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강의 손자-81화 (81/284)
  • 제4권 6화

    081

    할머니의 죄.

    그리고 그것은 아직까지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성의 모든 길드는, 게이트나 던전이 불안정한 경우 완전한 안전의 확보 후 공략에 돌입한다.’

    대의를 위한 소의 희생, 게이트에 위협받던 인류에게 그것은 어느새 당연해져 버린 일이었다.

    하지만 이성이 규칙을 세웠고, 그 규칙은 힘을 받아 조금씩 뻗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 규격.’

    헌터법으로 정의되어 세상의 헌터들이 공략을 시작할 때 꼭 지켜야 하는 것이 되었다.

    할머니는 그런 식으로 죄를 덜어내었다.

    그러나.

    ‘완벽히 덜어낼 수 없다.’

    결국, 그건 피해 당사자들에겐 아무런 효용도 없는 일이었다.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었다.”

    이성에 의해 아비를 잃은 두 자식을 찾을 수 없었다.

    남몰래 그들에게 속죄하려 해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나긴 시간이 흘러.

    “내 앞에 찾아온 것이 그 아이들이었다니.”

    이강, 아버지는 어머니를 치료하며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었다.

    그 후 어머니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어머니를 거두고자 한 것이었다.

    할머니를 생각하여, 할머니에겐 아무것도 알리지 않은 채 혼자 짊어지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진짜였다.’

    그사이 피어난 사랑.

    그것만큼은 죄책감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어찌….”

    할머니가 말했다.

    “그냥 내버려 둘 수 있겠느냐?”

    할머니는 말했다.

    “내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결국, 그 아이는 내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이였다고.”

    마침내 이야기는 끝에 도달하고 있었다.

    “이성을 움직여 그 아이를 구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한발 빠르게 움직인 자가 있었지.”

    피식.

    이정기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의 목소리, 표정, 누구를 말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개 잡종. 그 녀석이 영아를 구해내 데려왔다. 그 후는 너도 알겠지.”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혼.

    그리고.

    “달 사냥꾼들의 퇴출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영아 그 아이가 한 것이지.”

    그것만큼은 들은 것과 달랐다.

    또 다른 하나.

    “세간에 알려진 대로라면, 이성에 돌아온 강이가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저 영아의 출신지가 달 사냥꾼이기에, 혹여 내게 누가 될까. 또 영아가 나를 완전히 용서하지 못했을까. 그런 것이었지.”

    참.

    ‘아버지.’

    본 적 없는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알 것 같았다.

    “할머니가 이렇게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는 건….”

    이정기가 말했다.

    “제가 어찌할지 이미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죠?”

    끄덕.

    작게 움직이는 최명희의 고개.

    “말려봐야 소용없겠지.”

    자신이 달 사냥꾼을 찾으러 가리라는 것을 최명희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이성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이성의 도움.

    마치 예전 아버지 때와 같다.

    홀로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달 사냥꾼에 쳐들어가려던 아버지.

    자신 또한 같다.

    “필요 없습니다.”

    홀로 갈 것이다.

    하지만 이성을 위해서 홀로 가려던 아버지와 달리.

    ‘나는 그 반대다.’

    이성과는 별개로, 오히려 이성을 위협할 생각이다.

    “사슴은 다르다.”

    할머니가 말했다.

    “그 아이는….”

    작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혼돈의 세대 중 하나다.”

    “……!”

    “그전에도 강했던 아이다. 몇 년 전, 혼돈의 세대로 각성한 이후의 소식은 모르지만, 결코….”

    “할머니.”

    최명희를 부르는 이정기.

    이정기의 눈이 빤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래.”

    결국.

    “가거라.”

    최명희의 허락이 떨어졌다.

    * * *

    두두두두두!

    프로펠러가 회전하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성의 헬기, 정확히 말하자면 최명희가 소유한 개인 헬기였다.

    수많은 아이템으로 도배되어 원거리 능력을 막아내는 방어력을 지닌 것은 물론이거니와, 마력석을 통해 에너지를 공급받아 수준 높은 헌터가 탑승한다면 무제한으로 구동할 수 있는 특별한 헬기.

    그리고 그곳에 타고 있는 것은.

    “정말….”

    이진석.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정기, 그리고 자신을 찾아온 달 사냥꾼들이었다.

    지금 헬기가 향하고 있는 장소는 동해 어딘가에 있는 한 섬이었다.

    ‘추적이 여기까지 붙었다면, 아마 그곳에 있을 거예요.’

    달 사냥꾼들이 말해준 위치.

    ‘이미 파악하고 있다.’

    거기다 할머니 또한 달 사냥꾼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

    이진석의 물음에도 한참이나 대답 없던 이정기.

    그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에게 그런 사연이 있었을 줄이야.

    “저희 모두 마녀께 구함받았어요.”

    달 사냥꾼 중 한 명, 가장 어렸던 세화라는 여자가 말했다.

    “각자의 사연은 다르지만, 게이트 탓에 고아가 되거나, 헌터에 의해 부모를 잃었거나, 혹은….”

    헌터로 각성한 자식을 도구처럼 이용했다고 했다.

    마녀, 아니 어머니는 그런 이들을 구해내었다.

    가족 잃은 슬픔, 그것을 알기에 그들을 거두어 가족처럼 지냈다.

    “달 사냥꾼이 처음부터 히든 길드였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저 조용히 지내고자 한 것뿐이에요.”

    세상에 상처 입고 숨어든 그들.

    “하지만 사슴께선…, 달랐어요.”

    온순한 마녀, 그러나 사슴은 포악하기 그지없었다.

    세상에 상처 입고 숨어든 것에 대한 불만.

    그녀는.

    “세상을 향한 복수를 해야 한다고 했죠.”

