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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77화 (77/284)
  • 제4권 2화

    077

    “서운합니다.”

    갑작스러운 이진석의 말에 이정기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 뭐가요?”

    “그 말씀은 아직도 저를 믿지 못하고 계신다는 것 아닙니까?”

    “예?”

    다르다.

    “믿어요.”

    “그럼…?”

    “그게 이진석 씨의 일이잖아요.”

    이진석은 원래부터 이성, 그리고 할머니의 사람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할머니에게 보고를 올리는 것이 맞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보좌하고 경호하는 것 아니던가?

    “역시.”

    이진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 선택이 후회스럽지 않군요.”

    “……?”

    “그런 대범함이라니. 걱정 마십시오.”

    이진석이 이정기를 향해 가슴을 펼치며 말했다.

    “이미 회장님께 보고 드리지 않은지 꽤 되었습니다. 그리고 회장님께서도 그것을 허락하셨고요.”

    “할머니가요?”

    * * *

    “괜찮으시겠습니까?”

    박윤태가 위스키잔을 들어올리며 걱정스레 말했다.

    “이정기 군은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습니다.”

    성혈, 그것만이라면 차라리 다행일 텐데.

    ‘회장님뿐만이 아닌 이건의 핏줄이기도 하다.’

    세상에 남아있는 이건의 유일한 핏줄.

    그건 추후 이건이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 이정기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단 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핏줄이기도 하지.’

    이강과 유영아의 핏줄.

    그건 다른 성혈들과는 차별화된, 아니 비교할 수조차 없는 입지라 할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일까.

    ‘올림포스에서 나고 자란 아이.’

    그에 대한 특별함으로 이미 홍역도 한 번 앓았다.

    ‘생츄어리.’

    그들이 이정기를 습격했고, 그로 인해 이성은 정말 오랜만에 길드전이라는 이벤트를 겪어야만 했다.

    물론 이성을 건드린 대가를 받는 것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생츄어리뿐만이 아니야.’

    앞으로도 이정기를 노릴 수 있는 자들은 수도 없이 많다.

    이정기는.

    ‘혼돈의 세대.’

    이 세상에서 특별하게 여기는 또 한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하나 다시 생각해보니 박윤태는 정신이 더욱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럼.”

    위스키 한 잔을 꿀꺽 넘긴 최명희가 말했다.

    “손자놈을 계속 감시라도 하라는 거냐?”

    “회장님, 그게 아니라…, 지금 이정기 군의 옆에는 김윤태 공격대장도 있습니다. 주영은 길드장이 어떻게 보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꿀꺽.

    “감시가 아닌 보호를 하자 이 말입니다.”

    “보호라.”

    씨익.

    최명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평소 다른 성혈들이나 이성의 간부들은 볼 수 없는 웃음.

    삼십 년 이상을 함께 한 박윤태이기에 볼 수 있는 웃음이었다.

    “녀석이 보호받아야 할 것 같나?”

    “이정기 군은….”

    “처음엔 D등급이었다. 물론 특별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긴 했지.”

    최명희가 말했다.

    “하지만 곧이어, B등급 그리고 S등급이 되었다.”

    “…….”

    “이번에는?”

    꿀꺽.

    “로베르트를 이겼다.”

    “…….”

    확실히, 박윤태도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타악.

    최명희는 연거푸 들이마신 위스키 잔을 거칠게 탁자에 내려놓고 말했다.

    “알지 않나? 이번 백두 길드의 공략전에서 정기가 누굴 상대로 승리했는지.”

    안다.

    ‘강민혁.’

    세컨드 라인의 랭커, 그리고 주병훈이 키우는 훌륭한 사냥개다.

    최명희의 말마따나 이정기는 말도 안 되는 성장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박윤태는 물러서지 않았다.

    “아시지 않습니까.”

    최명희의 말에 말대답을 할 수 있거나, 직언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그것이 박윤태였다.

    “세계에 괴물이 얼마나 많은지.”

    꿀꺽.

