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권 3화
078
요새와 같은 이성의 저택.
조용한 것이 좋다며 최명희는 주변 땅을 모두 매입해 성을 만들었다.
그런 저택을 벗어나 조금 나아가니 으슥한 골목이 보였다.
‘여기다.’
느껴지는 기운.
“대체 편지에 무엇이 쓰여 있었던 겁니까?”
이진석이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경고였습니다. 또 한 번.”
“무슨….”
“위험이 다가오고 있으니 더욱 몸을 조심하라는 경고.”
상처 입은 올빼미가 전해준 전언.
그렇기에 이정기는 움직였다.
‘이들은 스스로의 목숨마저 버릴 각오로 나를 도우려 하고 있어.’
그렇다면.
타앗!
당연히 자신 또한 그들을 도와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멈춰선 이정기.
이진석 또한 함께 멈춰 섰다.
“정말 여기 뭐가 있는 겁니까?”
이진석은 당혹감을 숨기지 못한 채 말했다.
주변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달 사냥꾼의 올빼미라면 저택에 침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 왜 하신 겁니까?”
“그건.”
이진석이 말했다.
“달 사냥꾼들은 최고의 암살자들로, 그들은 물론 그들이 키우는 올빼미도 최고 수준의 은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진석.
“보름달이 중천에 떠 있을 땐 더더욱.”
가장 밝은 보름달,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달 사냥꾼에 속한 헌터들은 그 보름달 밑에서 가장 강력한 은신 능력을 자랑했다.
과거 달 사냥꾼을 창설한 사슴과 마녀가 얻은 레전더리 아이템, 만월.
그것을 쪼개어 나누어 만든 아이템.
‘달의 기운.’
그것 때문이라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었다.
“지금 그 보름달이 떠 있습니다.”
이정기가 말하며 조용히 마력을 일으켰다.
동시에 천천히 내뻗는 손.
그러자.
일렁.
아무것도 없던 골목길의 공간이 일렁거렸다.
“이들이….”
찢겨진 공간을 통해 드러난 모습, 자신을 찾아왔던 달 사냥꾼들 중 네 명이 그곳에 상처 입은 채 있었다.
“여길…, 어떻게….”
메마른 목소리로 이정기를 알아본 한 명.
“올빼미가 찾아왔습니다.”
“안 돼…. 피하셔….”
그때였다.
파아앙!
허공을 가르는 강렬한 파공음.
카아앙!
동시에 소스라치는 소음이 울려 퍼졌다.
“괜찮으십니까?”
이진석, 그가 몸을 움직여 날아든 것을 막아내었다.
그의 검에 내쳐져 바닥에 떨어진 것은 화살.
“추격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이정기가 이진석을 향해 말했다.
“달빛 건너편을 볼 수 없으면, 보름달 속에서 추격은 무리입니다. 거기다….”
이건 함정이다.
자신들을 유인하는 함정.
‘따라가는 것도 괜찮겠지만.’
지금은.
“괜찮으십니까?”
상처 입은 달 사냥꾼들이 눈앞에 있었다.
“저희는…, 괜찮….”
“괜찮긴 무슨.”
이정기가 포션을 꺼내 그녀들의 입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이 꼴이 되고선 뭐가 괜찮다는 겁니까.”
“감사…합니다. 하지만….”
쿨럭!
하지만 그녀들은 마셨던 포션을 그대로 토해내기 시작했다.
“소용…, 없습니다.”
“……!”
“달의 낙인…. 배신자들에게 찾아오는 저주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이걸 치료하려면 엘릭서라도 있어야….”
엘릭서, 구하려면 구할 수야 있다.
자신은 성혈이고, 할머니의 가방에 수십 개가 넘는 엘릭서가 있다고 했으니까.
그러나 그래선 안 된다.
‘다른 치료 방법을 찾아야 해.’
의료 헌터들이 있는 의료 길드로 찾아갈까 생각했지만.
‘안 돼.’
이 또한 안 된다.
이들의 신분이 다른 것도 아닌 히든 길드, 달 사냥꾼의 소속 헌터들이었으니까.
