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83화 (83/284)

제4권 8화

083

달 사냥꾼의 은신처를 빼곡 매운 울창한 숲.

부어어엉.

올빼미가 울어대는 그 숲속에서.

파아앙! 파앙! 팡!

공기를 찢어발기는 파공성이 쉼 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콰득.

나무들이 충격에 부서지는 소리.

툭.

추락한 것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

‘크윽.’

억눌린 신음 소리들과.

‘흐흐흑.’

감정을 주체 못 해 흐느끼는 여인의 울음소리까지.

짙은 밤, 숲속에서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파아앙!

이따금 화살들이 자신을 노려왔지만, 결국 화살은 닿지 못했다.

볼텍스의 힘이 깃든 마력장을 조종해 모든 화살을 막아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모인 이들이.’

이정기는 속도를 내며 생각했다.

‘나 때문에 피 흘리고 있어.’

그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집에서, 자매라 부르는 그녀들은 서로를 향해 화살을 쏘아내고 비명을 선사하고 있었다.

어찌 유쾌할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려면 서둘러야 해.’

이정기는 계속해서 속도를 올렸다.

숲은 마치 미로처럼 복잡하여, 쉽게 길을 찾을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지만.

파아앗!

이정기는 쉼 없이 마력의 시야를 빌려 길을 찾아내고 있었다.

파아앙!

또 한 번 날아드는 화살.

하지만 이번엔 단순히 화살만이 아니었다.

스윽.

급작스레 근처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카앙!

마침내 화살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들이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주한 적들.

캉! 카캉!

이정기의 검에서 계속해서 불똥이 튕겼다.

한 손에는 활을, 다른 손에는 단검을 쥔 그녀들.

단검을 쥔 여인들은 이정기의 틈을 노리며, 달빛에 몸을 숨겼고.

카앙!

그녀들은 곧 이정기의 사방에서 모습을 드러내 이정기의 급소를 찔러왔다.

그녀들의 공격은 근접전뿐만이 아니었다.

파아앙!

지근 거리에서 날아드는 화살.

‘약점을 알게 되었구나.’

볼텍스 마력장이 가진 약점을 알아차린 것이 분명했다.

계속해서 회전하는 마력장을 만드는 것이기에, 자신과 일정 거리 떨어진 공간에 만들어야 한다는 것.

즉.

‘영역 안에 발을 내디디면, 화살이 통한다는 것.’

스윽.

어느새 자신을 포위한 그녀들.

“…….”

그녀들은 원망과 알 수 없는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이정기를 향해 무구를 들고 있었다.

몇몇은 활을, 몇몇은 단검을 들고 자신을 노려본다.

하나하나가 S급 헌터임이 분명해 보이는 마력량을 가진 그녀들.

그녀들은 곧 눈에 드러난 감정을 지우고, 지독한 살기를 피우고 있었다.

화살이 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니, 그녀들은 승리를 확정짓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볼텍스 마력장은 약점이 명확하잖아요?’

이정기는 당황하지 않았다.

‘가까운 거리에 접근한 궁수의 화살이라면, 화살에 대해 면역이 아닌 것 아닌가요?’

볼텍스 마력장을 배우며 이정기가 이건에게 했던 질문이었다.

‘잉?’

그 말을 들은 이건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곧 이빨을 드러내 웃으며 말했다.

‘정기야.’

차분하게 이어졌던 말.

‘궁수가 왜 짜증 나는 녀석들인 줄 아느냐? 내가 발견하지도 못할 거리에 숨어 계속해서 화살을 쏘아대는 게 마치 날파리 떼처럼 귀찮기 때문이다.’

‘……?’

‘근데.’

그날의 목소리는 분명 자신에게 화인처럼 찍혀 있었다.

‘접근한 궁수가 두렵다는 거냐? 날개 떨어진 날파리는….’

화아악-!

“그저 지긋이 눌러 죽이면 그만이다.”

그것이 할아버지의 말씀.

파아앙!

울려 퍼지는 파공성과.

파앗.

공기가 흔들리는 소리.

“조금 자고 계세요.”

어느새 그녀들 중 한 명의 등 뒤에 나타난 이정기는, 검을 쥐지 않은 다른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타앗!

목 뒤를 정확히 가격한 일격.

곧 가격당한 여인이 쓰러졌지만,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기절시킨 것뿐.

“나머지 분들도….”

파앗.

일렁이며 사라진 이정기.

“조금만 자고 계세요.”

순서대로, 하나둘 그녀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 * *

“…….”

긴장이 가득한 얼굴로 이정기를 보고 있는 여자들.

그녀들은 무구를 꺼내 들며 언제라도 이정기를 공격하고자 했지만.

덜덜.

그녀들의 손이 떨리는 것을 이정기는 모르지 않았다.

이곳까지 오며 마주한 달 사냥꾼들.

그리고 그녀들 중 누구 하나 이정기에게 작은 생채기조차 낼 수 없었다.

그녀들이 자랑하는 궁술과 단검술.

그것들은.

‘무용.’

이정기의 앞에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이정기를 두려워하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그녀들.

“저는.”

이정기는 천천히 나아가며 말했다.

그에 따라 뒤로 물러서는 그녀들.

“여러분께 해를 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

“제가 누구인지는 이미 알고 계시겠죠. 저는 저희 어머니가 만든 이곳에 피가 흐르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개소리!”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그렇다면 네게 덤벼든 우리 자매들을 어찌 설명할 거냐!”

아마도, 보지 못한 듯했다.