    최명희는 내려놓았던 위스키 잔에 술을 가득 채워 목으로 넘겼다.

    “알지.”

    “그러니….”

    “그래도 어쩌겠나.”

    “…….”

    “이진석이, 그 녀석이 싫다는데.”

    최명희가 기억을 떠올렸다.

    생츄어리의 습격 전, 이진석이 자신을 따로 찾아왔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정기에 관한 보고이겠거니 했건만, 이진석은 서재에 들어올 때부터 무언가 결심한 얼굴이었다.

    ‘회장님. 죄송합니다.’

    사죄와 함께 시작된 이진석의 말.

    ‘더 이상 회장님께 보고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이성의 자리를 버리라 하면 버리고, 팔 한 짝을 내놓으라 하면 내놓겠습니다.’

    굳은 결심과 진심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정기 군의 이야기를 보고 드리는 것은 그만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이진석이.’

    ‘옙.’

    ‘내가 무슨 예전 조폭 따위인 줄 아나?’

    ‘회, 회장님.’

    ‘팔을 왜 내놓아?’

    최명희는 말했다.

    ‘맘대로 해.’

    아주 간결한 대답, 그 때문에 오히려 벙찐 것은 이진석이었다.

    한참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던 이진석은 고개를 깊게 숙여 감사를 표하곤 말했다.

    ‘그래도 회장님이 지금껏 제게 해주신 것들에 대한 보답으로 이유라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묻지도 않았건만 떠드는 이진석.

    ‘아시고 계시지만, 저는 검을 쥘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레 새로 생긴 유니크 스킬.

    일반 헌터라면 누구나 기뻐하며 인생의 역전을 즐겼겠지만, 이진석은 달랐다.

    그가 가장 원하고 바라던 길, 검의 길을 가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만큼은 최명희도 놀랐다.

    이진석의 귀검에 대한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최명희.

    이진석이라는 자원이 꽤나 훌륭했기에 이진석을 고치고자 자신의 밑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대단한 헌터도, 아이템도, 하물며 자신도 이진석을 고칠 수 없었다.

    ‘마음.’

    그건 마음의 문제였으니까.

    그러니 놀랐다.

    이진석이 다시 검을 쥘 수 있게 이정기가 도왔다는 것은 이진석의 마음을 고쳤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이정기가 가진 특별함이 단순히 강력한 힘과 능력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래.’

    그렇기에 최명희는 궁금해졌다.

    ‘넌 최고가 되고 싶어 했지!’

    ‘헌터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 아니겠습니까.’

    ‘네가 그런 선택을 했다는 건…. 이성이 아닌 정기의 옆에서 더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는 거겠지?’

    어찌 대답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뀔 수도 있는 질문.

    하지만 이진석은 단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예.’

    그것이 끝이었다.

    그날 이후 더 이상 이진석은 이정기의 일과에 관한 보고를 해오지 않았다.

    “윤태야.”

    “예. 회장님.”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아니다.”

    오늘따라 취기가 올라온 것일까.

    “지금껏 아이들이 세상에 나설 때마다 내 사람들을 붙여주었다.”

    “그랬죠.”

    성혈들이 헌터가 되어 세상에 나설 때, 최명희는 언제나 자신의 사람을 붙여주었다.

    그것도 최고, 혹은 훌륭하다고 판단되는 자들로만.

    “하지만 아이들 중에 몇 명이나 그들을 제 사람으로 만들었더냐.”

    “……!”

    박윤태가 조용히 위스키 잔을 넘겼다.

    “또 제 사람으로 만들기까지 얼마나 걸렸더냐.”

    “회장님.”

    “정기만큼 빠른 녀석이 있었더냐?”

    자신이 붙여준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것.

    “있긴 했었죠.”

    “그래. 있었지.”

    박윤태와 최명희는 말없이 위스키 잔을 들었다.

    이정기만큼 빠르게 사람의 마음을 빼앗고 장악했던 사람.

    아니.

    ‘정기보다 더했지.’

