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91화 (91/284)

제4권 16화

091

올림포스가 아닌 지구에서 사는 법.

그리고 그곳에서도,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의 고향인 대한민국에서 사는 법.

“정치권은 진흙탕이나 다름없지만, 그 진흙이 더러워 덤벼들지 않는 자들도 있는 법입니다.”

이정기는 계속해서 대한민국의 삶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이성은 본래 정치권과 결탁하진 않지만, 그건 회장님 대에서 끝난 이야기입니다.”

올림포스에서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선생은 두 할아버지였다.

지구에서의 전반적인 삶에 대해 이진석에게 배우긴 했지만.

‘이진석 헌터는 헌터에 충실하지, 그 외적인 부분에서는 약한 것이 많아.’

또 다른 선생이 필요하다.

그렇게 결정되어 이정기에게 가르침을 주는 자는.

“주인배 부회장, 주형태 길드장이나 주영은 길드장도 각자 정치권과 결탁하여 이권을 독점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강민혁.

주병훈의 사람이었던 그였다.

‘가장 전략적인 주병훈, 그의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배운 사람.’

이진석보다는 더욱 전문성이 있는 것이 확실했다.

물론, 정훈이라는 선택지도 있지만.

‘그는 김대정 협회장의 사람이야.’

자신이 모든 것을 믿고 배우기에는 무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주병훈 사장 쪽, 아니 이성 그룹과 이성 길드장이 여당 쪽. 즉 손민기 대표 측을 스폰하고 있다는 거군요.”

“예. 주영은 길드장이 낄 틈은 없기에 윤문산 대표 쪽을 노렸습니다. 김윤태 공대장이 윤하민과 어울린 것도 그 이유입니다.”

강민혁은 말했다.

“하지만 윤문산 쪽은 스폰을 거절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

이성 그룹과 길드에 비해 백두의 입지가 낮아서?

하지만 그런 이유는 아닐 것 같았다.

“대쪽같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스폰을 받는다면 여러모로 간섭이 심해질 테니, 우려스러워 거절한 것이겠죠. 주병훈 사장도 몇 번 접촉했지만 모두 허사로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병훈은 손민기도 모자라 윤문산에게도 손을 뻗쳤던 모양입니다.

강민혁의 표정이 걱정스럽게 변했다.

“그러니….”

그의 걱정.

“오늘 미팅에 너무 크게 기대하시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어차피 결과가 좋지 않으리라는 것.

그때였다.

느껴지는 기운에 강민혁이 잠시 고개를 숙이곤.

파앗.

그 자취를 감추었다.

곧.

드르륵.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날카로운 인상, 두 눈은 굳센 심지가 박힌 듯 영롱했다.

‘닮았군.’

그 딸인 윤하민과 몹시 닮은 남자.

이정기는 일어서 손을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정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정기의 손은 공허히 허공에 맴돌 뿐, 윤문산은 불편하다는 기색으로 자리에 앉았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자리에 앉아 말을 꺼내는 윤문산.

“오늘은 내 딸아이를 구해주었다기에 감사 인사를 하러 온 것일 뿐. 어떤 오해도 않았으면 좋겠군요.”

역시나, 대쪽같다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만한 남자였다.

스윽.

이정기 또한 자리에 앉아 미소를 띠었다.

누가 뭐라 하든.

‘내가 원하는 사람임이 분명해 보이는군.’

오늘 미팅, 꽤나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았다.

“식사부터 하시죠.”

* * *

“올림포스에서 나고 자란 것으로 들었는데, 의외로군요.”

윤문산의 말.

“순진무구할 것이라 기대하기엔…, 피가 너무 강한 것일까요.”

윤문산과 이정기의 만남.

그것이 윤문산이 느낀 감상이었다.

게이트 속에서 태어나, 게이트 속에서 자란 이정기.

지구로 귀환했다고 하나 그 시일이 겨우 일 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지구나 대한민국의 생태와 거리가 멀 법하지만.

스윽.

이정기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윤문산을 대하고 있었다.

“딸 아이에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곤란한 상황에 도와주셨다고.”

“도우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상황이 그렇게 되었을 뿐이지요.”

이정기의 말에 윤문산이 이채를 띠었다.

계속되는 식사.

하지만 이정기가 먼저 입을 여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식사가 계속될수록.

“흥미롭군요.”

오히려 호기심을 느끼고 있는 것은 윤문산이었다.

“정말, 단순히 제 얼굴을 보고자 자리를 마련한 겁니까?”

오해하지 말라던 처음과 달리 조금은 풀린 기색.

“그럴 리가요.”

“그런데 아무런 말조차 하지 않는 건….”

그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깃들었다.

아마, 이정기의 능구렁이 같던 처음과 달리 아직은 미숙한 부분이 많은 것이라 판단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저 대표님께 제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시간을 드린 것뿐입니다.”

“……!”

“정치하시는 분이니, 사람을 보는 눈도 뛰어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호오.”

윤문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정기 헌터를 제가 시험할 것이니, 이정기 헌터도 저를 시험하겠다. 그겁니까?”

대답 없는 이정기.

윤문산은 그것이 긍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르다.’

이정기, 그는 지금껏 윤문산이 만나왔던 성혈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제왕의 핏줄로 태어나 모든 것을 쥐고 있는 그들.

그들은 당연하게도 은연중 제왕의 기질을 보이는 자들이었다.

‘물론 안 좋은 의미로.’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하자고 불러놓곤, 사람을 깔보는 것은 물론 아랫사람을 부리듯 한다.

제안을 한다 해놓고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

자신을 압박해 결정하게 만들 뿐, 자신의 마음을 움직일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어린 청년은 다르다.’

