다.

분명 이정기는 붉은 마력의 소유자라 알려져 있었다.

아니, 방금 자신의 눈으로도 확인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분명 이정기는 금빛의 마력으로.

휘이익!

자신의 속도를 따라잡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있다…!’

안 그래도 희귀하다고 알려진 특수 마력 소유자.

그중에서도 더욱 희소성을 가지는 존재들.

“더블…, 오너.”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특수 마력을 소유한 괴물 같은 이들.

평생을 살면서 한 번을 볼 수 있을까 말까 하는 존재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네.’

그런 대단한 일을 해낸 이정기는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애시당초 자신이 붉은 마력을 사용했던 것도.

‘이진석.’

그와 지내며 그의 마력을 분석했던 결과였다.

지금까지는 금빛 마력을 제대로 접할 수 없었을 뿐, 손인수와 전투를 치르며 이정기는 금빛의 마력이 어떤 성질을 지녔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것이 그 결과였다.

휘익!

가속의 성질을 지닌 금빛의 마력.

“……!”

이정기는 손인수의 속도를 능가하고 있었다.

손인수가 이정기의 신형을 눈에서 놓쳤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퍼억!

어깨에서 둔탁한 통증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손인수가 떨리는 눈동자로 앞을 봤다.

“모….”

잠시 사라졌던 이정기, 다시 나타난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몽둥이…?”

둔탁하기 그지없는 나무 곤봉이었다.

“후환은 남겨두지 않는 주의지만.”

손인수의 귓가에 울려 퍼지는 이정기의 목소리.

“널 죽이면 손민기 대표가 죽자고 달려들겠지? 그건 나도 꽤 귀찮은 일이니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내버려 두면 어차피 주병훈 사장에게 붙어 계속해서 귀찮게 하겠고.”

이정기가 곤봉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다시는 덤비지 못할 기억을 각인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아버지가 그러셨으니까.”

“지금 무슨 개소리를!”

휘익!

다시 사라진 이정기의 신형.

“곤봉이 부러질 때까지만 맞자.”

퍼어어억!

손인수가 등에서 느껴지는 아득한 통증에 마치 새우처럼 등을 굽혔다.

퍼억! 퍼억!

“끄아아아악!”

* * *

손인수와의 전투에서 처음에는 그저 받아주었던 이유.

‘넥타 보유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

그것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었다.

손인수는 퍼스트 라인의 랭커, 넥타를 보유하지 않은 자들 중에서는 최고라 말할 수 있는 헌터 중 하나였다.

그런 헌터가 얼마나 강력한 것일까, 직접 느껴보고 싶었지만.

“실망이야.”

별 것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신세대.’

이들이 문제인 것 같았다.

게이트를 직접 마주해 죽음의 위기를 겪으며 성장했던 구세대.

그에 비해 신세대는 구세대와 비교해 효율적인 마력, 더욱 방대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지만.

‘경험 부족.’

전투에 대한 경험이 극도로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 차이는 극명하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건…, 제로 라인.’

구세대의 대부분이 포진되어 있는 그들이라는 것일까.

물론 신세대인 자들 중에서도 경계해야 할만한 자들이 있다곤 하겠지만 넥타를 보유하지 않은 자들은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얻은 건 있으니까.”

금빛의 마력.

이번으로 깨달았다.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나머지 특수 마력들도 사용할 수 있다고.

이것이 가능한 이유도 바로 넥타.

이 특수한 마력들이 넥타에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퍼억! 퍽!

그 사이 넝마가 되어버린 손인수.

“이, 이럴 리가 없어….”

그는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웅크린 채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화….”

녀석이 고개를 치켜들고 소리쳤다.

“이건 환상이야!”

모든 현실을 부정하는 단계.

‘거의 다 됐네.’

이정기는 손인수에게 심어주는 기억의 각인이 거의 끝났음을 느꼈다.

이제 남은 것은.

“환상이라고 생각해?”

손인수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희망을 철저히 부수는 것.

“환상이야! 그게 아니고서야 내가…! 내가!”

“그렇다면.”

이정기가 곤봉을 늘어뜨린 채 손인수를 보며 말했다.

“환상이 뭔지 보여줄게.”

환상에 대비하여 수많은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는 것은 이미 보았다.

우우웅.

이정기의 관자놀이에서 시작된 빛무리.

그것은 곧 황금의 뿔이 되어 작게 자라났다.

‘만월의 달빛.’

환상에 강력한 효과를 부여하는 능력.

이정기의 눈과 손인수의 눈이 맞부딪힌 순간이었다.

쩌적!

환상을 대비하기 위해 착용한 손인수의 목걸이.

쩌어엉!

그것이 갈라져 부서졌다.

투각!

손인수의 반지 또한 마찬가지.

“무, 무슨….”

당황한 손인수.

그의 앞으로.

쿠쿠쿠쿵!

세상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늘이 반전되고, 땅이 울렁거린다.

“어, 어어어어!”

중력을 거슬러 손인수는 하늘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허어억!”

그곳엔 용암이 들끓어 시뻘건 핏물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안 돼!”

죽는다.

헌터가 되고 처음으로 느껴본 공포,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손인수는 지금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절규하는 그가 마침내 용암 속으로 떨어지려던 그 찰나.

“이게 환상이야.”

“허, 허, 허어…, 허억….!”

손인수는 다시금 땅바닥에 무릎 꿇은 채 이정기를 마주하고 있었다.

주르르르륵.

손인수의 바짓가랑이 사이로 쾌쾌한 내음이 풍지기 시작했다.

“히, 히이이익!”

교육은 이쯤이면 충분한 듯했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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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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