“저희는…, 정말 괜찮….”
끝까지 괜찮다 말하는 그녀들.
이정기는 눈을 감고 방법을 생각했다.
‘저주를 치료할 수 있는 것.’
황금 산양의 젖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지금 그것들을 네 개나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그때였다.
[히드라의 독.]
들려오는 메티스의 목소리.
‘히드라의 독?’
[히드라의 독은, 저주마저 녹여낼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랬다간….’
상처로 약화된 저들이 독에 중독되는 수가 있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들려오는 메티스의 목소리.
[당신이 독의 주인입니다. 원한다면 저주만을 녹여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참으십시오.”
이정기가 그녀들의 쇄골에 손을 대었다.
초승달로 기운 달.
치이이익-!
그것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 * *
“도움에 감사합니다.”
회복된 사냥꾼 한 명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아닙니다. 목숨을 걸고 경고를 하러 온 사람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죠.”
“역시…, 그분의 아들이군요.”
크게 감명받은 듯한 얼굴.
“어떻게 된 겁니까?”
이정기는 낯이 뜨거워지는 것을 피하고자 말을 돌렸다.
“미행이 있었습니다. 아니….”
크윽,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처음부터 조작된 함정이었습니다.”
“함정? 그리고 또 한 분은 어디 있습니까.”
그녀들의 낯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칼리스토, 아니 박혜성 언니는…, 그분과 함께 있을 겁니다.”
“그분?”
그녀들이 급히 말했다.
“여기 이렇게 있으시면 안 됩니다. 이성 저택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여제의 옆에서 떠나시면 안 됩니다.”
다급함과 조급함, 절심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분의 화살을 피하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대체….”
이정기가 말했다.
“그분은 누구고 함정은 뭡니까? 제게 설명을 해주어야 저도 원하시는 대로 움직이든 하지 않겠습니까?”
“조, 죄송합니다.”
다시금 차분함을 되찾은 그녀들.
“처음부터…, 이정기 님을 노리려는 함정이었습니다.”
그녀들의 사정이 밝혀졌다.
“그분이 이정기 님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혜성 언니는 이정기 님에게 경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혜성이라는 여자가, 처음 자신과 조우한 달 사냥꾼인 것 같았다.
“그래서 저희를 이끌고 한국으로 들어와 이정기 님을 만날 계획을 세운 겁니다.”
“저를 왜?”
달 사냥꾼이 자신을 노릴 이유가 있던가?
“그건….”
“제가 말씀드릴게요.”
그녀들 중 가장 어린 여자가 말했다.
“이정기 님이 그분…, 마녀의 아들이시니까요.”
“마녀?”
설마 지금 말하는 마녀가….
“달 사냥꾼의 창설자를 말하는 게 맞습니까?”
“맞아요. 모르셨나요? 마녀, 유영아. 아니….”
그녀가 말했다.
“요정왕 유영아. 그분이 길드를 창설한 두 분 중 한 분이세요.”
“……!”
그렇다면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설마.
‘내가 달 사냥꾼을 원한다고 생각해서?’
자리에 위협이 될 자를 제거하려는 것일까?
“그리고 사슴께선….”
또 다른 달 사냥꾼의 창설자 사슴.
문맥을 통해 이미 자신을 노리는 자가 그녀일 것이라 예상은 했다.
“몇 년 전부터 광증을 앓고 계세요.”
“설린아!”
“다 말씀드려야 해요! 그리고 어느 날, 이정기 님이 올림포스에서 태어나 자라, 지금 한국에 있다는 것을 듣고선 죽여야 한다고 하고 있어요!”
광증이라니.
“이정기 님이 마녀를 죽인 거라고, 이정기 님 때문에 그분이 돌아가신 것이라고….”
말도 안 되는.
그런 이유라고?
이정기의 눈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사슴은 무서운 분이세요. 지금껏 그분의 화살을 피해낸 사람도 없어요.”
히든 길드.
당연하게도 그들에게 속한 헌터들은 랭킹이 없다.