마치 누군가가 떠오른다.

“들어보죠.”

마침내 윤문산이 말했다.

“제게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제야.

탁.

이정기는 식기를 내려놓았다.

“오신 길드의 길드전 신청,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이번에도 그저 원하는 것을 이루고 물러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윤문산의 표정이 굳었다.

“그저 위협일 뿐이라 생각하십니까?”

이정기, 종잡을 수 없다.

말하라 했더니 후진 없이 직진해온다.

“그럴 가능성이 크겠죠.”

그렇다면 자신도 그에 맞대응할 뿐이었다.

“손민기 대표도 잃을 게 많은 사람입니다. 제게 원하는 게 있겠지만, 그 전부를 가져가려다간 당신도 잃을 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죠.”

그것이 정치인이다.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은 가치를 판단하고, 최대한 잃지 않으며 움직이려는 것.

그것이 정치이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것은 테베가 가진 던전 공략권 몇 개와 관리 던전들 몇 개일 뿐이죠.”

“…….”

“그것만 받아내면 물러날 겁니다.”

“그러니 주시겠다?”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윤문산은 다시 처음의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

“일단은 살아남아야 반격을 하던, 하지 못하던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딸 아이와 같은 나이뻘의 이정기.

하지만 윤문산은 그런 이정기를 동등한 위치로 생각하며, 동등하게 대우해주고 있었다.

또한, 그 속내를 내비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런 자는….’

이정기는 이런 유형에 대해 들었었다.

‘강하다.’

스스로의 약점을 알고, 그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언젠가 그 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살아남아야 가능한 일이죠.”

“……?”

그 기회가 없다면?

‘그냥 죽겠지.’

그것이 할아버지가 했던 말.

이제 이정기도 윤문산이라는 남자에 대해 충분히 알았다.

그러니.

“오신 길드.”

더욱 엑셀을 밟아 직진한다.

“이번에는 그냥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

“길드전은 무조건 치러질 겁니다.”

“그게…, 무슨….”

이해할 수 없다는 윤문산.

이정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제가 그렇게 만들거니까요.”

“……!”

* * *

싸늘한 정적.

호의적이던 윤문산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곧 그 얼굴은 평온을 되찾았다.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군요.”

덤덤하지만 실망감이 느껴지는 목소리.

“다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피는 못 속이나 봅니다.”

다른 성혈들과 다르다고 생각했건만 이정기 역시 그들 중 하나다.

결국.

‘겁박인가.’

힘으로 꿇리는 것.

“또,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듯싶습니다.”

거기에 그 역량이 의심 가기까지 한다.

“오신 길드가 물러나지 않게 하겠다? 무슨 수로?”

윤문산의 입가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이성이 눈엣가시로 여기는 저를 여지껏 왜 가만히 내버려 둔 줄 아십니까?”

“…….”

“손민기 대표가 그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정적은 내버려 두어야 도움이 되는 것이지, 헌터들의 세계처럼 제거해야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어리다.

윤문산은 이제 이정기를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무슨 수를 써도, 손민기 대표는 아직 제 배를 가를….”

“지금까지는 그랬을 겁니다.”

“……?”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이정기가 말했다.

“오늘 만남, 가볍게 생각하셨겠죠?”

“…….”

그건 부정할 수 없었다.

‘이정기.’

그의 핏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나, 그가 지구에 돌아온 지 겨우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다.

거기다 헌터로서의 그의 성장세가 대단하다고 하나….

‘그뿐이다.’

이정기는 아직 이성의 공격팀장 중 하나일 뿐이고, 그에게 세력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쉽게 보았다.

‘어차피 오해 따윈 생기지 않는다.’

아무런 세력도 없는 이정기와 야당의 당 대표가 만난다고 한들, 그저 친분을 나누는 자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누구도 둘의 만남을 경계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윤문산은 이 자리에 나온 것이었다.

만일 이 만남이 큰 의미를 가졌다면, 윤문산은 그 성격상 절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실수하신 겁니다.”

“…….”

“제게 많은 눈이 붙어있는 것은 알고 계시겠죠?”

모를 리가.

지금 대한민국과 세계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이정기.

“그런 저와 만남으로써 나름대로 얻고자 하는 것도 있으셨겠고요.”

무언가 달라졌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것이 있으십니다.”

“……무슨 말을.”

“다른 성혈들이 생각보다 저를 더 좋지 않게 보고 있다는 걸요.”

“……!”

“특히나.”

이정기는 무표정한 얼굴로 윤문산을 보며 말했다.

“주병훈 사장이 저를 죽이려 했다는 것도 알고 있으십니까?”

“이게 무슨…!”

알아선 안 될 것을 알았다는 생각에 윤문산은 당황하며 자리를 일어서려 했다.

“늦었습니다.”

하지만 이정기는 거침없이 더욱 엑셀을 밟았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손인수가 길드전을 신청할 정도로 흥분한 이유는 저 때문입니다. 제가 그에게 굴욕을 줬거든요.”

“그만!”

“그런데 오늘 저희 둘의 만남이 손인수, 그리고 주병훈 사장의 귀에 들어간다면 어떻겠습니까?”

윤문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장담하겠습니다.”

일어선 윤문산을 올려다보며 말하는 이정기.

“길드전은 무조건 일어납니다. 윤문산 대표가 제게 붙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둘 것이라 생각합니까?”

“…….”

마주 본 둘의 눈.

하지만 아까와는 다르다.

경악한 윤문산과 차분한 이정기.

“앉으세요. 서로 할 이야기가 더 있지 않겠습니까?”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주 소 | 경기도 하남시 조정대로 35 하우스DL타워 F915-1(9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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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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