    그렇게 달 사냥꾼의 악명이 시작되었다.

    “마녀께서 모든 것을 뒤집어쓰셨어요. 스스로 나서 모든 아픔을 홀로 감당하고자 하셨어요.”

    그렇기에 마녀가 되었다.

    사슴이 저지른 악행, 자신의 새로운 가족들이 저지른 악행을 뒤집어쓴 것이었다.

    “이진석 헌터.”

    “예. 말씀하십시오.”

    “괜찮겠냐고 하셨죠.”

    이정기가 말했다.

    “괜찮지 않습니다.”

    “……!”

    다른 게 아니라.

    찌릿.

    마음이 너무나 아프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머니가 겪었을 세상이, 올림포스에서 나고 자란 자신보다 더욱 괴로웠을 것이기에.

    하지만 그걸 물은 것이 아니겠지.

    “지금이라도 생각을 재고하시는 것이.”

    지금 가는 곳은 히든 길드 중 최고의 세력 중 하나인 달 사냥꾼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곳.

    또한, 그들은 이미 자신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을 것이다.

    최고의 암살자들을 뚫고 맞이해야 할 것은.

    ‘뷔앙과 비슷한 수준일 수도.’

    시엘 급의 헌터를 상대해야 할 수도 있었다.

    두두두두두.

    “아니면…, 회장님께 도움이라도….”

    “이진석 헌터.”

    “예.”

    이정기가 이진석을 보며 말했다.

    “저는 올림포스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압니다. 그리고 이정기 헌터가 강하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달 사냥꾼, 아니 사슴은 다릅니다. 이미 겪어보지 않으셨습니까.”

    이성의 길드전 때 뷔앙과 격돌해보지 않았느냐는 것.

    직접 시엘의 강함을 체감하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진석은 잊고 있는 것이 있었다.

    “제가 겪은 시엘이 뷔앙뿐일 것 같습니까?”

    “그게 무….”

    그제야 떠올린 모양이었다.

    “거의 매일을 겪었습니다.”

    이정기가 나고 자란 올림포스.

    그곳에서 이정기는 혼자가 아니었다.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헌터. 뷔앙을 요리사라 낮춰 부를 수 있는 헌터.”

    그뿐일까.

    “회장님, 아니 할머니 또한 단 한 번도 넘지 못했다는 벽이라고 했죠.”

    그 외에도 열거할 수 있는 것이 수십 가지는 더 될 거다.

    “이건 헌터….”

    “예. 저는 할아버지와 매일 대련하며 훈련했습니다. 시엘의 강함, 그 누구보다 잘 압니다.”

    이진석의 눈에 이정기가 새롭게 보였다.

    성혈, 그것은 보고 지내오며 매번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의 손자라는 것은 다르다.

    “그것 아십니까?”

    두두두두두.

    “저는 올림포스에서 지구로 오며 가진 힘을 잃었습니다.”

    “예, …예?”

    “제 빠른 성장은 그저 잃었던 힘을 되찾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그것 아십니까?”

    어느새 허공에 멈춰선 헬기.

    “저는 마지막에 할아버지와 동수를 이루었습니다.”

    “……!”

    “그러니….”

    이정기가 입가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겁니다.”

    “…….”

    할 말을 잃은 듯한 이진석.

    “여기서 더 지나갈 수 없습니다!”

    조종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 모시러 가겠습니다!”

    이진석과 이정기가 마주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타앗!

    둘은 거의 동시에 헬기의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 * *

    싸아아.

    싸늘한 공기가 감돈다.

    동해에 있는 작은 섬, 하지만 이곳이 주는 느낌은 전혀 한국과 비슷하지 않았다.

    이국적인 나무, 울창한 숲, 본 것과 다르게 꽤나 큰 듯한 섬의 느낌.

    “달의 결계에요.”

    세화가 말했다.

    “달의 결계가 은신처의 본 모습을 보이는 것이에요. 그렇다는 건….”

    세화와 달 사냥꾼들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사슴께서 이곳에 있다는 것이에요.”

    “잘 찾아왔단 소리군요.”

    이정기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

    우우웅.

    이정기의 뜻에 따라 공명하는 마력.

    올림포스에서 언제나 하던 것이었다.

    ‘보여줘.’

    마력을 통해 마력이 닿는 곳의 시야를 갖는 것.

    이정기는 그렇게 정찰을 시작했다.

    “여기는 일종의 안전지대이자 입구인 것 같습니다. 전방에 마력의 질이 뒤바뀌는 구역이 있습니다. 아마 그곳부터는….”

    적지다.

    “이진석 헌터는 이곳에서, 세화 씨일행이랑 함께 대기하세요.”

    “함께 가겠습니다.”

    “안 됩니다.”

    이정기는 단호했다.

    “이진석 헌터의 역할은 퇴로를 확보하고 지키는 겁니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따로 말씀드려야 하나요?”

    “……결국,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이군요.”

    이진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준비는 끝났다.

    “조심하셔야 해요. 사냥꾼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을 거예요.”

    세화가 경고했다.

    저벅.

    대답하지 않은 채 나아가던 이정기.

    그가 어느 순간 멈춰서 조용한 목소리를 내었다.

    “혜성이라는 분, 꼭 데려오겠습니다.”

    터벅.

    마침내 또 한 번 나아간 발걸음.

    [올림포스에 입장하셨습니다.]

    메티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역….]

    순식간에 뒤바뀐 공기.

    ‘이곳이 올림포스라고?’

    특별 관리 던전인 던전 게이트도 아니건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이정기의 의문이 풀리기도 전, 메티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케리네이아, 아르테미스의 신전에 입장하셨습니다.]

    스윽.

    울창한 풀숲에서 인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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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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