후방에서 중요 거점을 지키고 있었던 듯했다.

“무엇을 말입니까.”

“네가 쓰러트린 우리의 자매….”

“그중 누구 하나라도 죽었습니까?”

이정기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확인해보십시오. 누구 한 명이라도 죽었는지.”

“…….”

술렁이는 분위기.

스슥.

그리고 그중 한 명이 급히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막으려면 막을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확인해보라 한 것은 자신이었으니까.

터벅.

더욱 나아가던 때.

스윽.

사라졌던 기운 하나가 다시금 돌아왔다.

“……!”

그리고 그녀들은 또 한 번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신이 말한 대로, 그저 정신을 잃고 기절한 것일 뿐.

누구 하나 죽은 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지금 숲에서 싸우고 있는 당신의 자매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

“저는 누구 하나 죽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증거가 없다면 그저 공허한 외침이겠지만, 증거는 있고 그녀들은 그것마저 확인했다.

“사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정기는 또 한 번 말했다.

“저는 사슴께 해를 끼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네가 원한다면 끼칠 수나 있고!”

악에 받친 듯한 소리.

‘인간에 대한 불신.’

그런 것이 지극히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이해할 수 있다.

‘나 또한 세상의 추악함을 보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 세상을 그저 악의 구렁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수 있게 도와준 이들이 있다.

‘어머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숨은 어머니.

그런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성장하여 훗날 자신과 같은 슬픔을 겪은 이들을 모아 가족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녀들을 움직여 자신들과 같은 슬픔을 겪는 이가 없도록 노력했다.

‘아버지.’

할머니의 죄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여 용서받고자 노력했다.

어떠한 이유로든 아버지의 어머니인 할머니를 노린 자를 용서하고 품에 안으려 했다.

‘할머니.’

스스로가 지은 죄가 무엇인지, 그것을 마주하고 반성했다.

또한, 자신과 같은 실수로 인해 더 이상은 상처 입는 이가 없도록 세계에 그 영향력을 발휘했다.

물론 할머니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이들에겐 명확한 사죄를 하지 못했다 해도, 적어도 할머니는 스스로의 문제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공통점은.

‘가족.’

가족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어머니가 달 사냥꾼을 떠나도, 당신들은 어머니를 가족이라 여겼다고 들었습니다.”

“……!”

“그렇다면.”

이정기는 이번만큼은 힘을 주어 말했다.

“저도 여러분의 가족이 아닙니까?”

“……!”

“자매가 될 순 없어도, 어머니를 부모처럼 여겼다면 저 또한 당신들의 남매가 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떨리는 분위기.

“만일 저 또한 당신들의 가족이라면!”

이정기의 몸에서 붉은 마력이 치솟았다.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기회.

“절 한 번 믿어봐 주세요.”

구해내겠다.

당신들도, 사슴도.

그녀들 또한.

‘나의 가족.’

자신이 품어야 할 가족일 테니까.

그때였다.

스윽, 스으윽.

하나둘, 뒤로 물러서기 시작하는 그녀들.

“…….”

움직이지 않던 자들도 동료들의 움직임에 발맞추어 하나둘 물러서기 시작했다.

스윽, 스윽.

숲속이 흔들거렸다.

“……….”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박혜성과 그녀의 동료들.

그녀들은 이정기와 물러선 자매들을 보곤 잠시 떨었지만.

슥.

곧이어 물러선 자매들의 곁으로 가 함께 길을 만들어주었다.

촤아악.

갈라진 그녀들.

그녀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아직도 원망 섞인 눈빛을 보내는 이들이나, 불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이들.

하지만 다른 감정도 있었다.

‘믿음, 신뢰.’

그리고 기대감.

하지만 이정기는 분명 말할 수 있었다.

저 긍정적인 감정들은 결코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어머니.’

유영아가 달 사냥꾼에 있을 때 만들어두었던 믿음과 신뢰가 자신에게 이어진 것뿐이라고.

이것이 바로.

‘어머니의 유산.’

유영아의 유산이라고.

“감사합니다.”

진심을 담아 이정기가 말했다.

이제 달 사냥꾼들은 양옆으로 물러서 이정기에게 완전히 길을 터주고 있었다.

“정말, 할 수 있다면….”

이정기에게 그럴 힘이냐 있냐고 소리쳤던 여자.

그녀는 울먹거리다 싶은 얼굴로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제발 사슴을 구해줘….”

구해달라.

말하지 않아도 그럴 셈이다.

“구하겠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남매나 다름없는 자들이라면.

“꼭 구해내겠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모일 것이다.

타아앗!

땅을 박차고 속도를 올린 이정기, 이정기의 등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들.

이정기는 달 사냥꾼들을 뒤로 한 채 마침내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

멈춰 선 이정기, 눈앞의 구조물이 너무나 낯익었다.

이미 한 번, 아니 거의 십여 년을 지내왔던 곳.

“신전….”

쥬피터 할아버지의 거처였던 신전과 비슷한 모양새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초원 위에 오롯하게 서 홀로 존재하던 쥬피터 할아버지의 신전과 달리 이곳은 숲과 나무, 풀들이 뒤엉켜 신전과 하나 되어 있었다.

그 뒤로 떠 있는 만월.

터벅.

이정기는 신전을 향해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신전의 문턱을 넘는 순간.

“정말, 예언대로네.”

아름다고 청아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최강의 손자

지은이 | 규 명

발행인 | 조규영

펴낸곳 | 오에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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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 일 | [email protected]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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