즉, 그 구성원이 얼마나 강하고 길드 내의 최고 헌터들이 어느 수준인지 알려진 바 없다는 것이었다.
“여제도 사슴의 화살을 피해내지 못했었어요.”
“……!”
할머니가?
그리고 사슴이 할머니를 노렸단 것인가?
너무나 급작스럽게 쏟아지는 정보.
“후우.”
이정기는 숨을 돌릴 시간이 필요했다.
“나머지는 천천히 말씀해주십시오.”
* * *
그녀들을 안전하게 숨길 장소를 찾아야 했는데, 그 고민은 쉽게 해결되었다.
아니 애시당초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이 달 사냥꾼이건 헌터이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은 필요한 법.
그들은.
“대체 여긴.”
“달 사냥꾼의 은신처 중 한 곳이에요.”
던전에 머물고 있었다.
“이곳에 던전이 있다고는 들은 적 없습니다.”
이진석이 당황하며 말했다.
“그럴 거예요. 여긴 달의 이면, 특별한 힘으로 만들어진 인공 던전으로 허락받은 자가 아니면 던전을 발견하는 것은 물론, 입장할 수조차 없거든요.”
“달 사냥꾼은 아무리 추적해도 잡기 힘들다 했는데, 이런 이유가 있었군요.”
이진석도 감탄하고 있었다.
“이곳이라면 안전해요.”
“…….”
하지만 이정기는 무언가 불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그러시죠?”
“이곳이 달 사냥꾼의 은신처라면….”
말을 꺼내는 이정기.
“달 사냥꾼도 다 알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적을 피해 적진의 아가리에 몸을 집어넣은 꼴 아닌가.
“예리하시네요. 하지만 걱정할 것 없어요. 이곳을 알고 있는 건 여기 있는 저희를 포함해 혜성 언니밖엔 없거든요.”
“……?”
“여긴 다른 분도 아닌….”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마녀께서 직접 만드신 던전이에요.”
“어머니가….”
“저희가 어릴 때, 저희를 구출하기 위해 잠시 만들었던 던전이었는데 파괴하지 않고 내버려 둔 것을 저희가 이렇게 쓰는 거죠.”
“…….”
어머니가 만든 곳이라니.
이정기는 조용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쨌든, 피하셔야 해요. 사슴께서 이정기 님을 노리고 있다는 건 확실해요.”
“혜성 언니라는 분은 어쩌실 겁니까.”
“그건….”
어두워지는 낯빛.
“저희는 전부 각오했어요.”
“…….”
“저희의 목숨을 구해주셨던 마녀께 보은하기 위해, 저희도 목숨을 버리겠다고. 이미 그분은 계시지 않지만….”
뚝.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분의 자식을 구하면 그걸로 저희의 목숨을 구해주신 보은을 하는 것이라고요.”
“…….”
“그러니 꼭 여제의 곁에 있으셔야 해요. 아니면 여제께 말씀이라도 드리셔야 해요. 그래야만 해요.”
도대체 사슴이 얼마나 무서운 작자이기에.
“이제 어쩌실 겁니까?”
“경고를 했으니….”
이 사람들.
‘구하러 갈 생각이야.’
말은 각오했다고 하지만, 사라진 한 명인 박혜성을 구하러 갈 생각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들이 말한 대로라면.
‘죽겠지.’
이들 전부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꼭 여제 곁에….”
“아니.”
이정기가 말했다.
“그 혜성이라는 분 구하러 저도 가겠단 말입니다.”
“지금까지 뭘 들으신 거예요!”
이정기의 말에 화를 내는 그녀.
“당신은 절대…!”
이정기가 검지를 들어 스스로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
분명 그랬다.
“혜성 언니라는 분도 알고 계신다 했죠.”
“예. 그런데….”
그 혜성 언니가 어디 있나.
달 사냥꾼에 잡혀갔다.
“……!”
파아앙!
공기를 꿰뚫고 날아드는 화살.
“습격입니다!”
이진석이 검에 붉은 마력을 불어넣으며 소리쳤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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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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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