    붙여준 사람의 마음만 빼앗아도 될 것을, 그 주변의 사람도.

    관계없는 사람들의 마음마저도 빼앗았던 이.

    ‘강아.’

    이정기의 아버지, 이강이었다.

    * * *

    “다, 달 사냥꾼에….”

    이진석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유영아 헌터께서 계셨다고요?”

    이진석은 전혀 모르는 듯했다.

    아니 세상 사람 대부분이 모르는 듯했다.

    “예. 저도 할아버지께 듣기만 했어요.”

    “그, 그렇다면 이해가 됩니다.”

    이진석은 당황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예전, 이강 헌터께서 유영아 헌터를 집에 데려왔을 때 난리가 났었다고 합니다.”

    “…….”

    “회장님이 그렇게 대노하신 것은 박윤태 비서실장님도 처음 보셨다고요.”

    과연.

    “사실 유영아 헌터가 평범한 집안의 출신이라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지만, 회장님은 그런 분이 아니셨습니다. 사랑한다면 허락해줄 수 있는 분이라고 하셨었죠.”

    할머니가 그랬단 건가.

    “그런 회장님이 그렇게 반대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유영아 헌터의 출신이 달 사냥꾼이어서라면…, 이해가 갑니다.”

    “달 사냥꾼에 대해 아는 게 있습니까?”

    사실 이정기도 달 사냥꾼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히든 길드의 특성상, 평범하게 구할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고 애시당초 달 사냥꾼은 도시 전설처럼 뜨문뜨문 이야기가 나올 뿐이었다.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들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으면, 어찌 그것이 히든 길드일까.

    “다만, 사슴과 마녀. 둘이 만든 길드라고….”

    “사슴과 마녀?”

    “그리고 히든 길드 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잔혹하기로 악명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특히나 마녀의 손속은 너무 잔인해, 달 사냥꾼이 그만큼 성장한 것이 마녀의 덕택이라고요.”

    마녀와 사슴.

    “또, 전원 여자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국적은요?”

    “모릅니다. 다만 한국계가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긴 합니다. 히든 길드 중 한국계가 가장 많은 곳이 달 사냥꾼이라고요.”

    이진석이 무언가 깨달았는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가…?”

    역시 눈치가 빠르다.

    “그때 달 사냥꾼이 접촉해왔습니다.”

    “예?”

    이정기가 말했다.

    “제게 경고를 하더라고요.”

    “경고요?”

    “네. 이성과 떨어지지 말라고.”

    “…….”

    이진석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렇다면 생각보다 더 심각한 일일 수 있겠습니다.”

    “왜요?”

    “달 사냥꾼이 한국에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이성과 붙어있으라니. 그것 아십니까?”

    이진석이 말했다.

    “달 사냥꾼은 한국에 지부는 물론이거니와 길드원조차 없었을 겁니다. 예전에….”

    예전, 이정기가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

    그리고 이강과 유영아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

    “회장님께서 국내의 달 사냥꾼들은 전부 토벌하거나 추방하셨거든요.”

    “……!”

    그때였다.

    찌릿.

    몸에 느껴지는 특별한 기운.

    “뭔가 저택에 오고 있습니다.”

    “그럴 리가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분명합니다.”

    빠르게 접근해오는 무언가.

    ‘경고했던 무언가?’

    아니,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나 평범하다.

    “저택은 철저한 보안으로, 쥐새끼 하나 들어오더라도….”

    부어어엉!

    “아. 달 사냥꾼들의 올빼미라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정기가 곧장 움직여 제 방의 창문을 열어젖혔다.

    부어어엉!

    울어대는 부엉이가 상처 입은 채 이정기의 앞에 고꾸라졌다.

    목소리를 내던 올빼미의 다리에 묶여 있는 종이.

    이정기가 그것을 읽으며 얼굴을 굳힌 채 말했다.

    “따라올 겁니까?”

    “원하신다면 지옥이라도.”

    타앗!

    이정기가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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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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